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83화 (183/210)

183. 투쟁의 땅

폴카를 보내고 난 뒤.

진은 손님을 기다리며 꿈속 세상을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우선 NPC 주민들부터 만들자.’

NPC(Non Player Character).

사람이 아닌 가상 현실 속 존재.

진은 가상 현실 속 주민을 만들 생각이었다.

[저번에 말했던 그 방법으로 갈거지?]

‘어. 굳이 NPC 제작에 골치 썩을 필요 없잖아.’

NPC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상 현실을 통해 저장된 ‘대륙인’들의 모든 정보. 그 정보를 무작위로 배열해서 새로운 인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고유의 외모, 성격, 과거사 등등. 모든 걸 지닌 NPC가 뚝딱하고 만들어지게 된다.

[이자는 그냥 주민으로 쓰기엔 아깝군. 배치는 내가 좀 손보고 싶군.]

‘나야 고맙지.’

그렇게 만들어진 NPC를 검성이 배치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건물을 만드는 게 더 쉽네.’

[당연하지. NPC처럼 데이터가 필요 없으니까.]

잠깐의 작업 사이에 아카데미 밖에 도시가 만들어지고, 그 도시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생성됐다.

‘여기서 퀘스트가 빠지면 안 되는 거 알지?’

[그 임무 같은 거지?]

‘어. 지구인들 데이터 중에 게임 쪽 확인해 봐.’

[잠깐만. 오, 재밌는 요소가 꽤 많은데? 자신의 몸 상태를 수치화 한 상태창이라니…….]

‘당장 구현하긴 힘들지?’

[어. 정보가 더 쌓이면 수치화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이미 그쪽은 내가 작업 중이야.

‘벌써?’

-상태창. 네가 이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

‘……내가?’

-어. 나한테도 상태창 외쳐 보라고 난리도 아니었어. 뭐더라? 갓태창? 막 그랬었는데.

회귀 전의 나.

너무 창피하잖아!

‘음! 빨리빨리 진행해 보자고. 상태창은 최종 목표쯤으로 두고, 당장은 마을이 정상 작동하게 만드는 거야.’

[너무 어색하게 말 돌리는 거 아니야?]

‘아 쫌!’

진의 말에 정령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 NPC의 세부 조정은 필요하니까. 일단 확인하면서 만들어 볼게.]

‘이 마을은 시작인 거 알지? 이제 슬슬 고급 인재들 받아야지.’

[알고 있어. 기다려 봐 금세 끝날 테니까.]

로메른의 말대로 마을의 완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때?]

마치 아카데미를 감싸듯 만들어진 도시.

시장엔 사람들이 오가고, 도시 외곽엔 논밭과 과수원이 즐비했다.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대 이상인데?’

[꿈속이라 그리 어렵진 않았어. 마치 신이라도 된 기분이라니까?]

-맞아. 상상이 그대로 구현되는 곳이니까. 게다가 검성이 엄청 도움이 되기도 했고.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도시일세. 머릿속에 언제나 그리고 있어서 금방 나왔다네.]

시범 도시가 잘 돌아가는 거 같으니, 이제 다음 도시로 넘어갈 차례였다.

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범 도시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이제 투쟁의 도시를 만들어 보자.’

투쟁의 도시.

이 도시의 역할은 정말 간단하다.

도시에서 정비하고, 도시 밖에서 싸운다.

단지 그것뿐인 도시지만 이 도시는 정말 중요하다.

‘고급 인력 빨아 먹어야지.’

이 대륙의 고급 인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나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도시였다.

‘몬스터 제작은 문제없지?’

[당연하지. 그건 내 전문이지.]

‘도시 배열은 검성한테 한 번 더 맡길게.’

[알겠네. 이건 요새로 꾸며야겠구먼.]

‘현자는 주민들과 퀘스트 봐 줘.’

-몬스터 사냥해 와라. 뭐 이럴 거 위주로 부여하면 돼?

‘스토리를 넣어주면 더 좋아.’

-음. 원래라면 짜내기 어렵겠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있으니까. 그것도 문제없어.

‘좋아. 그럼 제작 시작해.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왔을 테니까 배우 모집해 올 게.’

-알겠어!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꿈에서 나왔다.

* * *

진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도 굉장히 놀라운 광경을!

“그래? 좋은 방법인데?”

“그게 더 즐거운 방법이죠.”

“즐거움을 찾는 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어.”

선남선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척이나 즐거운 듯.

무척이나 친밀하게.

풋풋한 연애를 떠올리는 것처럼 가슴이 간질거리는 광경이었지만.

‘쟤들이 왜 저러고 있어?’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목을 45도 조금 얕게 베면 피가 뿜어져 나옵니다.”

“경동맥 부분만 베는 거야?”

“예. 그러면 조금 즐거운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거? 피 튀는 건 질색인데.”

“예. 저도 그건 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합니다.”

“그래?”

“사람의 생명이 사그라들어 사라지는 순간. 그 순간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생명이 꺼지는 순간이라.”

“강하면 강할수록 이 즐거움 또한 더 강해집니다.”

“강할수록?”

“예. 이거 설명만 하려니 어렵군요. 다음에 함께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건 별로지만…… 너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

“저도 혜진 님이라면 함께 다녀도 괜찮을 거 같군요.”

멀리서 보면 풋풋한 로맨스 물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면 지독한 호러물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둘의 정체는 다름아닌 말릭과 혜진이었다.

“살벌한 대화를 나누고 있네?”

진이 다가가며 입을 열자, 말릭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지루해서 좀 위험한 상태였는데 다행입니다.”

말릭은 진이 뭔가 재미난 일거리를 던져 줄 거라 생각했는지 신난 표정이었다.

“……성자.”

“예. 혜진 씨.”

진이 대답하자, 그녀는 말릭의 뒤로 슬그머니 숨었다.

‘이걸 풋풋하다고 해야 할지 피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영혼의 듀오는 농담 삼아 한 말이었는데, 벌써 듀오가 되어 버렸다.

“아무튼, 내가 널 부른 건 여기 혜진 씨 때문이야. 이제부터 함께 다녀.”

“안 그래도 함께 다닐 수 있도록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아까 본 게 착각은 아닌지, 말릭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래?”

“예.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분을 만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진 님이 계시지만, 통 만나기 힘드니까요.”

거기에 자신이 왜 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둘을 묶어 두는 건 성공했으니 신경 끄기로 했다.

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심심하지?”

“그렇습니다. 너무 신나게 날뛰었는지, 일거리가 확 줄었습니다.”

“뭐. 대청소가 있긴 할 건데, 시간이 꽤 걸릴 거야.”

“대청소 말입니까? 재밌는 걸 계획하시는 모양이네요.”

“어. 잘하면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아.”

“그렇군요. 벌써 기대가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이 괴물 같은 놈.’

은밀하고 서늘한 살기가 주위로 뿜어져 나왔다. 예전처럼 피부를 찌를 듯 강렬한 살기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기운이 약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보다 은밀하고, 끔찍해졌다.

‘목에 칼이라도 대고 있는 기분이네.’

서늘한 감각이 목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묘한 감각.

일거리가 끊겨 슬슬 위험하다는 말은 농담이 아닌 거 같았다.

“진정하고 살기 수습해. 시간이 걸린다는 말 못 들었어?”

“아, 그렇습니까.”

말릭은 실망이라도 했는지 풀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주위를 가득 채웠던 살기 또한 사라졌다.

‘부르길 잘했네.’

이대로 내버려 뒀으면 어떻게든 터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내가 네 상태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널 그대로 두겠냐?”

“따로 준비하신 게 있으십니까?”

언제 실망했냐는 듯 녀석은 눈을 빛냈다.

“자. 받아. 혜진 씨도 받으세요.”

진은 둘에게 팔찌를 내밀었다.

한데, 그 팔찌는 사람들이 받아간 성스러워 보이는 팔찌와는 달랐다.

짙은 검은색의 팔찌.

단순히 색깔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더 다양한 기능이 내장된 팔찌였다.

“천국의 열쇠라고 알아?”

“이쪽에 와서야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카데미를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카데미만 만들기엔 아쉬워서 이것저것 만들어 놨어. 혜진 씨는 이게 대충 뭔지 아시죠?”

“……가상 현실.”

“예. 맞아요.”

둘 다 대충 이해한 거 같아, 진은 서류를 내밀었다.

“서명해.”

말릭과 혜진은 서류를 받자마자 읽어보지도 않고 곧장 서명했다.

‘역시 약관이 개꿀이라니까.’

서명을 끝내자마자 진은 입을 열었다.

“다른 팔찌들은 접속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잠이 들어야 접속할 수 있고, 수면 시간도 정해져 있어.”

하지만, 이 팔찌에는 그런 게 없었다.

언제 어느 때고 접속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몸 상태마저 최적으로 유지해 준다.

진은 팔찌의 기능을 전부 알려준 뒤.

“일단, 접속해 봐. 나머지는 안에서 설명해 줄 테니까.”

둘은 고개를 끄덕인 채 팔찌를 작동시켰다.

둘이 접속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은 주위에 격리 마법을 걸어 준 뒤 곧장 꿈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시야가 전환된다.

높은 성벽이 감싸고 있는 도시.

‘투쟁의 요새’로.

* * *

그날 저녁.

비전을 통해 색다른 게 방송됐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아카데미 도시가 개방됩니다.>

아카데미의 모습과 그 주위를 감싼 도시의 모습이 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아카데미를 벗어나 도시를 체험해 보세요.>

시장과 대장간, 그 외에 상점들까지.

아카데미 밖에 저런 도시가 펼쳐져 있을 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시를 쭉 비춘 화면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다를 넘어 존재하는 커다란 섬.

<투쟁의 요새가 개방됩니다.>

투쟁의 요새.

어째서 도시에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높은 성벽과 그곳을 지키는 중무장한 천사들. 그 요새를 향해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지옥의 군세를 막아라!”

“우리가 천국을 지킨다!”

“천국을 위해!”

“신을 위해!”

그건 전쟁이었다.

몬스터들과 천사들의 전쟁.

아니.

“천사의 날개를 뜯고, 그 피를 마셔라!”

“천국을 침공해라!”

이건 악마와 천사들의 전쟁이었다.

악마들은 몬스터들을 지휘하며, 요새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천사들은 요새를 방벽 삼아 그 공세를 계속해서 막아냈다.

“천국이!”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렇게 위태롭게 도시가 스러지려고 할 때.

“지원군이다!”

“인계의 인간들이 도착했다!”

작은 빛과 함께, 도시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자의 수호대라 불리는 ‘희망의 4기사’와 가면을 쓴 ‘한 쌍의 남녀’.

그들은 곧장 전투에 참여했다.

그다음부터는 마치 전쟁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계속 방영됐다.

“노란바람!”

“난 지지 않는다, 용수바람!”

희망의 4기사의 뜨거운 우정과 헌신.

“악마라. 썰어 보는 재미가 있겠군요.”

“도와줄게요.”

악마를 사냥하는 악당 같은 한 쌍의 남녀.

사람들은 영상에 점점 빠져들었다.

처음엔 새로 도착한 이들의 힘에 감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변했다.

“어! 기사님이!”

“칼에 맞으셨어!”

그들의 힘은 전쟁을 바꾸지 못했다.

몸에 상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피 대신 빛의 가루를 흘렸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이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희망의 4기사가 쓰러지고, 악당 같던 남녀가 쓰러졌다.

성벽은 점점 무너지고, 천사들마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끝…… 인 거야?”

“투쟁의 땅이…….”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죽은 줄 알았던 희망의 4기사가 요새 안에서 다시 나타났다.

“투쟁의 땅에서 우린 결코 죽지 않는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저곳에선 죽지 않는걸.

사람들의 얼굴에 환희가 번졌다.

그 순간,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투쟁의 요새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그걸 보자마자 사람들은 탄식을 터트렸다.

“아. 끝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었는데…….”

“긴장을 너무 했는지 몸이 다 아픈데?”

아쉬움과 허탈함이 그들을 감싸고 있을 때.

<매일 여러분의 활약상이 비전을 통해 방송됩니다.>

“매일!?”

“그럼, 다른 나라 기사님들도 볼 수 있는 건가?”

“이거 정말 엄청나잖아!?”

마지막에 나온 메시지에 모두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런 시민들의 반응은 약과였다.

“내 이름을 떨칠 수 있다고?”

“안 그래도 일거리가 슬슬 떨어져 가는데.”

대륙의 수많은 용병.

“저것보다 더 좋은 훈련장은 없습니다. 기사단을 한층 고급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무려, 전쟁을 체험할 수 있는 겁니다.”

각국의 기사단.

“허허. 이거 마법을 실험할 수 있는 저런 공간이 있다니…… 참을 수 없겠구려.”

“우리 솔레트 마탑을 대륙에 알릴 기회입니다.”

마탑.

대륙에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리고 그 관심은 곧장 행동으로 나타났다.

다음 날.

각 교구를 향해 그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천국의 열쇠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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