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85화 (185/210)

185. 빛이 있으라

짝퉁 세계수가 진의 꿈속 세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격변이 일어났다.

“이건 혁명이야!”

“마법을 색인별로 분류해 검색까지 가능하다니…….”

“지금 검색용으로 엑셀을 사용하려는 겐가? 비키게 실제 계산 검증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야!”

“여러분 동시 이용이 가능하니 싸우실 필요 없습니다.”

“……이게 동시 이용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진의 생각처럼 엑셀은 마법사들에게 혁명이었다.

천국으로 마법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짜 변화를 생각하면, 마법사들의 유입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정보의 바다.>

바다를 빼곡히 메우고 있던 정보가 전부 세계수 안에 저장되었다.

그 덕에, 정보의 바다에 사용하던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아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 모든 지식이 저를 한 층 더 나아가게 만들어줬습니다.”

바즈라마저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일꾼이 성장했으면 일거리도 변해야 하는 법이지.’

성장한 바즈라를 단순히 ‘서버’로 사용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계획을 대거 수정했다.

바즈라는 ‘서버’가 아닌 ‘메인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자원만 더 있으면…….’

생각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이는 부분만 멋들어지게 만들어놓은 불완전한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그런 진의 바람은 금세 이뤄졌다.

[진! 용인족들이 접속했어!]

‘역시 우리 특급 호구!’

기다리고 있던 호구 떼가 도착했다.

[용인족이라 그런지 인간들하고는 비교되지 않는데?]

‘그래?’

[가용 자원이 대폭 확보됐어.]

한참 기다려야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자원 수급이 해결됐다.

‘이거 되겠는데?’

[이 정도 양이면 충분히 가능해.]

진은 곧장 계획을 진행했다.

‘바즈라. 자연계 질서를 만들어 보자.’

<질서라면…… ‘생태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야.’

지금 꿈속 세상은 그저 무대처럼 몇 가지를 만들어 놨을 뿐, 진짜 세상이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진은 이곳에 생명을 불어넣을 생각이었다.

‘세계수의 힘을 보여 줘.’

세계수가 괜히 신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바즈라만큼 자연을 이해하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계의 질서를 부여해 진짜로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최종 계획이었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이걸로 시험해 보자.’

진은 작은 구슬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건, 일종의 미니어처 세상이었다.

자원을 아끼며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위해 현자와 로메른이 함께 만든 물건이었다.

<예. 주인님.>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지만, 당연하게도 생태계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가 이어졌다.

[부족한 부분은 정령을 이용하면 어때?]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됐다.

작은 구슬 속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땅 위엔 식물이 자랐고, 그 식물을 먹는 초식 동물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초식 동물이 생기자 육식 동물들이 나타나고, 먹이 사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먹이 사슬이 생기고, 수많은 생물이 바다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시뮬레이션이 계속해서 진행된 결과.

<완성되었습니다.>

이젠 구슬 속에서 진행된 것을 그대로 세상에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이곳은 꿈속 세상.

진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빛이 있으라.’

진의 말과 함께, 진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건 하나의 행성이었으며, 자연계였고, 세상이었다.

더는 무대처럼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

‘와우.’

진은 자신이 만든 행성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감동의 순간은 잠깐이었다.

[빛이 있으라는 무슨, 자연계 시스템 만드느라 얼마나 개고생한 줄 알아!?]

[……저기서 진이 폼을 잡을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그것도 성서를 인용해서 폼을 잡다니.]

로메른과 성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허. 저것이 바로 뜨거운 웅심인 것이지!]

그나마 검성은 이해한다고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게 더 기분 나빴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변화는 없는데?’

이면의 마왕처럼 세상의 주인임을 선포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이 꿈속은 진의 ‘세상’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세상이 만들어졌다곤 해도, 이걸 통제하는 건 네가 아니니까. 바즈라가 1차로 통제하고, 나랑 현자가 2차 통제하고 있어.]

‘통제?’

[당연하지. 세상이 완성됐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고 생각한 거 아니지?]

‘어? 아니야?’

[당연하지! 우리가 세상을 대신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오. 로메른~’

역시, 센스하면 로메른이었다.

애초에 귀찮으면 하지 않을 걸 알고, 귀찮은 부분은 따로 떼어 놓았다.

‘바즈라한테 짬 때렸다는 거지?’

[표현 하고는……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어차피 세계수가 하던 일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렇습니다. 더 많은 권한과 일이 생기긴 했지만 크게 보면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바즈라를 데려온 건 정답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지?’

[어. 실제로는 굉장히 많이 변했어.]

‘뭐가 어떻게 변한 건데?’

[이건…… 음. 검성 네가 설명하는 게 낫지 않아?]

[허허. 알겠네.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어떤 거?’

[무도 또한 법칙을 무시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거 말일세.]

‘어. 대충 기억나.’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무도는 ‘념’을 이용해 그 법칙을 바꾼다네.]

‘그것도 알아.’

[자네에게 념은 이 세상일세.]

‘……어? 뭔가 너무 건너뛴 느낌인데?’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편할 걸세. 념이란 개인이 쌓은 ‘자신만의 세계’일세.]

‘나한텐 념이 이 세상이란 거지?’

[그렇지. 자넨 정말로 하나의 세계를 품은 걸세.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네.]

솔직히 말하면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념이고 세상이고 너무 복잡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뭐가 달라진 거야?’

[허허. 이 대단한 걸 이뤄 놓고…….]

검성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린 뒤,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대의 영혼이 달라졌다네.]

‘영혼?’

[이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검성은 그렇게 말하며 로메른을 바라봤다.

[그냥 대충 영혼이 강화됐다고 생각하면 돼.]

‘오. 역시 로메른. 한 방에 이해됐어.’

[그리 짧게 설명하고 넘어갈 게 아닐세. 진은 하나의 세계 그자체가 된 걸세.]

[됐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로메른의 말이 맞았다.

낙인에서 추출한 ‘법칙을 어기는 힘’을 사용할 수 있냐가 핵심이었다.

그런 진의 생각을 읽었는지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영혼만 놓고 보면 바알도 네 아래야. 아마 만질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가 보자고.’

진은 곧장 깊고 깊은 땅속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검은 구슬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행성의 중심이었다.

‘왠지 긴장되는데?’

진은 검은색 구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긴장할 필요 없어.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로메른.

녀석의 표정을 본 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로메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긴장 풀어. 나보다 네가 더 긴장한 거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천천히 최대한 조심스럽게 만져.]

평소라면 농담으로 대꾸했을 녀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 때문에 더 긴장되잖아. 좀 가만히 있어.’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검은 구체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 구슬이 닿은 순간.

‘어?!’

엄청난 흡입력과 함께, 진은 구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성!]

[기다리게……!]

뒤늦게 정령들이 나서봤지만, 진은 이미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그렇게 진은 구슬에 삼켜졌다.

* * *

‘하. 이건 또 무슨.’

진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구슬 속이라고?’

시커먼 어둠이 진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어둠에 빠져 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을 감싸고 있는 비상 마법진이 전부 켜졌다는 것이었다.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어둠.

그 어둠에 닿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진의 생각을 증명하듯 어둠 속에선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세상의 끝이다!

-우린 끝났다고!

그렇게 끔찍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파직.

진을 감싼 마법진이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애들은 못 오는 게 확실하고.’

그렇다면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움직임은 완전히 봉쇄됐어.’

어둠에 감싸여 움직일 수도 없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서지는 마법진을 보아하니, 그리 많은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방법은?’

쉽게 떠오를 리 없었다.

그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면,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 진짜.’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각.

그 소리와 함께, 스멀스멀 부정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신 보호 마법이…….’

부정적인 감정은 이내, 진의 핀 포인트를 노렸다.

‘아…… 귀찮아.’

모든 게 귀찮아졌다.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귀찮음이 몸에 차올랐다.

‘나가야 하는데…….’

지금 귀찮아할 때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모든 게 귀찮았다.

어둠은 약점을 찾았다는 듯, 진의 ‘귀찮음’을 자극했다.

그렇게 귀찮음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 임계치를 넘어가자 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귀찮아.’

분명 입은 귀찮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계치를 초과한 귀찮음은…….

‘귀찮아.’

이 모든 귀찮음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파각-.

그사이 진을 감싸고 있던 마법진은 빠르게 부서졌고, 이내 어둠이 진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어둠은 진의 몸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도 또한 법칙을 무시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일…….]

[무도는 ‘념’을 이용해 그 법칙을 바꾼다네.]

[자네에게 념은 이 세상일세.]

검성의 말이 떠올랐고, 이 모든 귀찮음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귀찮아.’

그런 생각과 함께, 진의 몸에 ‘념’이 세겨진다.

최필규가 만든 념을 육체에 때려 박는 방법. 그 방법이 고스란히 발휘됐다.

진의 영혼에 담긴 ‘세상’이 움직인다. 그 거대한 세상이 진의 몸에 막대한 ‘념’을 부여한다.

진이 바란 념은 간단했다.

‘귀찮으니깐 똑같이.’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각사각.

진의 몸은 어둠에 갉아먹히는 중이었는데.

아작아작.

이젠 진의 몸 또한 어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아작아작.

그저 똑같이 서로가 서로를 갉아 먹을 뿐이었지만, 어둠을 갉아 먹은 진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귀찮아.’

진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급격하게 살이 찌는 것처럼, 몸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대해진 만큼, 진의 몸은 더욱 빠르게 어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아작아작아작아작.

무게추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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