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88화 (188/210)

188. 요람

생각대로 일이 흘러갔다.

처음엔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계속해서 질문했다.

“요람 밖에서 대기하고 계시는 건 안 되겠습니까?”

[안 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안 된다.]

“끄응.”

[내 계약자를 배제하는 건 날 배제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허어.”

[날 모욕하지 마라.]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안 돼! 무조건 안 돼!

이 상황에서 용인족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원래라면 절대 안 될 일이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성자님이시니…….”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덕분에 진은 용인족들과 함께 ‘요람’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건이 있긴 했다.

“폴카를 안내인으로 배정하겠습니다.”

감시역으로 ‘폴카’를 배치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폴카는 진에게 감시역이 아니었다.

아낌없이 주는 호구랄까?

물론 용인족들은 이런 진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진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호의적인 태도가 더욱 호의적으로 변했다.

덕분에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요람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환한 빛과 함께, 진과 용인족들이 모습이 사라졌다.

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도착했습니다.”

이미 요람에 도착한 상태였다.

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동굴인가요?”

“예. 이곳은 요람에 입장을 관리하는 공간입니다.”

그는 이 공간을 설명했는데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요람 출입국 관리소.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 같았다.

“이곳에 오신 순간 등록을 끝났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셔도 괜찮습니다.”

까다롭게 굴었던 것과는 달리, 막상 도착하고 나니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그만큼 이 공간이 특별하다는 건가?’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건 이 ‘출입국 관리소’의 힘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성자님과 위대하신 분을 잘 모시거라.”

“예! 걱정하지 마세요!”

“진 님.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오. 벌써 든든한데?”

용인족 노인은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폴카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다.]

이제 요람을 둘러볼 시간이었다.

* * *

동굴을 나서자마자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감각.

그런 감각과는 달리, 밖에는 평범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한데, 로메른은 조금 다른 걸 느낀 것 같았다.

[미친…….]

‘왜?’

[……여긴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야.]

‘용이 사는 섬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진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로메른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걸 직접 봐야 이해할 텐데…… 잠깐만 기다려. 현자, 미니드래곤 연결 가능해?]

‘어? 요람에 뭔가 있어서 미니 드래곤 쪽은 연결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될 거야. 왜 안 됐던 건지 알았거든.]

로메른의 말은 진짜였다.

[연결됐어.]

‘어?! 어떻게 된 거야?’

[드래곤 이 자식들 지들만 이 좋은 걸…….]

로메른은 분하다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뭔데?’

진이 답답하다는 듯 말하자, 로메른이 대답했다.

[직접 봐. 이곳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곳인지.]

그 말과 함께, 미니 드래곤들의 시야가 진에게 연결되었다.

‘……미친.’

진은 그제야 로메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요람의 크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또 다른 대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섬 아니었어?’

로메른의 조사에 따르면, ‘요람’은 바다에 떠 있는 섬 중 하나였다.

한데, 그 섬이 대륙만 하다고?

그랬다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공간 마법이야. 간단히 말하면 공간을 겹치고, 내부에서 확장한 거라고 보면 돼.]

‘……뭔 소리야?’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가방은 알지?]

‘그건 알지.’

[그걸 섬 전체에 걸었다고 생각하면 돼.]

로메른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간을 늘리는 것까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늘어난 공간에 ‘생태계’가 존재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게 드래곤의 힘이란 거지?’

[그래. 괜히 드래곤을 마법의 종주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어. 막말로 여긴 또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해.]

‘마법으로 만든 세계?’

[어. 그러니까 출입국 따위가 필요한 거겠지.]

로메른이 주목한 건 ‘마법’이었지만, 진은 전혀 다른 것에 주목했다.

‘드래곤들의 힘이 엄청난 이유를 대충 알 거 같은데?’

[뭐? 어떻게?]

‘애초에 드래곤은 왜 레어를 만들어야 할까?’

[그게 드래곤의 습성이니까?]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에게 습성?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냥 습성상 만든 공간이라기엔 너무 과해.’

[하긴 그렇긴 하지.]

‘생각해 보면 이 요람이란 곳 이상하지 않아? 드래곤에게 이런 곳이 왜 필요할까?’

[흠. 세상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닐까? 지금처럼 오랫동안 잠드는 경우도 문제일 테고.]

‘세계급 마법을 뿌리는 용인족들이 있는데? 인간이 문제라고?’

진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레어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원래라면 이런 추론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게 얼마나 많은 힘을 주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확실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사실 이곳에 펼쳐진 마법은 마법의 영역을 벗어난 것 같아 보이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드래곤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전부 잠든 것도 이해가 돼. 그들은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니야.’

[……저 위에서 싸우고 있다?]

지구인을 부른 ‘누군가’를 상대하기 위해 드래곤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아마도.’

[하긴, 그게 맞는 거 같아. 드래곤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전에는 이걸 ‘인간의 멸종’이라 드래곤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지식의 해방이 노리는 건, 인간의 ‘멸종’이 아닌 세계의 ‘멸망’이었다.

‘드래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확실히 그런 거 같네.]

‘가설’이 나왔으면, 이 가설을 증명할 차례였다.

진은 폴카를 바라봤다.

“생각 정리는 끝나셨어요?”

“아. 미안. 이 공간이 너무 놀라워서.”

“그럴 거 같아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성자님은 저보다 더 많은 걸 보시니까요.”

특급 호구는 날이 지날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깔끔하게 생각이 정리됐어.”

“그럼, 출발해도 될까요? 일단, 위대하신 분께서 자리 잡으실 수 있는 빈 땅부터 보여 드릴게요.”

“그래. 가 보자.”

“제 손 잡으세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은 왜?”

“잡아 보세요. 밖은 진 님이 전문가지만, 이쪽은 제가 전문가에요.”

“알겠어.”

그녀의 작은 손을 잡자마자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원리가 뭐야?’

[……그냥 공간 자체가 널 띄운 거야.]

‘마법?’

[하.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아니. 그냥 세상이 움직인 거야.]

‘세상이? 뭔 소리야 그게?’

[그냥 바라면 이뤄지는 거야. 이건 권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초능력 같은 거야?’

[아니. 그것보다 훨씬 상위의 힘. 정신력이나 마나가 필요하지 않아.]

‘그럼…….’

[요람에서 용인족은 무적이라고 봐도 돼.]

‘하.’

어처구니없던 것도 잠시.

‘이 정도는 되니까 드래곤들이 마음 놓고 자는 거겠지.’

그렇게 로메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진은 폴카의 손에 이끌려 하늘을 질주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지금 보이는 모든 공간이 빈 땅입니다.”

“……여기가 전부 빈 땅이라고?”

“예!”

하늘에서 보이는 광활한 대지가 전부 빈 땅이란 뜻이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지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어디로 할까?]

현자는 자신의 레어임에도 진에게 물었다.

‘왜 나한테 물어. 그냥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

[그래도 돼?]

‘어. 어디를 선택하는진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진짜 중요한 건 어디가 아니었다.

그 레어 안에 무엇을 채울지였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할 줄이야. 로메른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공짜로?]

[연구실 만들어 줄게.]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 말과 함께 로메른과 현자가 날아갔다.

폴카가 황급히 따라가려는 걸 진은 멈춰 세웠다.

“내버려 둬. 주위 좀 둘러보면서 고른데.”

“아. 그래도 따라가서 모셔야 하는데…….”

“괜찮아. 그래서 정령이 붙였으니까. 정 걱정이면 미니 드래곤 하나 붙여.”

“음. 그래도…….”

고민하는 그녀의 등을 진이 살짝 떠밀어 주었다.

“어차피, 진짜 곁에 따라다녀야 하는 건 나잖아. 저쪽이 아니라. 아니면 나 두고 저쪽으로 가게?”

“헤헤. 알고 계셨어요?”

“그걸 모를 리 없지. 폴카 네가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거야.”

“그러실 줄 알고, 꼭 제가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 중요한 임무에 폴카를 배정한 게 이상하다 싶었더니…….

‘역시 특급 호구!’

잘 키운 호구 하나 열 드래곤 부럽지 않은 법이다.

“우리 폴카가 최고야.”

“진짜요?”

“그럼!”

진이 어화둥둥 해 주자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더니.

“차 한잔하실래요?”

“차?”

“예. 좋은 게 있어요.”

호구는 자신의 창고를 열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녀에게 물어볼 것들도 있었다.

“좋지.”

“잠시만요.”

그녀는 허공에서 차를 꺼낸 뒤 진에 내밀었다.

향기만으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한 모금 마시니, 마치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좋은데?”

“제가 드린 건 비밀로 해 주세요.”

“그럼. 나만 알고 있을게.”

“헤헤.”

진은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미니 드래곤 반응은 어때?”

“다들 좋아하셨어요. 요람에 처음으로 ‘휴가’가 생겼다니까요?”

하긴, 지금 요람에 뿌려져 있는 미니 드래곤의 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천국’의 반응은?”

“아! 진짜 좋아요. 특히 용인족 모습을 숨기고, 인간으로 다닐 수 있게 해 주시는데 회심의 한 수였어요!”

“그래?”

“특히 장로님이 진짜 좋아하셨어요.”

“장로님이시라면 아까 봤던 분?”

“네. 용인족에게 꼭 필요한 세상이라고 하셨거든요.”

“호오. 그래?”

용인족의 접속률이 높다 싶었더니, 장로가 이것을 좋게 본 모양이었다.

“게다가…… 저도 너무 좋아요. 답답한 게 사라졌거든요.”

폴카의 말까지 듣자, 장로가 어째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언제나 똑같은 일 만하는 용인족에게 새로운 활력이 된다고 생각한 건가.’

어찌 됐든 진에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배척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용인족의 접속률은 떨어지지 않을 게 확실해 보였다.

“폴카 넌? 천국에서 뭐 해?”

“저요? 요즘 디저트 투어를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한참이나 그녀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진! 찾았어!]

[대박이라니까, 진짜!]

로메른과 현자가 호들갑 떨며 날아왔다.

‘뭔데?’

[가서 봐. 너도 좋아할 거야.]

이렇게까지 말하니 기대되는 게 당연했다.

잠시 후.

진은 애들이 왜 이렇게 난리를 쳤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야.’

거대한 호수.

그곳엔 영기가 얼마나 쌓였는지 마치 물안개처럼 주위에 퍼져 있었다.

[대박이지?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야. 여기에 너무 쌓여서 영기가 못 오고 있다니까?]

‘미친…….’

[육체 개조도 거의 끝났으니까 이건 고스란히 우리가 사용할 거야.]

정령이 영기를 사용할 곳은 하나뿐이었다.

<등급 상승.>

‘얼마나 올릴 수 있는데?’

[끝까지.]

중급에서 정체되어 있던 정령들의 등급을 상승시킬 기회는, 호구들의 요람에서 튀어나왔다.

‘호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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