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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열심히 사는 중 (2)
“뭐?”
“지금 활동 잘하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 걸 시켜?”
“말이 좀 이상하다? 쓸데없는 거라니? 권혜선에게 연기 한번 할 기회 주는 거잖아?”
“아직 그 정도 아니야. 더 배워야 해.”
“야 최 실장, ATTM에서도 평가가 좋다는데, 네가 뭐라고······.”
최재환은 그 말에 대응하지 않고 윤 부장을 보고 말했다.
“부장님, 저 3W 로드만 3년 했습니다. 권혜선이 아직 안돼요.”
“왜? 하고 싶다잖아.”
“안 된다니까요.”
최재환은 짧은 한숨 뒤에 재차 말했다. 그러자 윤 부장이 찌푸린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해, 그냥.”
윤 부장의 결정에 최재환이 입술을 반쯤 벌렸다가 다시 다문다. 얼굴은 여전히 못마땅한데··· 윤 부장이 의자에서 등을 떼고 한숨을 내쉰다.
“오늘 여기까지 하자. 이시현이 월말평가 참여하고, 권혜선이는 1팀하고 다시 얘기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끝!”
그대로 윤 부장이 일어나자 다들 어수선함 속에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최재환도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지만 2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시현을 생각해서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 거기도 가봐야지.’
이시현이 일하는 롤리팝.
**
“그동안 우리 시현이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소 띤 얼굴의 최재환이 주방 한가운데에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노란 염색머리의 주방장은 늘 그렇듯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칼질하며 중얼거렸다.
“그쪽이 찾아온 것 보니까, 시현이 앞으로 잘되려나 보네. 시현이 여기서 쓸데없는 일 한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쇼.”
주방장이 날카롭게 지금 상황을 유추해 말하자 최재환이 어색한 얼굴로 있다가 허리를 다시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다닥다닥 소리 내던 주방장의 칼질이 멈췄다. 주방장이 나를 본다.
“이시현이.”
“예.”
그 시선에 왠지 기분이 뒤숭숭하다. 고작 한두 달 봤다고 정이 들었나.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왠지 정이 가는 얼굴 같기도 하고.
“사람 인생 모르는 거야. 그치?”
“예, 그럼요.”
“그래, 너 분명 될 놈이야. 나중에 잘 되면 한 번 놀러 오던가.”
“예.”
“그럼, 이제 꺼져. 바쁘다.”
“예!”
나는 마지막으로 주방을 눈에 담았다. 비록 내가 이곳에서 일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시현은 이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일했다. 주방의 누구 한사람과도 친했던 것 같진 않아도, 어찌 됐든 저들도 이시현의 동료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우렁차게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한마디씩 돌아왔다.
“이시현이 열심히 해라!”
“이시현 파이팅!”
“탑배우 됐다고 우리 잊으면 안 된다!”
“나중에 사인이나 해줘!”
“또 놀러 와!”
그 모습을 보며 최재환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내 등을 두드렸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던 부주방장 정희수가 국자를 흔들며 우리 둘을 바라본다.
저 갈색 눈썹을 보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네. 그녀도 이달 말까지만 일하고 박한영과 함께 프랑스로 간다고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박한영 기자회견 일자가 곧 다가온다.
“이시현이.”
그녀가 친근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너 잘되면, 나중에 박한영이 좀 써줘라. 백수 남자친구는 싫거든.”
“훗.”
나와 최재환은 주방을 벗어났다. 다들 일을 하느라 마중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의 시선이 나를 쫓아 나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방 뒷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나오니 롤리팝 부장이 서 있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저 얼굴을 본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부장님, 가보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입에 담배를 물고 손을 까닥거렸다. 건들거리는 모습과는 달리 무거운 분위기가 있었다. 최재환은 굳이 그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저 사람이 여기 기도야?”
기도, 술집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는 사람으로 흔한 말로 주먹을 뜻한다.
내가 대답 없이 차창 밖 가로등 아래 있는 부장을 바라보고 있자, 최재환은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선 최재환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까 그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본 것 같다고?”
나는 최재환의 옆모습을 돌아봤다. 서른한 살의 최재환이 알고 있다면, 나 역시도 알고 있다는 얘기인데.
‘글쎄, 기억이 없는데.’
마흔일곱의 최재환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거나, 접점이 없었다는 얘기다.
최재환은 고개를 몇 번 더 갸웃하더니 이내 신경을 꺼버리기로 했는지 운전에만 집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물었다.
“형.”
“왜?”
최재환이 여전히 앞만 보며 되묻는다.
“일본 안 간 거, 후회 안 돼?”
나 때문에, 몬스터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것을 포기한 최재환이다. 만약 거기 계속 있었다면 차 대표의 사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될 게 뭐 있어.”
최재환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했지만.
‘네가 몰라서 그렇지, 후회될 거 좀 많거든.’
하나하나 열거해주면 최재환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내심 궁금해진다. 물론 얘기할 순 없지만.
“그럼 형 대신에 누가 간 거야?”
“글쎄, 뭐 아직은 공석인 것 같던데?”
“그 애는 계속 일본에 있는 거고?”
“응. 내년 이맘때 데뷔 일정이고.”
하지만 몬스터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 역시도.
또 신호에 차가 멈췄다. 그러자 최재환이 생각에 잠긴 나를 돌아봤다.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신경 써. 곧 가경 작가가 시나리오 초안 보낸다니까, 그거 오면 너 지금처럼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것도 끝이야.”
“어휴, 좀 바빴으면 좋겠다.”
“허허, 나중에 그런 말 나오나 한번 보자.”
최재환이 다시 차를 출발한다.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툭 말했다.
“형.”
“왜.”
운전에 집중한 최재환.
“사랑한다.”
끼익!
“이놈이 미쳤나?”
“후후.”
**
최재환은 이시현이 차에서 내리자 차창을 열어 그를 마주봤다.
“시현아.”
“어.”
“혜선이가 방송국에서 말실수한 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닐 거다. 그냥 타이밍 못 맞춘 거야.”
최재환은 권혜선을 두둔했다. 이시현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그래, 그럼 들어가.”
“응. 형도 조심해서 가.”
“그래.”
최재환은 다시금 오피스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운전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얼굴을 찌푸린다.
‘그 사람을 거기서 또 보내.’
술집 주차장에서 봤던 남자, 시현이가 부장이라고 불렀던 남자.
최재환은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연예계 쪽은 예로부터 주먹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기웃거리던 시장이다. 아무래도 행사나 밤무대같이 쉽게 현금이 움직이니 그런 인사들이 꼬이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명성환······.’
그자도 그런 남자였다.
재작년인가. 유투 기획사라는 곳이 있었다. 실상은 그쪽 세계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문제가 참 많았는데, 노예 계약은 기본이고 소속 연기자 중에도 양아치들이 많았다. 그리고 명성환은 유투 기획사에 있던 매니저다.
최재환이 그 이유를 잘 아는 이유가, 3W의 권혜선이 바로 유투에서 넘어온 아이였고, 그때 유투에서 협박을 해오는 통에 당시 3W의 매니저였던 최재환으로서는 꽤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알게 된 남자가 명성환이다.
‘찜찜하네······.’
최재환은 입안에서 혀끝을 퉁기며 액셀을 힘껏 밟았다.
그러다가 한강 다리를 건너서 한적한 도롯가에 차를 세웠다. 가끔 이런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탁.
차량 실내등을 켠 그는 곧바로 수첩을 펼쳤다. 묵묵히 몇 장을 넘기던 그가 멈칫한다.
‘서혜연······.’
한때 그와 사귀었던 여기자의 이름이다.
휴대폰을 꺼낸 최재환은 서혜연의 전화번호를 보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귄 기간과 헤어진 기간이 비등해지고 있는데, 아직도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
그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의자를 뒤로 밀어내서 잠시 눈을 감고 피곤함을 달래보려 했다.
-여보세요?
“응?”
난데없이 들린 목소리에 최재환이 다시 눈을 뜨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런!’
실수로 통화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여보세요? 최재환?
곧바로 퉁명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재환은 허둥대다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전화를 붙잡았다.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말투가 그게 뭐냐?”
-그럼, 대답을 하던가.
그녀의 목소리.
수화기 너머에서는 딱딱 소리가 들렸다.
“뭐해?”
할 말이 없으니 그렇게 물었지만, 거실 러그 위에서 어깨에 휴대폰을 붙인 채 발톱을 깎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전화했어?
“아니 그게······. 내 배우, 기사 하나만 내줘라.”
최재환은 그녀와 사귀는 동안 한 번도 이시현의 기사를 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해 부탁을 하니, 그녀도 지금 내심 놀라고 있을지 모르겠다.
-후······.
그녀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누군데?
“이시현.”
-그 카메라 울렁증?
“응.”
잠시 서혜연의 목소리가 멈췄다가 이어졌다.
-뭐 달라진 게 있어?
“카메라 울렁증은 극복했고, 이번에 영화 들어가.”
-영화?
“응, 근데 제목은 아직 안 나왔어.”
-저기······.
그녀의 목소리가 가파르게 내려앉는다.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이제 연예부 아니야.
“알아, 너 정치부로 옮겼다며. 그래서 너 맨날 국회 돌아다니면서 ‘벽치기’하고 다닌다고 소문 다 났던데.”
벽치기, 취재 대상의 사무실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듣고 기사를 쓴다는 기자들의 은어.
-그래?
그녀가 가볍게 대꾸한다.
뭐야, 짜증 섞인 반문이 들려올지 알았는데.
최재환은 애써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됐고, 썩어도 준치라고 너 연예부에 아직 발 담그고 있잖아? 기사 좀 내줘, 적당히 포장해서. 훗··· 너 잔바리 시절 우라까이(배낀기사)나 칠 때, 특종 준 사람이 누구더라?”
-도꾸다니(특종) 하나 해주고 몇 년을 우려먹으려고? 훗.
어라? 이번에는 웃네? 이상하다. 그녀가 화를 내야 정상인데, 웃으니까 괜히 이상하다.
‘못 본 사이 많이 달라졌나?’
최재환이 텁텁한 입안을 달래려 차창을 열고 바람을 삼키는 사이에도, 전화 너머 그녀의 한숨이 이어진다.
“뭐, 싫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
일부러 배짱 한번 부려보지만, 아마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런 식으로 전화한 이유를.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그 소박한 이유를.
-좀 더 크면 데리고 와. 그때 가면 사양 않고 해줄게.
“아이고, 그때 가면요, 그쪽한테 가지도 않아요. 이시현 옛날 같지 않아. 요즘 잘 나가. 왜, 그 CF 있지? 거기도······.”
최재환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서혜연의 목소리에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우리 참··· 이시현 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그치?
“어?”
순간 멍해진다. 잊고 지낸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최재환은 그녀와 사귀는 동안 참 많이 다퉜다.
주된 이유는 이시현이었는데, 녀석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괜찮은 오디션이 없을까 기웃거리고, 어쩌다 방송국 관계자가 보자고 하면 데이트 중에도 달려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이상하게도 타이밍이 꼭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근데 어머님은? 잘 계시지? 어머님이 해준 창난젓 진짜 맛있는데······.”
잠시 망설이던 최재환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서혜연의 목소리가 뜸 들이듯 들린다.
-나 얼마 전에 들었어. 재환 씨 어머니 그렇게 되셨다는 거. 못 가서 미안해. 그때 중국에 있었거든.
최재환은 눈을 찡그렸다. 어떻게 얘기가 또 그렇게 빠질까.
“됐어. 그리고 너, 어머니한테 잘해. 지난번에 우연히 뵀는데 노처녀 딸이 속만 썩인다고 아주 하소연을 하시더라.”
-그래?
그녀가 또 나긋나긋 묻는다. 오늘 참 이상하네.
-재환 씨.
최재환과 동갑인 그녀가 ‘씨’를 붙였다. 그리고 이럴 때는 보통은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왜?”
-부탁인데··· 내 전화번호 지워라.
“뭐? 야, 일 때문에 전화하는 거지······.”
최재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변명은 이어진다.
“내가 일 아니면 뭐하러 전화 해? 하··· 너도 참······.”
잠시 휴대폰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최재환은 눈을 감은 채로 그녀가 휴대폰을 러그에 내려놓고, 발톱을 모아 버리고, 화장실에서 손과 발을 한번 닦고, 다시금 거실의 휴대폰을 챙기고, 그녀가 사용하는 핑크색 노트북 앞에 앉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나 결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