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79화 (179/210)

179. 영혼의 듀오

이 상황은 과히 진의 취향은 아니었다.

솔직히 저들의 추억이나 행복했던 기억 따위야 진에게 눈곱만큼도 영향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 상황이 답답하고 귀찮을 뿐이었다.

“난 미치지 않았어!”

“예. 엄밀히 따지면 미친 건 아니에요. 망가진 거지.”

“아니야!”

“응. 아니야.”

진이 그렇게 대꾸하자, 아이의 눈빛은 더더욱 차가워졌다.

그 모습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진이 보기엔 우스울 뿐이었다.

“애처럼 굴지 마세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놓고.”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 된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 녀석은 몇백 년을 살아온 아이다.

‘제 딸이었고, 친구였으며, 언니 같은 아이에요.’

첫 번째의 말을 떠올려 봐도, 단순히 아이로 보기엔 힘들었다.

진은 곧장 첫 번째를 바라봤다.

“두 분 사이에 특별한 정이 있으신 거 같은데, 솔직히 궁금하지 않습니다.”

“…….”

“제겐 환자일 뿐이고, 지구로 돌려보내야 할 아이일 뿐이에요.”

“……그렇죠.”

“치료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더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야기를 전부 들을 생각은 아니죠?”

“……그건 그러네요.”

“뭐. 악의는 없습니다. 그저 효율의 문제죠.”

“알고 있어요. 시간이 중요한 건, 당신만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대륙으로 우릴 보낸 놈도 악질이네요.”

진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 큰 성인도 아니고, 어떻게 아이를 보낼 생각을 했을까?

[인간적인 부분을 떼고 보면, 효율적이야. 아이는 더 쉽게 적응하거든. 어째서 아이가 전투원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개 같은 일이다.

‘짜증 나네.’

진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하던 표정 관리마저 하지 않을 정로도 격렬한 짜증을.

“……고마워요.”

그때, 옆에서 첫 번째의 뜬금없는 감사 인사가 날아왔다.

“예?”

“퉁명스럽게 말해도 진심으로 분노해 주시고 있는 게 느껴져요.”

“그냥 짜증이 났을 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우리가 이곳에 떨어진 건 대륙인들에게 저주나 다름없겠지만, 그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

“우리가 선을 넘기 전에, 당신을 만난 게 정말 다행이에요.”

“됐어요. 제가 보기엔 다들 이미 선을 넘었습니다. 방법이 없으니까 타협했을 뿐이에요.”

“우리에겐 그 타협이 구원이니까요.”

구원.

진은 그런 거창한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귀찮으니까 평화롭게 살고 싶으니까 대충 처리할 뿐이다.

진은 머릿속에 차오르는 사념을 털어 냈다.

“아무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기억을 지워서 원래대로 돌리시겠어요?”

“언니!”

진의 물음에 아이가 소리쳤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녀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뒤.

“그 선택권은 온전히 혜진이의 몫이에요. 제가 결정할 게 아니에요.”

선택권을 세 번째 지구인에게 넘겼다.

진은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구에 돌아갈 겁니까?”

“그 지옥으로는 절대 안 돌아가.”

그 말을 듣자마자, 진은 곧장 로메른에게 물었다.

‘이유는?’

[애비란 놈이 학대했네. 이건…… 애초에 좀 망가져 있었는데? 그나마, 정상적으로 망가진 게 저 첫 번째 덕분이야.]

그것만 들어도 대충 스토리 한 편이 쭉 뽑혔다.

학대당한 아이.

갑작스레 오게 된 대륙.

부모의 학대를 잊게 해 줄 여인.

그런 여인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아이.

‘뭐 뻔하네.’

뻔하디뻔한 이야기였다.

“좋아요. 그럼, 굳이 치료할 필요는 없네요. 불행 중 다행으로, 저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어요.”

진이 첫 번째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집중하세요. 당장 지구 갈 것도 아니고, 회포를 풀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알겠어.”

“그럼, 대륙에서 살고 싶다는 거죠?”

“맞아. 넌 그게 가능하다고 했잖아.”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는데…… 뭐. 제 밑에도 선생님만큼 미친 친구가 있어서요. 아무튼, 제 수비 범위 안이다, 이 말입니다.”

“그럼, 풀어 주는 거야?”

“그냥은 못 풀어 드리죠. 저랑 거래하실래요?”

“거래?”

“제 통제를 약간 받으시는 거예요. 뭐. 답답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것도 없을 거고요.”

그녀를 말릭에게 붙여 줄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영혼의 듀오.

싸이코패스 커플의 탄생이다.

“그럼, 내 기억은 그대로 두는 거지?”

“그럼요.”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음. 솔직히 말하면 조건을 내거실 상황이 아니신데…… 저분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들어드리는 겁니다.”

진은 슬쩍 첫 번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첫 번째에게 너 때문에 들어 준다고 넌지시 이야기 한 것이다.

“복수하고 싶어.”

“복수요? 직접 하실 힘이 있으실텐…… 아. 지구 쪽 이야기군요?”

“맞아.”

“뭐, 디테일한 상황은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왜냐면 상관없으니까요.”

그녀가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은지는 진도 알고 있었다.

학대한 부모.

그 부모에 대한 분노는 몇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좋아요. 직접은 못하시는 거 알죠? 한 번 넘어가면 못 돌아오니까요.”

“……내가 직접 할 순 없어?”

“예. 대신 이런 건 가능하죠. 돌아가실 때 원래는 물건을 보내는 건 어렵지만, 특별히 금덩이를 하나 보내 드리겠습니다.”

“금덩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거 아시죠? 복수는 충분할 거예요.”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지.”

“좋은 타협입니다. 디테일하게 어떻게 복수할지는 금덩이를 가져갈 분과 상의해 보세요.”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겠어.

진은 슬그머니 첫 번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좋아요. 그럼, 혜진 님의 기억은 보존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걸로 끝?”

“왜요? 너무 싱겁다고 생각하세요?”

“조금.”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동의한 순간, 제 감시 아래 들어왔으니까요.”

“……재수 없어.”

“응. 타격 없어요. 원래 천재는 그런 말을 매일같이 듣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분하다는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혜진 씨.”

“…….”

그렇게 치료를 받지 않는 ‘예외’ 인원이 나오게 됐다.

그 후로도, 특이 인원이 꽤 많았다.

“이중인격이네요. 주 인격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격을 제거하겠습니다.”

“호. 단기 기억 상실로 죄책감을 이겨 내셨나 보네요. 어림도 없지. 받아들이세요.”

…….

…….

진짜 다들 크고 작은 정신병을 달고 살고 있었다.

‘이런 조직이 용케 굴러갔네. 아니. 오히려 정신병자들이라 굴러 간 건가?’

그렇게 치료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드디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참관인들의 치료마저 끝이 났다.

“기억은 어떠세요? 환자 과거 내용 빼고, 손댄 기억이 없다는 게 느껴지시죠?”

“예. 느껴져요.”

“이 치료를 끝으로 저는 차원 이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거예요. 아시겠지만, 투입되는 골드에 따라 시간이 줄어들 거예요.”

“그건 제가 제일 잘 알아요. 황금 상단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말해 둘게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이제 여러분이 절 도와주실 차례입니다.”

“지원이라면 걱정하지 마세…….”

“아니. 그게 아니죠. 지식의 해방의 수뇌부가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지면 끝입니까?”

“예?”

“아름다운 마무리 모르세요? 남아 있을 분들은 빠져나갈 구멍 좀 만들어 주고, 돌아갈 분들은 멋진 퇴장 하셔야죠.”

“멋진 퇴장이요?”

그녀는 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에게 멋진 퇴장이란 게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식의 해방. 이쪽 이념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모인 거겠죠.”

“예. 실제로 대륙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서 이걸로 정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이걸 그냥 없애긴 아쉽잖아요.”

“그럼요?”

“지식의 해방. 진짜 한번 해 보죠.”

“……예?”

그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계획이 진행 중이었다.

애초에 진이 세운 계획이 아닌, 착각으로 인해 세워진 계획이었지만.

“지식의 해방 쪽에 제가 작업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작업이요? 회유될 리가 없었을 텐데요.”

“예. 회유한 게 아니에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야를 열어 줬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진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자신이 지식의 해방 쪽에서 만든 후계자이며, 후계자는 지식의 해방을 무너트리며 지식의 해방을 가져오는 자라는 계획을…….

“……우리가 진정으로 지식을 해방할 생각이 없어서 생긴 일이군요.”

“정확합니다. 실체가 없으니, 멋대로 판단하고 기묘한 결론을 내놓은 거죠.”

“그런 자가 지식의 해방 내부에 있었다니…….”

“그냥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는 당신들이 안 보는 곳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어요.”

알아서 호구가 되어 준 그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탄도 나오지 않네요.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솔직히 말하면, 그건 진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멋대로 오해하더니, 이쪽에 붙어 버렸으니까.

“아무튼, 이걸 진실로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교단이 지식의 통제권을 쥐고, 공평하게 지식을 개방한다는 거죠?”

“예. 맞습니다. 교단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지식의 해방을 정리하면서, 대륙에 남을 이들은 자리를 잡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그게 핵심입니다. 아마, 지식의 해방을 물리친 공으로 꽤 대접을 받을 겁니다. 그건 제게도 도움이 되겠죠.”

“그럼, 진행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건 여러분이 고민하셔야죠.”

“예?”

“집에 돌아간다고 놀면, 그때부터 사고가 터지는 거 아시죠? 바쁘게 굴리세요.”

“아…….”

“그러니 어떻게 할지는 여러분께 넘기겠습니다.”

이 얼마나 관대한 성자란 말인가.

“감사해요. 우린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이렇게 배려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녀도 염치를 아는지 동의했다.

뭐. 애초에 짬 때린다는 감각이긴 했지만.

“계획을 세우시는 동안, 저는 차원 이동에 시간을 쏟을게요. 차원 이동이 가능해지면 여러분이 세운 계획대로 퇴장하시면 됩니다.”

“예. 성자께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화려하게 준비할게요.”

“좋습니다. 각자 맡은 일을 깔끔하게 하면, 모두가 해피 엔딩입니다.”

“……해피 엔딩.”

이게 성자다!

“그럼,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혜진 씨는 데려갈게요. 대화는 잘 끝나셨죠?”

“예. 혜진이의 복수는 제가 해 줄 거예요.”

만족스러운 대화를 끝으로, 진은 복귀를 결정했다.

싸이코패스와 함께 복귀하는 게 약간의 흠이긴 했지만.

‘영혼의 듀오는 못 참지.’

세상에서 서로만이 이해해 줄 테니, 그들은 영혼의 듀오나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해 줄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되면 베스트지.’

살해의 업을 지닌 말릭은 물론이고, 혜진이란 애도 불안 요소다.

둘이 서로를 도와준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었다.

“짐은 그게 다야?”

막상 이사 가는 혜진이의 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단검 두 자루.

뭔가 비싼 거 같은 로브.

“어. 이게 내 전 재산이야.”

이걸로 끝이었다.

“장비 몰빵 실화냐.”

“응?”

“아니야. 가자. 우리 쪽에 드워프 있는 거 알지? 장비 업그레이드 해 줄게.”

“……응!”

그렇게 혜진이와 함께 진은 영지로 복귀하려고 할 때.

[진. 이거…… 한 번 봐야 할 거 같은데?]

‘뭘?’

[제거한 낙인. 이거…… 그냥 일반적인 낙인이 아니야. 한두 개일 때는 몰랐는데, 쌓이니까 그 힘이…….]

충격적인 말이 로메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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