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응답하라 옛날이여
“이건 누구를 위한 음악입니까?”
진이 던진 물음이 로스칼 왕국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다른 곳이었다면 이 정도 파급력은 없었겠지만, 이곳은 로스칼 왕국이다. 그 어느 곳보다 예술에 진심인 로스칼 왕국.
덕분에, 도시 곳곳에선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성자님이 하셨던 이야기 들었지?”
“어. 비전으로 방송 봤어. 어떻게 생각해?”
“음. 기교와 기술을 조금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
로스칼 왕국민들은 진의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추구해 왔던 것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건, 그들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도 비슷해. 성자님께선 음악의 발전사를 모르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거 아닐까?”
“그래도…… 성자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진 이해가 되긴 해.”
“그게 이해된다고?”
“어. 어느 순간부터 좀 피로하지 않아?”
“뭐가?”
“어느새 공부하지 않으면 음악을 즐기지 못하게 됐잖아.”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음악에 진심이 아니니깐 그런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완벽히 납득시키진 못했어도, 그들의 마음 속에 ‘의문’을 던지는 것에 성공했다.
‘여기까진 계획대로야.’
이젠, 저 의문을 더 크게 만들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다들 준비!”
온통 새하얀 공간.
진이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실 소리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은 진이 바라면, 그대로 구현되는 공간인 ‘꿈’속이었으니까.
곧이어,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지고 평범한 얼굴의 배우가 준비됐다.
‘진짜 지구에서 이것만 있으면…….’
특수 효과든 뭐든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다.
그 힘이 어느 정도였냐면, 첫 방송이었던 거대한 신전 또한 꿈속에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런 신전을 만들 수 있는데, 사람과 도시 일부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액션!”
진의 말과 함께, 다음 방송에 첨부될 내용이 하나둘 촬영되기 시작했다.
‘굳이 출장 갈 필요 없잖아?’
인터뷰?
그냥 뚝딱 만들면 그만이다.
어차피, 어느 방향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유도해야 할지는 결정됐으니까.
그렇게 완성된 영상은 꿈속에서 만든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퀄리티였다.
‘이걸 누가 꿈 속에서 찍었다고 생각하겠어…….’
직접 가서 찍은 것만 같은 영상이었다.
“전 성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음악은 즐거운 거잖아요?”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있는 극지방 지역의 시민.
“비전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신 음악가분들 연주를 봤지만, 여전히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음악은 어머니께서 불러 주셨던 자장가입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 지역의 시민.
“부족하면 또 어떻습니까? 이미 제 마음이 움직였는데. 음악은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울창한 산림이 가득한 정글 지역 시민.
“그…… 어려운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귀에 듣기 좋았던 건, 성자님이 뽑으셨던 그 참가자의 음악이었습니다.”
대륙의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시민.
지역도 다르고, 소속된 왕국도 다른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진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이 방송은 아집과 자부심으로 뭉쳐 있던 로스칼 왕국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공연 수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하긴…… 요즘 음악은 조금만 방심해도 확 발전하니까. 가볍게 들으러 가진 못하지.”
덕분에,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수면으로 떠 오르게 되었다.
“솔직히 기교가 너무 과하면 좀 시끄럽긴 하잖아.”
“맞아. 음악 공연이 아니라 서커스 공연을 보는 거 같기도 해. 충격적이지만, 여운은 없어.”
“그…… 어머니의 자장가 이야기 했던 양반 기억나?”
“아! 그 사람?”
“난 그 말이 딱 맞다고 생각해. 기술은 정말 더 발전했는데…… 두고두고 생각나는 음악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오랜 시간 쌓아온 예술에 대한 프라이드는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방안이 아닌, 도피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잘못은 인정하되, 우리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는 자기 합리화.
“아. 옛날엔 이렇지 않았는데…….”
추억팔이를 시전했다.
“맞아. 20년 전만 해도 평생 기억나는 노래가 정말 많았지.”
“요즘 친구들은 기교나 부릴 줄 알지. 감정을 모른다니까?”
“옛날이 좋았어. 옛날이.”
옛날이 좋았다는 ‘틀’ 마인드.
로스칼 왕국 사람들은 추억에 젖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잡히자마자 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지!’
이러한 결론이 나도록 투입한 인적, 물적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잘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슬슬 히든카드를 꺼내 볼까.’
미모 후작이 계약한 ‘계약자’.
그 사람이 바로 진이 준비한 히든카드였고, 1위 ‘내정자’였다.
* * *
“안녕하세요.”
진의 말에 눈 앞에 있던 참가자는 화들짝 놀랐다.
빠른 진행을 위해 지금껏 진은 인사를 생략했다.
그저 시작하라는 말과 합격, 불합격 여부만 알려줄 뿐이었다.
한데, 시작부터 달랐다. 설마 인사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아, 안녕하세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이나, 시험을 기다리는 다른 참가자도 놀란 얼굴로 그것을 바라봤다.
그때, 구경꾼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 참가자 낯익은데?”
“그래? 그냥 할머니 아니야?”
“……분명 본 기억이 있는 거 같은데.”
“유명한 사람인가?”
“아. 누구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네.”
그런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 참가자와 진 또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에겐 여태까지 살아온 흔적이 남습니다. 흡사 사제들에게서나 보일 만한 게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예?”
인사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들을 줄은 몰랐는지, 참가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헌신과 사랑, 그런 것들이 보입니다.”
그런 진의 말과 함께, 구경꾼 쪽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천재 연주자 셀리온!”
“셀리온? 그게 누군데?”
“예전에 유명했던 분이야. 예전에 부상으로 은퇴하신 뒤 지금은 음악인들을 지원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회에 나오시다니.”
“그게 진짜야? 그런 분이 있었어?”
헌신과 사랑에 딱 맞는 사람.
그러면서 옛 향취를 자극하는 사람.
그 모든 조건을 포함한 사람이었다.
“과찬이세요. 그저, 음악을 사랑할 뿐이랍니다.”
“그 사랑이 순수하며 아름다운 게 보입니다.”
진은 호의를 담아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예.”
천재 연주자란 말과는 달리 그녀는 악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입을 열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꿈을 꿔요.”
첫 소절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천재 연주자란 말과는 달리, 노래에는 압도적인 재능이 없었다. 순수하게 재능만 따지자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하지만, 신기하게도 못 부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독특한 매력의 목소리가 짙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처가 없던 그때로 다시.”
그녀의 노래는 특별한 기교도, 실력도, 재능도 없없다. 하지만, 압도적인 ‘울림’이 있었다.
시위가 조용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조차, 심사를 멈추고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이 넓은 광장에 오직 그녀의 노랫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아…….”
“끝인가…….”
사람들은 탄식을 흘렸다.
다들 노래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거지.”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어.”
“그러게. 확실히…… 옛날이 좋았다니까.”
모두의 얼굴엔 아련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추억팔이라는 불 위에 휘발유를 끼얻는 듯한 노래.
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합격입니다.”
그녀의 목에 합격 목걸이가 걸렸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 * *
그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꿈이 아니야…….’
이건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에 걸린 합격 목걸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차가운 목걸이의 감촉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그녀는 무대에 서지 못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사고를 당해 악기를 놓은 뒤론, 매일 같이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물론, 그건 불가능했다.
사고의 후유증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더는 전처럼 연주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음악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어느새 음악계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되었다.
절망.
평생을 사랑했고, 헌신했던 음악에게 버림받았다.
자신을 향해 웃어 주고 관심을 보여 주던 관객은 마치 그녀가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진짜 죽고 싶었어…….’
사람들의 악의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기분.
그 시절,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목을 매달고 죽었을 것이다.
자신을 그 무엇보다 사랑해 주었던 남편은 현명한 남자였다.
“무대에 설 수 없다면, 무대에 다른 사람을 세우면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음악인 후원이 시작됐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주자 후원은 쭉쭉 진행됐다.
덕분에 수많은 음악인을 후원하고, 그들을 무대에 세우며 다시 한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기만족.’
남들은 숭고하며 자애롭다 칭송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건 저열한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을 돕고 것보다 자신이 무대에 다시 한번 서고 싶었다.
타는 듯한 갈증.
지원으로 충족되지 않는 욕망.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음악을 사랑해.’
그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며, 무대에 서는 걸 사랑했다.
음악을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영혼을 바칠 수도 있었다.
그때, 천사가 찾아왔다.
“당신의 음악에 대한 자애와 사랑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 덕분에 ‘구원’받았습니다.”
저열한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천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 생각하지 마세요. 위선 또한 선입니다. 당신의 선행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바꿨습니다.”
그녀는 놀라긴 했지만, 기쁘진 않았다.
천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그 선행의 보답입니다. 다시 한번 무대에 서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토록 원하던 그 일이 천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만, 제가 인계에서 힘을 사용하려면 작은 계약이 필요하긴 합니다.”
상관없었다.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었는데, 천사와 계약은 거릴 낄 일이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그 결과…….
“지금부터 본선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다시 한번 올라설 수 있었다.
“셀리온 님! 기대하고 있습니다!”
“꺄아악! 셀리온 님!”
환호성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렇게 본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