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38화 (3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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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열심히 사는 중 (3)

최재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쓸데없는 반응과 가라앉은 목소리라더니.

“그래?”

-응.

“야··· 축하한다, 축하해. 하하······. 언제야?”

-다음 달 5일, 토요일이야.

“8월 5일? 가만 보자··· 아, 그날 시현이 촬영 있는데. 이것 참, 나도 가야 하는데.”

-그래. 기사는 내가 후배한테 부탁해볼게.

“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기사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

-그래. 재환 씨, 나 전화 끊을게. 그 사람이 부른다.

“어, 그래! 나중··· 어, 끊을게.”

최재환은 다음에 보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던지듯 조수석에 내려놓고 얼굴을 부여잡는다.

“으······.”

온몸이 압축된 튜브처럼 쭈그러드는 기분이다.

“쪽팔려.”

왜 전화를 해서.

하지만 이내 쪽팔림은 사라지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결혼··· 한다고?’

최재환은 또다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부가 붉게 핀다.

‘하긴, 2년이나 지났으니.’

긴 한숨만 나오는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최재환이 떠나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나는 문득 ‘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3W는 내가 키운 것과 다름없고, 그래서 권혜선을 비롯해 레니와 슬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른한 살의 최재환에게 일뿐, 마흔일곱의 나는 그녀들에게 남은 감정도 애정도 없다. 같은 대상을 두고 내 마음이 갈리는 것이다.

‘혜선이가 그런 실수를 할 애는 아닌데.’

나는 권혜선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녀들의 매니저 자리에서 쫓겨나듯 빠져나오고 나선 한동안 교류를 가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들과 소원해졌다. 내가 일본에 있던 것도 이유이고, 그녀들의 지에스엔터 계약 기간이 끝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 권혜선이 결혼하기 며칠 전 내게 전화를 걸어와 잘 지내고 있냐고 물었던 것이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

권혜선은 똑똑한 아이다. 생각 없이 입을 놀리진 않았을 것이다. 라디오 부스 안에서의 그녀 행동은 마치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내내 마주쳤던 시선도 그러했고.

이유가 뭘까. 대체 그 이유가.

철컥 문이 열리고, 나는 쓸쓸한 적막이 감도는 오피스텔에 발을 들였다. 웃옷을 벗고, 휴대폰을 소파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시간을 보니 저녁 10시.

‘조깅 좀하고 올까.’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옷장을 뒤적였다. 대충 갈아입고 오피스텔 인근을 한 바퀴 뛰고 올 생각이었다. 시간이 날 때 몸을 열심히 만들어둬야 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스럭부스럭. 옷장을 뒤져 셔츠와 바지를 꺼내던 나는 문득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띠리리. 띠리리.

거실에서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다.

‘누구지?’

이 밤에 누구일까 싶어, 터벅터벅 거실로 간 나는 휴대폰을 열어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는 번호인데.’

망설이다가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이시현 씨?

“예, 그런데요.”

-아, 나 현승아 소속사의 노병기 본부장이라고 하는데.

“현승아 씨요?”

-어.

무슨 일일까. 현승아 쪽에서 왜 내게 전화를··· 방송국에서 본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게 아니고, 시간 되면 같이 저녁이나 했으면 해서.

“저하고요?”

영문을 몰라서 되물었다.

-어. 승아가 이시현 씨를 마음에 들어 하네. 아, 오해하지 말고, 친해지고 싶다는 거야. 나이 차도 얼마 없잖아? 직접 전화 걸려고 했는데, 지금 스케줄 들어가서 말이야. 아무튼 좀 부탁해.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내 번호를 알았다는 건··· 최재환도 알고 있다는 건가?’

그 말은 매니저가 이 만남을 용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인맥을 쌓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예. 매니저한테 물어보고요.”

-뭘 또 물어봐.

“그래도, 매니저하고 상의는 해야죠.”

-알았어. 그럼 내가 조만간에 다시 연락할게.

“예.”

끊어진 전화. 근데··· 이 자식 왜 이렇게 말이 짧아?

**

“가만 보자, 내일 시현이 스케줄이.”

최재환은 괜스레 수첩을 뒤적였다. 몇 장을 넘기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저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차 안을 채울 뿐이고, 쪽팔림은 가시질 않았다.

그러길 수분이 지나고 최재환의 행동이 멈췄다. 그는 바로 차키를 붙잡았다.

치지지.

시동이 켜지고, 차의 진동을 느끼며 핸들을 붙잡은 최재환이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린다. 또 전화였다.

‘뭐야?’

흠칫 놀라, 누구일까를 추측하며 잠시 멍하니 있던 그가 휴대폰 폴더를 젖혔다.

“···혜선이?”

액정에 뜬 이름은 3W 리더 권혜선이었다.

“어, 혜선아.”

-오빠, 어디세요?

“왜? 또 네 매니저 탈 났어?”

-잠깐만요······.

잠시 뒤 3W 매니저 욱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형님, 저 욱입니다.

“왜? 또 야?”

-죄송합니다. 속이, 계속 이러네요.

최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완연한 매니지먼트 사업부 2팀 소속이다. 2팀은 배우들을 담당하며, 가수들은 1팀이다.

그러니 욱이가 아프면 1팀의 유 실장을 찾아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도 아니면 1팀 소속 매니저 아무나 부르면 될 것을.

하지만 턱 끝까지 올라온 그 소리는 한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후··· 어디야?”

-지금 잡지사 촬영 뒤풀이 가야 하거든요. 혜선이 혼자인데, 잠깐 얼굴만 비치고 오면 됩니다.

“장소 문자 보내.”

-예, 감사합니다. 형님!

전화를 끊자마자 최재환은 바로 움직였다. 머리가 구를 잠깐의 시간도 지금의 그에게는 불필요했다.

욱이가 알려준 장소인 서초동에 도착할 때까지도 최재환은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갔고, 엑셀을 밟는 다리와 핸들을 쥔 손만이 기계처럼 분주히 움직였을 뿐이다.

가로수 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욱이가 최재환의 카니발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올해 스물일곱의 욱이는 작년 최재환이 3W에서 하차했을 때, 대타로 들어간 로드매니저다. 그전까지는 1팀 유 실장 밑에서 블랙보이(5인조 보이그룹)의 일을 봤었는데, 뜻밖에 최재환을 잘 따른다.

“형님, 죄송합니다.”

최재환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욱이가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됐어 임마. 혜선이는?”

“안에 있어요.”

“뭐? 혼자 두고 온 거야?”

“그쪽 여직원들도 있어서요.”

“그래도 임마, 혼자 두면 되냐.”

“죄송합니다.”

최재환은 욱이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잡지사 어디야?”

“QQ요. 저녁에 혜선이 단독으로 화보 찍었는데, 공주가 마법에 걸려서 곰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무슨 이상한 콘셉이에요.”

욱이가 구시렁거린다. 최재환이 피식 웃다가 그를 불렀다.

“욱아.”

“예, 형님.”

“담배 있냐?”

“담배요?”

욱이는 최재환이 담배를 끊은 지 1년이 넘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함을 느꼈고, 평소와 달리 최재환의 낯빛이 좋지가 않음을 알아챘다.

“여기.”

서둘러 담배 한 대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주차장의 가로등 빛 때문이지 최재환의 찌푸린 얼굴이 한층 더 찌푸려져 있다.

“후······.”

긴 연기를 뿜는 최재환. 하늘로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유난히 짙어 보인다.

“넌 먼저 들어가고, 난 이거 피고 바로 들어갈게.”

최재환이 담배를 흔들어 보인다. 욱이는 그의 등이 쓸쓸하게 굽어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시지?’

욱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잡지사 쪽에선 룸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권혜선이 그들에게 둘러싸여서 안쓰러운 모습으로 술을 받고 있었다.

‘이런.’

서둘러 다가간 욱이가 권혜선의 잔을 빼앗듯이 대신 받아들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크게 외치고 맥주 한 컵을 꿀꺽꿀꺽 목 넘겨 마신다.

‘읔!’

뒤집힐 것 같은 속을 부여잡고 한 컵을 뚝딱 비워내자, 권혜선에게 술을 권했던 주태곤 편집장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쪽 실장님 오신다며?”

주태곤 편집장이 다리를 꼬며 문 쪽을 바라보고 물었다. 때마침 문을 열고 최재환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크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최재환 실장입니다.”

허리를 편 최재환의 얼굴에는 언제 우울함이 서렸었냐는 듯이 푸근한 미소가 걸쳐 있었다. 주태곤 편집장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나 주태곤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혜선이 많이 챙겨주신다고요.”

“하하. 혜선 씨가 그래요?”

최재환은 주태곤 편집장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권혜선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짙은 무대화장 속에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유난히 짙은 붉은색 입술 색깔. 실상은 저 입술이 피곤해서 터지기 일보 직전임을 잘 알고 있는 이가 최재환이다.

“자, 한 잔 받아요.”

“감사합니다.”

최재환은 주태곤 편집장이 건넨 술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목 넘김이 이어지기 전, 그는 욱이를 보고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욱아, 너 아까 보니 차 펑크 났더라. 가서 확인해봐.”

“아, 예!”

욱이가 서둘러 일어난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은연중에 보이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아무튼 욱이를 보내고서야 최재환은 단번에 맥주를 목 넘겼다. 그런 다음.

“자, 제가 편집장님께 한잔 따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들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여기 모인 분에게 한잔 씩 꼭 따라드릴 거니까. 하하!”

호기 좋게 웃음을 터트리고 주태곤 편집장의 잔을 채운 최재환은 모두의 잔을 채울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잡지사 막내한테 정중히 술을 따르고 허리를 펴자, 주태곤 편집장이 잔을 흔들며 외쳤다.

“최 실장, 건배사 한번 해봐요.”

몇 분이나 지났다고 호칭이 편해진다.

“예, 그럼 제가 한번 그럴싸하게 해볼까요?”

최재환은 QQ 잡지사에 대한, 흡사 찬송가에 준할 정도의 건배사에 이어서, 위하여! 를 외쳤다.

서둘러 쭉쭉 술을 넘긴 뒤에야 다시금 권혜선의 옆에 앉았다. 그러다가 잠깐 눈이 마주쳤다. 권혜선의 눈에 최재환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피곤함이 교차했다.

“자 막내야, 최 실장님 잔 비었다!”

주태곤 편집장이 또다시 술을 논하자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편집팀 막내 에디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테 안경을 쓴 여직원인데, 성 팀장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다. 그녀가 술을 들고 다가오자 최재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두 손으로 잔을 받치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아이고, 최 실장 앉아요. 왜 애를 불편하게 해?”

“하하! 아닙니다. 우리 혜선이 챙겨주시는 분들인데, 제가 어딜 감히. 하하!!”

“좋아, 그럼 권혜선 씨는 내가 따라주지.”

“아··· 예.”

권혜선이 망설이다가 잔을 받는다. 그러자 최재환이 권혜선을 슥 쳐다보고 묻는다.

“혜선이 너, 오늘 몇 잔 마셨냐?”

“예?”

“너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그 말에 주태곤 편집장이 손사래를 친다.

“에이, 몇 잔이나 마셨다고.”

“아닙니다. 요즘 연예인들 술 한 잔 마시고 다녀도 기자들이 난리예요. 괜스레 잘못돼 잡지사에 피해 끼치면 안 되죠. 너 그만 마셔. 이놈이 프로가 돼서 말이야······.”

“허허, 지에스 꽤 엄격하네.”

“저희는 최우선이 광고주 피해 안 드리는 겁니다. 계약상 문제를 떠나서 그게 당연한 예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잔도 제가 그냥 확!”

최재환이 또 한 잔을 훅 넘긴다. 그 모습에 권혜선이 놀라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오늘따라 최재환이 많이 무리하고 있다.

**

나는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좀 전까지는 신호라도 갔는데, 지금은 전원이 꺼져있다는 멘트가 나왔다.

“뭐야, 이 양반 전화를 안 받아.”

혹 여자라도 만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과 함께 오피스텔을 둘러보고, 대충 옷가지를 정리한 뒤 베란다 창을 열었다. 시원한 여름 바람을 기대했지만 미적지근한 바람만 분다.

‘아.’

불현듯 술 생각이 떠올라서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캔 맥주를 꺼냈고, 안주는 필요 없다. 운동해야 하는데.

치익!

베란다에 기대 뚜껑을 땄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맥주 방울이 튀어나온다. 좀 전에 가져오면서 흔들렸나 보다.

“크!”

맥주에 적셔진 목, 알코올이 들어간 위, 절로 찌푸려진 얼굴. 꿀꺽꿀꺽, 단번에 캔 하나를 뚝딱 삐었다.

“꺼어억!”

길고 긴 트림 뒤에 더위를 마저 내쫓으려 숨을 내쉬었다.

“휴······.”

베란다에 기대고 있으니 오피스텔 앞 골목의 가로등이 보인다. 그 아래 연인이 지나고 있었다. 알콩달콩한 모습이다.

‘···최재환이가 인생이 바뀌게 됐어.’

이제는 궁금증과 함께 머리가 맑아진다. 원래의 운명이라면 그는 일본에서 몬스터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차 대표의 딸을 만나고, 차 대표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마치 계승을 하듯 배우게 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그래서 아내의 젊은 시절이 보고 싶지 않냐고?

‘아니.’

그 정도 애틋함이 다시 고개를 들 만큼의 관계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사는 동안 그렇게 지겹게 봤는데. 그냥 단지··· 아이들이 생각날 뿐이다.

‘나는 좋은 아빠였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필리핀에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통화는 기껏해야 보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하고, 그나마도 항상 내가 먼저고. 대화도 뚝뚝 끊기고.

‘딸 하나··· 아들 하나··· 훗,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못된 아버지다. 지금 순간 아이들에게 정이 안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미친놈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란 놈이. 술에 취해 주먹이나 휘두르던 내 아버지도 마지막 가는 길에는 못난 자식 걱정으로 아픈 것도 몰랐다는데.

‘후······.’

터벅터벅. 냉장고로 다가가 다시 문을 열고 새 맥주를 꺼낸다. 오늘은 좀 취해야겠다. 취해서, 꿈에서나마 아이들을 한번 봐야겠다. 마지막 일지도 모르니까. 기억은 또 가물가물해질 테니까.

**

“오빠, 괜찮아요?”

“꺼억!”

최재환은 눈이 풀려 있었다. 겨우 잡지사 사람들을 보내고서야 트림을 힘껏 뱉고 비틀거린다.

“오빠!”

권혜선이 그를 부축했다. 잡지사 막내 에디터가 곁에서 위태롭게 손을 펼쳤다.

“괜찮으시겠어요?”

막내 에디터가 묻는다. 권혜선이 겨우 미소를 끄덕이고 말했다.

“회사에 전화했어요. 곧 사람들 올 거예요.”

“좋은 분이시네요.”

안경을 고쳐 쓰며 미소 짓는 막내 에디터.

“예?”

막내 에디터는 개업집 앞 춤추는 인형처럼 몸을 살살 흔들고 있는 최재환을 가리켰다. 이제는 완전히 눈이 풀려 있는 얼굴. 급속도로 무너진다는 게 저런 모습일까.

“혜선 씨,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예, 그럼 또 봬요.”

권혜선은 막내 에디터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본 뒤에야 최재환을 부축했다.

“오빠, 정신 좀 차려요.”

“하··· 하······. 메칸더 메칸더 B! C! D?”

최재환은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아이, 그러게 왜 주는 족족 마셔요?”

권혜선은 겨우 최재환을 주차장에 끌고 와 밴에 태웠다. 이대로 회사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주차장의 가로등 빛이 차 안에 슬금슬금 들어온다. 권혜선은 잠든 최재환을 말없이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으니 최재환의 휴대폰이 울린다. 그녀가 받았다. 회사였다.

“아, 여기 지금······.”

권혜선은 얘기를 하다말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꾹 눌러 전원을 꺼버렸다. 그녀가 주황빛 얼굴의 최재환을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인다.

“겨우 정리했는데··· 오빠 참 못됐어요.”

그녀의 손끝이 최재환에게 닿을 듯 말 듯.

“30분만··· 30분만, 이렇게 볼게요.”

“하, 더워.”

목을 긁적이며 뒤척거리는 최재환. 그 모습이 게으른 곰 같아 보인다.

“늘 그랬어요.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권혜선은 그를 위해 차창을 조금 열었다. 코끝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본다. 눈에 가득 담아둬야 또 한동안 힘이 나니까. 아니면, 어차피 기억도 못 하는 거······.

“아흠, 시현아··· 시현아.”

게으른 곰이 술에 취해 잠꼬대하는 밤.

마법에 걸린 공주가 곰에게 사랑에 빠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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