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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스 간판 스타 (2)
“지랄들 한다. 니들 아는 게 뭐야?”
목소리는 높지 않은데, 그 입에서 냉기가 철철 흘러나온다. 다들 목이 얼어붙을까봐 서둘러 고인 침을 삼켰다.
“박한영의 친형이 그 유명한 가경 작가인 줄도 모르고, 이시현이라는 소속 배우가 어떻게 굴러먹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 이사까지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웬만해서는 정 이사는 터치하지 않는 차 대표인데. 그 모습에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깨달은 나머지 인원들은 숨을 죽이고 눈치만 살폈다. 정 이사도 이번만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요 몇 년 회사가 몸집을 불리면서 알게 모르게 신경을 못 쓴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참에 연습생부터, 소속 배우, 가수들 전부 한번 재점검하겠습니다.”
“급으로 나누지 말고, 다들 원점에서 체크해. 매니저들도 실적 없으면 내려. 허수아비 실장 둬서 뭐해? 벼가 익다 익어 썩었는지, 참새 새끼들이 다 쪼아 먹었는지, 눈뜨고도 모르는데··· 안 그래?”
그 말에 강 실장이 움찔움찔한다.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있다. 윤 부장도 자신에게 화살이 올까봐 목주름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 대표의 한숨이 이어진다. 잠시 차 대표가 생각을 곱씹는 동안 재깍재깍 시간이 흘러갔다. 다들 이리저리 눈동자를 돌리며 대표의 결정만 기다릴 뿐이다.
“박 상무.”
“예.”
박 상무가 다시 고개를 든다. 차 대표가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얘기를 꺼냈다.
“가경 작가, 충무로 쪽에 한번 알아봐. 아직 끗발이 있는지, 투자자는 문제없이 붙을지, 알아봐 한번.”
“그렇지 않아도 이리저리 찔러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조금 만족했는지 차 대표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리고 이시현이는 이렇게 해. 먼저 최재환이부터 실장으로 올려. 이시현에게 로드 하나 새로 붙이고. 스타일리스트도 붙여, 그리고 지금부터 4팀에서 맡아.”
“4팀에서요?”
윤 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니지먼트 사업부 1팀은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부 2팀은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부 3팀은 연습생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매니지먼트 사업부 4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히 관리를 요하는 배우와 가수를 위해서 4팀이라 불리는 스페셜 팀을 만들어서 관리한다. 그러니까 4팀은 한 팀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둘, 세 팀이 존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에스엔터테인먼트의 이 제도는 각 팀에서 인원을 끌어 쓰다 보니 직원들의 업무량이 급격히 많아진다.
그래서 재작년 박한영의 일본 프로모션을 위해 3개월간의 운영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4팀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시현이라고?
무명에, 카메라 울렁증을 가진 불확실한 존재.
이제 CF 하나를 찍었고, 단막극에 캐스팅 됐던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는 요행이라고 보는 직원들이 많은 판국이다.
윤 부장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와중에도 차 대표는 멈추지 않고 결정을 계속 얘기했다. 마치 쾅쾅 직인이라도 찍듯 머뭇거림이 없다.
“박한영 은퇴 기자회견은 다음 달에 잡아. 그전에 기자들 관리 좀 하고.”
좋은 기사가 나갈 수 있게끔 알아서들 각자의 선에서 기자들을 챙기라는 뜻이었다. 윤 부장은 벌써부터 홍보부 애들 곡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럼, 정리 됐지?”
“예.”
다들 일단 대답은 확실하다.
“이제부터, 이시현을 지에스 간판이라고 생각해. 알았어?”
“예!”
회사에 불어오던 바람이, 가경 작가의 등장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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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던 긴급회의가 끝이 나고 윤 부장과 강 실장은 비상계단을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부로 내려왔다. 그들은 각자 커피 한 잔을 들고 휴게실이자 흡연실로 사용하는 사무실 뒤편 배란다로 나왔다.
“아니 부장님,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지에스 간판이라니요?”
강 실장의 얼굴은 이제 노란 것을 초월해 새하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반전 드라마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대표님이 그냥 하는 말이지 임마. 그만큼 신경 쓰라고. 지금 우리 회사 간판이 몇 개인데······.”
“아니 그래도 대표님이 직접 언급하신 거잖아요?”
솔직히 강 실장은 이시현이 드라마 물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쾌재를 부르던 중이었다. 애초 원했던 대로 박한영의 로드로 최재환을 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윤 부장에게 열심히 밑밥을 치던 중이었다.
그런데 박한영은 끝내 재계약을 안 하고, 하물며 은퇴를 한다고 하는데다가, 이시현을 영화에 꽂아주겠다니. 더구나 그 영화가 뭐? 그 가경 작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급변하니 감정이 들쭉날쭉 변해 강 실장은 당장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야, 이거 이시현이 진짜 뭐 되는 거 아니야?”
남의 속도 모르고 윤 부장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그 모습에 강 실장은 속이 바싹 타들어가서 괜스레 애꿎은 라이터만 주먹 쥔 손 안에서 꾹꾹 눌러야 했다.
“부장님,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 실장은 입을 옴짝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박한영이 이렇게 가버리면 자신만 붕 뜨게 된다. 결국에는 다른 배우를 맡을 게 뻔한 수순이지만, 누구를 맡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달라진다.
‘가만 있어보자, 지금 회사에서 탑급이 누가 있더라.’
하지만 탑급은 이미 조 팀장과 윤 부장 선에서 케어가 되고 있는 상황.
‘이러다가 정말 로드로 내려가는 거 아니야?’
순간 차 대표의 시선이 다시 떠오르면서 강 실장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쓸 만한 애가··· 송이경? 맞아, 걔 마스크 괜찮지.’
강 실장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윤 부장의 귀에도 들릴 정도다. 쯧쯧, 윤 부장이 혀를 찬다. 질문을 던졌으면 귀를 열어놔야지.
“임마, 너는 그냥 사무실에나 있어.”
“예? 아, 부장님, 저 현장 체질이에요.”
“누가 뭐래? 그냥 사무실에서 애들 관리하다가 방송국 왔다 갔다 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윤 부장의 모습에 강 실장은 눈만 끔뻑였다. 지금 저게 말인지 방구인지.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는 당연히 현장을 뛰는 게 나은데다가, 실적의 차이가 확연하게 다르거늘.
박한영으로 인해서 빠르게 실장 직함을 단 강현이다. 이미 그 다음 수순까지도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둔 상황이었단 말이다
“하······.”
강 실장은 애타는 가슴을 달래려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윤 부장이 입에서 실실 바람을 흘리며 웃었다.
치익.
윤 부장이 담배를 입에 물고 얘기를 잇는다.
“이놈아, 머리를 써.”
“예?”
“뭘 그렇게 고민해?”
“하······. 그냥 상황이 그렇잖아요.”
강 실장은 찌푸린 얼굴로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차 대표의 눈빛 몇 번 마주봤다고 금세 나이 몇 개를 더 먹은 기분이다.
“가볍게 생각해. 머리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에효··· 근데, 한영이 기자회견은 뭐 하려 한데요?”
배우들은 보통 활동기간과 휴식기간이 나눠지는 편이다. 어느 때는 5년 이상의 휴식기간이 이어지는 배우도 있다. 그러니 박한영이 굳이 은퇴니 뭐니 발표를 안 해도 그의 부재를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쯧쯧, 강 실장 이거 핫바지구만.”
“예?”
“임팩트를 만들어두는 거 아니야. 박한영이가 재계약은 안 해도, 나중에 지에스로 다시 온다잖아. 그러니 미리 판을 깔아놔야지. 팬들 입장에서는 그냥 휴식기하고 은퇴하고, 와 닿는 느낌이 다르잖아. 나중에 컴백했을 때, 떠들썩하게 판을 벌릴 수도 있고.”
“아··· 뭐 그렇겠네요.”
“그리고 이놈아. 왜 지금 상황을 너한테 불리하다고만 생각해?”
“방법이 없으니까······.”
“방법이 없긴, 이 녀석 똑똑하게 구는 줄 알았더니만, 박한영 아니었으면 완전 쩌리될 팔자였네.”
“아니 부장님··· 너무하십니다.”
“농담이야 임마. 크하하!”
한번 크게 웃은 뒤에 윤 부장은 담배를 천천히 태웠다. 몇 번의 뻐끔거림 뒤에 그가 창문 밖의 반대편 빌라를 바라보면서 나직이 얘기를 이었다.
“이시현을 네가 잡아.”
“예?”
강 실장이 눈을 크게 뜬다.
“네가 이시현 데리고 다니면 될 거 아니야?”
“그게 돼요? 최재환은요? 걔는 실장 올리고 이시현에게 로드 하나 붙인다면서요?”
“그러니까 임마, 최재환은 다른 쪽으로 보내야지.”
윤 부장 입장에선 최재환보다는 강 실장이 밑에 두고 부리기가 좋다. 최재환은 부러지는 것을 잘 못하는 놈이니 분명 트러블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요? 부장님, 방법 좀 알려주세요.”
내내 침울하던 강 실장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윤 부장이 피식 웃으며 얘기를 계속했다.
“근데 너 잘 생각해야해. 이시현이 이렇게 띄우는 판에, 이러다가 만약 어그러지면 너도 같이 엎어지는 거야.”
“그때가면, 최재환에게 다시 넘기면 되는 거죠.”
“훗,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네.”
“부장님도 참.”
강 실장이 윤 부장에게 앙탈부리듯 달라붙자, 윤 부장이 그를 밀어낸다.
“징그러 임마··· 아무튼 조만간에 대표님 일본에 갔다 오실 거야.”
“일본에요?”
“몬스터 프로젝터 들어봤지?”
“예.”
“그거 때문에 가는 건데, 아예 거기에 매니저 하나를 박아둘 거란 말이지. 몬스터 하고 함께 지내게끔.”
“진짜요?”
“그래 임마. 왜? 그 얘기 들으니까, 너도 혹해? 이시현 매니저 말고 네가 거기 가고 싶어?”
“아니 뭐.”
강 실장의 머리가 다시 정신없이 굴러간다. 윤 부장이 보다 못해 그의 이마에 딱밤을 선사했다. 딱!
“아휴 부장니임!”
“자식아, 거기 유배나 다름없어.”
“유배요?”
“회사에서 사활을 걸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 일복 터지는 거야.”
“그래도 잘되면··· 확 뜨는 거 아니에요?”
“야, 그렇게 되면 박 상무가 가만히 있겠냐?”
주먹 출신 박창수 상무.
“그 양반이 지켜보다가 노선 정리하겠지. 그때가면 일본에 있는 놈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되는 거야. 몬스터가 계약기간 끝나가는 아티스트도 아니고, 이제 막 데뷔인데, 매니저 바뀌는 거는 일도 아니지.”
상황에 따라서는 포지션도 전략도 달라진다.
“흠······.”
강 실장은 신음했다.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얘기다.
“그럼 최재환을 어떻게 일본에 보내요? 걔가 가겠어요?”
“걱정 마. 이미 보낼 준비 하고 있어.”
최재환을 꺼리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현장 일은 잘하지만 회사 일에 있어서는 유도리가 없고, 자존심이 강하다. 오히려 나중에 몬스터 프로젝트에서 빠지라고 하면 그 자존심 때문에 그러겠다고 할 놈이다.
걸그룹 3W를 지가 다 키워놓고도 빠진 것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자존심 강한 놈들은 의외로 감정을 컨트롤하기가 쉽다.
“그럼, 최재환이가 일본에 가고··· 저는 이시현을 맡는다?”
결론이 내려지자 강 실장의 입 꼬리가 들썩거린다.
“잘 해봐. 이시현 그놈, 마스크는 진짜 괜찮으니까. 한번 뜨기만 하면 박한영은 우스울 꺼다.”
“그건 그래요. 박한영이야 이제 지는 별이니까.”
어제까지 자신의 배우였을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남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