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08화 (208/210)

208. 희망의 4기사

노바와 아이들의 등장에 시위가 조용해졌다.

단순히 강함을 놓고 따지면, 노바와 아이들보다 강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 상징성만을 놓고 보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노예의 신분으로 진을 만나, 처음부터 함께한 유일한 이들.

소수 부족 출신임에도 기사로 인정받았고, 교단으로부터 ‘성기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성기사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성기사로 임명됐음에도 빛의 신을 모시지 않는다. 오직 성자만을 섬기며 충성한다.

그렇기에 희망의 ‘기사’라 불리는 것이다.

“주인님.”

노바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비전을 통해 울려 퍼진다.

“제가 왔습니다.”

그 말에 진이 열매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진의 얼굴엔 확고한 ‘믿음’이 떠올라 있었다.

“목숨을 바쳐. 주인님을 꺼내 드리겠습니다.”

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젓는다.

괜찮다는 그 모습에 노바는 자신의 주인이 돌아왔음을 확신했다.

노바는 고개를 돌려 마그마를 바라봤다.

“시작하겠습니다.”

노바의 말에 마그마가 나지막이 진심을 전한다.

“부디 보스를…….”

노바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그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차게 외쳤다.

“희망의 4기사가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지 지켜보시죠!”

마그마의 호들갑에도 노바와 아이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열매 안에 있는 진을 바라보며 의지를 끌어올릴 뿐.

“가자.”

노바의 말에, 제일 먼저 용수바람이 움직였다.

녀석의 뒤로 성령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진을 밖으로 꺼내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성령 동화.”

용수바람의 말과 함께, 성령이 용수바람의 몸을 휘감았다.

성령과 용수바람은 하나가 되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모습이었다.

용수바람의 등 뒤로 천사의 날개가 선명했다. 마치, 녀석이 천사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모습.

“시작해!”

용수 바람의 신호를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 또한 성령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 성령들은 이내 아이들과 하나가 된다.

“희망의 4기사가 희망의 4천사로 변화했습니다!”

날파람은 마치 활을 쏘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러자, 빛의 활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가 시위를 당기자 화살이 나타났다.

“살바람!”

날파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살바람은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살바람이 활에 손을 뻗자 화살에 빛이 몰리며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노바는 검을 쥔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난 지킨다.”

노바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성자님을 지킨다.”

노바의 확신 어린 말은 ‘념’이 되어 검에 쌓였다.

“이번엔 지킨다!”

념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리고 검성이 말한 념을 쌓아 뜻을 이루는 마지막 단계.

노바는 오직 지킨다는 일념으로 그 경지를 강제로 열어 버렸다.

노바가 눈을 떴다.

퉁-.

먼저 화살이 날아갔다.

빛의 화살이 열매의 한 지점에 박히고, 그 위로 노바의 검이 떨어졌다.

“지킨다!”

빛의 화살에 상처 입은 부위에 노바의 검이 꽂히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부서질 듯 검이 열매를 내리찍었다.

‘이야. 미쳤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걸 지켜보는 진은 노바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킨다는 말과는 달리, 녀석의 힘은 파괴적이었다.

‘소멸.’

녀석의 힘은 열매 그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이번엔 기필코!”

노바는 진이 죽었을 때 깨달았다.

지킨다는 건, 그저 공격을 막기만 해선 안 된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라면 저번처럼 진이 희생할 테니까.

그러니, 자신의 힘은 방어여선 안 된다. 위험 그 자체를 ‘소멸’시켜야 했다.

모든 걸 소멸시켜 진을 ‘지킨다’.

이 깨달음이 지금 노바의 힘을 완성시켰다.

‘아니. 미친!’

이건 상정 외의 힘이었다.

막말로 노바와 아이들은 이번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여기서 열매가 부서지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이 미친!’

그때, 로메른이 준비해 놓은 게 발동했다.

보이지 않는 마법.

아니. 마법 위의 힘.

불완전한 용언이 열매를 감쌌다.

‘와. 망할 뻔했네. 간신히 막았네.’

한데, 그건 걷부른 판단이었다.

“모두 기도해 주십시오! 희망의 천사들에게 희망의 힘을!”

마그마가 입방정을 떨었다.

모두가 기도를 하고, 그 염원이 노바에게 흡수되었다. 간신히 막았던 소멸의 힘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주둥이가 문제네!’

오늘따라 자꾸 플래그를 세우고 있었다.

해치웠나? 하면 해치우지 못하는 법.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2차 위협이 날아온 것이다. 열매가 소멸되고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모두 힘을 합쳐 주세요!”

마그마는 2차 입방정을 떨었다.

뒤로 물러난 이들에게 참여할 것을 종용했다. 다들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 조졌네.’

이건 끝이었다.

균열 위로 다른 이들의 공격까지 쏟아지면 그건 막을 수 없다.

진이 반쯤 포기했을 때.

“쿨럭!”

용수바람이 피를 토했다.

‘어!?’

녀석의 얼굴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제야 진은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깨달았다.

‘과부하!’

이 모든 힘을 통제하고 분배하는 건, 용수바람의 몫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힘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모든 과부하를 용수바람이 받고 있던 것이다.

용수바람이 쓰러지자, 노바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간신히 이루고 있던 균형이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이스! 용수바람!’

소멸의 힘이 이내 사라지고, 열매는 언제 균열이 생겼냐는 듯 회복되었다.

앞으로 나섰던 다른 이들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희망의 4기사마저 쓰러졌습니다.”

마그마는 탄식을 터트리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실패했다면 몰라도, 다와서 실패한 건 사람들을 실망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 가능성을 봤습니다. 이제 첫 시도란 걸 명심해 주세요!”

마그마는 애써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이미 꺼져 버린 불씨처럼 분위기는 다시 타오르지 못했다.

그때.

크오오오오오-!!

엄청난 위압감이 담긴 울음소리.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 모였음에도,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곧이어 울음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 드래곤.”

“대체…….”

상상도 못 한 정체 ‘드래곤’.

[나의 소환자여.]

드래곤의 의지가 이곳에 모인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 드래곤의 정체를 깨달았다.

성자가 고유 성법으로 소환했다고 알려진 ‘드래곤’이었다.

[이 세상은 그대에게 큰 빚이 있다. 우리 드래곤은 물론이고…… 저 위에 신까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드래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빚을 갚는 거라 생각해라.]

드래곤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3개가 쏟아졌다.

노바를 제외한 아이들을 향해 쏟아진 빛의 기둥.

그 빛의 기둥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아이들의 몸에서 성령을 분리했다.

곧이어 아이들의 몸에서 성령이 완벽하게 분리됐고, 그 성령이 쏟아지는 빛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저, 저건…….”

성령이 인간이 되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육감적인 여인.

빛을 품은 듯한 흰색 머리의 차가워 보이는 사내.

검을 들고 있는 잘생긴 사내.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성령이 사람이 되었다.

마치 신의 자손이…….

“그 이론이 사실이었어.”

“진짜 성자님이 신의 자손이셨던 거야!?”

그런 사람들의 의문을 해결하듯.

“형님을 뵙습니다!”

“오라버니를 뵈요.”

“형. 오랜만입니다.”

모두가 진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건넸다.

당연히 진의 얼굴엔 의문이 떠올랐다.

“인간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바보 같은 오라버니.”

“형님을 지켜보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 또한 내려왔습니다.”

진은 이게 무슨 이야기냐는 듯 당황했지만, 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한방에 이해했다.

“역시 성자님은 신의 자손이셨구만!”

“역사적인 순간이야!”

“그럼, 저분들도 신의 자손이란 말이야!?”

“그렇지, 이 사람아! 성령이 변하는 거 못 봤어?”

“허허. 이런 말도 안 되는…….”

“영감! 입 조심해! 말이 안 되긴! 성자님 일이니까 말이 되지!”

인간을 위해 세상에 내려온 신의 자손, ‘성자’.

그와 함께 내려오진 않았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던 형제자매들.

그들이 성자를 구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형님이 저희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흰색 머리를 하고 있는 사내가 그렇게 입을 연 뒤.

“우선 꺼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바라고 바라던 말을 꺼냈다.

검을 들고 있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고, 나머지 둘은 그에게 힘을 부여했다.

엄청난 빛이 검을 든 사내의 몸에 주입됐다.

신성하게 붉은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신의 자손들에게 경의를. 힘을 보태 주지.]

드래곤마저 검을 든 사내에게 힘을 주입해 주었다.

“인간의 몸이란 참 약하군. 이렇게 힘을 받아도 고작 이 정도군.”

검을 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한 번의 휘두름.

하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완벽하다.”

완벽하디 완벽한 검격.

그 검격은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열매의 껍질을 가볍게 베어 냈다.

더 놀라운 건, 껍질을 통째로 베어 냈는데도 성자에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런 검격이 가능한 것인가.”

실력자들은 그 광경에 감탄을 터트렸고.

“우와아아아아! 열매가 깨졌다!”

“성자님께서 나오셨어!”

마그마는 환호 속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진에게 다가가 옷을 덮어 주었다.

“보스.”

“고생했다.”

진은 휘청거리며 일어나, 녀석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보스…….”

마그마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보스의 영원한 왼팔! 마그마가 임무를 다했습니다!”

진은 말없이 다시 한번 녀석의 어깨를 도닥여 준 뒤.

부축을 받아 열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진은 그렇게 말한 뒤.

“저…… 돌아왔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 비전을 통해 본 모습임에도,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 주었다.

“성자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사랑합니다!”

진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한참의 환영 인사가 지속된 뒤.

진은 드디어 자신을 구해 준 사람들을 바라봤다.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절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오라버니는 위에서도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예?”

“형님. 다행입니다.”

“형.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었어.”

진은 그런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이야기,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진과 동감인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진은 이 세 사람의 존재를 이 대륙 전체에 박아 넣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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