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세상이 요동치다
“본선 첫 미션은 팀 미션입니다.”
“……?!”
팀 미션이란 말에 합격자들이 술렁거렸다.
“갑작스러운 팀 미션 이야기에 조금 당황하셨을 겁니다.”
진의 말에 참가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대회를 준비할 때만 해도 팀 미션은 계획이 없었습니다. 예선전을 치르면서 추가된 미션입니다.”
아니. 실은 계획이 있었다.
원래 사람들이 모여서 한 팀으로 일하게 되면 이야깃거리가 많은 법이다.
이런 흥행 요소를 진이 빼먹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극적인 요소를 위해 급하게 추가된 것처럼 연기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의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관객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이 일념 하나로 대회에 참가하셨을 겁니다.”
진이 말한 것은 ‘음악’의 본질이다.
저들이 악마에게 영혼마저 팔며, 기교를 배운 것은 저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다른 방법으로 감동을 주는 이들을 보셨겠지요.”
진의 말에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이 보여 주었던 ‘감성’의 영역은 기교에 매진하고 있던 이들마저 따라 할 정도였다.
“그러니, 팀을 구성해 서로의 장점을 배워 보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장담컨대 두 가지가 합쳐질 수 있다면, 로스칼의 음악은 한 차원 진보할 것입니다.”
“아!”
그제야 참가자들은 진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건 우승자를 뽑는 대회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 대회의 본질적인 취지는 많은 이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임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기교와 감성의 조합.
이건 참가자들에게도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팀은 이미 주최 측에서 짜 놓았습니다. 지금부터 팀을 호명하겠습니다.”
그렇게 팀을 편성한 뒤.
진은 곧장 미션의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첫 번째 팀 미션은 ‘조화’입니다. 제한 시간은 7시간. 조화로움을 강조한 음악을 만들어 오시면 됩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장 시작한 것도 모자라, 이리도 촉박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이제 막 팀이 된 이들이었다. 서로를 모르니 당황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의 등을 슬쩍 떠밀어 줘야 했다.
“1분 경과! 6시간 59분 남았습니다!”
그 말에 참가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팀이 된 사람들과 어색한 얼굴로.
* * *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성향이 완전 극과 극인 이들을 붙여 놨으니 상황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연주가 왜 필요한 거죠?”
“왜라니…… 당신 음악을 배운 건 맞아요?”
“아. 전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쯧,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왜 필요한 겁니까?”
“아니. 이건 빠질 수가 없습니다. 형식에 맞지 않아요!”
“형식이 중요합니까? 제가 보기엔 억지로 끼워 맞춘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음악을 모독하는 겁니까!?”
“아니. 우리 음악에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갈등이 터지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이와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에, 서로 답답해하는 이들.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서로 배워 온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게 꿀잼 포인트지.’
원래 이런 ‘갈등’을 사람들은 재미있게 보는 법이다.
물론, 이런 팀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의 말한 ‘조화’에 접근하고 있는 팀도 있긴 했다.
“셀리온 님. 함께 팀이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이 늙은이가 여러분께 폐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아닙니다. 편히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나이 차이도 적당히 나야 무시하는 거지, 그녀에게 막말을 던질 간 큰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음악계에서 후원자로 유명하지 않나.
덕분에 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 늙은이가 한 가지 의견을 내고 싶은데 괜찮나요?”
“예. 얼마든지 내셔도 괜찮습니다.”
이쪽은 실력이 좋은 이들만 몰아넣었는데, 의외로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무대가 어떤 의미인지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어요. 여태 배운 모든 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을 거예요.”
그녀의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이 대회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러니, 타협하지 말아요. 저를 위해 억지로 연주를 바꿀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괜찮아요. 다만, 이런 결정을 한 만큼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테마를 정해야 해요.”
오랜 세월 음악계에 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다 보니, 팀원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자문하는 분위기가 잡혔다.
“셀리온 님께선 어떤 테마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교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힘이 있어요. 그러니 감정이 극한으로 고조되는 테마면 좋지 않겠어요?”
“……비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극으로 정하면 더 좋겠죠.”
나이도, 연령도, 성별도 다르다.
심지어 다루는 악기와 성향마저 다른데, 모두가 공감할 비극이 있을까?
모두가 고민에 빠졌을 때, 그녀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만약, 앞으로 평생 무대에 설 수 없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고, 절망적이었다.
음악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주제면 어떨까요? 우리에게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요?”
참가자들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제야 눈치챘다.
이 비극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셀리온.
그녀는 이 비극을 경험한 주인공이었다.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의견은 순식간에 동의를 얻었다.
“그럼, 그쪽 방향으로 진행해 볼까요?”
“예.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아껴 써야 합니다.”
그 모습을 주위 참가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한쪽에선 이미 테마까지 정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내, 참가자들 사이에선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7시간 후.
그 사실은 대륙의 모두가 확인 할 수 있었다.
* * *
팀 미션이 끝난 다음 날.
“어제 로갓텔 봤어?”
“봤지! 어제 무대 엄청나던데?”
“성자님이 보통 똑똑하신 게 아니여. 우째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그렇지. 성자님 아니었으면, 어제 같은 무대를 볼 수 있었겠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제 방송 이야기를 했다.
“난 말이야. 셀리온 님 노래가 제일 좋았어. 그 뭐냐. ‘이 무대에 서면!’ 하는 부분 그때 전율이 쫙!”
“크. 좋았지. 우리 집사람은 눈물 콧물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뭐? 이야기 들어 보니까 네가 더 많이 울었다던데?”
“뭐, 뭔 소리야! 나 아니야!”
그들의 얼굴엔 여전히 진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회자되는 건 단순히 한두 팀이 아니었다.
“어제 시골 총각팀 너무 좋지 않았어요?”
“맞아요. 독특한 목소리인데도, 어쩜 그리 가슴이 뛰는지…….”
“시골 남자가 멋지다고 생각한 건 또 처음이라니까요?”
“저도요!”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시골 총각팀.
“자네 어제 자매님 팀 봤나?”
“흠흠. 좋더군.”
“아니. 난 춤이 그리 매력적인 줄 처음 알았네.”
“말도 말게, 어제 마누라한테 당한 거만 생각하면…….”
“그건 마찬가지일세. 나도 눈치 보느라 힘들었네. 자매님들 너무 좋더군.”
“후. 나도 마누라한테 ‘왜? 그렇게 좋으면 쟤랑 살지. 나랑은 어떻게 살아?’ 이런 말 듣기 전엔 진짜 좋았지.”
“우리가 뭐 딴생각하면서 보나? 다 예술이지.”
“그럼! 예술이야. 예술!”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자매님 팀.
그 외에도 많은 팀들이 각각의 팬을 만들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쯤 흘러가자, 오히려 진이 할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만큼 만들어 놨으면, 이제 알아서 굴러가야지.’
이제 진이 개입해서 무언가를 조절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미 이 자체로 드라마였다.
그저, 본선까지 천천히 진행하면서 이 드라마를 쭉 보여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 진의 생각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로갓텔의 인기는 높아만 졌다.
“이번에 자매님 팀 떨어진 거 봤어? 대체 불가한 그 팀을 떨어트리면 어쩌자는 거야?”
“셀리온 님 팀과 싸웠으니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셀리온 님이 압도적이긴 했잖아?”
“아니. 그래도 셀리온 님은 자매님들의 느낌을 못 내신다니까.”
“알아.”
자신들이 응원하던 팀이 떨어지면, 분노를 터트릴 정도로 과몰입할 정도였다.
물론, 진은 방송을 그리 간단히 끝낼 리 없었다.
“어제 성자님이 하신 이야기 들었어? 역시 성자님이시라고! 패자부활전이라니!”
“봤네. 봤어. 크…… 전율이더만. 아주 떨어진 사이 칼을 갈고 나왔더군.”
“깜짝 놀랐다니까!”
패자부활전으로 참가자를 되살리며, 방송 분량을 계속해서 늘리기 시작했다.
하나둘 떨어지며 참가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덕분에 방송은 천천히 진행됐다.
사념을 극한까지 쥐어짜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대회를 진행하며 마침내 TOP 15가 뽑혔을 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여전히 진한 다크서클에 답답해 보이는 정장을 입은 아길레스.
그녀가 진을 찾아왔다.
<1위. 탈환했습니다.>
결승에 가기도 전에, 지옥의 서열이 뒤바뀌었다는 소식이었다.
거기다, 놀라운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것으로 모든 악마들에게 증명했습니다.>
“……증명이요?”
<예. 성자님이 옳다는 증명 말입니다.>
어. 악마님?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저 증명이 호의적이란 건 알겠지만, 정확히 뭘 뜻하는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알의 기조는 무너졌습니다. 이젠 제 기조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지옥의 기조는 ‘상생’입니다.>
“…….”
이번만큼은 진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악마가 ‘상생’이라니?
<역시, 이렇게 될 줄 아신 모양이군요. 너무나 당연한 표정이십니다.>
아니요. 지금 너무 당황해서 리액션을 못한 건데요?
<그러니, 성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계속 멍 때리고 있을 진이 아니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 도움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오해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 올라타지 않으면 바보였다.
<역시…… 이것마저 예상하셨군요. 그럼, 지옥의 주요 악마들을 모은 뒤 찾아뵙겠습니다.>
예? 악마를요?
‘설마…… 내가 지옥의 대장이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 성자님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대륙과 지옥 모두를 위해!>
그녀의 부탁은 간단했다.
악마들을 교육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알겠습니다. 아길레스 님처럼 합리적인 분을 만나 정말 다행입니다.”
진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은 단 하나다.
“서로 공존하며 사업하실 수 있게, 제가 악마분들을 교육하겠습니다.”
진사트 특별 과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