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71화 (171/210)

171. 아길레스

진이 악마들에게 ‘이미지 메이킹’을 알려 준 뒤.

수많은 컨셉충들이 탄생했다.

<나는 불운의 악마. 너의 불운이 어디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하지? 그 모든 건 내게서 시작된 것이다.>

“오. 방향성이 좋은데요? 너무 심하지도 않고, 적당한 불운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니까요.”

<그, 그렇습니까?>

“그래도 아쉬운 건 있습니다. 굳이 위엄이 넘치는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요정 비슷하게 가시죠. 귀여운 악동 같은 이미지가 좋겠네요. 예를 들면 타락한 요정왕 같은 느낌 어떠세요?”

<흠. 그게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지만, 요정계 쪽에서 반발이 있을 겁니다.>

“아니죠. 반대로 생각하셔야죠. 불운을 없애는 건 요정이다. 대결 구도로 가면, 요정 쪽도 좋아할걸요?”

<아! 감사합니다!>

“말씀드렸듯, 너무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적당한 불운,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길 가다 넘어지거나, 이상하게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은 ‘불운’의 악마 같은 개인부터.

<사랑이 식은 이유가 궁금한가요? 쿠쿡…… 그건 제가 부여한 권태기라는 시련이랍니다.>

“나이스! 이미지부터, 행동, 목적 전부 완벽합니다.”

<지, 진짜요?!>

“예. 딱 좋습니다. 권태기라니,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이건 먹힙니다.”

<가, 감사합니다!>

“다만, 조금 더 다듬어 보시죠. 추가 설정을 더 덧붙이는 겁니다. 흠. 불륜이나 NTR 같은 사랑과 관련된 악마분들이 많은 건 아시죠?”

<아! 네! 알고 있어요.>

“그분들과 함께 팀을 이루는 겁니다.”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나눠 가지는 게 아닌지…….>

“그게 아니죠. 로갓텔의 자매님 팀 보셨죠? 그런 분들 섭외해 팀으로 만들어서 여러분을 홍보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아…….>

“팀은 팀만의 매력이 있는 법. 사랑이란 카테고리를 떠올리면 여러분이 떠오르는 겁니다.”

<네! 한번 말씀드려 볼게요.>

“예. 미모 후작님껜 제가 조언해 드린 거라고 하면 아마 협조하실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하나의 카테고리를 묶어 만든 팀까지.

악마들의 이미지 메이킹은 슬슬 틀이 잡히고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문화 부흥기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이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대륙에 때려 박기 위해 예술가와 계약하고 문화를 만들어 갈 터.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게다가, 아직 악마들이 전부 참전한 게 아니었다.

“아길레스 님. 바알 님은 참석 안 하신 거 같던데요.”

<후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영원히 1인자일 줄 알았겠죠.>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지만, 이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아길레스 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알 님이 불참하시는 건 굉장히 위험합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성자님 덕에 지옥의 대세는 이미 제게 넘어왔어요. 바알의 세력은 미약해요.>

이 양반이 진짜.

저 오만함이 가장 위험하다.

“실망입니다. 아길레스 님.”

<……예?>

“저는 아길레스 님이 영원한 1인자가 되실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거 같군요.”

<…….>

그녀는 충격이라도 받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얼핏 보니,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이건 필요한 일이었다.

“바알 님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쉽게 1위를 탈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아길레스 님이 바알처럼 방심하고 계시는군요.”

<그게 아닙니다. 정말 철저할 정도로 바알의 세력을 깎고 봉해 놨습니다. 성자님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대비를 해 놨습니다. 오만이 아닌 확신입니다.>

“그건 더 좋지 않군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행동은 오히려 바알을 자극할 뿐이다.

벼랑 끝까지 몰린 자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터.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니, 바알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 판을 뒤엎는 것뿐입니다.”

<제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예. 전 아길레스 님이 그렇게 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만큼 철저한 분이시니까요. 다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시는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군요.>

“바알을 감시하는 데 꽤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계실 겁니다. 굳이 거기에 낭비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바알을 풀어 주란 말씀이십니까?>

풀어 줘?

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바알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 아길레스 님. 새로운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결승이 끝나면 1위와 2위의 격차가 얼마나 될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그건…… 그렇겠군요.>

“굳이 그를 적대하며, 등 뒤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물을 놔둘 필요가 있습니까?”

진은 곧장 설명을 덧붙였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저와 적대적인 지식의 해방과 바알이 연계한다고 생각해 보시죠. 그들은 세상을 부술 겁니다.”

세상이 부서지면, 악마들의 수익도 급감한다.

게다가, 바알이란 이름이 대륙에 영원히 남게 된다.

“아길레스 님. 우린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입니다. 바알을 격리하는 게 아닌, 우리의 시스템 안에 편입시키는 게 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바알은 뛰어난 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그가 두렵습니다.>

이제야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고작해야 1순위 차이였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바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풀어 줘야 합니다.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운 곳에 두는 법입니다.”

<…….>

진의 말에도 그녀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뭐,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보다 더 확실한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한 아길레스 님은 무조건 1위를 유지하실 겁니다. 제 신앙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뭐, 신앙 따윈 없지만 거짓은 아니다.

아길레스를 대신할 만한 악마가 없었다.

<아…….>

“이 시스템이 정착된 순간, 제가 지옥의 순위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길레스 님은 잘 아실 겁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당연히 수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저입니까.>

그녀는 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게 베팅해 주셨으니. 저도 보답하는 겁니다.”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그녀는 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잠시 고민하다, 그녀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뭔가 무서운 모습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지금 달콤한 말은 소용없었다.

“진짜 듣고 싶습니까?”

진의 얼굴에 걸려 있던, 자애로운 미소가 사라졌다. 고작 미소가 사라진 무표정일 뿐인데, 차갑게 느껴졌다.

<예. 듣고 싶습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진의 추론이 정답이었다.

‘그러니까…….’

대충 상황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당신은 제 이상을 이해합니다. 저와 한배를 탔으니 당신은 영원히 절 필요로 할 겁니다.”

<아…….>

한데, 그녀의 반응이 뭔가 묘했다.

무서워한다기보다는 ‘환희’의 감정이 보였다.

뭐야. 무섭게 반응 왜 그래.

오히려 진이 무서워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바알이란 걸출한 경쟁자마저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건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맹렬하게 당신을 추격하는 이가 있는데, 절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없어요.>

미약한 환희가 이젠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미소마저 떠올리며 그녀는 대답했다.

아니. 겁을 먹어야죠!

어쨌든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영원히 내게 묶이는 겁니다. 지옥은 세상을 위해 움직일 겁니다.”

<그건 지옥을 위해서기도 하죠.>

뭐, 그렇긴 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그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모두가 해피 엔딩이다.

“굳이 상황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모두가 승리할 수 있으니. 그저 상황이 그렇다고만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진은 언제 무표정이었냐는 듯 자애로운 미소를 보였다.

<영광이에요.>

그녀는 묘한 대답을 했다.

“예?”

<설마, 제게 본 모습을 보여 주실 줄은 몰랐어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금 모습이 꾸며 낸 쪽이다.

그녀는 뭔가 쓸데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성자가 아니라, 악마셨다면…… 전 완전히 지배를 받아들였을 거예요.>

“에이. 지배가 아닙니다. 상부상조. 서로 돕는 겁니다.”

방금 그런 말을 하고 할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쓸데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속박은 싫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속박은 오싹할 정도로 기분이 좋네요.>

거. 취향 한번 참.

아무튼 아길레스가 만족한 것 같으니, 나쁠 건 없었다.

<성자님이 권하셨던 것처럼, 바알은 즉각 풀어 줄게요.>

“만남을 주선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맹렬한 추격자로 만드시게요?>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에게도 새로운 시대를 알려 줄 생각입니다.”

<좋아요. 오히려 그가 바싹 따라와 줬으면 좋겠네요. 그럴 때마다 성자님과 전 더 강한 유대가 생길 테니까요.>

선생님.

그건 유대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 잠깐의 대화만으로 성격이 뒤바뀐 것만 같았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기꺼이.>

어찌어찌 잘 마무리된 거 같았다.

등 뒤의 폭탄인 바알마저 처리하면 진짜 끝이었다.

* * *

그녀는 금방이라도 바알을 데려 올 것처럼 지옥으로 돌아갔는데.

‘……대체 어디다 가둬 놨길래.’

며칠간 소식이 없었다.

이쯤 되면 바알의 신변이 걱정될 정도였다.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 동안 악마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봐 주었다.

‘이쪽도 문제네.’

모두가 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면 좋겠지만, 영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쁘진 않아. 써먹을 곳이 있으니까.’

진은 그들을 모아 생각하고 있던 것을 추진했다.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했다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걸까요?”

진은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만 따로 모아 회의실로 불렀다.

“새로운 시대는 적응하지 못하는 이를 버리고 가는 그런 무책임한 시대가 아닙니다. 아시는 것처럼 전 ‘성자’입니다.”

성자의 이름을 팔아 가며, 시무룩해 있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괜히 삐뚤어져서 대륙에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러니, 일거리를 던져 줘야 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중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방송’입니다.”

방송.

지금이야 대회가 하나니까 진이 적당히 하고 있지만, 슬슬 다른 이들을 교육해서 짬 때려야 한다.

‘인간은 안 돼.’

이 방송은 온전히 진의 소유여야 한다. 다른 인간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PD, 작가, 취재원, 촬영팀, 편집팀 등등 방송엔 수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방송계에 투신해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순진한 악마들을 꼬셔서…….

“새로운 시대의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는 방송국에 취업하세요!”

노예처럼 써먹으면 된다.

악마의 편집!

악마의 연출!

그야말로 맵고, 짜고, 단 극한의 자극적인 맛 방송!

“새로운 시대에 올라타세요!”

가장 좋은 점은.

‘악마는 무료로 해 줍니다.’

인건비가 공짜란 점이었다.

솔직히 성자가 악마를 착취하는 건 정의 아니냐?

이게 다 대륙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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