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59화 (159/210)

159. 천벌이 신벌로 진화합니다

성자는 언제나 광장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다친 이들을 치료했다. 성왕국에 큰 난리가 났음에도, 그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때때로 성자에게 물었다.

“성자님. 저희를 꾸짖지 않으십니까?”

도시가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귀족이고, 부패한 자들이라곤 하지만 시민들은 엄밀히 따지면 ‘살인자’였으니까.

한데, 성자는 고개를 저었다.

“신께서 내리신 천벌을 어찌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예?”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만이 천벌이 아닙니다. 여러분 또한 신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저희가요?”

“그렇습니다. 신께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모르셨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셨을 겁니다.”

신은 전지전능하니, 이런 상황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럼, 재미난 결과가 나온다.

“여러분은 신께서 준비한 두 번째 천벌입니다.”

“우리가 천벌이라니…….”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

이 사람은 왜 진에게 와서 이런 걸 물어보고 있는 걸까?

‘죄책감이 드는 거지.’

혁명이란 광기에 젖어 분노를 쏟아내다가, 문득 죄책감이 들어서 진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해줘야 하는 건 훈계 같은 게 아니다. 혁명을 위해 움직이는 모두에게 ‘명분’을 줘야 했다.

“저희가 하는 일은 정의였군요.”

죄책감이 사라지고, 그곳에 ‘사명’이 자리 잡았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한 번 더 등 떠밀어 줘야 했다.

“언뜻 보면 신께선 냉혹하고 잔인하신 분 같아 보입니다.”

“…….”

“하지만, 저는 전혀 다른 게 보입니다.”

“어떤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건 천벌인 동시에, 자비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자비란 말씀이십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잘못을 뉘우치고 신께 용서를 구한 사제가 있었다면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진이 하고 있는 말은 간단하다.

“그건…….”

“전 신께서 용서해 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용서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신께선 너희가 살인을 하게 계획한 게 아니다. 그저 사제들에게 시험을 내린 것이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평생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자세가 돼야 용서해 주시겠지요.”

물론, 성왕국의 귀족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

“그러니 전 이게 벌이며 그와 동시에 자비라 생각합니다.”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의 계획을 사제인 전 막을 수 없습니다. 그저 그분의 뜻이 어긋나지 않게 지켜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어서인지, 그는 진에게 감사 인사를 했지만.

“제게 감사하실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께서 절 이끄셨을 뿐이니까요.”

진은 그 공을 ‘신’에게 돌렸다.

잔뜩 이름을 팔아먹었으니, 공 정도는 돌려야 천벌이 안 떨어지지.

나름의 보험이었다.

그렇게 묵묵히 광장에 앉아 있던 성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잔뜩 분노한 모습으로.

“서, 성자님?”

처음 보는 표정과 분위기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제게서 물러나세요. 저들이 신의 자비를 거부했습니다.”

“예?”

그때 사람들이 광장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사제들이 신성력을 포기했다!”

“이놈들이 저택 밖으로 나왔다고!”

“상단에서 무기를 나눠 줄 거야!”

“다들 무기 들고 준비해!”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가 깨달았다.

그때 다시 한번 진의 입이 열렸다.

“제게서 물러나세요.”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지만, 광장을 넘어 도시에 있는 모두에게 그 목소리가 들렸다.

“그분이 오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누군지 물어보기도 전에 무언가의 힘에 떠밀렸다.

“어?! 뭐, 뭐야!?”

진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로소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 껴 있었고, 벼락이 떨어질 듯 하늘에서 ‘파직’거리고 있었다.

“다, 다들 피해!”

사람들은 허겁지겁 진에게서 물러났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됐다.

-----------!!

형용할 수 없는 소리와 빛.

그 모든 것이 ‘성자’에게 떨어졌다.

이 상황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야 정상인데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버렸구나.

분노와 회한,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 하늘에서 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회를 주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깨닫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는 그들의 신 ‘하늘’이었다.

-그 기회를 버리고, 하늘을 버렸구나.

목소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회한과 슬픔이 사라지고, 오직 분노만이 남았다.

-이제 자비는 없다.

적의와 함께 사방에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타락한 사제들이여!

서슬이 퍼런 말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너흰 하늘 아래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곤, 진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번개가 감싼 그의 몸은 마치 번개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 왕성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먹구름과 모든 번개와 함께.

더는 혁명이 아니었다.

이건, ‘신벌’이었다.

* * *

곧이어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히, 히익!”

사람들은 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건 일반적인 비가 아니었다.

피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신께서 분노하셨어…….”

“이게 대체…….”

광장의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때, 광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할 때가 아닙니다! 모두 기도하세요. 성자님을 위해! 신을 위해!”

사람들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지만, 귀족들이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지식의 해방’이라며 방문한 남자였다.

‘모든 건 후계자님을 위해! 지식의 해방을 위해!’

이 모든 계획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든 숨은 공로자가 바로 그였다.

“그, 그래! 기도합시다!”

“신께선 우릴 벌하시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곧장 기도하기 시작했다.

핏물을 뒤집어쓴 사람들 모두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한데, 그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더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혈액을 통해 힘을 모으시다니. 과연 후계자님이시다.’

사람들의 기도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혈액을 통해 그 힘이 어딘가로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이시여!”

“성자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

피를 뒤집어쓴 모두가 마치 기도에 빠져든 것처럼 열렬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힘은 고스란히 피의 주인에게 전해졌다.

이런 난리가 난 건 광장에서만이 아니었다. 왕궁 또한 비슷한 상태였다.

“그 목소리…… 정녕 천벌인 겁니까?”

“지금 피의 비가 쏟아지고,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신성력을 버린 이들에게 남아 있는 건 추악한 욕심과 자기 보신뿐이었다.

“대성법진도 소용이 없을 텐데, 저걸 어찌 막는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패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교황을 비롯한 몇몇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제정신이란 소리는 아니었다.

“그대들은 정녕 이것이 천벌이라 생각하는가? 이건 성자의 수작질이다.”

성황의 말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단에 정식으로 항의해라. 이건 천벌 같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그저, 교단이 우리를 침략했을 뿐.”

교황의 말은 이 상황을 정치의 영역으로 넘겨, 교단을 배제하겠다는 말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합니다. 위험은 코앞에 있습니다.”

정치는 멀고, 폭력은 가까운 법.

코앞에 폭력이 다가온 지금 의미 없는 논의였다. 폭력에는 폭력으로만 대항할 수 있다.

“그걸 사용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교황과 마찬가지로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이가 말했다.

“그것을 꺼낸 이상 성자를 죽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희생 아니겠습니까. 교단 쪽도 이해할 겁니다.”

지식의 해방과 연계한 국가들을 움직이면, 강제로라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동 가능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길어야 10분. 그 정도만 움직일 겁니다.”

교황이 잠시 생각에 빠지자, 귀족은 다시 한번 교황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선택지가 없군. 허락한다. 가동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일단, 이것을 가동한 이상 목격자는 존재해선 안 된다. 성자는 필히 죽이도록.”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왕국이 보유한 최후의 무기.

지식의 해방과 수십 년간 연계해 만든 최종병기 가동에 허락이 떨어졌다.

“성왕국을 위해…….”

그는 마치 승기라도 잡은 듯 중얼거렸지만.

[진 들었지?]

‘어. 전부 들었어.’

이 모든 상황이 진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꺼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등신이지.’

당연히 진은 그걸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아 잠깐만, 우리…… 시간이 더 필요해.]

‘왜?’

[진짜 천벌처럼 자연현상으로 보여야 하잖아. 아직 준비할 게 꽤 많아.]

어디까지나 이건 신의 벌처럼 보여야 하니,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됐어. 때려치워.’

[뭐?]

‘쉽게 가자.’

[어떻게?]

마법적 흔적이나 마나의 흔적은 나중에 지우면 될 일이다.

목격자가 문제라고?

‘다 쓸어버리면 되잖아.’

[……나쁘지 않은데?]

‘그치? 저 의미심장한 거 보느니 일단 저질러 버리고, 뒷수습하자고. 어차피 이곳에 있는 지식의 해방은 우리 쪽 첩자니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결정을 내리니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현자. 네가 나설 차례야.]

-이제 마법 써도 된다, 이거지?

‘마음껏 써. 아. 그래도 천벌처럼 보여야 하는 거 알지?’

-기대하라고, 고도로 발전한 마법은 신의 기적에 필적하니까.

진은 하늘 위에 떠서 느긋하게 현자의 마법을 감상했다.

현자는 진이 원하는 대로 마법을 사용했다. 너무 높아 보이지 않는 곳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마그마 드래곤이 만든 거대한 마법진과 수백 마리의 미니 드래곤이 만든 작은 마법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었다.

[오호. 이렇게 가는 거야?]

로메른은 마법진을 보며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고, 진은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뭔데? 뭐, 궁극마법 같은 거라도 쏘는 거야?’

[궁극마법? 그건 또 무슨 촌스러운 네이밍이야? 그런 게 아니야.]

로메른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법이 단순할수록 변형이 쉽다는 건 알아?]

‘……대충?’

[아무튼, 단순한 마법을 선택해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거야.]

‘위력을?’

[봐 봐. 곧 재미난 일이 일어난 테니까.]

로메른의 말을 이해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썬더.

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썬더’란 마법은 진도 알고 있었다.

번개의 기초 마법 중 하나.

신의 기적에 필적한다는 말과는 달리 너무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기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번개라고 부르기에 너무 거대했다.

오히려, 번개로 만든 거대한 기둥에 가까웠다.

그런 거대한 기둥이 성왕국 위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게 산산이 부서졌다.

■■■---------!!

표현조차 되지 않는 굉음과 함께, 왕성 전체를 짓이겼다.

마법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걸 마법이라 생각지 못했다.

“신의 분노야!”

“신께서 사제들을 벌하신다!”

“성왕국을 정화하신다!”

“신의 빛!”

그 빛의 기둥이 사라졌을 때, 왕궁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부서진 잔해만 잔뜩 쌓여 있을 뿐이었다.

‘어디서 최종 병기를 꺼내려고 들어.’

진은 그딴 걸 기다려 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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