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00화 (200/210)

200. 수출

“대화가 길어질 거 같은데, 일단 자리부터 옮길까요? 현자의 몸에 강림하는 거 코스트가 꽤 들어가시죠?”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네.]

윤 차사는 눈치가 빠르다며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급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실제로 지구인들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고, 처음에 바쁘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사업 이야기하려면 자리를 옮겨야 했다.

“제 꿈속은 어떠세요? 꿈에 강림하시는 건 코스트가 훨씬 덜하지 않을까요?”

[좋아. 긴 시간은 못 내줘도, 잠깐은 괜찮아.]

“이야기를 들으시다 보면 그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그래? 이거 기대되는데?]

진과 윤 차사는 곧장 꿈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꿈속은 깔끔한 지구식 사무실이었다.

“오. 꿈속을 이용하고 있었나 봐?”

현자에게 강림한 상태가 아닌, 그의 진짜 본모습.

가벼운 말투 속에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위엄은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놀라시면 안 돼요. 윤 차사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거든요.”

“그래? 하긴, 꿈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린 뒤,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우리한테 수출하고 싶은 게 뭐야?”

진은 씩 웃으며, 주위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무실이 사라지고, 꿈속 세상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전투형 도시, 연구형 도시 등등 다양한 콘텐츠가 가득 차 있는 꿈속 세상이!

“제가 수출하고 싶은 건, 제 꿈속 세상입니다.”

물론. 진짜 수출하고 싶은 건 따로 있었지만, 이건 그를 위한 빌드업이었다.

“……너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진에게 물었다.

“일종의 가상 현실? 그런 걸 만들었어요. 꿈속이다 보니 제한도 별로 없고요.”

“아니. 내가 물은 건 그런 게 아니야.”

윤 차사는 겉모습에 현혹된 게 아니었다.

“세상을 만든 거야? 꿈을 이용해서?”

아 세상의 진면목을 꿰뚫어 보았다.

“바로 알아보시네요. 맞아요. 뭐. 굳이 따지면 진짜 세상에 비하면 한참 열화 버전이긴 하지만요.”

“……그런 널 옆에 두고 신이라고 거들먹거렸으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표현일 뿐 그가 신이라고 거들먹거린 적은 없었지만.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엄밀히 따지면 전부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요.”

“어쨌든 넌 하나의 세계를 만든 거야. 내가 리온 외의 인간한테 놀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가 놀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격한 반응을 보여 주니 진이 뻘줌할 정도였다.

“……좋아. 여길 수출하고 싶다 이거지?”

“예.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지구도 난리도 아닌 거 같더라고요.”

“맞아. 우리 쪽에서도 나름의 힘을 주긴 했지만, 확실히 열세에 가까워.”

“그러니, 이쪽을 훈련장 겸 교류의 장소로 쓰면 어떨까요?”

“자세히 말해 봐.”

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설명을 이어 갔다.

“그쪽에 나오는 몬스터나 던전을 이쪽에 구현해서 시험해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이쪽의 마법이나 무의 체계를 알려줄 수도 있고요.”

“네가 얻는 건?”

“약간의 정신력이요.”

진은 곧장 계약서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리고 독소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약관을 가리켰다.

“이 공간은 사람들의 정신을 나눠 받아 운영되고 있어요.”

“하긴,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이렇게 넓은 세상을 창조할 순 없겠지.”

한데, 그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화내지 않으시네요?”

“내가? 왜?”

“사실 독소 조항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하. 이 정도 세상을 이용할 수 있는데, 나쁘지 않아. 강제적인 계약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리온이었으면, 조금이 아니라 통째로 빌렸을걸? 넌 아직 순진한 편이야.”

와. 이렇게 사기꾼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떤 짓을 하고 다니길래, 이게 ‘순진’의 영역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걸 수출하고 싶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수출해. 네 꿈속 세계니까 침공을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맞습니다. 그게 가장 좋은 점이죠. 침공받으면, 폐쇄해 버리면 돼요.”

윤 차사는 손을 내밀었다.

거래 성립이란 뜻이었는데…….

“잠깐만요. 제가 수출하고 싶은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더 있다고?”

“예.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저희도 여러분을 도와드릴 생각이거든요.”

뭐. 호의긴 호의지만,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호의다.

“……너 방금 리온이랑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아. 기분 탓일 겁니다.”

역시, 그 사기꾼 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딱 들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옥 아시죠?”

“지옥? 너희 쪽 악마들 말하는 거지? 당연히 알지.”

“그쪽 친구들이 지구에서 영업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영업? 악마 계약을 풀어 달라는 소리야?”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예. 전투에 확실히 도움이 될 거예요.”

“확실히 그건 그렇겠지.”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인간은 보통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재능이면 재능, 힘이면 힘.

모든 게 상승하니까.

“혹시 악마들이 강림할까 걱정이시면, 괜찮은 방법이 있어요.”

“그런 게 있어?”

“예. 이쪽에 지구인들이 침공했을 때, 묘한 걸 달고 있더라고요.”

그들은 ‘퀘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걸 이용하면 모두 해결이었다.

“퀘스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악마들은 지구인들의 사념과 업을 먹고?”

“바로 그거죠.”

게다가 이 계획의 가장 좋은 점은 따로 있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잘 정착하면 침공하는 녀석들도 눈치챌 거예요.”

“그건 그렇겠지.”

“그럼, 병력을 나눠서 우리 쪽 지옥으로 쳐들어오겠죠?”

“병력까지 분산할 수 있다?”

“맞아요. 저희 지옥이 좀 온건하게 변하면서…… 문제가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대충 예상이 되네. 평화를 싫어하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괜히 신이 아니었다.

그는 진이 걱정하고 있던, 지옥의 문제를 단숨에 꿰뚫어 봤다.

“맞아요. 전투 쪽 악마들은 현 상황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어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천생 ‘배우’인 바알조차도 지구 쪽을 언급했었다. 그도 현 상황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로 윈윈 하는 거죠.”

“확실히 나쁘지 않네.”

꿈과 악마.

그게 바로 지구의 희망이 되어 줄 것이다.

‘희망의 악마라니…….’

희망이란 시나리오도 악마가 쓰고, 이번엔 악마가 지구의 희망이 되어 주고 있었다.

‘이쯤이면 천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윤 차사가 입을 열었다.

“현재 지옥의 지도자는 누구야?”

“어. 아길레스가 현재 지도자긴 한데…… 바알도 같이 불러서 물어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좋아. 자리 한 번 만들어 줘. 영계와 지옥의 동맹을 추진해 볼 테니까.”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바로 부를게요. 제 연락이면 바로 오거든요.”

“……아무리 봐도 네가 지옥을 쥐고 흔드는 거 같은데.”

“그런 소리 하지마세요. 바알이 악마왕이 되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높은 자리 싫어하는 건, 리온이나 너나 똑같네. 특별한 녀석들은 자리를 싫어하는 건가?”

진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바알과 아길레스를 불렀고.

<역시, 악마왕. 네가 지옥을 얼마나 생각하는진 이미 알고 있었다.>

<진 님의 배려에 정말 감사드려요.>

바알과 아길레스는 고마움을 표했고, 윤 차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윤 차사는 곧장 입을 열었다.

“나 시간 없어. 바로 이야기부터 하자.”

<호오. 그대가 영계의 왕인가. 얼마나 강한 건지 가늠이 전혀 안 될 정도라…….>

“이야. 나한테 도전적인 놈은 또 오랜만이네.”

그렇게 영계와 지옥의 동맹이 진행됐다. 겸사겸사 진의 꿈속 세상도 수출했고.

‘역시, 큰돈을 버는 덴 수출이라니까…….’

* * *

진이 영계에 지옥과 꿈을 수출하는 사이.

대륙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성자님. 부디 회복을!”

“이렇게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성자님!”

슬픔에 젖어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고.

“모두 검을 들어라. 악마를 소환한 잔당을 쓸어버릴 것이다!”

“우린 희망의 4기사라 불렸지만, 지금만큼은 희망이 아니다. 저들의 ‘절망’이 될 것이다!”

분노에 차 검을 드는 이들도 있었다.

지식의 해방의 손을 들어주었던 왕국과 제국으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렇다고, 피의 학살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그들은 분노로 일어났을지언정, 이성을 잃지 않았다.

“이건 성자님을 위한 원정이다! 약탈이나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성자님을 모욕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우리는 성자님의 군대다!”

그들은 필요한 곳에만 ‘검’을 사용했다. 일반 백성들에겐 오히려, 천사나 다름없었다.

성자와 악마의 전투로 무너진 도시에 돈과 식량을 뿌렸고,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제거했다.

그렇게 군대가 움직이고 있을 때,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도 있었다.

“이제 정들었는데…….”

어둠속에 숨어 있는 전설의 괴도 세인트가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아바…….”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그녀는 아쉽다는 얼굴로 아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치? 너두 언니랑 헤어지기 싫지?”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진이 납치했던 아기.

그녀는 그 아기를 원래 부모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와 있었다.

아기의 부모들은 원래라면 이번 시나리오 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의 아기 바꿔치기 대작전이 너무 잘 통한 게 문제였다.

아기의 부모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지식의 해방이 아닌 교단 편을 들었다.

그 결과, 괴도 세인트가 출동하게 된 것이다.

“언니가 자주 놀러 올게.”

“아바바.”

물론. 진은 아기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바꾼 아기들과 똑같이 여러 가지 축복과 마법을 잔뜩 걸어 주었다.

부모들은 아기가 바뀐 줄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가자.’

괴도 세인트는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기를 바꿔치기했다.

그녀가 바꿔치기한 아기의 이마에 반지를 가져다 대자, 아기의 몸이 반지 안으로 흡수됐다.

‘잘 있어.’

그녀는 한참이나 아기를 바라보다,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응애애. 응애애.”

아기는 작별을 깨달은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기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 * *

한편, 진은 꿈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이 꿈속 세상의 주인 진 세인트 대공. 성자라 불리는 자입니다.”

진지하고 격식 있는 인사.

진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의 대통령님들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지구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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