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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스 간판 스타 (3)
이른 아침, 우리는 회사 대신에 샵에 들렸다. 최재환이 유리문을 활짝 열자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들이 대번에 알아보고 쪼르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그래 안녕. 그리고 이거.”
최재환이 그녀들에게 검은 봉지를 건넨다. 오는 길에 사온 김밥이 담겼다.
“아싸, 매니저님 최고!”
“매니저님 잘 먹을게요!”
직원들, 특히 아침부터 청소를 하는 직원들은 다들 어린친구들이다. 밥이라고 제대로 먹고 출근했을까 싶은 안쓰러움에, 나 최재환은 샵에 들릴 때면 종종 김밥을 사가곤 했다. 그리고 이는 훗날 내가 대표가 돼서도 변하지 않은 씀씀이다.
“또 뭘 그런 걸 사오셨어?”
2층에서 들린 소리에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울리며 원장이 계단을 내려온다.
익히 아는 얼굴이니 반가운 마음은 드는데, 그러고 보니 이때는 아직 인가? 이 여자,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나중에 고생이란 고생은··· 아무튼 다가온 그녀가 미소와 함께 최재환을 바라본다.
“3W, 요즘 잘나가더라? 근데 왜 매니저님이 빠진 거야?”
3W는 작년까지 최재환이 맡았던 3인조 걸그룹. 요즘은 TV만 틀면 나오는 것 같다.
“매니저 바뀌는 거야, 회사에서 알아서 하는 거죠.”
최재환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방긋 미소를 보여주자 징그럽다며 몸서리를 친다.
“에이, 그래도 최 매니저님이 다 키운 거 내가 아는데··· 아, 근데 요즘 3W 애들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일 있으면 나도 좀 소개시켜줘.”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얘기하지만, 요즘 최재환이 그것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재환의 휴대폰에 3W 친구들이 보낸 문자가 몇 번 왔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오빠가 다시 자신들을 맡아주면 안 되냐고, 지금 매니저가 너무 답답하다고.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고, 며칠 전 최재환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문자가 계속 오는 바람에 밖에서 문자 내용을 읽어준 적이 있다.
“근데, 시현 씨는 진짜 오랜만이다.”
“아, 그래요?”
내가 미소를 보이며 되묻자 원장이 당황했는지 눈을 끔뻑였다. 그녀가 성큼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다. 짙은 마스카라 속 하얀 눈동자에 비치는 이시현.
“뭐지? 뭐지?”
“왜요?”
“아니, 전에는 뭐만 물어보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네’ 만 했으면서.”
“그랬어요? 훗.”
내가 이번에는 눈웃음을 보이자 원장이 또 놀란다. 그녀가 뒤로 주춤하는 바람에 또각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얼굴. 그 모습에 최재환이 등을 돌리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럼, 둘이 잘 놀아보시고.”
최재환은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주워들었고, 나는 원장이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견습 직원들과 함께 지에스 소속 연기자들을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내게 달라붙었다. 원장은 그 곁에서 훈수를 두듯 팔짱을 켠 채로 서 있다.
“시현 씨는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잘 어울린단 말이야. 그래도 오랜만에 샵에 왔으니까, 우리 디자이너이가 실력발휘 좀 해줘야지.”
원장이 내 곁에서 옆머리 숲을 헤치며 말하자, 거울 속에 비친 최재환이 신문을 넘기던 중에 툭 던지듯 말했다.
“이제부터 자주 올 거니까, 머리 길 좀 들여 줘요.”
“뭐야? 이제 회사에서 제대로 지원해주는 거야?”
“예.”
“우와, 시현 씨 잘 됐다!”
원장이 긴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손뼉을 친다. 뭐랄까, 털이 긴 강아지가 뛰는 것 같다고 할까. 이내 견습 직원이 가위를 건네자 디자이너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귀가 살짝 덮여 있었는데, 몇 번의 가위질로 하얀 귀가 드러났다. 이마도 반쯤 드러났고.
‘시현아··· 이제는, 나라고 생각할게.’
그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조금 있었다. 이상한거야 두말할 것 없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으니까.
“흠흠, 어떤 식으로 갈까······.”
디자이너가 신음 소리 같은 허밍을 한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최재환을 향해 물었다.
“매니저님, 주의사항 있어요?”
“딱히 없는데, 너무 치지는 마시고, 그냥 다듬어만.”
최재환은 샵에 오기 전에 박한영에게 전화를 걸어 이시현의 머리를 커트해도 되냐고 물었다.
가경 작가의 시나리오에서 이시현이 맡은 역이 어떠냐에 따라서 헤어스타일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우리는 아직 가경 작가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사각사각.
원장이 물러나자 디자이너의 손길이 분주히 이어진다. 현란한 가위질, 집중하는 시선.
뚝딱 손질을 끝낸 그녀가 견습 직원에게 가위를 다시 건네고 거울에 비친 나를 이리저리 살핀다. 그런 뒤 커트한 머리카락을 스윽 만지며 미소 띤 얼굴을 갸웃했다.
“내가 실력이 늘은 거야, 시현 씨가 더 잘생겨진 거야?”
“둘 다요.”
“그런가? 후훗.”
거울에 비친 그녀의 눈이 초승달을 그린다. 그녀는 한 번 더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더니, 이번에는 굳이 돌아보지 않고 최재환에게 물었다.
“매니저님, 염색은 필요 없지?”
“그건 나중에 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 어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는 중에 눈썹을 한번 꿈틀하더니 물었다.
“근데, 시현 씨 눈썹은 누가 만진 거야?”
“제가요.”
“시현 씨가?”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이 여자, 리액션 한번 끝내주네.
“우와, 이런 재주가 있었어? 살도 좀 빠졌고.”
“예.”
나는 처음 생각대로 이시현의 이미지를 좀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원체 마른 체형이었기에 일주일 정도 식단 조절을 했을 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현 씨 많이 달라졌는데······.”
그녀가 거울 속 내 눈을 다시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영혼이 보인다던데. 설마.
“훗. 유명해지고 나 모른 척하면 안 돼.”
그녀가 분홍빛 미소를 끝으로 뒤로 물러났다.
나는 견습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았다. 그 뒤 한 번 더 디자이너가 나를 자리에 앉히고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 어깨를 팡팡 치는 걸로 자신의 일을 클리어 했다.
최재환은 그 사이 유리벽 너머의 외곽 정원에서 원장과 차를 마시고 와서 나를 챙겼다.
“시현아, 가자.”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샵을 나가려는데, 최재환이 입구에서 멈칫했다.
세 명의 여성, 눈부신 외모의 그녀들. 불어온 아침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녀들이 샵 계단을 올라온다. 스키니진으로 드러난 각선미를 뽐내며 성큼성큼.
‘걸그룹 3W······.’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들이 최재환을 보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그중에서도 노란머리의 여자가 구두 굽을 바닥에 찍어가면서까지 최재환을 격하게 반겼다.
“오빠! 오빠! 오빠!”
3W 멤버 슬기. 그녀가 촐랑거리자 최재환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니들 오늘도 풀이야?”
“예.”
3W 리더 권혜선. 그녀가 지친 얼굴로 대답하자, 옆에 있던 슬기가 최재환의 팔을 잡아당기며 몸을 흐느적거리고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오빠, 레니가 자꾸 약 올려, 나 요즘 살 많이 빠졌거든? 근데, 만날 돼지라고 한다? 완전 어이없지? 어. 이. 상. 실.”
그러자 숏컷트 머리의 레니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최재환을 보며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했다.
“오빠, 돼지를 돼지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다른 말이 있나? 아니면 피그라고 해야 하나? 아, 그렇구나. 피그.”
“야!”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최재환이 아휴, 고개를 내젓는데, 그를 보는 권혜선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안녕하세요, 형님.”
뒤이어 샵에 들어온 그녀들의 로드매니저가 최재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자 또 슬기가 최재환을 향해 쀼루퉁한 얼굴로 투덜거린다.
“오빠, 우리 문자 씹더라?”
“문자 보내지마. 귀찮아.”
최재환이 슬기의 투정을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밀어버린다.
“치··· 아? 오빠 이제 실장이라며?”
“뭐?”
최재환이 미간을 찌푸린다.
“못 들었어? 차 대표님이 오빠 승진시킨다고 했대.”
“그래?”
최재환이 대답을 종용하듯 3W 매니저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오늘 아침에 대표님이 긴급회의 소집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그렇게 결정 났다는데, 아직 못 들으셨구나. 축하드립니다, 형님. 한잔 해야죠.”
“흠······.”
최재환은 별로 달가운 표정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3W 리더 권혜선이 눈치를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내가 애써 밝게 인사를 했는데, 그녀의 얼굴에 순간 찌푸림이 스쳐갔다. 바로 앞의 나밖에 보지 못했을 정도의 빠른 스침이었다.
‘뭐야?’
마침 최재환이 나를 붙잡았다.
“가자. 늦었다.”
그녀들과 회포를 나눌 시간도 없이 최재환은 나를 잡아끌고 샵을 나섰다. 슬기가 섭섭하다며 우- 하고 야유를 할 정도로 최재환은 급하게 움직였다. 주차장의 차에 오르자마자 최재환이 미간을 찌푸린다.
“너, 어제 말한 거 생각해봤어?”
“응.”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글쎄······.”
대답을 망설이자 최재환이 김밥 한 줄을 꺼내들며 얘기를 계속했다.
“일단은 3개월 찍은 상태니까, 좀 더 버텨볼래?”
“아니. 그러면 오히려 회사의 지원이 늦어지니까, 괜스레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고.”
“하긴 그렇지.”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스럭. 은박지를 벗기고 김밥을 하나 입에 넣는 최재환. 그러더니 두 손가락으로 또 김밥을 집어 내 입에 가져온다. 왠지, 이거는 좀 그런데······.
“난 솔직히 형하고 함께라면 적당히 계약하려고.”
“잘 생각해 임마. 너 인생이 달린 거야. 그리고 나도··· 언제까지 너하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고.”
최재환의 말이 맞다.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선택이 눈앞에 있다.
오늘 샵을 찾은 것도, 아침부터 코디를 한답시고 옷장을 뒤집은 것도, 겨우 찾아온 인생 게임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니까.
“아무튼······.”
최재환이 얘기를 꺼내려다가 말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쳐다봤다.
“······.”
그는 침묵 속에서 휴대폰을 열어 보더니 다시금 닫았다.
“누군데?”
“아니다. 일단 출발하자.”
최재환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은 것과 동시에 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울리자 최재환이 차를 멈췄다. 끽 소리와 함께 멈춘 차에서 급하게 내린 그는 전화를 받으며 차문을 쾅 닫았다.
“왜 자꾸 나한테 전화야? 그 사람 내 어머니 아니라고!”
최재환의 목소리가 아득히 퍼진 순간,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찔함에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지금이 그때였구나.’
현기증이 전신으로 파고든다. 가라앉은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결코 떠올리기 싫은 그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