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탐욕의 황금룡
어렸을 때, 이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탐욕이 가득한 오리가 금화 속을 헤엄치는 만화.
그 만화와 비슷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좀 다르긴 하지만.’
황금 속을 헤엄치는 건, 오리가 아니라 거대한 정령 드래곤이었다.
[묘하네. 밖에서 보기엔 천박했는데, 막상 안에 들어오니까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나쁘지 않긴.
히죽거리는 입가만 봐도 좋아하는 게 빤히 보였다.
레어를 만들 땐 그렇게 툴툴거리던 현자였는데, 막상 레어가 완성되니 만족스러워했다.
‘황금도 이만큼 모이면 작품이 되는 거라니까?’
[확실히 그런거 같네.]
‘그치?’
조금 많으면 욕심이지만, 이 정도로 많으면 하나의 예술이다.
황금이 레어를 가득 채운 그 광경은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레어는 정령 드래곤인 ‘현자’만 들어갈 수 있다.
정령은 물질을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황금을 헤엄치는 건지, 황금과 하나가 된 건지 모르겠어. 하여간 기묘한데?]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성자님! 어르신들을 모셔 왔어요!”
“오. 왔어?”
진은 그렇게 폴카에게 대답하며, 용인족들에게 인사했다.
“중간에 잠시 밖에 나갔다 오는 일이 있었는데도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닙니다. 레어 제작에 필요한 것을 수급하기 위해 함께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성자께서 그걸 도와주셨으니 저희가 감사를 표해야지요.”
아니.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폭주 기관차처럼 밖으로 나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저런 말을 들었다는 건…… 진은 폴카를 바라봤다.
“급하게 나가셔서 제가 장로님께 전해 드렸어요.”
“그랬어?”
역시, 특급 호구!
쓸데없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알아서 수습해 준 거 같았다.
“이 아이를 위대한 분께 붙여 드리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폴카를 붙여 주셔서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크. 이것의 특급 호구의 재능인가?
장로와 진, 둘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본론으로 들어왔다.
“레어가 완성됐으니. 이제 등록하겠습니다.”
“등록이요?”
“그렇습니다. 이 레어는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위대한 분들껜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뭔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드래곤들이 준비해 둔거라니 꽤 기대가 됐다.
“제가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위대한 분들께서 이 요람을 만들 때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저희는 그거 그걸 발동할 뿐입니다.”
“그렇군요.”
진은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장로는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용인족들을 불러 모아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용언 쪽인가? 이건 용인족들 지식에도 없던 건데?]
잠시 후.
레어를 둘러싼 공간이 변했다.
공간 전체가 현자와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단순히 집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진이 깨달은 건 아니었다.
[하. 레어란 공간 자체를 존재에 더한다고?]
‘……그게 뭔 소리야?’
[쉽게 말하면 ‘레어’가 드래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거야.]
‘그래? 별 신기한 게 다 있네.’
그런 생각도 잠시.
‘어? 잠깐만…… 그럼 안에 가득한 금은보화는!?’
[현자의 힘이 되겠지.]
용인족이 아낌없이 퍼 준 이유가 있었다.
레어에 채운 물건들이 전부 드래곤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아니. 내 황금!’
[……엄밀히 따지면 네 건 아니지 않아?]
‘아. 뭔 소리야! 내 거지!’
그런 진의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금은보화들이 현자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현자는 정령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그마 드래곤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조화.
마그마 드래곤이 베이스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위로, 새로운 색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빛나는 황금색.
그 영롱한 색채가 현자의 몸에 퍼져 나간다.
‘쟤가 내 돈으로 화장을 하고 있다니까!?’
물론 진이 보기엔 돈지랄일 뿐이었다.
저 레어에 쌓인 금은보화의 양은 부자인 진에게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런 금은보화가 깡그리 현자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그때. 장로가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예?”
갑자기 뭔 사과인가 싶었는데,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위대한 분께서 황금을 선택하시는 건 굉장히 드문 경우입니다. 저희도 준비는 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성자께서 무욕하신 건 알고 있지만, 세상을 위해 사용하시려고 위대한 분께 부탁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제가 원했다고 해도 어차피 흡수될 텐데, 의심할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아. 그걸 모르시겠군요. 위대한 분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흡수되지 않습니다.”
만약 흡수가 안 됐다면…….
‘회수해 갔겠네.’
회수하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아마 용인족과의 관계도 악화됐을 게 분명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현자가 흡수한 게 다행이었다.
다만, 좀 놀랍긴 했다.
현자가 저 황금을 원했다는 뜻이니까.
‘의외로 돈 욕심이 있었네.’
[그건 나도 몰랐어.]
[아니죠. 현자가 총무였잖아요. 그럴 만도 하지 않아요?]
[흐음. 것도 그러군.]
‘그래 놓고 나한테 욕심이 많다고 한 거야? 하! 이따 보자고.’
진은 그렇게 다짐하며, 장로에게 말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오히려,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흔쾌히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 일덕에 용인족과 신뢰가 두터워졌으니 나쁠 건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저쪽에 빚을 하나 지고 있으니.
“레어 건설이 완료됐으니 요람을 나갈 생각입니다.”
“허어. 이리 빨리 말씀이십니까?”
장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용인족에게 ‘현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츨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불안해하시는 이유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저희가 폐를 끼치기도 했으니 가감 없이 부탁하셔도 괜찮습니다.”
“폴카를 붙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장로의 표정이 변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쪽에서도 그걸 원하는 눈치였다.
“예. 폴카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훈훈한 분위기.
이 상황에 폴카를 빈손으로 보낼까?
전혀 아닐 것이다.
든든하게 이것저것 챙겨 줄 테고, 특급 호구는 그건 진의 주머니에 고스란히 넣어 줄 것이다.
그렇게 요람에서 할 일이 전부 끝났다.
* * *
“폴카 수석 연구실장.”
“예! 성자님!”
“수석 연구실장에겐 수석 연구를 배당해야 하는데…… 괜찮겠나?”
“당연합니다! 전 수석 연구실장입니다!”
수석 연구실장.
이딴 직책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직책은 만들면 그만이다. 이 직책은 오직 폴카를 위해 만들어진 직책이었다.
“우리 수석 연구실장만 믿을게.”
“네! 성자님!”
폴카는 의외로 똑똑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똘똘해. 연구 능력만 따지면, 현자급이야. 뭐. 나만은 못하지만.]
똑똑한 호구.
이 둘이 양립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폴카에겐 양립하고 있었다.
그런 폴카가 합류한 덕분에, 차원 이동 연구는 빠르게 진척되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다녀올게.’
연구가 끝나기 전에 진도 할 일이 있었다.
솔직히 일하고 싶진 않지만, 이건 진이 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진은 곧장 제국으로 향해 ‘첫 번째’를 만났다.
“잘 지내셨어요?”
“바쁘게 지냈어요.”
맨 처음 그녀를 봤을 때완 느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드러워졌고 여유가 생겼다.
그녀가 이런 느낌이라면, 다른 지구인들도 제대로 통제되고 있을 게 확실했다.
진은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진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설마!?”
진이 가져온 좋은 소식이 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지구의 좌표를 구했어요.”
“지, 진짜요!? 대체 그걸 어떻게…….”
진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께서 알려 주셨어요.”
“빛의 신께서요?”
“아니요. 지구의 신께서 알려 주셨어요.”
“……지구의 신이요?”
“음. 쉽게 설명드리면, 염라대왕님이 알려줬어요.”
“…….”
엄밀히 따지면 사기꾼이 알려줬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해 줄 순 없었다.
그러니 약간의 각색이 필요했다.
“지구인을 뺏긴 게 그분의 역린을 건드린 거 같더라고요.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여러분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어요.”
“지구의 신께서…….”
“예. 여러분들은 납치되고, 지구에서 버려진 게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조대가 움직이고 있던 거예요.”
“……참. 오래 걸리는 구조네요.”
“그래도 구했잖아요.”
“…….”
원망, 기쁨, 안도…….
그녀가 온갖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지구로 돌아가실 수 있어요.”
“드디어…….”
그녀가 감정을 수습할 동안 진은 잠시 기다렸다.
그녀가 슬슬 안정을 찾아 갈 쯤.
“지식의 해방 쪽도 준비하고 계신 거죠?”
“예. 남아 있을 사람들을 뽑았고, 처리할 세력들도 뽑았어요.”
“세부 동선도 짜 놓으신 건가요?”
“예. 상황 발생 시 저희는 둘로 나뉠 거예요. 잔류파는 즉시 교단 편을 들 거예요.”
대륙에 남아 있을 이들.
윤 차사가 전부 회수해야 한다고 하진 않았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 있는 인간을 훔쳐 간 것에 분노한 것이니까.
“귀환하시는 분들은요?”
“저를 비롯한 귀환파는 지식의 해방의 모든 전력을 수면 위로 꺼낼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하실지는 성자님께서 결정하시면 돼요.”
진이 부탁한 정리는 모두 끝내 놓은 거 같았다.
배우들은 전부 준비가 됐다.
“무대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지구행 티켓 값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좀 도와주세요.”
“좋아요. 다만…… 차원 이동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저희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막상 이래 놓고, 진이 전부 죽이면 이들은 끝이었다. 확인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이죠. 저희 쪽에서 자료 보내 드릴게요.”
“감사해요.”
“그럼, 무대를 준비해 올게요. 어차피 차원 이동 연구를 할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는데.
“저…… 혜진이는 잘 지내나요?”
그녀는 끝까지 참고 있던 질문을 진에게 던졌다.
“아. 세 번째분 말씀하시는 거죠?”
“예.”
“요즘 연애합니다.”
“……예?”
“영혼의 짝꿍을 만났거든요.”
“혜, 혜진이가 연애를요?”
“예. 제가 더 놀랐어요.”
말릭과 세 번째의 연애로 다시 한번 대화가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다가, 진은 무대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지식의 해방의 마무리가 될 무대.
이 무대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는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뽑는 다고요?>
진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예. 심사를 거쳐 단 한 작품을 뽑을 겁니다.”
<……저도 참가해야 하는 건가요?>
“당연하죠. 1위라고 직권 남용하면 요즘 악마 세상에서 큰일 나지 않아요?”
<그건, 그렇죠.>
직접 구상할 필요가 없다.
사념에 목마른 악마들이 해다 바칠 테니까.
“모든 악마에게 공지해 주세요. 희망이라는 주제로 멋진 시나리오 뽑아 달라고.”
대륙의 희망!
악마의 손에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