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8화 (2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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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 (1)

“일본 말씀입니까?”

최재환은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물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일본에 가라니. 그것도 몬스터 프로젝트에 합류하라니.

“그래.”

차 대표가 담배를 꺼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턱을 숙이며 최재환을 바라본다. 순간 불쑥 치고 들어오는 향수 냄새에 최재환이 긴장하자, 그가 얘기를 좀 더 꺼냈다.

“알아. 최 실장 너 이시현이 생각하는 거 아는데, 잘 생각해봐. 이시현이 계약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너는 빠져야 해. 그게 서로에게 좋단 말이야. 그러니, 그럴 바에야 몬스터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게 낫잖아? 사실 내가 너한테 기대도 좀 하고 있고.”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최재환은 말꼬리를 끌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기대 한다는 말은 못 믿겠지만, 차 대표의 말에 틀린 건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 차 대표는 네 놈 밥 그릇 이제는 알아서 챙기라고 조언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일본 가서, 일이년만 버텨봐. 그쪽 시스템도 네 것으로 만들고. 뭐 결혼도 안 했겠다, 가족도··· 너 혼자라며?”

“······.”

“해봐. 최재환이 너 그 정도 할 수 있잖아?”

“그럼요. 우리 최 실장 그 정도 하죠.”

정 이사가 넌지시 살을 붙이지만 최재환은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솔직히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직장인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도 선택이라는 게 있다.

사실 좀 전에 이시현에게 전략 팀을 붙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만두자.’

얼마 전부터 SN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넘어오라고. 실장 건너뛰고 당장 팀장부터 시작하자고. 굉장히 좋은 조건이며, 이례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그만큼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런 반면, 이 회사에서는 어땠는가.

인정··· 받았는가.

3W를 기껏 키웠더니 빠지라고 했다. 이시현이를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건의를 해도 늘 무시당했다.

그래, 솔직히 말해 여기서 배운 건 많다. 아니, 지원이 없으니 더 악착같이 홀로 배우고 아등바등 버텨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그를 소홀히 대했기 때문에 지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후······.’

피식 조소가 새어나온다.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지만 최재환의 마음에는 비릿한 미소가 휴짓장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3W에서 한번 데인 걸로 충분하지.’

일본이라니. 거기 가서 뭘 하라고. 그 어린 아이와 둘이 지내라고?

최재환은 치기어린 감정을 감추려 발끝을 모았다. 지금 차 대표에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 대답 없는 모습에, 차 대표가 툭 던지듯 물었다.

“걱정 되냐?”

“예?”

“3W에서 빠질 때처럼, 그 꼴 날까 봐?”

그 말에 최재환은 순간의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놈아. 그때 버텼어야지.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내려올게 아니라 버텼어야지. 너는 욕심이 없어.”

“그게 무슨······.”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지. 네 스스로가 욕심이 없으니까, 일에 있어서 악착같아도 어느 순간에 그걸로 만족해 버리는 거야.”

차 대표의 훈수가 계속 이어졌다.

“나 이만큼 했으니까, 여기까지가 최선이니까. 너 그런 거잖아. 지금 이시현이 봐! 넌 이시현이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 맞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 그게 순서야. 하지만 때로는 내 자신을 믿어야지. 내 눈을, 내 감을 믿어야지. 봐, 너는 이시현을 단막극에 조연으로 꽂았어. 악착같이 노력을 해서 말이야. 그런데, 유 작가는 이시현을 어떻게 했어? 그 양반은 이시현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쓸 생각을 했잖아, 안 그래?”

그 말에 최재환은 아차 싶었다. 찌푸린 이마에 여지없이 주름이 접힌다. 그 모습을 차 대표가 무심히 보다가, 유리테이블에 손가락을 부딪치며 다시 얘기를 꺼냈다.

“이시현의 한계를 조연으로 정한 것, 그 한계 누가 정한 거야? 바로 너잖아. 그래서 너를 3W에서 뺀 거야. 알아?”

바로 납득하기는 어려운 얘기다.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인데.

연습생, 월말평가, 오디션, 단역, 조연, 주연······. 오늘 갓 데뷔한 친구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 위에 설 수는 없는 법이다.

이시현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응당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최재환은 반박을 해야 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내가··· 틀렸단 말이야?’

이시현은 늘 제자리인지 알았는데, 어쩌면 그동안의 숱한 오디션을 통해 성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녀석이 가진 가치를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닐까.

최재환은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판단과 생각, 결정들이 모두 잘못됐던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가 엄습한다.

“일본 가서, 원점부터 시작해. 네 밥그릇 뺏기지 말고, 악착같이, 몬스터··· 그래, 재인이와 함께 날아올라.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 씹어 먹어. 몬스터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란 말이야. 너도 성공해야지, 안 그래?”

차 대표의 눈은 이상하리만치 번뜩였다. 무언가의 집념에 차있는, 그러나 자신의 결정에 확고한 자신감이 있는 눈이었다.

“···나가보겠습니다.”

최재환은 지난 5년을 본 그 시선을 뒤로하고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후······.’

뭔가 정체된 기분인데,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최재환은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 목록에 찍힌 전화번호를 한참을 본 끝에, 아직 확인하지 않은 문자를 열었다.

-저, 민지입니다. 어머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아마 시간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오빠가 와주셨으면 합니다.

‘오빠?’

문자를 본 최재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금니를 깨물더니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그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납다.

꾹.

매니지먼트 사업부가 있는 4층 버튼을 누른 순간··· 마치 물이 담긴 풍선이 터진 것처럼 오래된 기억이 쏟아져 내렸다.

**

“우리 재환이 뭐 먹고 싶어?”

최재환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삶을 딱히 정의하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를 눈에 새기며 성장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진저리가 처진다.

“나, 수제비 먹고 싶어.”

그날따라 엄마는 그에게 무척 친절하고, 무척 다정하며, 무척 잘해줬다.

“수제비? 그래, 그러자.”

좁은 단칸방이었다. 반지하라서 365일 곰팡이 냄새가 사라지지 않은, 차가운 시멘트가 그나마 살갗에 고인 온기조차 빼앗는 어둡고 컴컴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어린 최재환이 살았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다. 삶은 아빠가 원한대로 흐르지 않았고, 늘 과거를, 예전을, 자신의 인생이 갈라진 그 길목 앞을 그리워했다.

아빠는 맨 정신으로는 그리움에 닿지 못해 술기운을 빌려 그리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술이 깨 그것이 사라지면 오아시스의 신기루 끝에서 갈증에 허덕이는 길 잃은 여행자 신세가 된다.

마르고, 포악하고, 눈에는 핏줄이 솟는다.

그때마다 주먹은 엄마를, 그리고 최재환을 때렸다.

하지만 엄마도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폭력이 시작되면 도망쳤다. 어린 최재환과 함께 도망쳤다.

때로는 그것이 재밌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동네 어귀 담벼락에 숨어서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겨울엔 춥지만, 여름에는 할 만한 놀이 같은 거였다. 엄마도 그걸 즐긴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러니까 아빠가 새벽에 들어와 한차례 난리를 피우고 잠든 날, 엄마가 아침부터 어린 최재환에게 수제비를 해준 날.

“우와, 진짜 맛있다.”

“안 짜? 엄마는 좀 짠 것 같다.”

“안 짜. 근데 엄마는 안 먹어?”

“엄마는······.”

“아, 그치 엄마는 식당가서 먹어야지?”

엄마는 당시 식당에서 주방 일을 했다. 그래서 아침은 그곳에서 해결하고는 했다. 전날 팔고 남은, 버려야 했을 그 식은 된장국에 눈칫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는 수준이었지만.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재환아, 엄마 오늘 일 쉴까?”

“진짜?”

어린 최재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방학이었으니까.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 재환이, 놀이동산 가자.”

“진짜? 와아!!”

좋아서 손을 번쩍 들기 무섭게, 엄마는 어린 최재환의 입술을 검지로 막고 잠든 아빠를 곁눈질했다.

그렇게 어린 최재환은 엄마와 함께 놀이동산을 갔다. 생전 처음. 허름한 옷차림의 그와 달리 엄마는 장롱 한편에 고이 간직해뒀던 처녀 시절 옷을 꺼내 입었다. 노란색 나비 문양이 그려진 하얀 원피스였다.

“우와, 우리 엄마 진짜 예쁘다.”

늘 식당 앞치마 차림을 벗지 못하던 엄마가, 아빠한테 도망치느라 찢어진 치마와 걸레 같은 티셔츠만 입던 엄마가,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예뻤던 날······.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최재환은 무거운 손길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떠오른 기억을 겨우 밀어내고, 다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지워버렸다.

‘젠장.’

이른 더위 때문일까. 현기증이 밀려오고 머리가 저릴 정도로 진저리가 처진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헤집고 싶을 정도다.

‘하······.’

매니지먼트 사업부에는 이시현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입구의 파티션 너머에 다가가자, 책상에 붙어 업무를 보고 있던 여직원이 그를 힐끗 올려다봤다.

“왜 그러세요?”

“미연 씨, 시현이 여기 안 왔어요?”

“안 왔는데.”

“그래요?”

최재환은 다시 사무실을 나왔다. 유리문이 바람을 펄럭이고, 그늘진 복도 중간에서 멈춘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휴대폰을 다시 꺼냈다.

“시현아, 너 어디야?”

-2층 카페.

“알았어. 기다려.”

최재환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에 그 옆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철컥.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회색 철문을 열자 조금은 서늘한 바람이 밀려온다. 2층에 내려오니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이시현의 모습이 보였다.

‘후······.’

최재환은 녀석의 얼굴을 보는 순간 습관처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형!”

자식이 커피도 미리 한 잔 뽑아놓은 모양이다. 그런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강 실장과 함께였다.

“형, 이거 마셔.”

그를 향해 방긋 웃는 이시현. 그 모습이 마치 반가움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보인다.

“그래.”

빈자리에 앉은 최재환은 시원한 블랙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6월, 초여름의 열기를 밀어내고 복잡해진 머리가 식는다.

“후······.”

한숨을 길게 내쉬고 강 실장을 쳐다봤다.

“여기서 뭐해?”

최재환은 다짜고짜 말을 놓았다. 어차피 이제는 같은 실장 라인 아닌가. 물론, 이전에도 강 실장과 단둘이 있을 때면 말을 놓고는 했다.

“뭐하긴 임마. 그냥 이시현 혼자 있기에 적적해 보여서 옆에 좀 합류했다.

“네가?”

최재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빨대를 입에 물고 커피를 빨아들인 뒤에 다시 강 실장을 마주봤다.

“안 되는 배우 근처에 있으면 매니저도 안 되는 거라며? 그래서 우리 근처에도 ‘안 오던’ 사람이 누구더라?”

평소와 달리 오늘의 최재환은 누구에게든 시비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식··· 서운했냐? 미안했다.”

강 실장도 이상기후를 감지했는지 적당히 부드럽게 나왔다. 그러니 정작 미안해진 것은 최재환이었다.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후, 한숨 뒤에···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해서 강 실장을 향해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하냐? 박한영 씨 그렇게 돼서.”

강 실장 입장에서는 박한영이 매니저인 자신을 두고 최재환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는 사실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최재환도 그 점 때문에 박한영과 얘기를 나누기가 꺼렸던 것이 사실이고, 병원에서 마주쳤을 때도 강 실장하고 어서 마음을 풀고 얘기를 해보라고 조언을 했었으니 말이다.

“뭐 일이 없겠냐? 널리고 널린 게 연습생이고 배우인데······.”

강 실장의 말꼬리 뒤로 조용히 있던 이시현이 최재환을 향해 물었다.

“근데 형, 대표님이랑 무슨 얘기했어?”

“그게······.”

최재환이 대답을 망설인다. 그러자 강 실장이 바로 끼어들었다.

“너 일본 간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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