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03화 (203/210)

203. 극한의 이득

토론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그걸 지켜보는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야. 무슨 자손?’

진의 말에 로메른은 웃음을 터트렸다.

[진. 너 신의 자손이었어?]

로메른은 놀리듯 말했고, 다른 정령들 또한 개성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시, 신성 모독이에요. 어떻게 이런…… 물론. 진이 정말 좋은 일은 많이 했지만…….]

신성 모독이라고 말하는 성녀.

‘아니. 내가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니까?!’

[신께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들이 멋대로 신을 인격화하는 것이에요. 빛의 신께선 그런 존재가 아니십니다.]

‘아니. 아니라니까. 저거 내가 시킨 거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진이 쩔쩔매며 성녀에게 말하고 있을 때, 감성이 끼어들었다.

[허허. 출세했구먼. 신의 자손이라니, 신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 쫌! 성녀 당황했잖아! 조용히 안 해?’

[허허. 진정하고 성녀 얼굴이나 보게. 자네 맹한 구석이 있구먼.]

그 말에 진은 성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표정 아래 숨어 있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

‘야!’

[진짜 한결같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네요.]

성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풀고 검성을 노려봤다.

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믿을 사람 없다더니. 설마 성녀마저…….’

[실망한 척하지 마세요. 이런 걸로 상처받을 사람 아닌 거 알고 있으니까요.]

성녀의 말에, 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치가 왜 이렇게 빨라졌어?’

뾰로통한 표정의 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메른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진은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저 말이 신빙성 있는 거야?’

진의 물음에 대답한 건 ‘현자’였다.

[안 그래도 확인해 봤어. 근데…… 이거 좀 재밌는데?]

‘뭐가?’

[벽화에 관해서 논문이 있긴 해. 실제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오기도 했고.]

‘그럼 재밌을 게 없는 거 아니야?’

[전혀 아니야. 저 영감이 그 가설을 제일 부정하던 사람이거든.]

‘……뭐?’

[신의 자손이란 이야기는 비주류 의견이었거든. 성녀의 말대로 신의 자손이 있다면, 신을 의인화하는 게 돼 버리니까.]

‘그럼, 저 양반은 왜 저런 말을 하는데?’

[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양반도 네 부활을 바라나 보지.]

‘그래서 자신이 부정하던 이론을 가지고 나왔다는 거야?’

[어. 덕분에 사학계가 발칵 뒤집힌 거 같던데? 더 재밌는 건 뒤집힌 것치곤 사학계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이 이론을 부정하면, 진의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꼴이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한테 돌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상황에 네가 진짜 부활한다? 이 가설이 증명되는 거야.]

‘어. 음. 내 부활이 역사를 바꾼다는 거지?’

[그렇지.]

‘아니. 그런 거까진 바꿀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 모든 일은 그냥 임팩트 있는 회복을 보여 주기 위해 벌인 것일 뿐이었다.

크큭! 이 몸은 신의 자식이다!

이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한데, 로메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당연한 일 아니야? 난 네가 여기까지 예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걸? 내가 아무리 그래도 신의 아들이 되고 싶어 할 리 없잖아.’

[그럼, 그냥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란 뜻이야?]

‘어. 음.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그렇지 않아?’

그 말에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네 위치를 좀 자각할 필요가 있어. 이 정도 파급은 당연한 일이야.]

로메른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기왕 이런 상황이 됐으니, 진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거 이 흐름에 올라탈 수밖에 없겠네.’

화끈하게 올라타서 신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좋아. 그럼,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고.’

부활도 그냥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의 희망을 살살 끌어올리면서, 더욱 열광하게 만들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 * *

“그럼, 오늘 토론은 이렇게 마치도록…….”

토론이 끝나 갈 무렵.

긴급 속보가 전해졌다.

“지금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바로 보시죠!”

화면이 거대한 나무로 전환됐다.

그리고 조금씩 줌이 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나뭇가지에 걸린 ‘열매’를 비췄다.

한데, 나무 열매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뭔가 이상했다. 열매보다는 마치 생명체를 품은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을 본 플로나가 나지막이 탄식을 터트렸다.

“어, 어머니시여.”

마그마가 곧장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플로나 님. 저게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플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건……. 부활의 증거입니다.”

“증거 말입니까?”

플로나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어떻게 성자님을 회복시키려고 하시는지 깨달았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하던 MC 마그마. 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플로나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짙은 확신이 묻어 있었다.

“예. 어머니의 나무께선 필요하실 경우에만 열매를 만드십니다. 저번에 열매를 만드셨을 땐, 어머니의 회복과 성자님을 화신으로 만들기 위함이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좀 달랐다.

성자를 화신으로 만들기 위해 열매를 만든 게 아니었다.

그냥 진이 강탈한 거지.

물론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플로나가 보기엔, 화신을 만들기 위해 열매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열매 또한 필요하기에 만드신 겁니다.”

“저게 부활의 열쇠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제야 어머니의 나무께서 하신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조금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플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갔다.

“어머니께서는 부활밖에 방법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전 그 방법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 열매를 보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서, 설마…….”

마그마는 뭔가를 눈치챈 듯 표정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저 열매 안에 성자님이 계시는 겁니다. 성자님께선 부활하고 계신 겁니다!”

원탁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부활의 가능성을 따지긴 했지만, 이렇게 부활할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한데,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대륙 제일의 학자.

그는 수염을 휘날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제 이론대로군요. 신의 아이가 아니셨다면 이런 식의 부활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지식의 상아탑 그 꼭대기에 있는 이들.

나무에서 사람이 태어난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건…….

‘성자님이라면…….’

‘그분의 행보를 생각하면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엘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수를 거론하며 거짓을 말할 리 없다.’

이게 진의 부활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진이라면 다를 거라는 그런 생각이 불가능함에도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플로나는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대륙 제일의 학자라 불리시는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그분의 정체를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허허. 아닙니다. 저는 그저 과거에 기록된 팩트를 이야기할 뿐입니다.”

마그마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저 열매가 다 익으면 성자님께서 걸어 나오시는 겁니까?”

지금 꼭 필요한 핵심적인 질문.

이 질문에 플로나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좋은 소식 다음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죄송합니다.”

“예?”

“어머니께서 부활을 계획하시긴 하셨지만, 이건 원래 어머니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플로나가 이렇게 말하자,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다른 이들이 입을 열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연금술적 관점으로 본다면 나무를 이용해 사람을 연성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 불리는 세계수이시지만, 생명 그 자체를 탄생시킨다는 건 들어본 적 없습니다.”

플로나는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들을 긍정했다.

“맞습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을 어머니께서 억지로 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이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럼, 불완전한 부활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과신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완전함을 납득하고 제게 뜻을 내리셨습니다.”

세계수의 전언이 있다는 말에 원탁에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궁금함을 참고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께서는 불완전함을 해결할 방법을 열어 두셨습니다.”

“방법이요?”

“예.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사람들이 머리를 갸웃했다.

“외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습니다. 마나를 품은 액체를 열매에 뿌리면, 불완전함이 해소될 겁니다.”

“그런 방법이!”

“그리고, 기도를 해 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성자님의 부활을 도울 겁니다.”

마그마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가 희망이다.”

플로나는 그 말을 받았다.

“예. 성자님께서 대륙을 구하실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성자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올 때, 교황님께 많은 권한을 받아 왔습니다. 성자님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을 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교단은 현 시간부로 비상 태세를 선포하겠습니다. 교단의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성자님의 부활에 투입하겠습니다.”

지식의 해방과의 전쟁 중에도 선포되지 않았던, 비상 태세가 발령됐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약과 관련된 물건을 교단으로 가져오신다면, 전부 보상하겠습니다. 교단은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부활은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전쟁을 통해 진은 도로와 영향력을 획득했다.

더는 골드가 아쉬운 상태가 아니었다. 골드야 앞으로 쏟아져 내릴 테니까.

하지만, 영약같은 ‘보물’ 쪽 물건은 아니었다.

무욕하며, 청령한 ‘성자’의 입장으론 챙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솔직히 세상을 구했는데,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받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성자님은 반드시 부활하실 겁니다.”

추기경은 스스로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고, 그 모습은 ‘비전’을 통해 대륙 모든 곳에 퍼져 나갔다.

대륙에 대대적인 움직임이 다시금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