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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하나 되어 (1)
“와,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거울 앞에 선 최재환을 향해 점원이 박수를 쳤다.
짝짝! 일명 물개박수라 불리는, 오직 판매가 목적인 박수로 보인다. 뭐 상관은 없는데, 문제는 그녀의 시선이 자꾸만 나를 곁눈질하고 있다는 거다.
“흠, 난 이런 거 좀 그런데.”
최재환이 두 팔을 들썩거리며 얼굴을 찌푸린다. 아무래도 양복에 구두 차림이 영 불편한 모양이다. 하긴, 청바지에 구질구질한 회색 티셔츠만 입어왔으니 몸이 놀랐을 테지.
“이상하기는······.”
나는 최재환의 셔츠 깃을 정리해주고 뒤로 반 발짝 물러나며 점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멋있기만 하구만. 안 그래요?”
점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도 최재환은 여전히 뚱한 얼굴.
“뭐가 그렇게 어색해?”
나름 잘생긴··· 얼굴인데.
“그냥 좀 이상하네.”
“참내, 이상할 것도 많다.”
내가 다시 곁에 붙자, 최재환이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꽉 붙들고, 그의 옆머리를 쓱 매만져 뒤로 넘겼다. 그런 다음 앞머리를 살짝 만지고.
“잘 안 되네······.”
그럼 침을 묻혀볼까.
“야 더러워!”
질색하는 최재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최재환의 앞머리를 살살 말아서 위로 꼬아줬다. 이러니까··· 그냥 그렇다. 미안. 그래도 이 정도면 환골탈태 수준이잖아.
“이야, 완전 영화 속 주인공이다. 그죠?”
“아, 예.”
점원이 또 미소를 끄덕인다. 근데 이봐요, 나 말고 최재환을 보고 대답해주면 안 될까?
“좋았어, 내가 오늘 형 소개팅해줘야겠다.”
“뭐어?”
최재환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먹물이라도 뱉게?
“됐어 임마. 소개팅은 무슨······.”
“되긴 뭐가 돼?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궁상맞게 살 거야? 여자 안 만나?”
“아, 이 자식 오늘 왜 이래? 너 뭐 잘못 먹었냐?”
최재환은 몸서리를 쳤고, 나는 또 그에게 달라붙는다. 내킨 김에 간지럼도 좀 태우고.
“징그러워, 하지 마! 하지 말라고오!”
티격태격하는 우리의 모습에 점원은 미소만 생글생글.
그녀에게 아까 본 여러 켤레의 구두 중에서 갈색의 구두를 다시 가져다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최재환이 또 난리다.
“이제 됐다니까.”
“나야말로 됐거든요.”
무작정 달라붙어 최재환의 구두를 억지로 벗겼다. 이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구두 굽이 다 갈려 있다.
‘어휴.’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고 최재환의 발에 새 구두를 신겼다. 그런 뒤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멋있게 변한 최재환을 눈에 담았다.
“형, 이러니까 진짜 몰라보겠다.”
언젠가 차 대표가 그랬었지. 남자의 완성은 패션이라고.
남색 컬러의 수트에 비슷한 컬러의 셔츠로 톤을 업했더니 제대로 달라졌다. 최재환이 너, 오늘 계 탔다.
“타이는 어떤 걸로 할까··· 흠흠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물방울이 몽글몽글 차 있는 넥타이를 집었다.
“이거 괜찮네.”
최재환의 목에 두르고 다시금 거울을 살핀다.
“흠, 그래도 부족한데··· 아, 시계.”
일단은 내가 차고 있는 시계를 벗었다. 그러자 최재환이 또 학을 뗀다.
“야, 그거 대표님이 준 거잖아?”
차 대표가 재계약 기념이라고 준 고급 금장 시계.
“형, 나는 시계 같은 건 없어도 돼. 그런 외모야, 나란 사람은.”
최재환의 눈이 ‘재수 없어’ 라고 말하고 있다.
‘훗.’
아무튼 그렇게 세팅을 하고 거울 앞에 최재환을 다시 세웠다. 나보다 작은 키의 최재환이 거울에 비친다. 세련되고, 조금은 격식 있어 보이며, 무난하게 남은 여름을 보낼 수 있는 패션니스트로 변신했다.
“우와··· 대박.”
내 속삭임에 최재환도 만족스러운 듯, 혹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 둘의 모습.
나는 최재환의 어깨에 팔을 기대고서 흐뭇한 미소로 이 순간을 눈에 담았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괜찮긴 한데, 나는 이런 거 영 아니야.”
“됐고요.”
나는 요즘 들어 말투를 바꾸려 노력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20대처럼 보여야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연습생들과의 교류도 한번 가져보고 싶다. 항상 위에서, 혹은 곁에서 그들을 지켜본 것과 달리 한 번쯤은 같은 눈높이에서 다가가고 싶다. 친구도 되면 좋고.
“저기, 계산이요.”
점원을 향해 돌아선 나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긴 팔이 유연한 동작으로 지갑을 꺼낸다. 그 모습이 매장의 유리벽에 그대로 비친다.
‘이런 자세도 나쁘지 않네.’
이제부터 나는 모든 행동에 거추장스럽지 않은 간결한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설사 가식이고 꾸며낸 것일지라도, 최소한 밖에서는 그래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런 순간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지금의 삶에서는 고민 같은 건 없었으면 하니까.
“바로 계산 도와드릴게요.”
카드를 건네받은 점원이 쪼르르 계산대로 달려간다. 그러더니 계산대에 있던 점장과 뭔가를 속닥속닥. 아마, 또 내 얘기겠지.
그녀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최재환을 바라봤다.
“형, 오늘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 소개시켜줄 거거든.”
“됐어 임마. 니가 무슨 아는 사람이 있다고.”
“나만 믿어. 내가 책임진다.”
“야··· 나, 눈 높아.”
그 말에 나는 최재환을 쳐다봤다. 점원들도 반사적으로 그를 쳐다본다. 가자미눈으로. 지금 무슨 헛소리를 들었냐는 얼굴이다.
“쓸데없이··· 아무튼, 내가 취. 향. 저. 격. 제대로 해주지.”
수다스러운 남자들 때문에 매장이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점장은 미소와 함께 내 카드를 정중히 돌려줬다. 그러고는 최재환이 입던 옷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그냥 버려도 안 가져갈 옷이라고 생각되는데, 최재환이 또 그걸 냉큼 챙긴다. 그렇게 뒤돌아서 가려는데.
“어서 오세요.”
점원의 맑은 목소리가 매장에 퍼졌다. 그에 맞춰 고개를 돌린 순간,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여자가 매장 유리문에서 손을 떼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과 햇살을 펄럭이며, 마치 CF의 한 장면처럼, 구릿빛 피부의 늘씬한 몸매와 작은 얼굴에 걸친 선글라스를 쓴 여자··· 짧은 팬츠와 청재킷을 걸친 그녀의 모습에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온갖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달고 온 그녀에게서 장미향이 풍긴다.
“오소리 씨?”
최재환이 그녀의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인사를 건넸다. 그녀도 우뚝 멈춰 서더니 놀란 듯 동그랗게 입술을 말았다.
“어어? 최 실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그게······.”
머뭇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최재환의 모습에 오소리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더니 맑은 미소와 함께 감탄사를 터트린다.
“와··· 최 실장님, 오늘 되게 멋있는데요?”
“하하, 아이고 참··· 근데, 옷 보러 오셨나 봐요?”
“예, 코디하고 같이.”
마침 그녀의 뒤로 매니저와, 덩치가 제법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매장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와, 명숙이 오랜만에 보네.’
오소리의 스타일리스트 오명숙.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오소리 곁에 없었는데······.
‘아, 어쩜 이번에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네.’
내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라고 해도, 어느 시점에 인연이 됐는지까지 기억하는 건 아니다.
“형님? 여긴 어쩐··· 아니, 그 옷은 또 뭡니까?”
놀란 오소리의 매니저가 최재환을 요리조리 본다.
“우리 형 멋있죠?”
내가 묻자 오소리의 매니저가 엄지를 척.
“이야, 진짜 사람이 달라 보이네요.”
“시끄러워 자식들아. 그럼 오소리 씨, 저희 가볼게요.”
서둘러 나가려는데.
“오늘, 회식 오실 거죠?”
최재환이 멈칫하고 등을 돌렸다. 나도 고개를 돌렸는데, 오소리의 시선이 나를 스쳐 다시금 최재환에게 닿았다.
“오소리 씨도 오게요?”
최재환이 의외라는 듯 묻자, 오소리가 매니저와 코디에게 손짓한다. 안으로 들어가라고.
잠시 뒤 우리는 오소리와 함께 매장을 나왔다. 그런 뒤 그 앞에서 얘기를 나눴다.
“저도 그 자리 참석하거든요.”
“예? 왜요?”
오소리의 말에 최재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직원들 회식에 소속 연기자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연예매니지먼트 기획사라고 하면 연기자들을 가까이서 볼 것 같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다들 촬영하느라 바쁘고, 방송 나가야 해서 바쁘고, 회사에 잘 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차 대표 역시도 연기자들과 직원들이 어느 정도 선을 두게 하는 편이었다.
“왜겠어요.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러지.”
오소리가 웃는 얼굴로 최재환을 핀잔한다. 그 모습에서 마치 옆집 여동생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나이 올해 스물.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아직은 많이 어린 것이 사실이다.
“할 얘기요?”
“후훗, 뮤직비디오 때문에 그래요.”
오소리가 얘기를 계속하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뮤직비디오? 무슨 뮤직비디오?”
최재환이 속삭이며 묻자, 그녀가 눈웃음과 함께 얘기를 계속했다.
“보이스레이드. 나 그거 하려고요.”
“예?”
놀란 최재환.
“그건 혜선이가 하기로 했는데요?”
“알아요. 권혜선 씨가 하기로 한 거··· 근데 내가 하려고요. 연기는 배우가 해야죠. 안 그래요, 시현 씨?”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본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람.
“그렇긴 하죠.”
원하는 대답을 건네준다. 근데 왠지 강아지에게 양고기 스틱을 하나 물려준 느낌이다.
“뭐··· 딱히 이유가 있으신가요?”
최재환이 귓등을 긁적이며 묻는다.
“흠, 스토리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리고, 저 일희하고 친해요. 알잖아요?”
주일희, 보이스레이드 여성 멤버.
“아, 그렇지.”
최재환이 귓등에 이어서 턱을 긁적인다. 그 모습에 오소리가 눈썹을 쫑긋 올리자, 그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얘기를 다시 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권혜선한테 양보하시죠.”
“예?”
오소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약간은 삐뚤삐뚤해졌다.
“왜요?”
“그냥 뮤직비디오잖아요. 오소리 씨 경력에 들어가지도 못할 촬영이고, 그럴 바에야 경험 삼아 권혜선이 하면 좋으니까.”
“제가 듣기로는, 권혜선 씨 연기하는 거 반대한 사람이 최 실장님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에 최재환이 이마를 긁적인다. 소문 한번 빠르다는 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는데, 글쎄요··· 무조건 반대라기보다는 그 친구들을 곁에서 봤었으니까, 일이 분산 될까 봐 그랬던 거지, 못할까 봐 그런 건 아니었어요.”
“흠······.”
오소리가 고민한다. 가는 팔을 교차해 팔짱을 한 채로 선글라스 다리를 톡톡 건들며 우리를 보더니.
“근데, 어쩌죠? 저는 이미 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걸······.”
“미안해요. 난 그거 할 거예요. 번복하는 것도 싫고.”
최재환은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불쾌함이나 화가 난 얼굴이 아닌, 당황하는 얼굴이다. 오소리는 그를 달래주려는지 옅은 미소 뒤에 저녁에 보자고 말하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우리는 맥없이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에효, 저럴 때는 또 천상 애네.”
최재환이 한숨을 피식 내시고 걷는다.
“근데 형, 오소리 선배님··· 스타일리스트 이번에 들어왔어?”
나는 오명숙에 대해 물었다. 내가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 이유는 ‘KIS 방송국 집합 사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명숙이 작가들을 집합시켰던 그 사건.’
그 일로 지에스가 발칵 뒤집혔었지.
오소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작가들의 요구에 자꾸만 젖소 얘기가 나왔고, 빡친 오명숙이 작가들을 방송국 소품실에 집합시켰던 그 사건.
‘가만 보면, 지에스도 인물들이 참 많아.’
내가 잠시 그 일을 떠올리는 사이, 최재환이 후후 웃으며 운을 뗐다.
“덩치 좋지? 오소리 친척이라네. 씨름부에 있었대. 뭐, 덩치는 커도 착한 애야. 소심하더라고.”
소심이라.
“너 임마, 사람 외모 가지고 차별하면 안 돼. 알지?”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얼굴값 할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거야.”
“뭐야, 새삼스럽게.”
나는 괜스레 귀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지금이야 최재환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나중에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게 좋지 못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또 외모를 제일 따져야 하는 게 연예매니지먼트사 대표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근데, 권혜선 씨 연기는 잘해?”
나는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최재환이 나를 어이없는 시선으로 본다.
“이 자식 보게, 작년에 너한테 배웠잖아.”
“어어?”
나는 놀라서 눈을 끔뻑였다.
“너 집에서 빈둥빈둥할 때, 그거라도 하라고 내가 꽂아줬잖아. 회사에서 일당도 받았고. 기억 안 나?”
“아··· 그랬었지.”
그랬긴 뭘. 하나도 기억 안 나지.
“자식, 니가 나한테 그랬잖아. 권혜선이 재능 있다고. 너보다 훨씬 낫다고.”
“어, 그랬나······.”
더 얘기하면 불리하니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운전석에 앉은 나를 보고 최재환이 말했다.
“야, 니가 왜 운전석에 타?”
“새 옷 입고 운전하려고? 내가 끌게.”
“됐어 나와.”
“됐거든.”
결국 최재환이 마지못해 조수석에 탔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야, 아까 점원이 네 얼굴만 보더라.”
“잘생겼잖아.”
“어이구 그래요. 훗··· 하긴 내 배우지만 잘생기긴 잘생겼단 말이야.”
“그 잘생긴 배우의 매니저도, 괜찮게 생겼다는 얘기가 있던데?”
“자식.”
차가 출발하자 최재환은 차창을 열어 팔을 기댔다. 바람에 나부끼는 넥타이와 그의 머리카락. 그가 속삭인다.
“근데, 누굴 소개해주려고?”
“응?”
“아까··· 누구 소개해준다며?”
그래도 기대는 했나 보네.
“형도 아는 사람이야, 그리고 오전에도 한 번 봤고.”
“뭐? 누군데?”
“순대국밥집 사장님.”
그 말에 최재환이 기댄 팔을 떼고 나를 노려본다.
“이 자식이 죽을라고.”
“하하!”
**
빈 테이블이 가득한 식당, 차 대표와 박 상무가 넓은 홀 안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지에스에서 이 식당의 오후 시간을 통째로 빌렸다.
탁.
차 대표가 빈 잔을 내려놓자 박 상무가 서둘러 잔을 채웠다. 채워진 잔을 다시 손에 쥐며, 차 대표가 찌푸린 얼굴로 한숨을 쉰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일단 병원은 데리고 갔는데, 뭐 의사 얘기로는 큰 문제는 아니랍니다.”
“흠······.”
차 대표가 깊은 시름을 삼킨다. 그러자 박 상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한국에 들어오게 할까요?”
“들어와서 뭐하게? 다시 일본 나가려면 시간이 또 얼마나 들지 모르는데··· 박 상무도 알잖아? 하루 늦어지면, 데뷔 한 달이 늦어지는 거.”
“그렇긴 합니다.”
“잘 지켜보고, 재인이 부모님 한번 모시고 박 상무가 직접 일본 갔다 와.”
“예. 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쭈웁, 한 잔 들이켜는 차 대표. 마침 식당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차 대표의 예상대로 눈에 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먼저 윤 부장, 그다음으로 여자들이 들어온다.
3W 멤버들과 오소리.
3W는 붉은색 바탕의 행사 의상 차림이었고, 오소리는 연노랑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배우와 가수라는 서로의 신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옷차림이다.
“왔어? 앉아.”
차 대표의 말에 그녀들의 매니저를 중심으로 테이블이 채워졌다. 앉은 이들을 죽 둘러본 차 대표가 3W 임시 매니저 박용현을 보며 물었다.
“보라는 어디 있어? 그리고 왜 오늘은 용현이냐?”
“스타일리스트는 지금 협찬받으러 갔고요, 그리고 욱이가 아파서 제가 대타로 뛰고 있습니다.”
3W 스타일리스트 강보라, 3W 매니저 김욱.
“아 맞아. 맹장이라고?”
“예.”
“참내, 체해서 골골대더니 이번에는 맹장이야? 요즘 매니저들 왜 이렇게 부실해? 후.”
“그러게 말입니다. 최재환같이 딴딴한 놈들이 드뭅니다.”
차 대표의 피식 웃음에 박 상무가 최재환을 언급했다. 그러자 차 대표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박용현을 향해 눈썹을 들었다.
“근데, 유 실장은?”
“유 실장은 요즘 월말평가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아마 이따가 올 겁니다. 회식이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차 대표. 그러자 윤 부장이 괜스레 눈치를 보며 주문을 했다. 술과 고기를 외친다. 그러다가 차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윤 부장은 어깨를 움츠렸고, 차 대표는 미간을 찌푸렸다.
“윤 부장은, 요즘도 소리 따라다니나?”
“아, 예. 아무래도 애들한테만 맡겨두기가 그래서요.”
“흠··· 현장 따라다닐 군번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소리가 요즘 또 여러 가지로 바빠서요.”
“강 실장은? 걔는 요즘 뭐해?”
“송이경하고 한번 맞춰본다고, 뭐 의논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송이경?”
“예.”
“아주··· 따로따로 노는구만. 박 상무.”
“예, 대표님.”
“매니지먼트 사업부, 윤 부장에게 다 맡기지 말고, 박 상무가 가끔 살펴봐.”
“예.”
박 상무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는 윤 부장의 눈동자가 경련이 일듯 흔들린다. 저게 지금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 그 의도를 파악하려는데, 3W 권혜선이 불쑥 나섰다.
“저 대표님.”
“왜?”
“오면서 들으니까, 저보고 연기하지 말라고··· 그 말씀하려고 부르신 거라면서요?”
“어?”
평소답지 않게 권혜선이 눈을 힘껏 뜨고 있다. 미간도 살짝 좁히고 있고.
“저, 할 거예요. 하고 싶어요.”
“그건 말이야. 아무래도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그때 하면 어떨까? 이번에는 여기 오소리가.”
“하고 싶어요, 대표님.”
“······.”
권혜선이 차 대표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반면 오소리는 표정변화 없이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빈 잔에 쪼르르 딴다. 그 모습에 차 대표의 시선이 움직이자, 한모금을 쭙 삼키더니 잔을 내려놓는다.
딱!
그녀가 입술을 연다.
“그럼 이렇게 하세요, 대표님.”
“뭘? 뭘 어떻게 해?”
“선택하게 하면 되잖아요. 상대 배우가 말예요.”
이시현.
권혜선의 시선이 오소리에게 닿는다. 따가울 정도인데, 그 시선은 금세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달랑달랑.
식당 문이 열리고, 최재환과 이시현이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