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대화
대륙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교단을 지지하는 세력.
지식의 해방을 지지하는 세력.
둘의 세력이 엇비슷하다면 힘의 균형을 이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교단 쪽이 압도적인 열세였다.
이렇게 세력 차이가 나다 보니, 교단 쪽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었다.
교단 쪽에선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 내용은 간단했다.
<그대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이 같다면 싸울 필요가 없다. 이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적은 ‘지식의 해방’.
교단이 천국의 아카데미에서 하는 일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식의 해방 쪽에선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군대’를 국경선 쪽으로 움직였다.
그 모든 상황이 ‘천국’을 통해 공개됐다.
“대체 이게 뭐야?”
“지식을 해방하겠다는 거 아니었어?”
“이건 전쟁을 하자는 거잖아!”
“교단 쪽을 의심할 이유가 없는데 대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실제로 지식의 해방 뜻에 감화되어 넘어간 이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식의 해방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시대가 달라졌다.
이 대륙엔 인터넷이 있다.
정보를 감추고 숨기는 건, 이젠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다들 모르겠어? 대화를 거부할 이유가 없는데, 왜 거부했겠어?”
“……사실은 다른 걸 원한다?”
“당연하지! 저 녀석들은 대륙을 정복할 생각인 거야! 그게 무슨 지식의 해방이야!”
진이 개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아서 진실을 찾았다.
물론. 아예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무튼, 점점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이러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진짜 전쟁이 나는 거야?”
“그런데, 교단 쪽이 너무 열세 아니야? 이길 수 있는 거야?”
사람들은 천국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그러다 사람들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왜 천국을 금지하지 않을까?”
“……어? 맞네.”
“상관없다는 건가?”
“다들 도시 분위기는 어때?”
“전쟁 날 분위기는 아니던데?”
“그럼?”
“뭔가 마법사들만 바쁜 거 같고, 별다른 일은 없어.”
분명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인데, 의외로 조용했다.
이런 상황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병력의 우위가 지식의 해방 쪽에 있으니, 교단 측에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국경 쪽에 병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그렇게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도시에서 분주하게 오가던 마법사가 사라지기 전까지.
마법사들이 모든 일을 끝낸 듯 하나둘 사라지자, 변화가 시작됐다.
각 도시에서 마법진이 발동되고,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너희의 추악한 욕망이다.>
바알이 강림했다.
* * *
대륙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 악마 소환.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바알의 형태는 거대하고, 거대했다.
산보다 컸고, 지평선 끝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
그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었는데, 바알이 내뿜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그 뿜은 ‘마기’가 대륙을 오염시키듯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대륙이 뒤집혔다.
“악마야! 지식의 해방이 악마를 소환했다고!”
“제국 쪽 친구가 어제부터 접속하질 않아. 이 미친놈들이 사람을 재물로 바친 거라고!”
“대체 저걸 어떻게 막아?!”
“지식의 해방은 무슨! 악마를 소환해서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거잖아!”
사람들은 그제야 지식의 해방이 노리던 것을 깨달았다.
겉으로 드러낸 ‘지식의 해방’은 구실일 뿐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드래곤 목격! 성자님께서 악마 쪽으로 가시는 거 같은데!?”
“어디야? 우리 쪽에도 보였어!”
“역시 성자님!”
“그런데…… 성자님께서 막으실 수 있을까!?”
“다들 이거 봐 봐. 비전에서 방송 나온다!”
모든 도시와 천국에 ‘비전’이 방송됐다.
엄숙한 표정의 교황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성자님께서 악에 맞서기 위해 출발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안심하기 시작했는데, 교황의 표정은 사람들과는 정 반대였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교황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 사제들은 대륙에 퍼지는 ‘마기’를 막는 게 고작입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상황이 안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안 좋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저희가 부족했기에 성자님께선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곧장 악이 있는 곳으로 향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황이 부끄럽다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대륙의 위기를 한 사람에게 막으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성자님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한 사람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간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위험할 게 뻔한데도.
“성자님께선 떠나시는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대륙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양손을 모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성자님…….”
그런 사람들을 향해 교황이 말했다.
“성자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가 힘을 보태 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은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성자님께선 대륙에 사는 모두가 바로, ‘희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비전은 전혀 다른 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왕의 모습.
그 앞에 도착한 드래곤과 성자.
대륙의 명운을 건 마지막 싸움은 비전을 통해 생중계됐다.
* * *
거대한 악마 바알.
그에 맞서는 드래곤 위의 성자.
먼저 입을 연 건 바알이었다.
<성자인가.>
바알의 말에 대기가 요동쳤다.
“그렇다.”
떨리는 성자의 목소리.
언제나 당당하던 그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의 모습은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내 앞에 서 있을 수 있다니. 제법이군.>
그 말을 증명하듯 악마가 말할 때마다 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드래곤 또한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곳은 그대의 영토가 아니다.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하하. 재미있군.>
재밌다는 말과는 달리, 주변엔 재밌지 않은 상황이 펼쳐졌다.
<감히 내게 돌아가라 말한 것인가?>
압도적인 마기가 마치 진을 압사시킬 듯 쏟아졌다.
진은 마기를 아슬아슬하게 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 ……래.”
<제법 쓸 만한 인간이군. 이게 이번 대의 성자인가. 이 정도 인간이라면 잠깐의 대화는 괜찮겠지.>
그 말과 함께 진을 감싼 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화?”
<몇 가지 질문을 허한다. 영광으로 알아라. 성자여.>
“……무엇이든?”
<그래. 넌 자격이 있다.>
진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 목적은 무엇이지?”
<난 바알. 너희의 추악한 욕망을 이뤄 주는 존재.>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직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날 소환한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가 소원을?”
<그래. 제국의 황제는 영생을 달라더군.>
“……영생을 주었나?”
<그래. 영생을 주었지. 그를 해삼으로 만들어 주었다.>
“……해삼?”
<해삼은 영원히 산다. 난 황제의 바램대로 영생을 줬을 뿐이다.>
“그건 그가 원한 영생이 아니었을 텐데?”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난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주는 방법이었다.
“……아직 남아 있는 소원이 있나?”
<좋은 질문이군. 있다. 지식을 해방해 달라고 하더군.>
“……지식의 해방?”
<그래. 숭고한 신념이고, 어째서 인간이 발전하는지 알 수 있는 소원이었다.>
“…….”
<그러니 이뤄 줄 생각이다. 이 대륙에서 지식을 해방해 줄 생각이다.>
“어떻게?”
<모든 지식을 없앨 것이다. 너희 인간들은 앞으로 지식이 뭔지도 모를 미개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지식이 없기에 역설적으로 지식이 해방되는 것이다. 재밌지 않은가?>
악마.
그의 모습은 순수한 악을 떠올리게 했다.
“……난 널 막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그냥 돌려보내 주겠다.”
<하하. 성자여. 악마는 타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너희를 타락시키고, 절망하게 만드는 존재지.>
협상이 결렬됐다.
진은 곧장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빛의 신이시여!”
하늘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쏟아진다. 압도적인 그 신성력은 악마를 휩쓸어 버릴 듯했다.
하지만.
<빛의 신은 널 도울 수 없다.>
바알의 한마디에 신성력은 빛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신성력은 ‘마기’로 변형됐다.
<재밌었다. 성자야.>
바알의 말에 마기가 진을 짖눌렀다. 드래곤은 추락했고, 진은 마기에 짓눌려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작은 빛이 날아왔다. 그 빛은 진을 감싼 마기를 막아 주었다.
<……이 빛은?>
바알은 더 많은 마기를 쏟아 부으며 소리쳤다.
<감히,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놈들이!>
그 말과 함께, 더 많은 빛이 진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륙 곳곳에서 작은 빛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인간들아! 너희는 성자를 구하지 못한다!>
마기와 빛이 싸우기 시작했다.
* * *
각 도시에선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들 기도하세요!”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기도했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아 절실하고 절박하게.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몸에서 작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게 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빛은 이미 진에게 도착해 진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것이 성자님께서 말한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희망입니다!”
“더욱 기도해 주세요!”
“성자님을 위해!”
그들의 기도가 성자를 도울 수 있었다.
“우리의 기도가 대륙을 구하는 겁니다!”
비전만 바라보며, 구원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그곳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성자님께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성자님!”
“이기세요! 성자님!”
“성자님! 세상을 구해주세요!”
“빛의 신이시여! 성자님을 도와주세요!”
모두의 기도가 진에게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성자는 빛에 휩싸여 점점 커다란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성스럽고 경건한 모습의 ‘천사’의 형태로.
그렇게 성자는 사람들의 힘을 받아, 빛의 천사가 되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악마처럼, 빛의 천사 또한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마기에 짓눌리는 게 아닌, 대등한 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네가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이라면…… 난 사람들의 숭고한 희망이다.”
<희망? 숭고함? 인간들에게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아니. 난 희망이다. 그대의 욕망은 사람들의 희망 앞에서 무너질 것이다!”
<그럴 리 없다! 난 절대 지지 않는다!>
“그대는 희망 앞에 무너질 것이다.”
거대한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