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86화 (186/210)

186. 법칙을 무시하는 힘

“꺼어억.”

트림과 함께 진은 눈을 떴다.

‘아. 배불러.’

마치 밥을 한껏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가득했다.

몸은 나른하고, 눈이 감겨 왔다.

그때, 로메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괜찮아!?]

‘어. 괜찮아. 약간 위험하긴 했는데, 어떻게 잘 해결됐어.’

[……진짜 괜찮은 거야?]

로메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어. 괜찮은데?’

괜찮다는 말에도 로메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로메른만이 아니었다.

루나는 진의 몸을 확인했고, 검성은 심각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일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봐.]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진은 구슬 속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령들은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진이 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검성. 네가 설명해 봐. 이게 가능한 거야?]

[……허어.]

[한숨만 쉬지 말고 말해 보라고! 네가 해 준 말을 떠올려서 한 거라잖아.]

[자네도 알고 있듯 내가 알려준 건 개념뿐일세. 그마저도 진이 이해하기 쉽게 변형한 정확하지도 않은 개념일세.]

[그래서? 가능한 거야?]

[솔직히 말하겠네. 이건 무도의 영역이 아닐세. 에너지 드레인과 육체 변형. 이건 오히려 자네의 전문 분야 아닌가.]

[아니. 무슨 육체 변형이야! 영혼 상태로 들어간 건데. 그리고 이게 무슨 에너지 드레인이야. 처먹었다잖아!]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고,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진은 중재에 나섰다.

‘왜들 그래? 머리가 굳기라도 한 거야? 내 기억에 들어가서 보면 되잖아.’

진의 말에 정령들의 시선이 모였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흠. 나도 마찬가지일세.]

이 생각을 못할 정도로, 정령들이 당황했다는 뜻이었다.

‘심각한 일인 모양인데, 일단 한번 보고 이야기하자.’

진은 곧장 그 기억을 추출해 정령들과 함께 감상했다.

잠시 후 감상이 끝난 뒤.

[……미친.]

[허어. 이게 어떻게…….]

[신이시여…….]

-……대체.

정령들은 설명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악을 넘어서, 질렸다는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또 니들끼리만 아는 이야기하지 말고, 간단히 줄여 줘.’

[후우…… 기다려 봐. 이야기 좀 해 봐야 할 거 같으니까.]

로메른은 그렇게 진에게 말한 뒤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할 온갖 용어들이 범람하길 잠깐, 이내 이야기가 끝났다.

[대충 정리됐어.]

진이 설명해 보라는 듯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도의 극의, 흑마법과 마법의 극의, 성법의 극의.]

‘갑자기 뭔 소리야?’

진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로메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구슬 속 기운을 흡수한 건, 그 모든 것이 섞여서 만든 결과야.]

‘……어떻게?’

뜬금없었다.

저 극의를 다루는 건 진이 아니라 정령들이었다. 애초에 진은 극의를 다루기는커녕 잘 알지도 못한다.

[그 방법을 왜 우리한테 물어. 네가 한 거야. 귀찮음이 극에 달하니까 몸이 움직인 거야.]

‘……뭔 헛소리야.’

[정확하진 않지만 네가 정령사라 가능했던 일인 거 같아.]

‘정령사? 그건 더 뜬금없지 않아?’

[정령사의 극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정령사한테 극의가 있어?’

정령사에게 극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로메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든 진에게 극의를 알려 줬을 것이다.

[넌 특별하잖아. 정령사들에게 없는 써클이 있고, 념을 육체에 박기까지 했으니까.]

진은 로메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나한테 극의가 생겼다?’

[어. 귀찮음이 극의를 만들어 낸것 같아.]

뭐.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극의의 효과가 뭔데?’

[우리가 없어도 우리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

로메른은 비장하게 말했지만, 진이 보기엔 별로 비장할 게 없었다.

‘뭔가 애매하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그냥 너희가 사용해 주면 되는 거니까.’

[뭐? 이 대단한 걸 이뤄 놓고 고작 한다는 말이…… 넌 모든 분야에 극의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니까!?]

‘그래 봐야 너희만 못하겠지. 난 또 뭐라고.’

시큰둥한 진의 반응에 로메른은 아무런 말도 못했고.

[진답네요.]

[허허. 저러니 이런 힘이 허락된 것이겠지.]

-하긴 저게 진다운 반응이긴 하지.

다른 정령들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이 난리를 친 거야?’

[……영혼이 성장했어. 아니. 성장이라고 하긴 뭐한가.]

로메른은 허탈하다는 듯 진의 물음에 대답했다.

‘씁. 쉽고 간단하게 말하라니까.’

[너 돼지 됐어. 영혼에 살이 뒤룩뒤룩 쪘다고.]

‘……뭐?’

[허허. 그 말이 맞군. 아주 돼지가 됐어. 영혼이 변했으니 육체도 자연스럽게 변할 테니 살이 빠르게 붙을 걸세. 뚱뚱한 성자라, 걸작이겠군.]

‘내 몸도 변한다고!? 그건 안 돼!’

단순히 살이 찌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뚱뚱한 성자는 큰 문제였다.

폭식이란 삿된 욕망을 품은 게 되고 만다.

[아무거나 주워 먹으니까 그렇게 살이 찌지.]

‘……아니. 살려고 먹은 거야!’

[그런 놈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

‘…….’

그렇다고 이 비만이 나쁜 건 아니었다.

[뭐. 나쁘진 않아. 격이 올라갔다는 소리니까.]

‘격?’

[돼지가 된 것도 대충 이해가 돼. 전부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비축 에너지가 된 거겠지.]

‘그래서 지방이 됐다?’

[아마도?]

진의 눈이 빛났다.

‘그럼, 이걸 사용하면 살이 빠진단 소리지?’

[그렇지.]

‘당장 쓰자. 내가 살찌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거 알지?’

사뭇 진지한 진의 표정에 로메른 또한 진지하게 대답했다.

[급한 건 알지만 천천히 진행해야 돼. 함부로 낭비할 수 없는 힘이니까.]

‘실험이 필요하다는 거지?’

[당연하지. 이건 무조건이야.]

그 말에 진이 곧장 입을 열었다.

‘뭐 해? 바로 시작해야지.’

구슬 속에 있던 힘을 사용해 볼 차례였다.

* * *

법칙을 무시하는 힘.

‘이 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거지?’

[그렇지.]

‘그럼, 실험해 볼 건 정해져 있지 않아?’

[정해져 있다고?]

‘당연하지.’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곧장 ‘현자’를 불렀다.

‘현자. 나와 봐.’

진의 말에 미니 드래곤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난 갑자기 왜?

왜긴 왜야 미루고 미뤘던 일을 할 차례니까 그렇지.

‘이 녀석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게 어때?’

엄밀히 따지면 현자는 ‘사념’일 뿐이었다.

존재조차 없는 ‘사념’. 그런 사념에 존재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때?’

-…….

현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진짜 난놈이야.]

로메른은 감탄을 터트렸고.

[가끔 짓궂긴 해도 진은 정말 따듯한 사람이에요.]

[허허. 이러니 내가 그대를 돕는 것일세.]

성녀와 검성은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당장 사람이 될 순 없으니까. 일단, 정령까지 가 보자고.’

[나쁘지 않네. 어차피 우리들도 정령에서 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실험이긴 해도 필요한 데 쓰는 게 좋은 법이지.’

진이 만족스럽게 중얼거릴 때.

-……진.

‘왜 또 궁상이야?’

-고마워.

현자의 말에 진이 표정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 됐어. 오그라들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진심이야. 정말 고마워. 모든 게. 네가 없었다면…….

‘1절만 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으면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해.’

-……알겠어.

정령들은 그 모습을 훈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눈빛들이 불경해.’

[허허. 쑥쓰러워하는 표정이 걸작이군.]

[정말 귀엽다니까요.]

[후. 잘 컸다니까? 다들 알지? 진 내가 키운 거?]

진은 그런 정령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 쫌!”

진의 말에 정령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됐고 무슨 실험할지 정했으면,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진의 닦달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근데, 실험은 어떻게 진행할 건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이 해 주셔야죠.’

[……달라졌나 싶었더니. 똑같네, 똑같아.]

로메른은 그렇게 말한 뒤, 본격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영혼의 힘이니까 흑마법의 관점에서 봐야 하나?]

[영혼과 관련된 힘 사용법은 교단에도 있어요. 이쪽을 참고하는 건 어때요?]

-마법 쪽에도 있긴 해.

[놀랍게도 무도 쪽에도 있다네.]

그 말에 로메른의 눈이 빛났다.

[이거 뭔가 느낌이 오는데? 진이 했던 것처럼 하나로 묶어 보자.]

[이걸 하나로 말인가? 가능할지 모르겠군.]

-무슨 생각인지 알겠네. 기억 속에서 어떻게 합쳤는지 확인하겠다는 거지?

[정답이야. 이미 성공작이 있는데, 이게 어려울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네요.]

빈둥거리던 진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것을 각 분야의 대가들이 연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금세 난관에 봉착했다.

[아. 생각보다 너무 복잡한데? 이걸 저 녀석은 감각만으로 해치웠다는 거야?]

-……이 정도면 무서울 정돈데?

[샘플이 있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계산이 너무 복잡해.]

-하. 우리가 이걸 쓸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 방법이 있었다.

[바즈라랑 직통 라인 연결할게. 모든 계산을 바즈라한테 밀어 줘.]

-알겠어. 계산은 전부 위임할게.

슈퍼컴퓨터 앞에 계산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 생각보다 편한데? 계산을 떠나서, 마법 색인 검색이 미쳤어.]

-……상상 이상으로 편리해. 이러면 생각보다 일찍 끝날 거 같아.

바즈라의 참전으로 상황이 반전됐다.

한참이나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던 연구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하더니.

고작 며칠 만에 결과가 나왔다.

* * *

[……완성해 보니까 더 어처구니가 없네. 이걸 감각으로 했다는 거지?]

며칠간 휴식을 만끽한 진이 입을 열었다.

‘된 거야?’

어느새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진.

이놈에 살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꿈속 세상에서 뒹굴뒹굴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

[어. 다 됐어. 이제 시작하기만 하면 돼.]

‘내가 할 일은?’

[그냥 누워 있어.]

‘그건 내가 제일 잘하지.’

진이 편하게 눕자, 주위에 수천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와. 멋진데?’

진이 입을 연 그 순간, 더 멋진 게 등장했다.

거대한 마그마 드래곤.

현자의 본체가 꿈속 세상에 강림했다.

그렇게 준비가 되는 사이, 어느새 로메른이 진의 곁으로 와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라면 정령이 되긴 할 거야.]

‘되긴 할 거다? 뭔가 말이 이상한데?’

[……어떤 정령이 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어. 그건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

‘정령사의 영역이란 거지?’

[어. 우리 쪽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뭐. 무슨 정령이든 상관없잖아?’

중요한 건 ‘현자’였지, 그가 어떤 정령이 되든 상관없었다.

[어떤 정령이 되든 놀라지 말란 뜻이야.]

‘놀라긴 왜 놀라? 이상한 거면 놀리면 되지.’

진이 짓궂은 표정을 짓자, 녀석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

‘그럼, 시작하자.’

진의 말과 함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뭔 정령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자를 정령으로 만드는 건 성공했다.

한데, 문제가 좀 있었다.

정령이 된 현자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과는 굉장히 많이 달랐다.

‘아니. 이걸 정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진의 반응이 이런 이유는 간단했다.

‘마그마 드래곤’이었던 현자는 그 모습 그대로 ‘정령’이 되었다.

[크아아아아.]

현자가 울부짖었다.

‘정령 드래곤이라니…….’

완전 멋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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