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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시현
오피스텔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겼다.
이제 혼자가 됐으니 정리를 해야 할 때였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나는 한발 물러나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오늘의 행동들, 반쯤은 뜬구름 위에서 이뤄졌다. 생전 처음 겪는 이 불명의 현상 앞에서 무작정 움직이긴 했지만 이제는 분명히 깨달았다.
‘이건 현실이다.’
나는 16년 전 과거로 돌아왔고, 이시현이 됐다.
그렇다고 최재환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최재환의 영혼이 동시대에 둘이 된 건가 싶지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이시현은 어떻게 된 거야?’
원래의 운명대로라면 이시현은 오늘 대본리딩 현장을 박차고 나가서 고향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중에 트랙터에 번개를 맞아서······.
그렇다면 그 이시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니, 몸은 여기에 있으니 그 영혼이 어디로 간 걸까.
이렇듯 몇 가지는 도저히 머리를 쥐어짜도 상황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무슨 과학적 기법 따위로 분석을 할 여유도 없고.
어찌됐든 일은 벌어졌지만, 상황이 최악인 것만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하루 나는 지난 십 수 년을 느끼지 못한 삶의 본질을 느꼈다. 이시현으로서, 또 다른 나 젊은 최재환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이건 말이 안 된다며 외면하고 있어야 할까. 내가 오늘 하루 했던 수많은 행동들이 꿈이었다고 여겨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다. 달라지는 게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이대로 해본다. 시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 이 몸을 지금부터 내가 좀 써야할 것 같다.
‘후······.’
생각이 정리됐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더 이상 생각하다가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나는 전면거울 앞에 서서 이시현을 비춰봤다.
‘하지만······. 진짜 아쉬웠던 놈이지.’
인생의 반을 이 바닥 삶을 거쳐 온 ‘정’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재환의 안목이 이시현을 냉정하게 훑는다.
‘키 합격. 외모 합격. 손발 예쁘고, 모난 곳 없고.’
외견만 봐서는 90점 이상이다. 그렇지만 부족한 부분도 보인다.
눈매가 서늘한 만큼 입가에 미소를 더 드러내야 한다.
반면 그 눈매가 기울면 눈웃음하나는 기가 막히니, 이는 가끔 써먹는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볼 살이 조금 빠졌으면 좋겠다. 기본 베이스는 전체적으로 날렵한 느낌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눈썹은······.
‘더럽게 촌스럽네.’
좀 더 얇으면서도 부드럽게 해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전체적으로 안면 윤곽을 다듬어서 중성적인 이미지를 붙이고 싶지만, 이는 화장으로 커버 할 수 있으니 굳이 아픔을 동반하는······. 나는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멈칫했다.
‘아픔이라······.’
그 생각을 떠올리자 무수히 많은 연습생들에게 권장이라는 미명 하에 성형수술을 요구 했던 것이 떠오른다.
물론 연습생들이 더 잘되기 위해서, 카메라 빨을 더 잘 받기 위해서 진행된 기획의 일부였다. 또한 연습생 대부분이 처음에는 꺼려해도 결과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을 했다.
‘정말 만족이었을까? 그 친구들에게는 대안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긴, 회사에서 하라는데 안하고 배기겠나.
‘나란 놈도··· 쓰레기였네······.’
인간적으로 연습생들을 대우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저 쓰레기 중에 조금 나은 쓰레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회사에서 쫓겨난 것은 인과응보였을지 모르겠고.
잠시의 후회를 뒤로하고 나는 이시현의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제 집처럼 들르는 곳이니 아마 눈에 보이는 곳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쓰레기 단역배우 놈이 얘기한 ‘롤리팝’에 관한 물증을 찾고 있었다.
‘하기는······. 회사에서 일거리도 안주는데 이시현 이놈이 뭐로 먹고 살았겠어.’
회사에서는 휴대폰비용과 주거비용 등의 최소한의 도움만 준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네.’
예전에 이시현에게 너 힘들어서 어떻게 사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무슨 화보촬영 모델 알바를 한다고 대답하기에, 그럼 회사에 걸리지 말고 조심히 하라는 말을 해주고 눈을 감아 준적이 있다.
‘그때 좀 더 알아봤어야 했거늘.’
무슨 잡지인지, 어디 에이전시인지, 정산은 어떻게 받는지.
‘그런 게 이제와 무슨 상관이야. 알바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이시현은 알바가 아닌 ‘롤리팝’에 출근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알바라면 알바겠지만 대중이 선망하는 스타를 꿈꾸는 놈이 술집 출입이라니. 결코 안 될 말이다.
‘알아봐야 해. 이놈이 미수라도 깔려있으면 빨리 정리해야지.’
흔히 그 방면에서 일하는 이를 접대부 혹은 호스티스라고 부른다. 호스티스는 보통 선수금이라는 걸 받는데, 이를 통해 옷과 헤어, 화장품, 명품을 구비해 출근을 한다.
그리고 대게는 돈을 빌리고, 갚고, 또다시 빌리는 생활을 반복한다.
‘신기하네. 시현이 같은 놈이 술집 같은 곳은 어떻게 다녔데······.’
이시현 이놈이 성격이 그지 같으니 손님들에게 지명도가 좋을 리도 없을 테고, 참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을 방과 거실을 뒤졌지만 보이는 게 없다.
겨우 10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이건만.
“후······.”
뒤적임을 멈춘 나는 문득 냉장고 위에 덮어놓은 회색 천에 시선이 고정됐다. 그래, 기억이 난다. 먼지가 쌓일까봐 이곳으로 이사 온 날에 내가 가져둔 것이었다. 그리고 추측대로 그 곳에 명함 한 장과 통장이 있었다.
“이시현······. 너 진짜.”
명함을 앞에 두고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통장에는 2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빌린 돈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벌어들인 건지 알 길이 없다.
‘어떻게 한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롤리팝과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언제 촬영장에 그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재적인 불안은 좌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면?’
괜스레 긁어 부스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좀 더 고민을 이었지만 답은 이미 나왔다.
‘그곳에 가본다.’
좋은 경우의 수만을 믿기에는 반대의 수가 너무 최악이다. 그러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했다. 오히려 회사와 계약이 끝난 상황이니 운신하기에는 적합한 시기다.
나는 명함을 뚫어지게 눈에 담았다. 소재지는 강북.
망설이지 않고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뒤 컬러링이 들려왔다. 클래식의 기본음이다.
-예, 롤리팝 봉 실장입니다.
‘봉 실장?’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이시현인데요.”
-누구?
“이시현이요.”
-···너, 오늘 나올 수 있어?
상대는 잠시 주춤하다가 그렇게 물었다. 나 역시도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했다.
“예.”
-그럼 9시까지 나와.
“예.”
전화 통화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상대의 반응이 뭔가 미지근하고 애매하다.
“차라리 나한테··· 최재환에게 얘기할 걸 그랬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오늘 가보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재환에게 얘기한들 그가 커버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닌 것 같고.
**
제 시간에 롤리팝에 도착했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해?”
“아, 예.”
주방장이 눈을 흘겨본다. 나는 얼른 식기를 닦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시현이 이곳에서 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일하는 정확한 장소는 이곳의 주방이다.
헛다리를 짚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어보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야, 빡빡 닦아라.”
“예.”
닦아야 할 접시는 끊임없이 주방으로 들어왔고 팔은 빠질 것 같았다. 하필이면 물을 쏴주는 고압 호수도 고장이 나서 일일이 손으로 식기를 문질러야 했다.
“야, 이시현이.”
“예.”
힘들어서 목소리도 안 나온다. 주방장은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노란 염색머리에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그런대 담뱃불은 붙어 있지 않다.
“너 이 새끼, 안 나온다더니만 또 왜 나온 거야?”
“아니 뭐······.”
이시현의 행적을 쫓아서 왔다고는 할 수 없지.
“자식아, 그러기에 봉 실장에게 왜 개겨?”
“개겨요?”
이건 또 무슨 얘기야.
“시급을 갑자기 500원을 올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상도덕이 있지.”
“예?”
나는 황당해서 눈을 찌푸렸다. 그래도 명색이 배우인데, 배우가 시급 500원 인상해달라는 말을 하고, 또 안 해줘서 관뒀다는 말인가.
“내가 봉 실장에게 얘기했으니까, 시급 300원만 더 올리자.”
“아······. 예.”
그러던가 말든가.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까. 그래도 내심 궁금해서 물어나 봤다.
“그럼, 저 시급 얼마예요?”
“얼마긴 4천 3백 원이지.”
이런 씨······. 순간적으로 욕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가슴이 착잡하다.
‘에효······.’
지금까지 시급 4천원으로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그걸로 2백만 원을 모았단 말인가.
회사에서는 당시 이시현에게 일은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녀석의 최소 생활비는 내줬다. 연습생들보다는 좀 더 나은 계약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최재환이 가끔 들려서 냉장고를 채워주고는 했다. 이따금 라면 한 박스를 사다준 기억이 난다. 물론 사비로.
‘하······. 그렇게까지 어려웠던 건가.’
하긴, 파릇파릇한 청춘이니 쓸데야 많지. 놀러가고 싶기도 했을 테고.
‘이시현이··· 그러고 보니 그 자식 놀러가는 것을 못 봤네.’
나는 이시현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야. 노냐?”
“아닙니다.”
주방장의 찌푸려진 시선에 나는 다시금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뽀드득. 뽀드득.
주방장은 입에 문 담배를 흔들어대며 수박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칼이 휙휙 움직이자 순식간에 수박 껍질에 여자 얼굴이 그려졌다. 그러더니 주방장은 두 손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사각형의 뷰라인을 만들더니 자신이 만든 공예 작품을 감상했다. 한쪽 눈을 찌푸린 채로, 그가 입을 열었다.
“시현아.”
“예.”
“너 지난번에 말한 거, 내가 얘기해뒀거든.”
“예?”
“일마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너 반지 맞춘다며.”
반지는 왜? 이시현 이놈 여자 친구 있었나?
그럴 리가.
“내가 아는 금은방에 얘기했으니까, 가봐. 깎아주지는 않아도, 사기는 안 칠거다.”
“아 예··· 감사합니다.”
“장소 문자로 보내줄게. 요 앞이야.”
“예.”
주방장은 다시 수박을 보더니 갑자기 칼로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주방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보기에도 저 놈은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근데 너··· 드라마 한다고 하지 않았어?”
“예, 이번에 단막극 들어가요.”
나는 손에 쥔 접시에서 뽀드득을 넘어 빠드득 소리가 날정도로 힘을 주며 대답했다. 주방장은 여전히 칼을 휘두르며 다시 물었다.
“어디?”
“KIS 단막극이요.”
“그래?”
“예.”
쾅! 쾅!
칼을 도마에 힘차게 내려놓은 주방장이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나를 본다.
“언제?”
“이번에 촬영 들어가고, 다음 달에 KIS 수목극 종방하면 한 주 비거든요. 그때 2회 방영됩니다.”
“그래? 좋았어! 그럼 그날 우리 다 같이 보는 거다.”
“예?”
“알아들었어?!”
주방장의 목소리가 주방을 쩌렁쩌렁 울리자 여기저기서 각자 나름대로 대답을 한다.
“예.”
“알았어요.”
“에이.”
“귀찮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접시 닦는 것에 집중했고, 그러기를 4시간··· 하다 보니 적응이 돼 요령껏 했지만 그래도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주방의 벽시계가 새벽 1시를 지나자 또 다른 알바생이 출근을 했다. 그가 나와 교대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나는 지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
목에 건 방수앞치마를 벗는데 손이 떨린다. 덜덜덜. 그런 나를 주방장이 슥 쳐다본다.
“이시현이, 밥 먹고 가라.”
“예.”
“절마 오늘 이상하네. 대꾸한번 없던 놈인데.”
주방에서 빠져나가는 내 등 뒤로 주방장의 혼잣말이 들린다.
툭.
좁은 탈의실에 들어간 나는 유니폼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담배 냄새가 찌든 곳이다. 기분이 착잡하다. 왠지 이시현이라는 배우의 그림자를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미안하고, 안쓰럽고, 또 답답하기까지 했다.
‘근데 왜 하필이면 밤일이야.’
셔츠 단추를 잠그며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배우라는 타이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하는 아르바이트, 그것도 주방 보조라면 사람들 눈에 안 띈다.
나는 이시현이 배우가 되는 것을 포기한 놈인 줄 알았는데, 녀석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고 걸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옷을 다 입고 탈의실을 나왔지만 밥을 먹으러 주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주방 뒷문을 통해 그냥 나와 버렸다. 주방장 얼굴을 한 번 더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그런데 뒷문 밖에는 누군가 길목을 막고 있었다. 여자였고, 그녀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 남자가 나 이시현을 보더니 손가락을 내민다.
“뭐야? 너 이시현 아니야?”
이 남자, 강 실장이다.
그리고 여자는,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아마, 부주방장이라고 했지? 아까 주방장이 정희수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