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이상해
진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당연히 꿈속 세상으로 이동돼야 했다.
한데, 세계수와 연결된 지금은 아니었다.
진은 기절한 뒤, ‘세계수’가 되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즈라의 감각을 느끼는 게 아닌, 세계수 그 자체가 되어 바즈라가 보는 세상을 보았다.
‘…….’
그렇게 보게 된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깨어 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만, 그 깊이는 전혀 달랐다.
그저 편린처럼 느껴지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모든 엘프가 느껴졌다.
그들의 생각, 감정, 지식…….
그 모든 것들이.
오직 ‘엘프’란 카테고리로 한정지은다면.
‘전지전능.’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감각.
아니. 이건 신이 맞았다.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데, 단순히 관리자라고 부를 수 없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계수가 연결된 것은 엘프들의 영지만이 아니었다.
꿈속 세상에도 세계수는 존재했다.
꿈속 세상의 주인인 진과 세계수가 하나가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시너지가 일어났다.
‘미친…….’
미쳤다는 말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꿈속 세상에 등록된 모든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간, 엘프, 흡혈귀, 용인족, 드워프…….
그들의 모든 것이 느껴졌다.
한데, 엘프들을 느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엘프들의 감각을 받아들였을 때와는 달리,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때문에, 쏟아지는 감각과 정보는 마치 공격처럼 느껴졌다.
그 공격에 휩쓸리고 짓눌려 정신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아.’
진은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 통제하려고 해 봤지만, 거부 반응은 여전했다.
정보와 진의 자아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건, 세계수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난 혼자가 아니니까.’
그런 진의 생각처럼, 기다렸던 이들이 도착했다.
[진! 우리가 왔어!]
어렴풋이 들리는 현자의 목소리.
[뭘 이딴 거에 휩쓸리고 있어. 하여간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말과는 달리 걱정 가득한 로메른의 목소리.
[걱정하지 마세요. 진. 우리가 여기 있어요.]
마치 보듬는 것만 같은 성녀의 목소리.
[허허. 이거 참 번잡하구먼. 일단 걷어 내겠네.]
마지막으로 검성의 목소리가 들린 뒤.
거대한 검풍이 느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자신을 짓누르던 그 감각과 정보들은 검성의 검에 밀려 흩어져 있었다.
진은 정령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왔어?’
[담이 큰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건지.]
담담한 진의 반응에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내 뒤엔 너희가 있잖아. 믿고 있었어. 당연히 걱정할 필요 없지 않아?’
[……뭐. 그거야 그렇지.]
로메른은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런 로메른의 모습에 성녀는 소리 죽여 웃고 있었고, 검성과 현자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좋아. 다들 왔으면 이거 수습해야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꿈 속 세상까지 영향을 받은 거야. 너랑 세계수는 일종의 합일, 그러니까 합체를 한 거야.]
‘합체?’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가 사용한 힘이 문제 같아.]
진의 영혼에 있는 힘은 법칙을 무시한다. 그런 힘을 세계수와 연결한 채 사용한 덕에 이런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나쁜 건 아니지?’
[우리가 없었다면 문제였을 거야. 막대한 정보량 때문에 잘못하면 네 자아가 휩쓸려 사라졌을 테니까.]
‘와우. 정신이 아득해지긴 했는데,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었잖아?’
[뭐. 걱정할 필요는 없어. 진짜 위험한 상황일 때 나태의 저주가 발동하게 해 놨거든.]
‘보호 같은 게 아니라 저주?’
[귀찮음이 극에 달하면 뭐 어떻게 해결되지 않을까 해서.]
‘……그거 말은 되네.’
여태 진은 귀찮음으로 몇 번이고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한다는 그야말로 흑마법사다운 발상이었다.
[저주가 있으니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실행한 거야. 원래라면 위험해서 더 보수적으로 접근했겠지.]
‘뭐. 앞뒤 사정은 대충 알았어. 그래서 이거 처리는 가능한 거야?’
[당연히 가능하지. 이게 뭐 어려운 거라고.]
곧이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령들이 흩어져 빠르게 정보와 감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은 밀려드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저게 진짜 천재지.’
정령들의 재능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재능충들의 만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야. 이런 식으로 마법식을 짰네? 이건 나도 좀 참고하고…….]
[이건 버리자. 이쪽은 다 쳐내.]
[새로운 성법의 영감이 떠오릅니다.]
[허허. 검에 집착하는 나야말로, 어쩌면 벽에 가로막혀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수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분류하는 것도 모자라 그걸 참고하고, 발전시키고 있었다.
정령들은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 이 괴물들아!’
정령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뭐 어려운 거라고.]
[맞아. 그냥 잘 차려진 밥상을 떠먹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특히나 현자와 로메른은 질리다 못해 재수없을 정도였다.
[허허. 저들이 비정상이니 그리 실망할 필요 없네.]
검성은 위로하듯 말했지만…….
‘비정상엔 검성 너도 포함이야. 어딜 정상인 척하고 있어.’
그 말을 한 검성도 똑같은 인종이었다.
진의 말에 로메른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받아.]
‘그냥 받아들이면 돼?’
[어. 너한테 맞춰서 정리해 놨으니 문제없을 거야.]
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정보와 감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과연 로메른의 말대로, 진에게 들어오는 정보는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양은 대폭 줄었는데, 질은 말도 못 하게 상승해 있었다.
억지로 맞지도 않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마치 진의 몸에 맞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됐다.
‘……지식이 예술이 될 수도 있구나.’
경이로 가득한 하나의 예술 작품을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그 모든 지식을 받아들였을 때, 진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극의.’
단순히 마법이나 검, 성법에 한정된 극의가 아니었다.
모든 것들을 아우른 극의.
세상의 극의란 게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모든 분야의 극에 도달한 것만 같은 충족감에 몸이 떨려 왔다.
그렇다고 진이 이 극의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안 해. 그냥 이 상태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애초에 극의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고 바로 신이 됐다면 누구나 신이 되었을 터.
이건 자격이 돼야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진은 그저 그릇일 뿐, 자격이 되지 않는다.
신의 힘에 닿으려면, 그 편린이라도 사용하려면, 정령들 모두의 힘이 필요했다.
[다들 준비해. 근원을 파고들어서 보호막에 접속할 거야!]
세기의 천재 넷의 힘을 모아야, 그나마 불완전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
‘……정말 터무니없다니까.’
애초에 인간이 신이 되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만약 신이 됐다고 해도, 그런 신이 하는 일이 간단할 리 없었다.
‘역시 될 필요가 없다니까.’
애초에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이상해.’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애초에 왜 관리자의 권한을 가져오려고 했지?’
위에서 벌이는 사업에 한 발 걸치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진짜 그런 걸 원했나?
사업에 한 발 걸치는 건 꼭 할 필요도 없고, 손해될 것도 없는 일이다.
사업에 참여해 신의 힘이 손에 들어온다고 사용할 곳도 없었으며, 괜한 원한만 사게 된다.
이미 대륙에 자리한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앞으로 다가올 평화에 ‘신의 힘’은 불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귀찮은 일만 잔뜩 늘어나기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거지?’
욕심 때문에?
신을 상대로 욕심을 부린다?
고작 그 작은 욕심을 위해?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일 만큼 자기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의문이 떠오르자, 또 다른 의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초에 이걸 로메른이 허락한 것도 이상해.’
이건 위험하기만 하고, 별다른 이득이 없는 일이었다.
합리적인 로메른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허락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데, 로메른은 물론이고 다른 정령들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이상했다.
더 이상한 건, 이걸 지금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어째서…….’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해.’
‘전지’한 힘은 아직도 이상한 것들이 잔뜩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애초에 난 누구지?’
지구 출생의 대학생.
한 평생 원하던 대로 살지 못하고, 심장 마비로 어처구니없이 죽은 멍청이.
가족의 얼굴도, 동생의 이름도, 전부 떠오르는데…….
‘이런 거 말고 내 이름은 뭐지?’
자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껏 회귀의 여파로 자신이 이름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진’이 되기 위해 바쳐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애초에 난 회귀 전 기억이 없어.’
기억조차 없는데, 무슨 대가를 바치고 회귀한단 말인가.
이상했다.
게다가, 그 회귀조차 정령들의 힘으로 한 회귀가 아니었다.
‘회귀에 신들이 개입했어.’
그런데, 어째서 진은 자신의 지구 이름을 잊었을까?
애초에 진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된 걸까?
정말 마지막 지구인이었을까?
그럼, 낙인은 왜 없었을까?
의문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애초에 지금껏 이 의문을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떠올랐을 때 어물쩍 넘어갔어.’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
그걸 생각하면 안 된다는 듯.
저런 생각이 떠오르면 어물쩍 넘어갔다.
심지어, 그렇게 넘어간 건 ‘진’만이 아니었다. 정령들조차 의문을 떠올리지 않았다.
정작 세상 모든 지식이 손에 들어온 지금,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대체…….’
다행히 지금이라면 이 의문에 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전지전능한 이 힘이 있기에 의문을 떠올렸으니, 이 힘으로 의문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은 해답을 원하자, 영혼의 힘이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안개가 잔뜩 낀 듯 어렴풋이 무언가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때, 로메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속 완료! 관리자 권한 끌어온다!]
그 순간, 강렬한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다짐했던 기억.
얄밉고 열받는 그 표정.
재수 없게 잘생긴 그 면상.
도와준다고 했지만, 영 신용이 안 가던 그 인간이.
“말했지? 우린 다시 여기서 볼 거라고.”
그 인간이 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사기꾼아!”
진의 그 말에, 눈앞에 있는 그 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관리자의 영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