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드라마 꿀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 대체 진 이 녀석은 이딴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쓸 만하긴 할 거 같은데…….]
[크흠. 잘 부탁하네.]
[진짜 너 때문에 내가 뭔 고생이야! 괜히 진을 들쑤셔서!]
[허허. 모두를 위해서 아니겠나.]
[아 진짜……. 모두는 위해서긴 무슨…….]
[그래도, 도움이 될 테니 그리 화내지 말게.]
[아. 그게 틀린 말이 아닌 게 더 열받네. 될 거 같기도 하고…….]
로메른은 인조인간을 제작함과 동시에, 진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바쁘게 연구를 진행했다.
이렇게 로메른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대륙의 상황 또한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성왕국을 해체하고, 성왕국이 지배하던 영역은 교단의 성지로 지정한다.
-이는 제국과 모든 왕국들의 뜻이다.
진의 기대대로 추기경은 성왕국의 영토를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교단은 대대적인 이동이 있었다. 성왕국으로 사제들이 향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성지를 책임지게 된 건 젊은 사제였다.
성자를 발굴했으며, 성자와 함께 꽤 많은 일을 처리했던 숨은 공로자.
플린트 남작가의 ‘교구장’을 역임했던 가롯이었다.
‘우리 교구장님 출세하셨네.’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추기경만 밀을 게 아니었다. 기연을 얻어 추기경에게 시간이 더 생겼다고 해도, 세월의 힘을 이기진 못한다.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부탁하려면, 젊은 사람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 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가롯 교구장은 성지의 책임자가 되었다.
‘영감님의 입김이 들어갔겠지.’
그야말로 빛!
이러니 무슨 일만 생기면 진이 추기경을 찾는 것이다. 성왕국은 슬슬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 아쉽네.’
다시 움직여야 해서 아쉬운 건 아니었다. 요즘 진이 푹 빠져 있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편하게 이 드라마를 못 볼 텐데…….’
그냥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꿀잼 드라마였다.
‘편집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며 괜찮아진 상태였다. 진이 보고 있는 드라마는 다른 게 아닌 바꿔치기한 아이들의 일상이었다.
이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세상도 ‘외모지상주의’라는 것이었다.
‘잘생긴 게 최고야. 이제라도 나도 얼굴을 고쳐 봐?’
진지하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지만, 직접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까지 봤더라…….’
진은 밀린 드라마를 보듯, 눈을 감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와작와작-
당연히 팝콘 대용 과자도 준비했다.
* * *
진이 아이를 바꿔치기한 곳은 두 곳이다.
젠 왕국의 비체 백작가.
빌타 공화국의 쎄타 후작가.
장소가 다른 만큼 흘러가는 이야기도 달랐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긴 했다.
‘부모란 인간들이…….’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
사랑을 주기보다는 가문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부모의 따듯한 품에서 커 가는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움직이는 시녀들 손에 커갔다.
‘바꾸길 잘한 건가?’
적어도 교단으로 간 아이들은 메이와 사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귀족가의 아기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받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이 이걸 재밌게 볼 리 없었다.
‘이걸 각성이라고 해야 하나.’
각성이라면 각성이었다.
진이 안배한 것들이 발동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들은 귀염 뽀짝하게 변화했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감을 높이는 각종 효과까지 발동했으니.
각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장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급격한 변화가 시작됐다.
“어쩜 이렇게 이쁘실까…….”
“너무 사랑스러우시지 않아?”
그 시작은 시녀들이었다.
기계적으로 일하던 시녀들이 홀린 듯 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른 일에 배정됐음에도 아기를 보러 시녀들이 오갔다.
그런 시녀들의 움직임이 다른 이들을 자극했다.
“시끄러. 대체 왜 이렇게 난리야.”
“어째서 이리 소란스럽게 구는 거지?”
아기의 오빠와 언니가 움직였다.
아기에겐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동생보다는 경쟁자라고 생각하던 그들.
“……이뻐.”
“흐으으음.”
아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진짜 어처구니없다니까.’
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누워 있을 뿐이었다.
한데, 아기의 세력이 늘어났다.
‘이게 진짜 세력이지.’
이해득실을 따지며 가담한 세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호감을 느껴 자연스럽게 세력이 된 것이다.
“아부!”
“모두 들었느냐! 방금 나보고 언니라 한 것을!”
언니는 개뿔, 아부라고 했다.
“바아!”
“저장했느냐! 방금 날 오빠라 부른 것을 저장했느냔 말이다!”
그나마 이쪽은 오해할 만한 소지라도 있었다. 바아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귀엔 분명 ‘언니’, ‘오빠’로 들렸다.
심지어.
“들었습니다! 분명 언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스러운 목소리였습니다.”
“벌써 오빠라 말씀하신다니. 정말 총명하신 것 같습니다.”
주위에 있는 이들까지 그렇게 들었다. 아기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은 이미 귀여움에 푹 빠지다 못해 절여진 상태였다.
“이 언니가 널 지켜줄게.”
“네가 행복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 가문을 그렇게 꾸릴 것이다.”
그들의 비장한 각오를 보는 진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이야! 이거지! 사랑이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이렇게 서서히 가문을 장악해 나가던 아기들이었지만, 아직은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진은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교단에서 아이를 축복해 주고 싶다고 합니다.”
신분을 숨긴 채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러 왔다.
덕분에, 아기들은 여태 보지 못했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
원래라면 항상 같이 있어야 할 존재들이지만, 이렇게 판을 깔아야 만나게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기를 만난 아이는 그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
의회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빌타 공화국의 쎄타 후작은 근엄한 얼굴로 아기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허어.”
젠 왕국의 흑막인 비체 백작은 거듭 탄성만 터트렸다.
여기에 축복을 빙자한 쇼까지 살짝 보여 주자 그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축복은 잠재력을 자극하고, 출중한 인물이 되게 한다. 백작과 후작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 관심은 그들을 아기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기가 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철혈의 후작이라 불리는 엄격, 근엄, 진지의 아이콘인 그의 집무실에서 이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부아!”
아기의 목소리.
원래라면 후작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흐음. 이것만 하겠다. 딸아.”
여전히 싸늘했지만, 애정이 담긴 목소리. 다른 이들이 이걸 봤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다른 곳에도 펼쳐지고 있었다.
평생을 남을 기만하고 속이고 착취했던 비체 백작. 그의 웃음은 누군가의 몰락을 말한다고 했지만.
“아이고, 우리 딸. 아빠 기다렸져용?”
여기선, 아이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이 또한 남들이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바바!”
“아빠!? 방금 아빠라 부른 거니? 따, 딸아!”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그의 모습.
‘……난 여태 뭐 한 거지.’
진짜로 사랑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물론, 단기간에 끝날 일은 아니다. 서서히 바뀔 테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저들을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 한 왕국을 주무르며 배후에 숨어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저놈들이 바뀌면, 나라가 변해.’
성왕국처럼 도시국가도 아니다.
그야말로 하나의 왕국을 처리하는데, 시간 좀 들어간다고 손해는 아니었다.
거기다 이 시간을 줄일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오오. 드디어 나온다.’
사실상 이걸 보려고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자 전하께서 이곳까진 어찌 오셨습니까.”
“그대가 아기를 안고 있는 걸 볼 수 있다니. 놀랍군. 아니…… 그 아기가 더 놀랍군.”
왕자의 시선이 아기에게 꽂힌다.
백작의 미소가 아기를 향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한다.
‘딸을 뺏으려는 놈팽이 등장!’
이런 상황은 다음 화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공작께서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결혼 이야기입니다.”
“감히! 내 딸을!”
“바아.”
“괜찮다. 아빠 화 안났 다.”
“바아!”
공작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후후. 위협 세력의 등장!’
이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진은 여러 방법을 통해 지식의 해방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할 것이다.
‘악당 치고 무능한 놈들은 없으니까.’
딸을 향한 위협이 임계치 이상으로 상승하면, 그들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할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다니까!’
뭐, 강제로 만든 사랑이라도 끝이 없긴 마찬가지다.
‘아. 다른 것도 해 볼까?’
진이 하는 짓은 흑막이나 다름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르다.
지금 세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을 사랑으로 ‘교화’하는 중이었다.
‘진짜 꿀잼!’
이래서 드라마를 못 끊는 모양이다.
* * *
[끝!]
‘……벌써?’
[벌써는 무슨. 원래 계획보다 한참 더 걸렸어. 이제 슬슬 출발해도 돼.]
앞으로 볼 드라마가 한참인데, 벌써 끝나다니. 즐거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뭐, 그렇다고 드라마 본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말했던 것들은 전부 진행 중이야?’
[어. 호문쿨루스 장기 프로젝트도 가동했고, 네가 말한 것도 적용했어.]
‘장기 프로젝트야 그렇다 쳐도…….’
이건 지식의 해방을 위해 준비하는 게 아니니 당장은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보다 놀라운 건 다음이었다.
‘내가 말한 걸 구현했다고?’
[어. 너 드라마 볼 때 세계수 뿌리 머리에 심은 거 알지?]
‘어.’
[그걸 사용하면 구현할 수 있어. 짝퉁이긴 하지만 세계수 베이스로 하니까 가능하더라고.]
‘역시 로메른. 도라X몽 따윈 로메른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니까.’
[……그거 칭찬이야?]
‘최고란 소리야!’
진이 이렇게 날뛰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문쿨루스를 보고, 진이 떠올린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시험해 봐도 돼?’
[어. 괜찮아. 검성 준비해.]
[허허. 알겠네.]
진은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물론, 진짜 머리카락은 아니었다.
뽑은 건 세계수였다.
“분신술!”
그 말과 함께, 입김으로 머리카락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뿌리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좀 끔찍하더라고. 그래서 빛으로 가렸어.]
‘나이스 판단이야.’
로메른의 말처럼 빛 안에선 좀 징그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뿌리가 변화하며 살덩이가 만들어지고, 이내 사람 형태로 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는 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 녀석 몸 안으로 검성이 쏙 들어갔다.
“허허.”
[아. 제한 시간 얼마 안 돼! 당장 해봐!]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서 검을 뽑아 검을 휘둘렀다.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원래라면 진의 몸을 걱정해서 사용하지 못할 검성의 본신을 담은 공격.
‘미친…… 이게 진짜 되네.’
물론, 이건 만능이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부터 몸이 부서지며 빛으로 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머리카락은 또 뽑으면 되니까.’
검성이 사용할 일회용 육체.
분신술이니 뭐니 했지만, 이게 바로 진이 로메른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거지!”
본격적으로 다른 왕국에 진입해야 하는 지금, 최고의 무기를 손에 넣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라고 했지?’
[예술가의 나라. 왕국 로스칼.]
‘가자.’
지금 진은 무서울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