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60화 (160/210)

160. 최종병기

한 방에 왕궁을 박살 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소형 드래곤 투명 마법 전개.

하늘에 떠 있던 미니 용들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리곤, 쏜살같이 폐허가 된 왕궁 쪽으로 날아갔다.

-확인 사살 시작할게.

현자가 호구 기질이 다분하다고 해도,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용사’였다. 생존자를 내버려 두는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확인하는 김에 겸사겸사 마법 흔적도 전부 제거해 줘.’

-알겠어.

일견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제 시작이다.

제일 먼저 현자에게 지시한 뒤.

‘루나.’

다음으로 넘어갔다.

[예. 기다리고 있었어요.]

‘성역 선포 가능해?’

[성벽 쪽에 대성법진이 남아 있기도 하고, 귀족들 보물까지 사용하면 가능해요.]

‘좀 드라마틱하게 부탁해.’

[기적처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성왕국에 성역을 선포하는 건, 낭비처럼 보이지만 정반대였다.

성역 선포를 해야 정치의 영역에서 종교의 영역으로 상황이 변하게 된다.

[다음은 나지?]

로메른을 부르기도 전에 진 앞으로 날아왔다.

[부를까?]

녀석은 진이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타이밍 맞춰서 불러 줄 수 있지?’

[극적일 때? 그럼, 루나 작업이 시작될 쯤 부르는 게 딱이겠네.]

척하면 척이었다. 로메른은 진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럼 일단 루나 작업 진행 상태 보면서 특수 효과나 넣어 줄게.]

계속 하늘에 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왕궁이 무너진 지금,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얼굴을 비춰야 했다.

‘그럼, 가 볼까?’

하늘 높이 떠 있던 진이 천천히 폐허가 된 왕궁으로 내려왔다.

“성자님이 내려오신다!”

모두의 시선이 진에게 모였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 저건!?”

성자의 등 뒤로 새하얀 천사의 날개가 나타났다.

고작해야 날개가 달렸을 뿐인데, 그 모습은 정말이지 신비롭고 성스러웠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의 아이들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이 많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람들의 가슴이 울렁였다.

-미안하다.

통제할 수 없는 정도의 감정이 요동쳤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모두가 함께 소리쳤다.

“아닙니다. 신이시여!”

“저희는 괜찮습니다!”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자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에 복받친 그들의 목소리가 성왕국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신은 그들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고맙다. 나의 아이들아.

그 말과 함께, 바닥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곧장 바닥을 바라봤다.

그제야 빛이 어디서 흘러나오는 지 확인할 수 있었다.

“……피.”

신의 분노로 하늘에서 쏟아졌던 피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자님께서 말씀하셨지.”

애초에 천벌은 벌이며 그와 동시에 자비라고.

피 또한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신의 분노였으며 ‘축복’이었다.

-신앙을 끝까지 지킨 건 사제가 아닌 그대들이었다.

신의 말이 더해질수록 그 빛은 더욱 강해졌다.

-그대들이야말로 나의 사제다.

도시의 끝인 성벽부터 중앙인 왕성까지 빛이 가득했다.

-그대들의 집이야말로 왕성이었으며, 성당이었다.

그 빛은 모든 곳에 깃들기 시작했다.

빈민가의 집부터, 폐허가 된 왕성까지.

-그러니 그 모든 곳이 ‘성역’이다.

신의 말이 끝났을 때.

찬란한 빛이 어우러지며, 대성법진처럼 투명한 막이 떠올랐다.

성왕국 전체에 ‘성역’이 선포됐다.

그와 동시에.

“진 님!”

“당장 성자님을 모셔라!”

허공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진을 향해 달려갔다.

* * *

노바와 아이들이 진을 경호하듯 주위를 경계했고, 추기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을 데려온 건, 다름 아닌 폴카였다. 괜히 그녀를 영지에 두고 온 게 아니었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추기경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에게 물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폐허가 된 왕성.

진을 향해 절하고 있는 시민들.

도시 전체에 선포된 성역.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일 텐데도, 그가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진의 몸 상태였다.

“예. 괜찮습니다.”

진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추기경은 자신의 몸이 아픈 것처럼 표정을 찌푸렸다.

“이리 안색이 초췌한데 뭐가 괜찮으시다는 겁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이번에 제 몸을 차지하신 분께서 많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허어. 또 다른 분께서 성자님 몸에 임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계십니까?”

영감님은 고개를 저었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듣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성왕국입니다.”

성왕국이란 말에, 추기경의 표정이 변했다. 불쾌감과 미약한 분노가 얼핏 보였다.

그만 이런 반응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교단의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보는 게 맞았다.

“전 이끌림을 받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출발할 때 이렇게나 멀리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그래서 아이들을 두고 가셨군요.”

“그렇습니다.”

진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천벌이 시작된 직후였습니다.”

“허어…… 천벌이라니. 하늘의 신은 정말 다르시군요.”

그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봉사하며, 지켜보다가 이내 변화를 관찰한 것을.

“……이곳의 사제들은 신성력을 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설명을 듣는 추기경의 표정은 이 부분에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사제란 자들이 신앙을 버렸다는 말입니까?”

서슬 퍼런 표정에 진의 몸엔 소름이 돋았다.

온화하고 언제나 따듯하던 평소의 영감님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

“저도 추기경님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데, 저보다 더 분노한 분이 있으셨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게 누군진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저버리는 사제들을 지켜봐야 한다니…… 이보다 슬픈 일이 있겠습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폐허가 된 왕성을 바라봤다.

“천벌은 신벌로 변했습니다. 그결과, 이렇게 되었습니다.”

영감님 또한 그 폐허를 바라봤다.

여기선 아무런 말도 할 필요 없었다.

그저, 영감님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면 된다.

“성자님.”

그런 진의 생각대로 추기경은 한참 동안 폐허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해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또한 알았습니다.”

“……예?”

진은 아무것도 모른단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추기경을 바라봤다.

그러자 추기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아닙니다. 그저 성자님께선 뜻을 행하시면 됩니다. 나머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거지!

그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확실히 이해했다.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니. 영감님은 빛이야!’

성왕국의 왕성이 통째로 날아간 사건이다.

게다가, 귀족을 시민들이 죽인 혁명까지 생각하면 이건 ‘천벌’이란 말로 끝날 게 아니었다.

성역을 설치했지만, 그렇다고 복잡한 정치 논리가 아예 배제되는 건 아니었다.

추기경은 그걸 처리해 준다고 말한 것이다.

“바빠진다고 생각하니 벌써 활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 건 없겠습니까?”

진은 마음에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허허. 괜찮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롯 그 녀석을 써먹으면 될 거 같습니다.”

가롯 교구장님, 미안합니다!

그치만 내가 하기엔 너무 귀찮은걸!

[……이게 성자라니.]

로메른의 혀를 차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진은 가뿐히 무시했다.

그렇게 진은 성왕국의 뒤처리를 추기경에게 슬그머니 짬 때렸다.

* * *

그렇다고 성왕국에서 곧장 떠날 순 없었다.

‘최종 병기인지 뭔지는 챙겨가야지.’

다른 핑계로 이곳에 잠시 머물면서, 최종 병기를 챙겨야 했다.

덕분에, 추기경은 빠르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자님 죄송하지만, 사람을 보낼 때까지만 성왕국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도시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잠시 머물다 가려고 했습니다.”

시민들을 걱정하는 진의 순수한 마음에 추기경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최대한 빠르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추기경은 그 말을 남기고, 곧장 왕국으로 돌아갔다.

“다들 날 대신해서 봉사 좀 해 줄래?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예. 주인님.”

노바와 아이들이면, 진이 하던 일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다.

덕분에, 봉사한다고 나가 있을 필요도 없으니 오랜만에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교통정리를 끝내자 여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폴카가 다가왔다.

“천벌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녀는 별다른 질문 없이 대뜸 천벌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가장 궁금한 모양이었다.

“정말 대단했어.”

“진짜요!?”

“어.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장관이었어.”

“그걸 못 봤다니…… 너무 아쉬워요.”

그녀는 진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이건 현자가 마법적 흔적을 확실히 처리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아직 재미난 게 남아 있어.”

“재미난 거요?”

“성왕국이 만들던 최종 병기가 있어. 천벌 때문에 사용하진 못했지만.”

“최종 병기요?!”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어. 지금 은밀하게 수색 중이야.”

“제가 도와드릴게요! 누구보다 빠르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가져올게요!”

그녀는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특급 호구는 오늘도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바로 승낙하는 건 하책이었다.

“음. 이건 기밀에 해당해서 아무한테나 보여 줄 순 없는데.”

진이 망설이자 그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비밀 지킬게요! 써클에 걸고 약속해요!”

알아서 비밀 보장까지 해 준다고?

이건 못 참지.

“동생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계속 거부할 수는 없겠네. 알겠어.”

“감사해요! 정말요!”

감사하긴, 이쪽이 더 감사하지.

진과 그녀의 얼굴엔 동시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 서로 다른 의미의 미소였지만.

미니 드래곤에 이어 그녀까지 합세하자, 수색은 빠르게 끝났다.

-미안. 너무 오래 걸렸지? 무너져 가지고 수색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진은 어디에 숨겼는지 감이 왔다.

‘지하야?’

-어. 마법으로 만든 공간이야.

‘마법이라…….’

그렇다면, 성왕국이 단독으로 개발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마법적 능력을 지닌 세력에 지원을 받았을 텐데…….

‘보나 마나 지식의 해방이겠지.’

-아마도 그런 거 같아. 금지된 지식으로 만든 보안 마법이 꽤 많았어.

‘그래서 대체 안에 뭐가 들어 있던 거야?’

이쯤 되니 그 안에 뭐가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대충 예상은 했는데, 생각대로였어. 아니. 의외였다고 해야 하나?

뭔가 묘한 그의 말에 진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그만 질질 끌고 빨리 말하지?’

-아 미안.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알기론 ‘천사’였어.

‘……잠깐만. 천사?’

-근데 까놓고 보니…….

[뭘 이야기를 이렇게 질질 끌어. 우리가 천사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호문쿨루스였어.]

-……호문쿨루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골렘이랑 비슷한 건데…… 인공으로 만든 천사? 아 느낌이 안 오는데.]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게 뭔지는 대충 예상이 됐다.

‘인조인간?’

[오! 역시, 이런 건 네가 이름을 잘 짓는다니까?]

성왕국의 최종 병기는 ‘인조인간’이었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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