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인생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마누라가 애들 데리고 외국에 가 있는 기러기 아빠라는 거?
뭐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마누라가 외국에서 기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매달 송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였으니까.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이번에 회사를 좀 더 키우려 중국 자본을 들여왔는데.
아, 참고로 나는 연예매니지먼트 기획사의 대표다.
‘정’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중국 자본을 들여오며 양도한 주식이 문제였다.
중국 자본 측이 내 정적이나 다름없는 장인과 손을 잡았다.
지루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나는 대표로서의 권한을 상실하고 말았다.
물론 절망적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화도 치솟았고, 술도 들이마셨다.
그렇지만 상황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아직 손에 쥔 주식이 있었으니 바닥까지 내려간 건 아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문득 혼자뿐인 방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봤을 때였다.
‘허무함.’
딱 그 생각이 떠올랐다.
허무한 것이다. 인생이란 게··· 삶이 무료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획사 대표가 된 이후로 나는 생활의 안정이란 걸 찾아갔다. 매니저 생활을 할 때처럼 반 시체 생활을 할 필요가 더는 없어진 것이다.
대표가 된 나는 이제 결정권자였고, 내가 직접 움직일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저 술자리 정도?
회사는 순탄하게 굴러갔으며, 연습생들이야 쥐어짜서 가르치면 되고, 배우나 가수들은 계약서만 관리 잘하면 됐다.
문제 일어날 부분은 애초부터 저리 치워버렸다.
공정거래 기준 지켰고 연습생들 배 안 곯게 했다.
그렇다고 트러블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어찌됐든 무난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없었다.
누릴 거 다 누려본 지금보다는 매니저 시절이 백배는 더 재밌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내 배우가, 내 가수가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할 때의 그 맛.
그래, 허무한 건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술에 취해, 허무함 속에서, 지독히도 혼자라는 걸 느끼면서.
**
“이 배우, 일어나.”
누군가 자꾸 나를 흔들고 있었다.
“이 배우, 일어나라니까. 늦었어.”
“아······. 머리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어젯밤 술을 너무 퍼 마셔서 속이 말이 아니었다.
“야, 이거 마셔. 어디서 그렇게 마셨어?”
누군가 이번에는 내게 마실 것을 건넸다. 숙취해소음료였다.
“하······.”
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누군가가 건넨 숙취해소음료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릭끼릭.
그 누군가는 직접 음료의 뚜껑까지 따서 내게 건넸다.
“근데··· 너 누구야? 아까부터 나보고 왜 이 배우래?”
난 그의 친절이 고마워서 얼굴이나 보려 찌푸린 눈을 들었다. 아마 회사 부하 직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어?”
나는 여전히 지금 상황이 꿈인가 싶었다. 아니면 술이 들깬 걸까.
“뭐해? 마셔.”
그는 내게 어서 마실 것을 재촉했고,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 다시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나잖아?’
그렇다.
지금 내가 나한테 숙취해소음료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몸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