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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177화 (177/210)

177. 봤지? 맞다니까!

“우리는…….”

첫 번째가 뭔가를 대답하려는 그 순간, 진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긴급 퀘스트.>

성자 사냥.

성자를 죽이시오.

보상-차원 이동의 조각.

성자를 죽이라는 퀘스트가 진의 눈에 보였다. 반지를 통해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었다.

“다들 긴급 퀘스트 보이실 거예요. 잠시 대기하세요.”

죽이라는 퀘스트에도 진은 당황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일단 대기를 명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이 메시지 안 떴죠? 적어도 절 죽일 거면, 수락하고 움직이세요.”

제일 중요한 메시기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락하기 전에 진을 죽여 봐야 이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잠시 후.

[수■하시겠■니■?]

뭔가 이상한 수락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락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수락 메시지.

“왔다!”

진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치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라는 듯 모두가 진을 바라봤다.

“형님. 제가 이놈한테 한 방 먹여 준다고 말씀드렸죠? 한 방 먹인 거 같은데요?”

“오오. 이 퀘스트가 그 증거란 말이지?”

“맞습니다.”

진은 회의장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 가장 큰 증거가 나왔네요. 여러분을 이곳에 보낸 자가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진의 물음에 상석에 앉아 있는 첫 번째가 입을 열었다.

“……가능하니까 죽이란 퀘스트가 나왔다는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뭐.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진에게 속지 말라고 퀘스트가 이렇게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 게 뭔가.

지금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여러분을 만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게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무슨 뜻이죠?”

“계획을 파투 내면, 우리 모두를 이곳으로 보낸 놈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거든요.”

대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진을 막기 위해선 퀘스트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퀘스트를 줄 수 있었다면, 여러분이 이렇게 힘들 리 없었다는 거죠.”

“……그건 맞아요. 긴급 퀘스트는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맞아요. 거기다, 그놈한테 적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면 우리 빛의 신님이 있겠네요.”

그에게 적이 있다면.

“빛의 신께선 그 녀석을 잡고 싶으셨을 거예요. 저를 통해 존재를 확인했으니 찾기 위해 움직이고 계셨겠죠.”

“……그의 개입을 유도해 빛의 신에게 발각되게 만드신 거군요.”

“예. 위에서 대체 뭔 일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퀘스트만 봐도 각 나오죠? 이 새끼, 걸린 거예요.”

녀석에게 빅 엿을 날려 준 것이다.

이건 멍청해서 걸린 게 아니다. 판 전부가 엎어질 상황인데, 녀석에게도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분풀이가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지구인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속이 다 시원하네. 꼬라지 보니까 한동안 개입하지 못할 거예요. 혹시나 여러분을 죽이거나 하는 건 이로써 불가능해졌네요.”

“……그 말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건가요?”

“오. 그렇게 낭만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군요. 그냥 리스크를 줄였다고 표현해 주셔도 괜찮은데. 아무튼 모두에게 잘된 일이잖아요?”

진이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성자인 이유군요.”

그녀의 말이 분명히 들렸지만, 진은 못 들은 척.

“예?”

“아니에요. 그저, 어째서 당신이 빛의 신의 사랑을 받는지 알았을 뿐이에요.”

다 떠나서 결과만 놓고 본다면, 나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고, 손해 보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진이 조금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뭐. 실질적으로 손해 보는 건 전혀 없지만.’

아무튼, 저들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게 중요했다.

“자. 완벽하게 판을 깔아 드렸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이래도 치료 안 받으실 거예요?”

“이건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치료를 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낙인을 제거하는 건 가능한가요?”

낙인의 위험성을 계속 주입한 보람이 있었다. 이걸 제거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거 같았다.

그런, 그녀의 판단은 오히려 이쪽이 땡큐였다.

“예. 충분히 가능해요. 이 반지가 낙인을 제거해서, 위험성을 제거한 물건이에요.”

진은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반지에 꽂혔다.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부분은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믿고 맡겨 주세요. 모두의 해피 엔딩을 위해서.”

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형님. 회의 참여하실 거예요? 형님은 치료 제외 인원이라, 굳이 안 받으셔도 돼요.”

“그래? 그렇다면 필요 없다.”

“그럼, 아까 이야기하셨던 꿈속 수련 그거 해 보러 가실래요?”

“오오. 좋다.”

진은 회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두 번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둘이 나가자마자, 안쪽에서는 소란스러운 대화가 시작됐다.

“저걸 믿을 수 있습니까?”

“아니. 저렇게까지 했는데 안 믿는 게 멍청한 짓 아닙니까.”

“게다가, 우리에게 모든 선택지를…….”

“치료가 좀 꺼림칙하긴 한데…….”

“그건, 우리 쪽에서 감시 인원을 두면…….”

그 대화를 뒤로하고, 진은 최필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 * *

끝도 없이 넓은 연무장.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공간에서.

“이건…… 정말 대단하군. 여기가 꿈이라니. 아니. 꿈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최필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각종 운동 기구에 꽂혀 있었다.

“최고급 스미스 머신이라니…….”

“진짜 이걸로 되시겠어요? 바다나 산 같은 것도 집어넣을 수 있는데.”

“필요 없다. 그저 눈만 어지러울 뿐이지.”

그는 홀린 듯 운동 기구를 쓰다듬으며, 진에게 말했다.

“한데, 꿈속에서 단련한다고,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가 없지 않아요. 이미 육체 단련은 끝에 다다르셨으니, 오히려 꿈속 훈련이 더 도움이 되실 거예요.”

“내 열정을 육체에 내려 박는 수련을 말하는 거군.”

념을 육체에 때려 박는 걸, 열정을 박는다고 표현하다니 따라갈 수 없는 감성이지만…….

“예. 맞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념을 박는 건 개인마다 그 방식이 다르기 마련이니까.

“영혼을 단련한다고 생각하세요. 육체란 틀을 깨고, 그 이상을 단련하는 거예요.”

“……동생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다.”

아이고, 형님. 제가 더 행운이죠.

최필규와 이런 관계를 쌓게 된 건 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강하다곤 생각했지만…… 그 정도 영향력이 있을 줄이야.’

모르긴 해도, 이번 회의 때 진과 두 번째의 관계가 조명받을 것이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신뢰를 최필규와 친해지며 자연스럽게 확보한 것이다.

“나중에는 시간 배속 기능도 집어넣을 생각인데…… 그것 아직 구현 못했어요.”

“시간 배속이라면…….”

“수면시간이 8시간이라면, 꿈속에선 24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오오! 수련 시간이 더 늘어나겠군!”

“예. 맞아요. 아! 그리고, 영혼에 찍힌 낙인 그거, 제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뭔가 수련에 좋지 않은 거냐?”

“예. 허리 쪽에 박혀 있는데, 코어 근육이 절반은 성장 못하신다고 보면 돼요.”

“치명적이군!”

낙인과 영혼의 성장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지만, 알게 뭐람.

“예. 균형적인 단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보다 잘 아실 테니까요.”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겠군.”

“그럼…… 형님이시니까 치료 준비가 끝나면, 제일 먼저 해 드릴게요.”

“동생!”

“예! 형님!”

“동생!”

“형님!”

사나이의 우정!

아아! 뜨거운 땀과 열정!

그렇게 콩트 한 편을 찍으며, 꿈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진. 회의가 끝났어.]

‘그래?’

진은 꿈에서 일어났다.

“동생! 치료 준비 끝나면 불러!”

“예. 형님.”

최필규는 꿈속에 둔 채로.

* * *

“치료를 받겠어요. 다만, 참관인을 몇 두고 싶어요.”

승낙과 함께, 조건이 붙었다.

“참관인이요?”

“예. 우리가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해 주세요.”

말이 좋아 참관인이지 허튼짓하는지 지켜볼 ‘감독관’에 가까울 것이다.

“참관인이 있다면, 치료에 거부감을 가질 텐데요.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성자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라 믿어요. 참관인들의 기억을 소거해 주시면 될 일이니까요.”

“그렇게 합의가 된 거군요.”

“예. 맞아요.”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진은 이들을 치료해 줄 생각이었으니까.

“좋습니다. 정신 치료를 맡기는데, 그 정도 안전장치는 당연한 일이겠죠.”

“수락하신 건가요?”

“예. 상관없습니다. 참관인을 정하는 데 시간을 더 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물론이에요. 참관인은 이미 결정했어요.”

“그럼, 치료하면서 낙인까지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늙는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지로 만들어서 늙지 않게 해 드릴 테니까요.”

“한꺼번에 가능하신 건가요?”

“예.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서요.”

낙인이 박힌 영혼 부분만 도려내면 될 일이었다.

지부장은 처음이라 우악스럽게 뜯어낸 거지, 경험이 있는 지금은 다르다.

[설마, 상처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면 날 모욕하는 거야.]

로메른의 말처럼, 영혼에 피해를 거의 주지 않고 낙인을 제거하는 게 이젠 가능하다.

“그럼, 치료받을 사람들의 순서를 정해 주세요. 가장 먼저 필규 형님이 받으실 거니, 그건 알아주시고요.”

“……그와 정말 친해지신 모양이군요.”

“예. 단련으로 격을 넘는다는 그 발상만으로도 존경스러운 분이시니까요.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귀환이란 순수한 열망을 지니신 당신도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요컨대, 뜻이 있냐 없냐에 따라 다른 거군요.”

그녀는 진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했다.

“예. 맞아요. 예를 들면 황금 상단의 주인이신 골드 님. 그분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진리의 도서관을 연 마법사님이나, 몇몇 분들이 여기 포함되시죠.”

진이 진리의 도서관을 말할 때, 이채를 띠며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마도의 끝까진 아니어도, 그는 진리의 도서관에 들어갈 만큼의 실력자란 뜻이었다.

대륙에서의 세월을 낭비한 이들도 있었지만, 알차게 보내며 뜻을 추구한 이들도 있었다.

‘싸웠으면 곤란했겠어.’

[뭐. 곤란한 거지 우리가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그건 맞아요. 진 그대가 부족해서 화해한 게 아니잖아요. 그저, 이게 덜 ‘귀찮을’ 뿐이니 이걸 선택한 거지.]

[허허. 귀찮아서 이런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구한다니. 남들은 믿지 않을 걸세.]

정령들은 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지식의 해방과 싸운다고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도 아닌 게 문제였다.

‘내 행복한 인생을 전쟁에 빼앗길 순 없지.’

평생 지식의 해방과 싸우다 늙어 죽는 인생이라니…….

세상에 이것보다 끔찍한 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진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그사이에 우리를 다 파악하셨나 보네요.”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뇨. 그냥 얼핏 반응이나 본 거죠.”

“……알겠어요. 치료 준비는 얼마나 걸리시죠?”

“준비요? 공간이나 적당히 주세요. 공간 이동도 할 수 있는 제가, 장비 하나 안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바로 가능하시다고요?”

“그게 뭐 어렵다고. 치료 공간이나 주세요.”

그녀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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