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7화 (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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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쟤들 뭐야?”

명색이 배우라는 놈이 매니저를 끌어안고 정신 나간 놈처럼 웃고 있다. 그것도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저게 뭐하는 짓거리야?”

매니지먼트 사업부 2팀의 강현 실장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자 곁에 있던 배우 박한영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차갑게 말한다.

“보기 좋네.”

“뭐? 저게?”

“왜, 우리한테는 없는 낭만이 있어 보이는데.”

그 말에 강 실장이 고개를 돌려서는 박한영을 향해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언제든 준비가 돼 있는데······.”

저들처럼 끌어안으라는 듯이 허리를 슬쩍 가리키는 그를 보며 박한영이 찌푸린 얼굴을 휘휘 젓고 사무실을 나섰다.

“야, 같이 가!”

강 실장이 박한영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그가 박한영에게 눈을 흘겼다.

“임마, 우리도 저런 시절 있었거든?”

“누가 뭐래.”

박한영은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원체 그런 성격이니 강 실장으로서는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근데, 너 이번에 재계약 할 거지?”

강 실장은 내내 묻고 싶었던 얘기를 꺼냈다. 지금 지에스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배우가 박한영이다.

영화 ‘난다 긴다’, ‘우리가 쓸쓸하게 죽어간 이유들’

이 두 작품이 박한영 필모그래피에 있는 각각 오백만 관객을 넘긴 영화다.

나이는 올해 서른.

아직 젊으며, 아직 성장하고 있는 배우.

항간에는 대한민국의 최초 천만 관객을 몰아올 배우는 박한영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떠돈다.

그래서 회사는 이번에 박한영의 재계약에 상당부분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 그가 원하는 조건을 최대한 맞춰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성장에 발맞춘 로드맵까지도 구상을 하고 있는 중이고.

계약 만료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2개월.

미리부터 재계약의 말들이 오가야 하는데··· 박한영이 최근까지 이어진 영화 촬영으로 인해서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가 꿀 냄새를 맡고 달라붙은 날파리에 초파리들까지 막아낼 재간이 있나. 그렇다고 계약 만료를 앞둔 배우가 새로운 회사를 물색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대답이 없어?”

강 실장이 답답해서 재촉하듯 묻자 박한영이 찌푸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 형, 나 배우 생활 그만할까봐.”

“뭐?”

깜짝 놀란 강 실장이 눈을 끔뻑인다.

‘이게 미쳤나? 아니면 뭐야, 연막이야?’

별의별 생각을 잇는 중에 박한영이 다시 얘길 꺼냈다.

“희수가··· 헤어지자네.”

“······.”

강 실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희수, 정희수는 박한영의 여자다.

물론 대중은 알지 못하고 기자들 역시도 알지 못한다. 작년에 기자 한명이 눈치를 챘기에 다른 기사를 줘서 무마했을 만큼 회사로서는 꽤 성가신 존재가 정희수다.

더구나 출신이라도 좋으면 말을 않지.

그녀는 술집에서 일하고, 여전히 술집을 출입하는 여자다.

“너 미쳤냐? 고작 여자하고 헤어진다고 배우 생활 청산한다고?”

강 실장이 여태와 달리 인상을 찌푸렸다. 내 배우 비위 맞추는데 살살거리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 배우 인생 망치는데 살살 거리면서 가만히 있는다면 그건 참된 매니저가 아니다.

“미쳤냐고 임마!”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에는 둘 밖에 없었기에 둘 사이에서만 고성이 맴돌았다.

“그럼 어떻게 해? 나 걔 없으면 안 되는데.”

박한영이 되묻는다. 조각 같은 얼굴에 답답함이 고여 있었다.

“어떻게 하긴! 너 인생 망치려고 그래? 지금 네가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몰라서 그런 거야?”

“후······. 그래, 모르겠어.”

얼굴을 쓸어내리는 박한영의 모습에 강 실장은 잠시 쓴 입맛만 다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들에게 1층 로비를 지키는 여직원이 인사를 했지만 누구 하나 반갑게 대꾸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럴지 알았으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건데.

드르륵.

건물 출입구의 자동 유리문이 열리자 흡사 여름철 장대비처럼 비명소리가 쏟아진다.

“꺄!”

“박한영이다!”

“오빠! 사랑해요! 오빠 여기 좀 봐요!”

연예기획사 건물 앞에 팬들이 운집해 있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다.

신인들이라면 저런 모습에 좋아서 실실 거리겠지만, 저런 모습을 매일 보는 기성 연예인들은 얼굴 표정 관리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리고 지금은 좀.

“야 비켜!”

강 실장이 박한영의 앞을 가로막은 여학생에게 큰 소리로 윽박을 질렀다. 멈칫한 팬들은 수군거리는 와중에도 박한영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물러나지를 않았다.

“이것들이 진짜!”

강 실장이 재차 짜증을 내는 사이에 박한영이 먼저 앞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시크한 모습에 팬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일어나는 동안 강 실장이 박한영의 뒤를 쫓아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희수 걔, 오늘 일하러 나왔대?”

출발에 앞서 강 실장이 안전벨트를 둘러매며 묻자, 박한영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다른 것과 교체하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긍정의 대답 같았기에 강 실장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얘기해서 데리고 갈게.”

“뭐?”

선글라스를 귀에 걸치던 박한영이 눈을 찌푸린다.

“뻔하잖아? 왜 헤어지자고 하겠어? 그런 거겠지.”

“형!”

“임마, 너 걔 감당 못해. 보통 애 아니야. 내가 데리고 가서 정리할게.”

데리고 간다니 어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박한영이 아니었다. 눈의 찌푸림이 한층 더 심해진다.

“형, 걔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기는······. 설마 너, 낳으려고?”

“말했잖아. 희수 걔 그런 거 아니라고.”

하지만 박한영의 말은 차 안에서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미 강 실장은 정희수가 임신을 했으며 그걸로 박한영을 옭아매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런 사고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한번 회사를 크게 흔든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박한영이 아니었지만.

“너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냐? 요행으로 올라왔냐?”

“그래 알아, 안다고! 누군 원해서 이렇게 됐어?”

“이 새끼가 어디서 소리야!”

평소 화 한번 내지 않던 강 실장이었기에 박한영도 이번만은 강 실장의 성난 얼굴을 보며 불쾌하다고 맞대응 할 수 없었다.

“일단, 내가 정희수 만나본 후에 얘기하자. 기든 아니든, 그때 가서 얘기하자고.”

“만나만 보고와. 다른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그럼 나 진짜 못 참아.”

“알았다. 일단 걔가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고.”

“미리 얘기해두는데, 걔 뭘 노리고 나한테 접근한 애 아니야.”

이번에도 강 실장은 박한영의 얘기를 한 귀로 흘려버렸다.

‘순진한 자식.’

정희수가 배우 킬러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과거에는 박한영보다 20살은 많은 중견배우에게서 스폰 받으며 생활했던 여자가 정희수다. 물론··· 소문이긴 하지만.

‘진작 귀띔 좀 해줄 걸 그랬나······.’

회사 입장에서는 소속 아티스트가 여러 이성을 만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을 만나는 것이 관리하기가 편하다. 더 나아가서는 회사 내의 사내 연애가 컨트롤하기도 좋고.

‘그래서 내버려 뒀건만.’

이제와 후회한들 의미가 없었기에 강 실장은 생각을 뒤로하고 밴에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응?’

강 실장의 시선이 건물 입구로 향한다. 그곳에 아까 사무실 안에서 서로를 얼싸안고 웃고 있던 배우와 매니저가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모여 있는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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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라고요?”

“최혜인이요.”

“아, 최혜인? 이름 예쁘다. 좋은 하루돼요.”

나는 여학생의 이름 옆에 ‘항상 건강하세요’ 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또 그 옆에는 ‘1호 팬’이라고 적었다.

“아, 제가 1호 팬이에요?”

여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예. 훗.”

최재환이 이런 내 모습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그런 것이 이시현이 누군가에게 살갑게 사인을 해줄 놈이었던가.

녀석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다가오는 팬도 별로 없었거니와 설사 누가 다가와도 그냥 슥 지나쳐버리는 인간이 바로 이시현이란 놈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간혹 기분 좋은 날은 사인을 해주기는 하는데, 그때도 대충 볼펜으로 지렁이나 그리던 놈이다.

그런데 오늘 아주 미친놈처럼 사인에 눈웃음까지 살살해주고 있으니, 매니저로서 최재환의 흡족함 지수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나 2호 팬 할래요.”

“난 3호팬!”

“나, 나는 4호!”

여학생들이 나를 향해 너도나도 다가온다. 그러자 별로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사진과 사인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녀들 입장에서도 이런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회사에서는 입구에 운집해 있는 팬들에게 최대한 다가가지 말라고 지시를 하는 편인데, 한번 해주면 계속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바쁠 때는 그냥 갈 수도 있으니까, 섭섭해 하지 말기?”

내 말에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중에 안 해주면 또 안 해준다고 불만을 쏟는 것이 팬심 이전에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나름의 단속을 해두는 것이다.

“나중에 오빠 확 뜨면 우리 챙겨줘야 해요?”

“당근이지!”

여학생들은 흡족한 듯 마주 손 인사를 했다. 그녀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크게 감명을 받고 있었다.

‘이시현 이 자식은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 한 거야?’

물론 과하면 해주기가 힘들고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인이라면 이런 순간이 즐거운 것도 사실.

저들이야 듣보잡에 가까운 연예인의 사인은 그냥 책상 어딘가에 박아 넣겠지만, 그래도 저 중 한명이라도 열성 팬을 만든다면 나쁘지 않은, 아니 꽤 큰 소득인 것이다.

‘단, 사생은 거절.’

나는 사생 팬들로 인한 연예인들의 피해를 너무도 많이 봤다. 견디다 못해 법에 호소해 접근금지신청을 받아내도 그런 친구들은 쉽게 멈추지를 않는다. 아니, 못하는 거지. 스스로 절제를 못하니까.

지금의 이시현이라는 배우가 사람 가려 받을 입장은 아니지만 행동에 있어 무조건적인 배려는 상대에게 잘못된 인식을 남겨 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32호 팬!”

마지막 여학생에게까지 사인을 해주고 악수를 나눴다. 특이하게 이 친구는 외국인이다.

“바이!”

서로 웃으며 손 인사를 나누고 뒤돌았다. 최재환이 내 뒤를 바싹  i아온다.

우리 둘은 지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는 고장 났고, 길거리를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되는, 그런 레벨의 배우는 아니니까.

어차피 최재환이 퇴근하고 나면 지금의 이시현이라는 존재는 잘생기고 훤칠한 일반인일 뿐이다. 회사 앞이니까 여학생들이 사인 좀 받겠다고 달려온 거지, 밖에서는 그뿐이란 얘기다.

“야, 아까 여자 애는 혼혈인가? 외국인가?”

“응?”

나는 최재환을 돌아봤다. 그는 심각하게 기운 얼굴로 아까의 아이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예쁘더라. 화면빨 잘 받겠던데.”

“형, 그거 직업병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얼핏 했다. 외국인들은 얼굴 윤곽이 뚜렷한 편이라서 명암이 잘 새겨지고, 그래서 카메라 빨이 잘 받는다. 연예인들이 괜히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진짜, 괜찮던데······.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그랬네.”

최재환이 여전히 아쉬운지 입맛을 쩝 다신다.

“그래봤자, 잠깐 이슈 되고 말걸.”

“어? 왜?”

“언어가 안 되잖아.”

배우를 하기에는 대사를 흘릴 테니 안 되고, 가수를 하기에는 발음이 엉망일 테니 안 된다.

“하긴··· 그렇겠네.”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아무튼, 너 오늘 들어가서 푹 쉬고, 내일 내가 전화할게.”

“내일 스케줄 있어?”

“없어도 움직여야지. 일단은 바이바이 CF도 중요하지만, 이번 단막극이 최우선이라는 거 명심해라.”

“근데 될까? 오소리 대신에 갑자기 우리가 찾아가서 좀 싫어하는 것 같던데.”

상대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바이바이 CF가 타깃 층을 고려할 정도의 정해진 모델이 필요한 CF가 아니었다는, 기억에 기반을 둔 계산이 있었다.

“흠··· 아마 될 것 같아. 모델이 오소리라고 확정돼 있던 것도 아니고, 단가가 높은 광고도 아니니까. 걔들은 애초부터 오소리는 될 거라고 생각도 안했어. 그리고 광고 에이전시 통하지도 않고 직접 하려는 것 보니까 조금 허술하더라고. 더구나 콘셉이 그런데 누가 하겠어?”

내 우려에 최재환이 딱 잘라 말했다.

“알았어. 근데, 나 계약 만료인데 계속 이 상태여도 되는 건가?”

계약이 만료라는 것은 회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사실 속마음은 바이바이 CF를 계약하고 나서 재계약을 추진하는 게 좋겠지 싶다.

그렇게 되면 이시현이라는 배우는 지에스엔터테인먼트에 묶인 몸이 아니니 회사와 계약금을 나눌 의무가 없다. 그저 최재환하고 적당하게 나누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재환은 어떤 판단을 할까.’

궁금했던 것과 달리 대답은 싱거웠다.

“괜찮아. 너 어차피 계약돼 있을 때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거 없었어.”

최재환의 우울한 미소를 보니 이시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바닥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재환은 자못 심각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그 선생님 수업 펑크 냈으니 난리 나겠네. 성격 아주 그냥 대단한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바이바이 CF 미팅 때문에 연기수업 스케줄이 펑크가 났다. 최재환이 아까 연기선생님과 통화를 위해서 몇 번이나 전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근데 형, 나 계약 만료돼서 수업도 못 받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최재환이 잠시 멍한 얼굴로 있다가 깨달음을 얻은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아······. 그렇구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최재환이나 이시현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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