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7화 (27/227)

────────────────────────────────────

지에스 간판 스타 (4)

회사에 오는 동안 최재환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 보였다. 나 역시도 그저 차창 밖 풍경에 몰두할 뿐,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최재환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예, 대표님. 지금 지하 주차장입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재환이 짧은 한숨을 쉰다. 그 옆모습에 많은 감정이 서려 보인다. 그래, 많이 복잡하겠지. 지금이, 그런 시기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조용히 차에서 내려 최재환의 뒤를 따랐다.

그동안 지금의 상황들에 취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나 최재환의 인생에 대해서.

“시현아.”

엘리베이터에 오른 최재환이 대표실이 있는 7층 버튼을 꾹 누르며 나를 불렀다.

“왜?”

그러자 최재환이 내 눈을 들여다본다. 얼굴에 미소를 띠우더니, 손을 뻗어 내 볼을 가볍게 한번 두드려주고 말했다.

“잘해.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답이 안 나오면 좀 더 생각한다고 그래. 어설프게 대답하고 결정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아. 알지?”

“알았어.”

최재환의 목소리도 잠겼고, 내 목소리도 잠겼다.

7층에서 내리자 대표실 비서가 우리를 반긴다. 최재환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심호흡을 한번 하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어, 앉아.”

차 대표와 정 이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정 이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거 은근히 긴장이 된다.

“최 실장.”

차 대표가 미소와 함께 최재환을 부른다. 처음으로 듣는 낯선 호칭에 최재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중 띤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 대표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이시현.”

“예.”

“얘기 들었겠지만, 박한영이 너를 가경 작가한테 추천했다고 하더라. 가경 작가가 누군지는 알아?”

“예, 들새들이라고······.”

“그래, 그 작가. 참내, 세상 요지경이지? 그렇게 베일에 감춰 있던 작가가 박한영이 이복형제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최재환을 돌아봤다. 굳어진 최재환의 얼굴. 마침 노크 소리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어, 여기다 놔.”

비서는 사람 수에 맞는 커피 잔을 유리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른 자세로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차 대표의 시선이 그녀의 묶어 올린 머리 모양을 잠시 거쳐서, 우리에게 닿았다. 그가 미소와 함께 권했다.

“자, 마셔.”

“예.”

최재환의 손이 천천히 잔을 쥔다. 한 모금을 조심스럽게 마시는 사이 차 대표는 다리를 꼬며 얘기를 계속했다.

“이제 할 일이 많을 거야. 회사에서도 시현이 너 제대로 지원해 줄 거고, 아니, 제대로가 아니라 간판으로 밀 거야.”

“간판으로요?”

최재환이 바로 되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좋은 기회잖아. 지금 같은 시기가, 이시현이라는 배우의 인생이 걸린 시기인데. 여기서 삐끗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알아. 알지? 기회는 놓치면 끝인 거.”

잘 안다. 이시현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고, 또 그럴 때마다 어깨가 쳐지는 녀석의 모습을 숱하게 봤으니까. 당연히 젊은 최재환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래서 당분간은 회사 차원에서 직접 관리를 할 생각이야.”

“관리요?”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정 이사가 바통을 이어받듯 입을 열었다.

“이 배우 자네를 위해서, 매니지먼트 4팀을 운영할거란 말이야. 영화 촬영이 들어가고 끝날 때까지.”

“4팀을 말입니까?”

최재환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이다. 눈썹을 기울인 그 모습에 정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4팀. 그래서 말이야··· 최재환이, 아니 최 실장 자네 포지션이 어떻게 될지 몰라.”

4팀은 임시 팀이다. 각 부서, 각 팀에서 인원을 차출해 아티스트에게 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아티스트 주변의 관계자들이 물갈이 되는 것도 4팀이 가진 효과중 하나.

“아무튼 최 실장은 따로 할 얘기가 있고, 일단 지금은 이 배우 얘기만 하자고.”

“예.”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자 다시 차 대표가 얘기를 주도했다.

“뭐, 아무튼 상황이 그렇지?”

차 대표가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인다. 그 미소 뒤에 능구렁이가 꿈틀거리기는 하는데, 이거 어쩌지? 그쪽이잖아, 나를 대표로 만든 사람이.

“당장 가경 작가하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잖아. 뭐 박한영이 얘기를 했다고는 해도, 결론은 작가 마음이지. 투자자 의향도 들어갈 테고. 그렇다고 영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 오늘 작가 만나기로 했다며?”

정 이사가 묻는다. 차 대표와 정 이사의 움직임이 콤비를 이루고 있었다.

‘정신을 쏙 빼놓게 만드네.’

아무래도 이시현이라는 배우가 신인이니 단칼에 결론을 내겠다는 의도 같다.

“예, 이따가 만나기로 했습니다.”

최재환이 대답했다. 그러자 정 이사가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다. 소파에서 바스락 소리가, 커피 잔에서는 커피향이 퍼진다.

“그래. 이번에 둘이 가서 만나보고, 분위기 봐서 너무 밀어붙이지는 말고. 억지로 확답을 유도하지는 마. 괜히 잘못된 답이 나올 수 있으니까.”

정 이사가 코치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들이 따라가고 싶을 것인데, 괜스레 작가의 기분을 해칠 수가 있으니 첫 만남은 적당히 마무리 할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최재환이 한 번에 가서 끝장을 볼 거라 여기진 않는 모양이다.

“그보다 정 이사, ATTM(아티스트메이킹팀)에 얘기해서, 우리 이시현 한번 제대로 꾸며봐. 시현이 연기하는 거 영상도 새로 하나 만들어 놓고, 이참에 프로필도 싹 갈아.”

“예.”

“그리고, 각 부서 팀장급 회의 들어가.”

“예. 홍보부서, 기획컨텐츠개발부서, 뉴미디어관리부서, ATTM, 죄다 모여서 이시현 배우 로드맵 새로 짜겠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이시현이.”

차 대표가 무릎을 탁 치고 나를 본다.

“예. 대표님.”

내가 자세를 바라잡자 차 대표가 서류를 내밀었다. 두툼하고 묵직해 보인다. 인생이 올라와 있으니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 보인다.

“3개월짜리 했다며? 7년짜리 찍자. 계약서 한번 봐. 내가 지시해서 너 위주로 짰어. 지금까지 들어간 거는 정산한 걸로 치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야.”

곧바로 정 이사가 이어받는다.

“수익 배분도 나쁘지 않지. 3년은 6:4, 이 배우 자네가 6이야. 그리고 4년째부터는 상황 봐 조절하고··· 대표님이 많이 배려했어.”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란 놈은 차 대표와 정훈 부대표이사를 너무도 잘 안다.

이들은 회사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인성이 더럽다는 건 아닌데, 그 과정이 소속 연예인을, 연습생을 때로는 무참히 짓밟을 때가 있다.

그래 6:4 나쁘지 않지.

현재의 이시현이 무명에 가까운 중고 신인이라는 점을 따지면 파격적인 수준인거 인정한다. 더구나 기존 투자금은 정산을 한 걸로 친다고 했으니, 그것도 인정.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쉽게 생각하셨습니다.’

차 대표가 내민 계약서는 표면적인 조건일 뿐. 계약서 항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분명 이리저리 함정을 파놓았을 것이다.

기존 투자금을 정산 한 걸로 치겠다는 말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사실 정산을 할 만큼 투자한 게 있나 모르겠지만, 분명 기껏해야 일부분 일 테고, 나머지는 추후 회수라는 조건이 붙어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수익 배분도 항목별로 다르다는 건 이 업계의 기본 지식이다.

방송, CF, 영화, 행사, 각 항목별로 뭔가를 덧붙였을 것이다.

방송 수익 같은 푼돈은 6:4로 명확히 나누지만, CF 수익은 그 안에 들어간 제반비용 등을 선 제외 후 배분이라든지, 영화 같은 경우 순수한 계약금만 배분을 하고 러닝개런티 등은 회사의 수익으로 잡는다든지.

그리고 말이 7년이지 정말 7년일까.

이런 계약은 특히 가수들이 많이 걸리고 넘어진다. 군 복무 기간은 뺀다든지, 계약기간을 년이 아닌 앨범 수로 정해서 앨범을 발매하지 않고 내내 붙잡아두는 경우도 있다.

“한번 읽어봐.”

차 대표가, 슬슬 보기 싫어지는 미소를 띠고 서류를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손을 뻗어 몇 장을 가볍게 훑자 정 이사가 넌지시 얘기를 붙였다.

“이 배우도 알겠지만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 엄연히 말해 차별이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정 이사를 보고 빙긋 웃어보였다. 그런 차별을 대놓고 하는 게 당신들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나도 그랬었지만.

“자.”

차 대표가 볼펜을 건넸다. 볼펜을 쥔 그 손을 잠시 보던 나는 최재환을 돌아봤다. 그는 침묵하고 있었고, 다시 나는 볼펜과 차 대표를 바라봤다.

“대표님.”

“왜?”

“집에 가서 읽어 볼게요.”

“뭐?”

차 대표가 이마를 찌푸린다. 그러자 정 이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지, 계약서는 꼼꼼히 봐야지. 안 그렇습니까, 대표님?”

웃음을 멈춘 정 이사가 정장 앞단추를 풀며 나를 본다.

“근데 뭐 읽으나 마나야. 여기 뒤에 보면 요약해 놨어. 자네도 알지만 다른 회사에서 이렇게 안 해줘. 그리고··· 뭐라고 할까, 지에스에서 나가서 잘 된 애들이 없어.”

압박인 듯 협박인 듯.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해. 지금 알려줄게. 이런 거 읽어본들 똑같잖아.”

하지만 내 답은 이미 나왔다.

“솔직히··· 지금 얼떨떨해서요. 집에 가서 한번 읽어보고 사인하겠습니다.”

정 이사의 얼굴이 굳는다.

“왜? 그동안 우리가 섭섭하게 대해서 그런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재환도.

“근데 어쩌겠어. 이 배우 자네는 약점이 있었잖아. 우리도 모험을 택하기 보다는, 되는 팀에 집중해야지. 안 그래?”

“예.”

“좋아, 그렇게 해.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봐.”

아마 정 이사는 제시한 조건에 있어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내가 지에스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럼, 우리는 잠깐 최 실장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 배우 자네는 먼저 좀 내려가 있어.”

정 이사의 말에 내가 계약서를 들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자 차 대표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반면 최재환의 입가에는 미소인지 찌푸림인지 모를 것이 달라붙어 있었다.

**

2층의 카페에 내려온 나는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봤다.

‘역시나······.’

차 대표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이가 바로 나다. 내가 대표로 있으면서 저지른 행동들의 초안이 이 계획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럼 이제 냉정히 한번 따져볼까.

마흔일곱의 대표 최재환이 본 이시현의 현재는 어떤가.

먼저, 지금 상황이 내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지에스는 정산 문제를 언제든 들고 일어설 수 있으며, 내가 타 회사에 간다고 하면 훼방을 놓을 힘도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재는 있는데 아직 결정 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지에스에서도 이를 고려해 내 계약 문제를 먼저 처리하려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하······.’

나는 다시 계약서를 들췄다. 몇 장을 넘겼고, 4팀에 관한 내용을 살폈다. 케어, 지원, 백업 등의 단어들이 거창하게 적혀 있지만, 자세히 들여 보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다.

-을(회사)은 갑(이시현)을 지원하기 위한 매니지먼트 사업부 4팀을 편성하며, 편성 시기는 영화 촬영 1개월 전, 해체는 영화 촬영 종료일 기준 1개월 후 진행된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영화가 시작되지 않을시 4팀이고 뭐고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낚싯대를 쥔 을이라.’

또 만약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회사에서 이시현의 다음 작품을 위해 투자를 하거나 밀어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정 이사가 얘기했듯, 회사는 수익을 내야 하는 곳인데, 그 수익을 위해서는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회사는 이제 이시현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철저하게 따지고 들 것이다.

‘내가··· 차 대표 욕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 다를 바 있나 싶다.

문득··· 또 그 연습생의 말이 떠오른다.

[대표님, 왜 사람은 꿈을 꾸나요?]

그 질문을 내게 남기고 떠났던 그 연습생의 말이.

‘나는··· 꿈을 꾸는 녀석들을 가지고 장사를 했었구나.’

이마의 찌푸림을 쓸어내리고, 계약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또 이마를 찌푸렸다.

차 대표의 더러운 수가 하나 더 있는데, 계약서를 도중에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항목에는, 갑과 을의 합의가 있을 시 계약서의 변경 및 논의가 ‘추후’ 가능하다고 돼 있다.

좋은 말로는 활동 중 인지도가 높아질 경우를 고려해서 연기자를 위해 새겨놓는다고는 하는데, 대부분 계약서가 변경되는 시점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봐야 한다. 회사에서는 그 추후에 이시현의 상황이 안 좋을 경우, 이를 빌미로 계약서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상황을 유도해 안 좋게 만들 가능성도 있고. 이 바닥이야 뭐.

“후······.”

나는 계약서를 밀어내고 다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덥지는 않은데, 땀이 나는 기분이다.

‘어쩌면, 회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 생각을 하니 오히려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저 꼭대기 대표실에서 최재환이 차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대화는 최재환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시현이 이 바닥을 떠나지 않았어도 결국 예정된 미래는 온다는 건가······.’

과거 서른한 살의 최재환의 곁에는 이시현이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지금 최재환의 곁에는 나, 이시현이 붙어 있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과거 나 최재환에게 찾아왔던 기회가 다시금 찾아올 줄이야.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차 대표의 사위가 되게 된 그 기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