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78화 (178/210)

178. 치료

눈부시도록 새하얀 공간.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신성력을 뿌려 정말로 새하얀 공간이었다.

“환자분.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 중앙에 앉아 있는 진은 자신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예.”

그는 쭈뼛쭈뼛 의자에 앉았다.

“저…… 참관인 분들은…….”

“저쪽에 계십니다. 그분들이 지켜보고 있는 모습에 치료에 도움이 되질 않아서, 투명 마법을 걸어 드렸어요.”

“그렇군요.”

“긴장 푸세요. 주위에 있는 신성력을 흡수한다는 생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세요.”

주위에 뿌려 놓은 신성력은 단순히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었다.

신성력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만들어 준다.

진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자, 눈앞에 환자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손 주세요.”

“예?”

“잡으세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제 손을 잡는 거예요.”

진이 다시 한번 말하자, 그는 천천히 진의 손을 잡았다.

[기억 복사 시작할게.]

로메른의 힘인 신성력이 이미 녀석의 몸속에 흡수된 상태였다.

게다가, 신성력 덕에 마음의 장벽도 사라진 상황.

이 상태에서 기억을 복사하는 건 그리 어려운 방법이 아니다.

“이번에도 선택권을 드릴게요.”

로메른이 기억을 복사하는 동안, 진은 치료 방법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치료 방법은 두 가지예요. 끔찍한 기억을 지워 버리는 방법과 끔찍한 기억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어요.”

“……이걸 받아들인다고요?”

“극복과 제거.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겠네요.”

“극복이라…….”

“제가 추천하는 건, 극복이에요.”

진이 극복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쁜 짓을 했으면 대가를 받아야지.’

극복이라고 표현했지만, 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뜻했다.

극복이란 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다.

‘어디서 죄에서 벗어나려고.’

지식의 해방 중 대다수는 죽여야 할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과 전쟁도 멈췄는데, 죄마저 지워 준다고?

‘나만 해도 평생 안고 가는데…….’

그건 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들도 죄를 안고 가게 만들 것이다.

“사람의 자아를 구성하는 건, 여태 해 왔던 기억이에요. 예를 들어 제거를 택하시면, 자아가 변해요.”

“제가 아니게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기억이 사라지니, 그동안 형성됐던 자아가 변화되는 거죠.”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신이 지은 죄는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을 거예요. 그 트리거가 됐던 상황 전부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저도 예상이 불가능해요.”

“……그런.”

“그래서 극복을 추천해 드리는 거예요.”

“제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는…….”

“워워.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설마 진짜 심리 상담을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예?”

진의 말에 그가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자신의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하는 성법을 개발 중이에요.”

“성법이요? 신성력으로 사용하는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이런 편리한 힘이 있는데, 뭘 고해성사하고 심리 치료를 해요. 그냥 성법으로 뚝딱 극복하시면 되지.”

“그런 성법이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불가능하지.

그렇게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면, 이 세상에 죄는 없었을 것이다.

진이 하려고 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어?’

[어. 인격 복사해서 돌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아이디어는 진의 자동 수련에서 따왔다.

복사한 기억으로 가상 인격을 만든 뒤, 그 녀석이 죄와 마주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눈앞의 남자에게 주입시키면?

‘짜잔. 단숨에 치료가 끝나는 거지.’

그렇게 죄를 받아들인 지구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예. 가능합니다. 다른 사제라면 몰라도 저는 성자니까요. 게다가, 제가 천재기도 하고요.”

“…….”

이래서 천재인 척을 한 것이다.

믿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방금 손을 잡으면서, 맞춤형 성법이 제작 중이니까. 정신 치료는 그다지 걱정하실 거 없어요.”

“……이래서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온 거군요.”

“아. 그래요? 다른 분들도 궁금하게 말하지 마세요. 그게 더 재밌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낙인부터 제거해 볼까요?”

“예. 알겠습니다.”

진은 곧장 로메른을 불렀다.

‘로메른. 이쪽 제거해 줘.’

[알겠어. 바로 작업 시작한다!]

그렇게 치료는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참관인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마법적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말인가요?”

“예. 마나가 전무합니다. 고작 소량의 신성력만 흡수됐을 뿐입니다.”

“진리의 도서관을 연 그대가 하는 말이니 틀릴 리 없겠죠.”

당연한 일이었다.

진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마법보다 확실한 힘을 사용했다.

초능력과 신성력.

두 가지에 한해선 대륙 최고의 실력자가 바로 진이었다.

“그럼, 성자의 말은 실현 가능성 있는 건가요?”

“……지금부터 제가 드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예. 상관없어요. 애초에 사제를 섭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마법은 정신을 직접적으로 주무릅니다. 만약 그가 마나를 사용했다면, 전 이 치료를 적극 반대했을 겁니다.”

“신성력은 괜찮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신성력은 마나와는 달리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힘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속죄하게 만드는 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엄청나네요.”

“예.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힘이기에 많은 조건이 필요할 겁니다.”

“조건이요?”

“예. 성자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이 그 조건일겁니다. 예를 들면, 손을 잡거나, 극복에 동의하는 것들이 그렇겠지요.”

“거부하면 강제로 쓸 수는 없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신성력으로 사용하는 힘이니까요.”

“그럼, 괜찮겠네요.”

“예. 참관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받아들인 이유가 뭔지 알겠습니다. 그는 정말로 거리낄 게 없는 거였습니다.”

“그렇군요.”

물론. 좋은 이야기만 나오진 않았다.

“그대는 어떻게 보나요.”

“흠. 그의 말대로 기억을 제거하는 것보다 극복하는 게 더 좋긴 할 겁니다.”

“그런가요?”

“한데, 극복을 한다고 해도 자아가 변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극복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이 변할 테니까요.”

“부작용이 있다는 뜻인가요?”

“당연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정말 복잡합니다. 신성력이란 힘이 작용했다고 해도…… 그게 해소되진 않을 겁니다.”

나름 전문가처럼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저, 심리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지식은 나름대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럼, 치료를 멈춰야 한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성자의 말대로 지구로 돌아갈 이들은 물론이고, 모두가 받아야 합니다.”

“변화를 각오해도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이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거군요.”

“예. 그렇게 보입니다. 아무튼 완벽하진 않지만, 현실적으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치료된 인원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요.”

“알겠습니다. 치료가 끝나는 인원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겠습니다.”

“예. 저도 예전 기억을 떠올려 설문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세요. 여기가 우리의 분기점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이들도 절박했다.

그저 단순히 진을 감시하는 게 아닌, 치료가 된 다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 * *

“아아…… 나는 대체…….”

머릿속에 또다른 기억이 덧씌워 진다.

죄를 받아들이고, 인내했던 무수한 세월.

고작해야 성법을 한 번 받았을 뿐인데, 그런 세월이 느껴졌다.

“거부하지 마세요. 모든 걸 받아들이세요. 신께서 당신을 인도하실 겁니다.”

진의 말이 그의 귓가에 스친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기억과 세월을 그는 온전히 받아들인다.

고통과 후회.

절망과 포기.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친다.

“어째서…….”

“괜찮아요. 당신은 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간 겁니다.”

성자의 따스한 말에, 다시 한 번 눈물이 쏟아진다.

그의 말대로 자신을 죄를 받아들였다.

더는 도망치지 않았고, 외면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죄를 마주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었다.

“전 죄를 저질렀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린 모두 살아가며 죄를 짓습니다. 중요한 건, 그 죄를 품고 가느냐. 외면하느냐 하는 겁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진정으로 죄와 마주한 겁니다.”

“후회됩니다.”

“이제야 잘못인 걸 깨달은 겁니다.”

“저는…….”

“온전히 죄를 받아들여, 극복하세요.”

진이 말한 ‘극복’은 죄를 극복하는 게 아니었다.

죄인 줄도 모르고, 애써 외면하던 자신을 ‘극복’하라는 뜻이었다.

죄와 함께 살아가라. 이 죄인아.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지옥 같은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를요.”

“정말로 제가 살아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 죄를 잊지 않는다면, 살아가도 괜찮습니다.”

이건 속죄 따위가 아니었다.

진이 녀석들에게 박아 넣은 낙인이며, 평생 기억해야 할 죄였다.

‘뭐.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저 죄는 저들을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잊지 마세요.”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첫 번째 치료가 끝났다.

참관인들은 잠시 치료 중지를 요청했다.

“확인할 게 있어요.”

“예. 괜찮습니다.”

그들이 뭘 확인하려고 하는지 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설문지라니…….’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었다.

‘오히려 멘탈적으로는 좋아졌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죄를 인정한 덕에 죄책감이 남아 있지만, 그로 인해 생겼던 정신 문제는 말끔히 사라졌을 테니까.

“죄책감과 관련된 수치가 좀 높긴 하지만…… 원래 상태보다는 훨씬 좋네요.”

“당연하죠. 신의 힘인데요.”

그런 진의 예상대로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진행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쭉 치료를 이어 가던 중.

특이 케이스가 하나 있었다.

[와. 얘는 안 돼.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도 죄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어.]

‘……뭐?’

[이건 기억을 제거해야 할 거 같아.]

‘뭐 하던 놈인데?’

[암살자. 정신이 망가져서, 아예 미친놈이 됐어. 죄의식을 못 느껴.]

우연찮게 만들어진 싸이코패스의 등장이었다.

진은 곧장 참관인들에게 말했다.

“치료가 불가능한 분이 계시네요.”

“불가능이요?”

“예. 아예 정신이 망가졌습니다.”

“……대체 누구죠?”

“이분이신데요.”

진이 신성력으로 사람 얼굴을 만들자, 첫 번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럴 리가 없어요!”

격렬한 그녀의 반응.

“대체 누구길래 그러신 겁니까?”

“세 번째로 이 세상에 떨어진 아이에요. 제 딸이었고, 친구였으며, 언니 같은 아이에요.”

그녀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

“죽어.”

허공에서 한 아이가 나타났다.

“와. 깜짝이야.”

진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가 숨어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비 또한 당연히 돼 있었다.

진의 말과 함께, 주위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고 마나로 만든 사슬이 뿜어지더니 아이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봐요. 진짜 상태 안 좋다니까요.”

아이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차가운 눈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아…….”

첫 번째는 마치 세상이라도 잃은 것처럼, 아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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