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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킬 or 팀플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요.”
KIS 드라마국 국장실에 차 대표와 정 이사가 들어간 사이, 윤석규 부장과 강현 실장은 방송국 외곽 자판기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박한영은 뭐래?”
윤 부장이 묻자 강 실장이 바로 얼굴을 찌푸린다.
“자식이 뭔가 단단히 꼬였어요.”
“그 여자는 뭐라는 대? 그 술집에서 일한다는 애 말이야.”
“그 뭐야··· 참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고 싶대요.”
강 실장은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중에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그러니까요. 또 뭐라는지 아세요?”
“뭐라는 대?”
“아니, 지가 박한영이랑 사귀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박한영이 무슨 대수냐는 거예요. 자기도 꿈이 있고, 미래가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거죠.”
“뭐야 그 여자.”
윤 부장이 고개를 내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저러나 문제는 지금 박한영이 아니라 이시현이다.
“아니 그보다··· 이시현 얘는 뭐야.”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윤 부장이 찌푸린 얼굴로 속삭였다. 그러자 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그러니까요. 요즘 이시현이랑 최재환이 이상하다니까요? 귀신이라도 붙었나.”
“유 작가 그 양반 깐깐한 사람인데, 어떻게 눈에 들었지?”
“근데, 정말 이시현이 되는 거예요?”
“되면 인마··· 그것도 골치 아파. 에효······.”
윤 부장이 한숨을 내쉰다. 강 실장은 입에 묻은 커피를 혀끝으로 훔쳐내다 말고 왜 그런가 싶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한영이 그 역 빠지고 방송국에 위약금 토해내게 생겨서 ‘윈’에다가 부탁해서 그쪽 애한테 배역 넘긴 거 아니야. ‘윈’이야 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형국이었지만, 이제 와서 그 역을 이시현이 하게 돼 봐? 윈 입장에서는 자신들 가지고 논 것 밖에 더 돼?”
“그러네··· 또 그러네.”
“더구나 이번에 우리 몬스터 프로젝트······.”
몬스터 프로젝트라는 말을 꺼내고서는 윤 부장이 잠시 주변을 돌아봤다. 이는 극비사항이다. 그래서 기자들에게는 냄새는커녕 건더기도 주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그 프로젝트, ‘윈’ 인맥으로 일본 시장 진출할 계획이기도 했으니까.”
“참, 골치 아프네.”
강 실장도 윤 부장의 마음을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은 애석하지만 이시현이 되서는 안 되는 분위기다. 아마 차 대표도 그렇게 결론을 지을 생각으로 국장실에 들어갔을 것이다.
“너 입조심해라. 만약 최재환이 이 사실 알면, 그 새끼 난리난다.”
“예, 알죠.”
평소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성격이지만 수틀리면 제대로 미치는 인간이 최재환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강 실장도 최재환을 함부로 부리지 못한다. 물론 동기라는 이유도 있지만.
‘근데, 이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윤 부장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미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시현이 이거··· 갑자기 팍 오를 기세인데.’
연달아 두 번이나 차 대표의 귀에 이름이 올라왔다. 막말로 소속 연예인이라도 차 대표를 직접 움직일 만큼의 임팩트가 일어날 사건은 많지가 않다.
물론 CF 계약이야 모든 차 대표가 소속 연예인의 첫 타석은 직접 움직인다지만, 이시현의 경우는 그것도 처음부터 차 대표의 귀에 다이렉트로 들어온 상황이었고, 지금 것도.
‘이거 자칫하면 박한영이 지고··· 이시현이 뜨는 거 아니야?’
만약 차 대표가 그렇게까지 로드맵을 그린다면 이시현을 푸시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여러 가지로 꼬이게 되는데.
‘그럼 최재환이는······.’
매니지먼트 사업부서를 총괄하고 있는 윤 부장으로서는 사실 제 말을 잘 듣는 놈에게 떡 하나 더 먹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면에서 이시현과 최재환은 그의 눈에 드는 구석이 별로 없었다. 아니, 여태까지는 전무했다.
최근에 둘의 행동이 많이 유해지고 활달해져서 눈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윤 부장으로서는 이미 그전부터 자신에게 살살거리고 비위맞춰 온 매니저들이 어디 한둘인가. 걔들 밀어주기도 바쁘건만.
‘뭐··· 까라면 까야겠지만.’
하지만 여전히 최재환의 존재는 좀 걸리는 느낌이다. 담당 연예인이 뜨게 되면 그 매니저도 어깨에 힘이 실린다. 그렇다고 최재환이 살살 거리면서 상급자 비위나 맞추는 놈이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제 배우와 관련해서는 일단 고개부터 숙이는 놈이 정작 자신의 일에서는 타협을 하는 부분이 없다.
‘이거, 골치 아프네.’
입맛대로 되지 않으면 어제의 동료도 눈엣가시가 된다. 지금 윤 부장에게 있어 최재환이 그 형국이었다.
**
저녁 10시. 나는 또 롤리팝에 도착했다. 그만둔다는 얘기는 해야겠다 싶어, 지난번에 다시 찾았다가 딱 한 달만 더 하기로 한 것이다.
“후······. 시작해 볼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곧장 내 포지션에 섰다.
식기세척대 앞.
다행히 고압 호수가 고쳐져서 일이 한결 수월하다. 이것도 직업병이랄까, 주방에 지저분한 식기가 가득한 것을 보면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사람 구할 때까지는 천상 이 자리는 이시현의 자리였다.
쏴아아!!
접시에 물을 쏴서 건더기를 치우고, 거품으로 슥삭 닦아 오른쪽 싱크대에 채운 물에 담근다. 그렇게 좌우 싱크대 개수대를 번갈아 가면서 일을 하니 스피드가 붙는다.
“이시현이!”
“예.”
주방장이 여전히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나를 부른다.
“너 지에스 소속 배우라고 그랬지?”
“예.”
“뭐 좀 챙겨주냐?”
“그냥 뭐······.”
“걔는 관뒀다더라?”
“누구요?”
“왜, 호스트 하던 뺀질이.”
“아아······.”
첫날 대본리딩 현장에서 시비를 걸어오던 양아치 자식. 그놈은 두 번째 대본리딩에는 나오지도 않았다. 워낙 단역이라서 2화 대본에 녀석의 대사가 한 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식, 배우 일에 전념한다고 관뒀다더라.”
주방장이 혀를 차며 녀석의 소식을 전한다.
“그래요?”
“그런 녀석이 호스트를 하고 말이야······. 너처럼 깡있게 주방에서 일하던가 말이야.”
“깡이요?”
“너 임마 부장이 처음에 길에서 보고 여기 데려왔다며? 일 시켜준다고··· 근데 너 와서 한다는 얘기가 난 배우 될 사람이라서 그런 일 못한다고 했다며?”
“아, 그래요?”
“자식 지일인데 기억도 못하네. 그래서 주방에서 일한 거 아니야? 룸 한번 들어가서 여자들 비위 한번 맞춰주면 몇 백은 벌 놈이 시급 4천 원짜리 일을 한다니까 부장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데.”
“뭐, 전 이 일 나쁘지 않아요.”
뽀드득, 뽀드득.
이러고 있으니 늘그막에 소일거리 하는 기분이랄까.
“하여튼 특이한 놈이야. 여자들 얘기 적당히 들어주고 비위 살살······.”
“아 거참, 여자들, 여자들!”
주방장의 입을 불쑥 막은 이는 부주방장이었다. 그녀는 첫날 퇴근길에 본 여자다. 강 실장과 함께 있었던.
‘정희수.’
얼굴만 몇 번 봤을 뿐, 아직까지 나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서로 포지션이 달라서 말 한번 붙여볼 계기도 없었고.
“알았어, 알았어. 또 발끈 하고 난리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주방장이 서둘러 얘기를 정리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식기를 닦는데 집중했다.
정신없이 바쁜 타임이 지나가고 새벽 2시가 넘어가자 다들 움직임이 둔해졌다. 설렁설렁이다. 주방장은 한숨 눈을 부치러 사라졌고, 다른 직원들도 담배 한 대 태우러 주방을 빠져나갔다.
나도 할 일이 없어서 그저 다음 교대를 기다리며 빈둥빈둥할 뿐이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방송국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떠올려봤지만, 딱히 최재환에게 연락이 온 것이 없으니 생각한들 의미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바뀌고 있어.’
도저히 지금 상황을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뭐, 상관은 없겠지.’
어찌됐든 젊은 최재환과 함께 이시현으로서 성장한다. 그냥 즐겁게 웃으며 살 거다. 돈에 치일 생각도 없고, 무리하게 일을 크게 벌여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성공이든, 돈이든, 어차피 잘되면 그 둘은 알아서 따라오게 돼 있는 법이다. 그러니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삶, 정말 행복이란 걸 느끼고 싶고, 그리고 느끼고 있으니까.
‘응?’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부주방장이 튀김기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손에는 얼음이 들려 있었고, 한쪽에는 반으로 갈린 수박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화채를 만들려는 것 같다. 그다지 관심 갈 일이 아니어서 나는 벽시계를 돌아봤다.
‘2시 15분.’
하얀 타일에 걸린 금색 원형 시계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이것저것 하다가 문득 그녀를 보니 얼음이 보이지 않는다.
‘뭐야?’
하고 생각한 순간, 내 눈이 튀김기에 꽂혔다. 생각이고 자시고, 나는 무작정 달려가 그녀를 튀김기 앞에서 잡아끌었다. 바로 이어서 콰쾅! 굉음과 함께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
서둘러 병원으로 이동했다. 롤리팝 부장이 직접 운전을 했다. 무뚝뚝한 남자다. 물어볼 것도 많을 텐데 그저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다.
나 역시도 별다른 얘기를 꺼낼 기분은 아니었다. 그저 얼음주머니를 팔뚝에 대고 있을 뿐이고, 부주방장 역시 고통을 참으며 얼음주머니를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손과 팔에 기름이 튀었지만, 다행히 나는 팔뚝에만 살짝 기름이 닿았다. 허나 그것 하나만으로 이시현의 매끈한 팔뚝이 시뻘겋게 변해버렸다.
“어이고, 어쩌다가 이렇게 다치셨어요?”
의사는 부주방장에게 처치를 해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의 몸에 흉터라니, 그나마 얼굴에 닿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며, 쉬지 않고 중얼중얼이다. 만약 그때, 그녀가 튀김기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부주방장의 처치가 끝나고 내 처치가 이어졌다.
“어이고, 이분은 엄청 잘생기셨네요.”
의사가 너스레를 떨며 소독에 이어 내 팔뚝에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붙였다.
“심각한 건 아닌데, 그래도 경과는 봐야 해요. 흉터 남을 수 있으니까······. 그나마 여자분 보다는 낫네.”
“그런가요.”
“뭐하다가 다친 거예요?”
“주방에서 일하다가 다쳤습니다.”
“어이고, 조심하셨어야죠.”
의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은 가게를 비울수가 없어서 진즉에 먼저 떠났고, 병원에는 응급처치가 끝난 나와 부주방장만이 남았다.
‘무슨 생각인 거야, 저 여자?’
뭘 하고 있었기에 주방에서 넋이 나가 있었던 걸까 싶었다. 주방은 불과 기름, 칼 등의 흉기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칫 한눈팔면 이번처럼 대형사고 터진다.
‘그때, 강 실장하고 무슨 문제가 있었나?’
그녀와 강 실장과의 관련성을 떠올려 봤지만 딱히 알 길이 없다.
“부주방장님, 안 가요?”
나는 병원 로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먼저 떠난 부장은 우리에게 알아서 퇴근하라는 말을 했었다.
“부주방장님.”
다시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나를 돌아본다. 눈동자에는 힘이 없고, 은은한 화장품 냄새와 기름 냄새가 그녀에게 뒤엉켜져 있었다.
“이시현.”
그녀가 나를 부르고, 옅은 갈색 눈썹을 힘겹게 올리고 나를 눈에 담았다.
“예?”
“고맙다. 그리고 미안.”
“···예.”
그나마 생각은 박혀 있는 모양이다. 미안한지 아는걸 보니.
“너 지에스엔터라고?”
“예.”
“그럼, 그 사람 알겠네.”
“누구요?”
“···아니다.”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을 하듯 뭔가를 속삭였다. 그녀의 시선이 로비의 어두운 구석을 보고 있다.
“너 먼저 가. 나는··· 좀 있다가 갈게.”
“부장이 카드 밖에 안주고 갔는데··· 어떻게 돌아가실 건데요?”
나는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손에서 만지작거렸다. 옷을 갈아입고 올 상황이 아니었기에, 내 지갑은 롤리팝 탈의실에 그대로 있다. 그녀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냥 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부주방장이 고개를 다시 숙인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카드를 그녀 곁에 두고 뒤돌았다. 새벽길을 걷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멀어서 그렇지. 그렇다고 여자 혼자 걷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로비를 가로질러 나오면서 그녀를 돌아봤다. 텅 빈 로비에 홀로 앉아 있는 여자. 주방 유니폼 차림에, 굽은 등, 작은 머리에는 위생머리망이 툭 튀어나와 있고.
‘참, 신경 쓰이게 하는 여자네.’
회사를 운영하면서 감정적으로 꽤 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찌됐든 그렇게 병원 문을 빠져나가려는데.
끼이익!
내 앞에 차 한대가 멈춰 섰다. 고급차. 그 안에서 내린 이는.
‘어라? 박한영이잖아.’
숨이 넘어갈듯 급박해 보이는 박한영이, 병원으로 뛰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