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부활했나?
지하 깊은 곳.
정령들이 모여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왕 몸을 만드는 거, 각자 원하는 몸을 만들자. 너희가 부탁하는 건, 내가 전부 구현해 줄게.]
로메른의 친절.
물론 이 친절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신, 내 몸도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거야.]
모든 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육체를 위한 빌드업이었다.
[뭐. 그냥 예전 몸으로 만들면 되지 않아요?]
[나도 비슷하다네. 지구의 헬스와 그 두 번째 인간의 수련법을 참고해 육체를 처음부터 수련해 볼 생각일세.]
시큰둥한 다른 정령들의 반응에도 로메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령들에게 확답을 받을 뿐이었다.
[좋아. 그럼, 내 말대로 진행하는 거지?]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자고.]
그렇게 시작된 육체 제작.
로메른은 자신의 원하던 ‘꿈의 육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진 못했다.
다행히 문제가 있다거나 재료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제가 생각한 육체인데, 이렇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원래 육체로 한다며? 회귀 전 육체랑은 전혀 다른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사제는 삿된 욕심이 없는 걸 모르시나요? 제 몸이에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뭔 개소리야? 최고의 육체를 만들기 위해 네 몸을 조사한 자료가 이쪽에…….]
로메른은 그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살벌한 성녀의 시선.
그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
로메른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게 원래 제 육체예요. 그저, 신앙심에 매몰되어 육체가 발달하지 못했을 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두꺼운 논문을 내밀었다.
[수면 시간과 육체 발달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이에요. 여기 증거가 있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원래 육체와는 좀…… 가슴이랑 골반 쪽에 욕심이 덕지덕지 묻었잖아.]
[그 무슨 망측한 소리죠!? 지금 절 모욕하는 건가요!?]
성녀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진짜 사실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로메른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건 아니야.]
[원래의 제 육체예요. 이대로 만들어 주세요.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돼요.]
[……진짜 괜찮은 거지? 이거 아무리 봐도 몸에 굴곡이 너무 심한 거 같은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전 원래의 제 몸을 찾을 뿐이에요.]
[사제들 욕심이 없기는…….]
로메른이 나지막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성녀가 가고 난 뒤, 검성이 찾아왔다.
[흠흠. 로메른. 내 예전부터 그대와 참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네.]
이젠 로메른도 알 수 있었다.
[알겠으니까 빨리 말해. 넌 뭘 어떻게 하고 싶은데?]
[자질이나 육체의 베이스는 그대에게 온전히 맡기겠네. 다만, 딱 한 가지 수정이 필요할 뿐이네.]
[한 가지라…… 좋아. 빨리 말해.]
검성은 로메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로메른의 반응은…….
[이 미친 영감탱이가.]
[흠흠. 젊음을 되찾고 새로운 인생을 찾는 것이니.]
[진짜 제정신이야? 차라리 키나 어깨 같은 거면 이해를 하겠는데…… 에라이 짐승 같은 인간아.]
[어허. 그것은 남자의 자존심. 그걸 부탁하는 것일세.]
[와. 진짜 이런 게 성녀랑 검성이라니…….]
[성녀? 그녀는 원래 자신의 몸으로 육체를 만든다고 했을 터인데?]
[됐어. 니들 둘이 똑같아.]
[허허. 그녀도 새로운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양이군.]
[에라이, 이 화상아. 나이를 생각해.]
[허허. 새로 시작하는 인생일 텐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군.]
로메른의 비난에도 검성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부탁함세. 그건 자존심일세.]
[……뭐.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알겠어.]
[흠흠. 내 그대만 믿음세.]
여기서 끝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몸의 선이 생각보다 이상하네요.]
[애초에 네가 원한 육체잖아! 내가 과하다고 했어, 안 했어?]
[그건 모르겠고 수정이 필요해요.]
[이게 무슨 성녀야!]
[열 내지 말고 눈앞에 일에 집중하세요. 조금도 틀리면 안 돼요.]
[아니. 내 말을 들으라고, 나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데?]
[프로 의식을 가지세요. 그대에게 내 새로운 인생을 맡기는 거니까요.]
[……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성녀는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줬는데도, 끊임없이 수정을 요청했고.
[흠흠. 이제 디테일하게 그 모양을 좀 손봐 주겠나?]
[야, 이 미친 영감탱이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가지고!]
[부탁함세. 아니면 마도구를 만들어 주게. 내 알아서 수정해 볼 터이니.]
검성은 디테일한 수정을 요구했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마도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로메른은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직접 만지던지, 마도구를 주던지.
[내가 이렇게는 못 살아!]
로메른은 결국 마도구를 만들어 건넬 수밖에 없었다.
[성녀? 검성? 무슨 성녀고 검성이야! 이 징글징글한 인간들! 차라리 무욕한 척을 하지 말던가!]
로메른은 성녀와 검성의 행태에 분통을 터트렸고, 이 모습을 ‘진’이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그 성녀와 검성마저도 원하는 게 있었다.
물론. 바쁘거나 다급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것을 원할 리 없었다.
‘그만큼 평화로워졌다는 건가?’
저들을 짓누르던 책임이 사라지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었다.
‘좋네.’
만족스러웠다.
언제나 내달리던 정령들이 이제는 자신의 작은 욕망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그럼, 이제 내가 나름대로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귀찮았다.
솔직히 말해서 일하기 싫었다.
그냥 놀고먹고 싶었다!
‘어쩔 수 없지. 이것만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건 지금 고민한다고 떠오를 게 아니었다.
그러니, 좀 쉽게 가야 했다.
‘그럼 있는 걸 사용해서 적당히 끼워 맞추기만 하면…….’
진은 서류에 이번 계획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계획을 작성하고 나서, 진은 가장 위쪽에 ‘제목’을 달았다.
<신의 자손 2.>
원래 1편이 성공하면 2편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된 거 같은데?’
나머지는 임기응변과 비전의 편집을 통해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 * *
엘프들의 영지에 있는 세계수.
그 나무를 보며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열매가 쑥쑥 크고 있어.”
“저 열매 정도면 안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문제없지 않겠어?”
“껍질을 생각하면 조금 더 커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작은 열매는 이제는 열매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성인 남성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면 충분히 들어갈 만한 사이즈였다.
“하하. 성자님이 곧 부활하실지도 모르겠군.”
“모두가 힘쓴 덕에 이리 빨리도 부활 하시는 게지.”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륙에서 모인 각지의 사람들은 땅바닥에 아낌없이 영약을 부었다.
그렇게 땅바닥에 버린 영약이면 기사단을 여럿 만들 수 있을 정도란 말이 돌 정도였다.
게다가, 단순히 영약을 땅바닥에 버리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 연금술 길드에서 새로 나온 영약은 신기하던데?”
“아. 독으로 만든 영약 말하는 거지?”
“그래! 독도 사용에 따라 약이 될 수 있다니. 그건 정말 깜짝 놀랐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륙의 영약 제조가 발전했다는 말이 괜히 도는 게 아니야.”
그 외에도, 나무에 직접 주사하는 영양제 영약, 마석을 이용해 만드는 특수 영약 등등 다양한 것들이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게 가능했던 이유는 영약을 받아 먹은 세계수가 열매를 계속해서 키웠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바로 나오니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영약을 땅바닥에 쏟아 부은 것이다.
그때 변화가 생겼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세계수의 가지가 흔들렸다.
쏴아아아아-
고작해야 나무 하나의 나뭇가지가 움직였을 뿐인데, 마치 숲에 바람이 분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무슨…….”
사람들은 그와 함께 일어난 변화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세계수를 사랑함에도 성자의 치료를 위해 최대한 떨어져 있던 엘프들.
그들이 세계수 곁으로 걸어왔다.
수많은 엘프가 한 번에 걸어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들의 표정이 더 문제였다.
그들은 환희에 찬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건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물러서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세계수 곁에 있던 ‘플로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도 들을 수 있었다.
“때가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 또한 엘프들과 비슷하게 변했다.
“서, 설마!?”
지금 상황에서 때가 되었다고 말할만한 건 하나뿐이었다.
“열매가 무르익었으니! 이제 성자님께서 부활하실 겁니다!”
그와 동시에 엘프들이 소리쳤다.
“어머니의 나무시여!”
엘프들의 영지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깜짝 놀랐던 사람들도 이내 엘프들과 함께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나무시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수를 부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열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
마치 성자님을 보는 것만 같은 그런 빛.
“…….”
모두가 멍하니 그 빛을 바라봤다.
눈이 멀 것 같이 강한 빛이었지만, 그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빛이 사라지면, 그 뒤에 성자가 서 있을 테니까.
그렇게 보고 싶었던, 대륙의 영웅이 되살아 올 테니까!
“서, 성자님!”
“제발! 성자님!”
빛이 천천히 옅어진다.
한데, 사람들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열매가 사라지고, 그곳에 성자가 서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성자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열매는 사라지지 않았다.
“……열매 속에 성자님이 계신거야?”
“진짜 열매 안에 계신 거였어?!”
열매는 투명하게 변했고, 그 안에 있는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몸으로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성자의 모습을…….
모두가 천천히 열매 곁으로 다가갈 때, 플로나가 소리쳤다.
“모두 대기! 확인이 될 때까지 함부로 열매에 다가오지 마세요!”
플로나의 말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비전을 통해 모두 방송하겠습니다. 우선, 사제님들의 확인이 우선입니다.”
반발하려는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지. 괜히 섣불리 접근하는 건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다들 좀 떨어져서 허튼 짓하는 놈들 없게 관리하자고!”
“사제님들 오실 수 있게 자리 비워!”
열매 안에 있는 성자의 모습을 확인한 이상, 굳이 안달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될 일이었으니까.
곧이어 사제가 도착하고, 이내 검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성자님께선 건강하십니다!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비전을 통해 성자의 부활이 확인되자마자, 대륙 전체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성자님이 부활하셨다!”
“기적이야!”
“우리는 전설을 목격하는 거라고!”
대륙엔 기쁨의 분위기가 펼쳐졌고, 곳곳에선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하루.
이틀.
…….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열매는 깨지지 않았고, 그 열매 속에 있는 성자는 눈을 뜨지 않았으니까.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아니.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