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지구
‘근데, 대통령이라는 양반들이…….’
진은 회의장에 모인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얼굴에 상처를 달고 있었다.
국가 지도자가 얼굴 상처라니?
게다가, 정장 위로도 느껴지는 터질듯한 근육과 살벌한 분위기는 한 나라의 지도자라기보다는 전사를 떠올리게 했다.
‘대체 뭐지?’
진은 검선에게 곧장 질문을 던졌다.
‘검성이 보기엔 어때?’
[그대와 생각이 비슷하다네. 전사의 육체군. 한데…… 보면 볼수록 묘하구만.]
‘뭐가 묘해?’
[가진 마나나 경지와는 달리, 근육의 발달이 기형적일 정도로 이상적이군.]
‘그래? 헬스 때문에 그런가?’
[헬스? 그게 무슨 말인가.]
‘지구식 운동법인데, 데이터베이스에 있을 거야. 한번 확인해봐.’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검성도 진과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전사라…… 세상이 변하긴 했나보네.’
정치보다는 이젠 힘이 필요한 세상.
대통령조차도 힘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구 쪽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은 모양인데?’
게이트가 열리고 보인 지구의 모습에 문명을 잘 유지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한데, 막상 까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솔직히 말하면, 지구에 어떤 난리가 났든 그건 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지구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이제 내가 지구인은 아니니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삶은 과거에 두고 와야, 희망찬 미래를 살 수 있는 법이다.
진은 대충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주인이란 말에 대통령들의 표정이 변했다.
한 여인이 손을 들며 말했다.
“미국 대표. 캐서린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시라구요?”
“예. 제가 주인입니다. 이곳은 제 ‘꿈속’이니까요.”
꿈이란 말에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꿈이라구요?”
“예. 이곳은 제 꿈입니다. 더 정확히는 천국과 제 꿈이 겹쳐진 공간입니다. 신께서 제게 내려 주신 영토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그저 아까 말씀드렸듯 제 꿈속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곳이 꿈이라니…….”
“믿지 못하시는 거 같으니, 조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장 전체가 180도 뒤집혔다.
한데, 중력이 하늘에 있기라도 한 듯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회의실이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다.
현실적이라면 불가능한 상황.
그 모습을 보던 한 남자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인셉션?”
정답이었다.
이곳을 꿈속이라고 알려주기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으니까.
물론. 아는 척 할 수는 없었다.
진은 천연덕스럽게 번역에 오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시작(Inception:開始)이요?”
“아. 그게 아니라…… 저희 쪽 영화 이야긴데…… 아. 영화도 모르시겠구나. 하여간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근육질의 팔을 허둥지둥 휘두르며 대답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진의 말에, 다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못 믿겠군. 네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심지어 이곳이 꿈이다?”
사뭇 도전적인 말투와 오만한 눈빛.
‘말리는 놈들이 하나도 없네?’
하긴, 영화와 비슷한 장면 하나 보여 주고 뚝딱 넘어가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어디에 누구십니까?”
“중화 조선의 유췐이다.”
그의 말에 한 사내가 소리친다.
“중화 조선은 무슨! 중국 정부는 네놈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 중국 놈들 또 싸우네.”
“지구 가서 하라고! 싸울 때야 지금!?”
진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대충 감을 잡았다.
‘중국이 찢어졌나 보네.’
아마, 중화 조선이라 불리는 곳은 연변 조선족 자치구 쪽이 아닌가 싶었다.
“흠. 증거를 하나 더 보여 드리자면…… 아무도 위화감을 못 느끼시는 모양인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거 아십니까?”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애초에 전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제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실까요?”
“……마법 같은 건가?”
“그런 건 전혀 못 느꼈어.”
“아니면 이 공간이 특별한 건가?”
“대체…… 근데 넌 어떤 언어로 말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불어를 쓰고 있지.”
“난 영어로 하고 있어.”
진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꿈속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일부는 사실이었다.
꿈속에서의 대화는 ‘언어’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 말로해도 그 의미 자체가 전달된다.
물론. 꿈이라서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새겨진 마법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곳이 꿈속이 아니라면 이런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저들에게 이곳이 꿈속인 걸 납득시키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그래도 못 믿으시겠다면…… 굳이 이곳에 계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가시면 됩니다. 제가 이곳에 주인인 만큼 추방과 방문금지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요.”
이곳의 주인이며, 여긴 꿈속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네놈들의 목줄은 내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가 이곳의 주인인지 아닌지는 여러분께 중요한 일이 아니실 겁니다.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 나갈 수 있냐가 중요하죠.”
“……인정하지. 내가 무례를 범했다면 사과하겠소.”
사뭇 오만했던 첫 말과는 달리,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중국에서 어떻게 독립했나 했더니.’
저런 지도자가 있다면, 독립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재수 없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곳에 오시고 깜짝 놀라셨을 테니까요.”
진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설명을 이어 갔다.
“각 나라 별로 저마다 다른 영토를 가지게 되실 겁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가별 서버 운영이군…….”
확실히 지구인들이라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그 영토 안을 어떻게 채울지는 나라마다 다르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영토 크기는 어떻게 분배되는 겁니까?”
“방문하는 사람 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대로 부족하다면 추가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구인의 정신력이면, 영토 확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60억 인구면 아예 새로운 행성을 하나 만들어도 될 정도였으니까.
“영토 내부는 저희가 원하는대로 채울 수 있는 겁니까?”
“예. 요청하시면 즉각 변경될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이곳은 꿈속입니다. 변경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던전이나 몬스터 같은 것도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만약 해부를 원하신다면, 표본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허어. 이런 마법 같은 공간이라니…….”
질문은 계속해서 날아왔다.
“이곳에 아카데미가 있다고 하던데, 저희도 교육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아예 아카데미를 세워 정규 커리큘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정말 자비롭군요. 아무런 조건 없이 이런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니.”
“사람이 사람을 돕는 데 그리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게 한 세상이라면 더욱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요.”
진은 성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비롭고 자애로운 그 미소에 다들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렸다.
물론. 개 뻥이었다.
‘챙기는 게 왜 없어?’
오히려 얻는 건 이쪽이 더 많았다.
저들이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확보되고, 지구인들의 지식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지구인들이 수천 년간 쌓았던 모든 지식을 한 방에 빨아먹는 것이다.
이것을 대륙의 지식과 엮는다면…….
‘상상도 못할 일을 할 수 있겠지.’
어쩌면 우주 개척은 지구보다 이쪽이 더 빨리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심하진 않겠네.’
천재들이 일하면, 진은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각 국가별로 요청 사항이 다를테니, 각자 원하는 사항을 말씀해 주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통령들과의 만남은 끝났다.
요청 사항이야 로메른과 현자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 * *
진이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있다.
다쳐서 세계수로 끌려간 거 까진 좋았다. 한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치료가 돼서 멍쩡하게 걸어나오는 건 왠지 느낌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치료가 가능한 부상 느낌이잖아.’
[……아니. 세계수가 끌고 간 것만 해도 충분하다니까?]
‘아니야. 부족해.’
진이 생각한 마무리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래서 떠올린 방법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엘프들의 영지.
원래라면 인간들의 출입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특별히 영지가 개방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수 앞 ‘나무 고치’ 안에 진이 있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모든 건 진이 들어가 있는 ‘나무 고치’가 비전을 통해 방송되면서 부터였다.
처음엔 그저 비전으로 진의 회복을 기원하던 사람들이.
“성자님.”
“성자님. 얼른 회복하세요.”
“부디 건강히 나오시길.”
엘프들의 영지에 방문해 진의 회복을 기원했다.
덕분에, 유명해진 ‘엘프’가 있었다.
고치를 관리하는 엘프들의 지도자 ‘플로나’.
바로 그녀였다.
“플로나 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발 성자님을!”
사람들은 진의 치유를 기원한 뒤, 그녀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갔다.
그녀가 이렇게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성자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부탁한 사람에게.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진님은 건강히 나오실 겁니다.”
이런 말을 한 덕분이었다.
그런 세계수 앞 ‘나무 고치’에 변화가 생겼다.
고치의 겉면이 바싹 마르고, 엄청난 마나가 그곳에 모였다.
“성자님께서 드디어!”
“다들 모하고 있어! 기도하라고!”
“성자님!”
사람들은 진이 회복하며 나올 거라 생각하고, 웃고 떠들었는데…….
고치가 바스라지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서, 성자님은!?”
“저 안에 계신 거 아니었어!?”
“이게 무슨!”
고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게 바스라진 것만 같아 보였다.
“플로나 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곧장 플로나에게 물었다.
한데, 플로나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그녀는 흰자를 보인채 눈을 뒤집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프, 플로나 님?!”
“사제님! 여기 플로나 님이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사제를 불렀다.
하지만, 사제가 그녀를 진찰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시여.”
그녀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원대래도 돌아와 있었다.
사람들은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성자님은 안에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치료할 수 있다면서요!”
잔뜩 흥분한 사람들 위로.
쏴아아아아-
세계수 가지가 흔들리더니, 녹색 마나가 사람들에게 쏟아졌다.
흥분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진정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플로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플로나에게 집중됐다.
“어머니의 나무께선 성자님을 치료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천병력이나 다름 없는 말에.
혼절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플로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무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성자님께선 부활하실 거라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