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9화 (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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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시현

‘뭐야, 이 자식이 여긴 왜?’

주방 뒷문은 주차장과 연결이 돼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강 실장을 마주칠 줄이야.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강 실장이 눈을 크게 뜨고 어이없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눈에는 이시현이라는 배우가 술집이나 들락거리는 한량으로 비칠 게 분명했다.

“그게······.”

“우리 주방에서 일하는 애 친구인데, 잠깐 들린 거예요.”

대답을 머뭇거리는 나를 대신해서 강 실장의 곁에 있던 부주방장이 적당한 이유를 붙여 대답을 했다.

고맙긴 한데···

나를 도와준 이유는 알 수 없고 오히려 내 머릿속은 둘이 함께 있는 이유를 떠올리느라 분주하다.

‘둘이 무슨 사이지?’

무슨 사이 인지 안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그걸 잘 알고 있으니 호기심은 이쯤에서 멈추고 일단은 강 실장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너, 이런 곳에 들락거리지 마라. 이 바닥 뜰 거면 모르겠지만.”

“예, 명심하겠습니다.”

물러나는 나를 보는 강 실장의 시선이 불편하다. 그에게 시선을 떼며 나는 부주방장을 힐끗 쳐다봤다. 그녀의 동그란 얼굴 속 표정이 좋지가 않아 보인다. 입고 있는 색이 바란 주방 유니폼은 주차장의 가로등이 내려앉아 한층 누래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을 눈에 담은 나는 도망치듯 등을 돌렸다.

‘싸운 건가.’

아니면 다툰 건가.

인간은 호기심 덩어리이고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순간이다.

‘강 실장이 술집 주방 여직원이랑 무슨 얘기를 하려고 왔을까.’

주차장을 벗어나면서 찜찜함도 함께 가지고 나와야했다.

더 이상 강 실장과 부주방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찜찜하게 만들고 있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 강현 실장······.’

저 친구 역시도 나처럼 밑바닥부터 시작을 한 매니저다. 정확히는 나 최재환과 같은 날 입사했는데, 처음 맡은 배우가 박한영이었다. 운 좋게 좋은 재목을 만난 덕에 그는 입사 3년차에 실장 직함을 달게 된다.

이후에도 강 실장은 박한영과 합을 맞추지만 박한영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둘의 관계도 틀어진다. 물론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박한영이 이쯤에 재계약을 하는 것 같은데.’

문득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에서 박한영이라는 배우는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한영의 재계약에 공을 들였었고······.

내가 그때 일을 상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이시현이 시골로 내려가는 바람에 내가 잠시 일이 비게 되자, 강 실장 저 인간이 나를 박한영에게 붙이면 어떻겠냐고 대표에게 건의를 한 것이다.

박한영에게 붙는 로드매니저를 나까지 더해 두 사람을 붙여주자는 것이었고, 동기인 나를 제 밑에 두려는 강 실장의 얄팍한 수였다. 입사 5년 차인 나 최재환을 말이다.

‘···괜히 열 받네.’

그때를 생각하니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내 심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지우려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강 실장에 대한 기억은 아주 잠깐 스친 나쁜 기억일 뿐이고 이제와 의미를 찾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어찌됐든 나는 어둠이 물든 하늘 아래서 네온사인이 수놓은 거리를 걸었다. 가슴을 들썩일수록, 걸음을 내딛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공기를 마시는 지금이 너무도 홀가분하게 느껴진다.

‘다행인건가.’

이런 상황을 두고 마흔일곱 최재환의 몸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 아니다.

나는 불어온 여름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흔들린다.

‘단 한 번도······.’

내 자신이 싫은 적이 없다. 나는 ‘정’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재환이니까. 그러니, 그저 지금은 주위의 어둠에 잠시만 근심과 걱정을 맡겨두기로 하자.

“어?”

문득 앞을 보니 등이 굽은 노인이 수레를 끌고 있었다. 신문과 박스가 한가득 실린 수레를 힘겹게 움직이는 그 모습에 나는 바로 다가가 수레에 손을 얹었다.

“할아버지, 제가 밀어드릴게요.”

“어이고, 안 그래도 되는데.”

“신호등 건널 때까지만 제가 밀어드릴게요.”

노인은 내게 주름이 가득한 미소를 보였다.

“고마우이.”

4시간이 넘게 접시와 술잔들을 닦느라 팔이 빠질 것 같았지만 이시현의 몸은 아직 젊다. 그래, 비록 이시현의 몸이지만 이십대의 젊음이 전신에서 용솟음 치고 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침 신호등 신호도 바뀌었다.

노인은 천천히 앞섰고, 나는 천천히 힘을 주었다.

**

“저 친구······.”

바이바이 대표 백은혜가 눈을 찌푸린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비서는 그녀의 낮은 읊조림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세요, 대표님?”

백 대표의 시선이 차창 밖을 향해 있었다. 운전기사와 비서는 뭔가 싶어 나란히 앞을 바라봤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레를 끄는 노인, 그 뒤를 잘생긴 청년이 수레를 밀며 뒤따르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네요.”

운전기사의 혼잣말이 이어졌지만 백 대표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자 운전기사는 나직이 물었다.

“출발할까요?”

“저쪽으로 돌아가요.”

“예.”

노인의 수레가 향한 방향으로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했다. 운전기사는 동시 신호를 받아 무리 없이 좌회전을 시도하며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그리 오래지 않아 건물 코너를 돌고 있는 노인의 수레를 볼 수 있었다. 청년이 그 뒤를 여전히 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백 대표가 유심히 지켜봤다. 조수석에 앉은 비서가 다시 물었다.

“차, 세울까요?”

“아니.”

백 대표는 이제 차창에서 시선을 뗐다. 그녀가 자세를 바로 잡고 앉자 운전기사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잠시 뒤, 백 대표가 뒤에서 신문을 손에 집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찾아왔던 신인배우, 오늘 회사에 좀 오라고 그래.”

“오전 10시 스케줄이 비는데, 그때 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아······.”

백 대표가 얘기를 멈추고 이마를 찌푸린다. 신문을 펼치며 그녀는 다시 말했다.

“매니저 빼고 혼자 오라고 그래.”

“예, 알겠습니다.”

펼쳐진 신문의 내용은 백 대표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의 그 청년, 분명 어제의 그 배우가 맞다. 그만큼 한눈에 들어오는 외모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 외모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백 대표에게는 그 정도의 친구들을 데리고 놀만큼의 재력과 능력이 있지만, 그런 것은 취미가 아니다.

단지 그 젊음이, 그가 앞으로 향할 미래가 부럽다는 생각이 살짝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보게 된 좀 전의 모습에 신경이 쓰일 뿐이고.

“지에스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누구지?”

백 대표는 여전히 신문을 펼쳐 들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인지 볼 수가 없었기에 비서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아보겠습니다.”

“기획팀에 얘기해서 오소리가 우리 CF 모델을 했을 때와, 그 친구가 모델을 했을 경우의 예상 매출을 비교 분석해서 오늘내로 나한테 올리라고 그래.”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는 오소리라는 아역배우 출신이 CF 모델로 확정이 돼 있었다. 물론 정식으로 절차를 진행했던 것은 아니고, 계약서를 찍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획부서 팀장도 그렇고, 팀장을 밀어주는 임원들도 그렇고, 모두가 오소리와의 계약을 확신했다. 백 대표로서도 그만큼 지에스 쪽과 얘기가 오갔다고 생각을 했었다.

부스럭.

의미 없이 신문을 넘기는 백 대표. 생각에 잠긴 그녀를 비서가 다시 돌아본다.

“대표님, 다른 모델도 알아볼까요?”

“됐어. 그 둘이면 돼.”

어차피 탑 배우가 필요한 콘셉트의 CF는 아니지 않은가.

적당한 배우, 적당한 인지도면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는 오소리가 탁월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역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 돼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 크게 모델의 비중이 있는 콘셉트가 아니니까.

‘어차피 젖소 옷차림.’

누구의 기획이더라. 백 대표의 피식 웃음에 운전기사와 비서는 눈만 말똥히 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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