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94화 (194/210)

194. 사기꾼? 구원자?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을 떠올리려고 할 때.

“내 얼굴 보고 추억에라도 젖었나 봐? 관리자의 영역까지 와 놓고 딴생각하면 되겠어?”

녀석은 진의 상념을 깨웠다.

“넌 뭐야 대체.”

진의 물음에 녀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뭔지는 알고 있지 않아?”

모두의 해피 엔딩을 바라는 사기꾼.

진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것 봐. 알고 있잖아.”

그는 마치 마음이라도 읽은 듯 말했다.

“내가 설명을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엔 들어야겠어. 넌 뭐야, 대체.”

“그냥 취미 삼아 세계를 구하는 사기꾼? 뭐. 대충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

취미 삼아 세계를 구해?

그것도 사기꾼이?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만, 어처구니없다고 취급하기엔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말은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니란 점이었다.

‘저 녀석이 개입한 덕에 이 세상이 아직 안전한 건가.’

저 녀석이 진짜로 이 세상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입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남의 취미 생활에 개입하는 거야?”

녀석의 말에 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장난할 기분 아니야. 넌 날 꼭두각시처럼 이용했어. 그러니, 설명해. 네가 누군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본데. 난 널 꼭두각시처럼 이용한 게 아니야.”

이 녀석과의 대화는 정말 피곤했다.

사기꾼이라고 소개한 녀석이 진실을 말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난 널 이곳에 보냈을 뿐, 나머진 네 의지로 한 일이야.”

“선택권을 준 것처럼 말하네?”

“충분히 줬어. 넌 포기할 수도 있었고, 그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이 세상을 구하기로 한 건 네 ‘자유 의지’야.”

그의 말이 맞을까?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사기꾼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제야 인사를 하네. 난 리온이야.”

“내 이름은…….”

기억을 대가로 바치며 이름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진.”

이곳에서 자신은 ‘진’이었다.

“좋아. 진. 궁금한 게 뭐야? 전부 대답해 줄게.”

“그 대답을 내가 믿을 순 있고?”

“난 사실을 말할 거야. 그걸 믿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너야.”

대화하면 할수록 말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괜히 고민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선 대답을 듣고 고민해도 될 일이었다.

“왜 세상을 구하는 거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구한다?”

“뭐. 그것도 있고, 결국 우리 세상을 지키기 위해 서기도 하고.”

“너희 세상?”

“신들의 침략. 그게 여기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이놈들 때문에 개판이 된 세계가 수십 개는 돼.”

대충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바로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대체 왜 침략하는 거야?”

“뭐, 일종의 영토 전쟁이라고 생각하면 돼. 신들이 자신이 관리하는 영역을 넓혀서 더 큰 힘을 얻으려는 거야.”

“이미 신인 존재가? 고작 그딴 이유로?”

“인간은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전쟁해? 다 저열한 욕망 때문이지.”

신이란 탈을 썼을 뿐 인간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아무 곳이나 침략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침략할 수 있는 세계는 정해져 있어.”

“그게 정해져 있다고?”

진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이 관리하는 세계는 신이 직접 침공할 수 있어.”

만약 신이 관리하지 않는 세계라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쪽 세상은 지구인을 보내는 번거로운 방법으로 침략했다.

“그덕에 그나마 이쪽은 수습이라도 가능한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멸망했을 테니까.”

“……그렇게 심한 차이가 나는 거야? 아예 저항도 못할 정도로?”

“그 정도는 아닌데, 악신 중에 미친놈 하나가 있어서 그래. 이쪽에 온 것도 그놈 쪽 지휘관이야.”

일종의 차원 전쟁에 이쪽이 휩쓸린 모양이었다. 그나마 신이 없기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뭐. 이젠 걱정할 필요 없어. 네 덕에 한 놈 붙잡을 거 같으니까. 이 놈을 시작으로 저놈들을 통째로 등쳐 봐야지.”

“붙잡을 거 같다?”

“어. 드래곤들이랑 정령왕들이 함께 협공하고 있어. 나야 전투엔 도움 안되니까 널 만나고 있는 거고.”

진과 정령들의 예상이 맞았다.

왕의 후보를 임명하는 데 괜히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다.

역시 위쪽에서 싸우고 있었다.

“……놀랍네.”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가 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믿기로 했나 보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 현 상황과 완벽히 맞아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쪽에 관리자를 두지 않고, 왕의 후보를 만든 거구나.”

“정답이야. 관리자는 없는데, 관리자급 존재가 있다면 침략에 휘둘릴 리 없으니까.”

세상의 법칙을 이용해 방어한다는 그의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을 거 같았다.

“나쁘지 않네.”

“그렇지?”

리온의 계획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날 일부러 자극한 거지?”

“어. 윤 차사님한테 슬쩍 흘려달라고 했지.”

욕심을 갖고 이 관리자의 영역에 오도록 저 녀석이 설계해둔 것이다.

“……이상하다 싶었어.”

“그러니까 계약서를 잘 확인하고 서명했어야지.”

“역시 계약서 때문이었네.”

녀석은 얄미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악신 쪽에서 보낸 수백 명의 지구인보다 훨씬 큰일을 해 줬어. 아까 말했듯 내가 무대를 꾸몄지만, 모든 결과를 이룩한 건 네 힘이야.”

갑작스런 칭찬에 깜짝 놀랐던 것도 잠시.

“세상을 구하고, 모든 비밀을 깨달은 유일한 인물인 네가 차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신경 좀 써 줘.”

왜 칭찬을 하나 싶었더니, 일을 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뭘 부탁하는 척하고 있어. 그것 때문에 날 여기까지 부른 거잖아.”

“뭐. 세상을 구한 용사에게 미래를 부탁하는 건 당연한 일 이잖아.”

정말이지 말로는 못 이길 거 같았다.

“관리만 하면 이 세상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당연하지. 넌 내 기대 이상으로 충분히 제 몫을 해줬어. 이제 나머지 일은 내가 해야지.”

그나마 속이 시원한 건, 앞으로 저녀석이 할 일이 더 많은 것 정도였다.

대화가 적당히 마무리되자, 진은 슬쩍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 관리자의 영역엔 아무것도 없는 거야?”

“하하. 당연하지. 네가 여기 도착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위에 뭐가 있을 리 없잖아.”

“……진짜 사기꾼이네.”

“칭찬 고마워.”

그래도, 녀석이 한 말이 틀리진 않았다.

모두의 해피 엔딩.

그것에 가장 가까운 해결책이었으니까.

속긴 했지만, 즐거웠고.

설계당하긴 했지만, 고마웠다.

“다만,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게 진짜 귀찮은데…….”

그래도 걱정 없었다.

귀찮다면…….

“뭐. 짬 때리면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이 정답이었다.

짬 때리면 된다.

그럼, 마지막으로 챙길 건 챙겨가야 했다.

“지구 좌표나 주고 가.”

“얼마든지.”

차원 이동의 가장 중요한 열쇠가 손에 들어왔다.

리온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은 관리자의 영역에서 튕겨져 나왔다.

* * *

관리자의 영역에서 튕겨 나온 진이 눈을 떴을 때.

[이거 제대로 된 거 맞나?]

[맞을 거야. 아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괜찮나?]

[그러게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데요?]

[허허. 다들 걱정하지 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이 갔으니 문제 없겠지.]

정령들은 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다녀왔어.’

전전긍긍하던 정령들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졌다.

‘일단, 가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해줄게.’

진은 관리자의 영역에 가서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했다.

[……네가 당했다고?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완벽하게 설계당했더라고.’

[인간이 아니라 사기의 신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사기의 신.

그 말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어우. 차라리 인간인 게 낫지.’

사기의 신이라니…….

세상을 위해서라도 인간으로 남아야 했다.

‘아무튼, 나쁜 녀석은 아니더라고.’

[그런 거 같네. 남한테 휘둘렸단 느낌이 기분 나쁘긴 해도,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당했단 생각은 드는데, 결과적으로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었다.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 남들이 알아봐야 좋을 것도 없는 이야기니까.’

[좋아. 동의해.]

[저도요.]

저 위쪽에서 벌어지는 일엔, 이제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건 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큰일은 사기꾼이 처리하게 두자고.’

자신 덕에 꿀을 빨았으니, 이제 그쪽이 열심히 일해야 할 차례다.

게다가, 진과 정령들은 할 일이 있었다.

‘지식의 해방과 길고 긴 싸움.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

[너 설마!?]

‘어. 구해 왔어. 기다렸다는 듯 주던데?’

지구의 좌표를 구해 왔으니, 지구인을 보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운은 충분할 거 같고…… 뭐, 연구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 줘. 지식의 해방이 쓰러지는 그림은 딱 그려 줘야지.’

그래야, 대륙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때 현자가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중요한 걸 잊고 있지 않아?]

‘뭐가?’

[와. 진짜 모르나 보네.]

현자는 진짜 서운한 표정이었다.

‘뭐가 있어?’

[당연히 있지! 내 레어 짓다가 온 거잖아! 용인족들 움직이기 전에 돌아가야 돼. 적어도 레어는 지어야 용인족들이 찾아오는 일이 없을 거야.]

‘아. 맞네!’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진과 정령들은 폭주 기관차처럼 움직였다.

당연히 레어 건설 같은 건 한참 뒤로 밀렸다.

‘아니다.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시간이 필요했잖아.’

지식의 해방이 시나리오를 짤 시간과 좌표를 사용해 차원 이동 연구를 마무리할 시간.

둘 모두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일단, 지식의 해방 쪽에 연락해 줘. 그리고, 레어 지으면서 연구하면 되지 않겠어?’

세계의 모든 비밀을 안 뒤.

다시 레어를 건설하러 가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 * *

레어 건설이 진행되면서, 진은 다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달라고 해도 되겠는데?’

[아니. 왜 사람을 욕심 많은 드래곤으로 만들어?]

‘야. 이게 나 좋자고 하는 일이야? 다 세상을 위해서 쓰인다니까?’

[……그래도 좀 지나치지 않아?]

현자와 진이 투닥거리는 건, 모두 내부 인테리어 때문이었다.

솔직히 드래곤 하면 황금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 위에서 잠자는 드래곤이 국룰이었다.

‘뭐가 지나쳐. 용인족들도 그럴 수 있다는 얼굴로 막 퍼주는구만.’

실제 용인족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현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니. 지금 황금이 가득해서 내가 들어갈 자리도 없다니까?]

레어는 황금으로 꽉 찼다.

물론. 진이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야! 정령이 뭐가 공간이 필요해. 그냥 황금과 하나가 되면 되지!’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그치? 오히려 그게 더 현실성있는 거라니까?’

그렇게, 황금을 두둑히 챙기며 지식의 해방의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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