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55화 (155/210)

155. 밥 먹고 합시다

성왕국은 난리가 났다.

겨우 도시 하나 정도의 영토를 가진 성왕국이었기에,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 나간 것이다.

“천벌이야. 천벌.”

“신께선 분명 실존하시는 게 분명하군. 귀족 놈들이 벼락에 맞아 죽다니.”

“쉿. 목소리 낮추게.”

“점잔 빼지 말게, 자네도 웃고 있지 않나?”

성왕국의 착취를 받고 있던 평민들은 ‘천벌’을 환영했다.

천벌의 여파로 다른 인명 피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게 일절 없었다.

마치, 신이 계획한 일처럼 그저 사제만 벼락에 맞아 죽었을 뿐이었다.

이런 평민들의 반응과 달리, 성왕국의 귀족이며 사제인 지배 계층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인데, 이게 뭔 소란인지 모르겠습니다.”

애써 침착한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공교롭지요.”

공교롭기만 한 게 아니었다. 마치 짜인 각본처럼, 정교하게 이야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고 난 뒤, 기다렸다는 듯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소문의 출처를 찾고 있습니다만, 그게 어디서 시작됐는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소문의 시작부터, 천벌이 떨어진 시기까지 너무나 완벽합니다.”

그때,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

왕이며 그와 동시에 교황의 직책을 가진 성왕국의 지배자. 그가 이 사건의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성왕이시여. 결론을 내리시기 전에 조사 결과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떨어져 내린 벼락은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인위적인 마나는 일절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보고에 귀족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게 자연적인 벼락이었단 소립니까?”

“조사 결과는 그렇습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말에 귀족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게다가, 보고드릴 사항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벼락엔 가공되지 않은 신성력이 섞여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가 뜻하는 건 명확했다.

“……천벌.”

모든 증거가 천벌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귀족들이 한껏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성황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조사는 벼락이 떨어진 곳을 조사했을 터. 그곳의 흔적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송구스럽지만 없습니다. 성왕이시여.”

그제야, 귀족들의 표정이 풀렸다.

“허.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군요. 과연 성왕이십니다!”

“이런 저급한 방법에 이리도 당황하다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마치 일이 해결됐다고 떠드는 귀족들. 하지만, 조사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저 조작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조작이 아니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조사관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시시한 일에 우리가 놀아날 필요는 없지. 대성법진을 가동한다.”

성왕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전쟁 시에나 발동되는 대성법진의 가동을 명했다.

이를 가동하는 건,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는 일이었는데,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맞습니다. 대성법진을 본 순간, 그 누가 우리를 노리든 우리를 경시하진 못할 겁니다!”

“이젠 걱정할 게 없겠군요.”

“하하.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다니, 성왕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오히려 대성법진 가동을 환영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원은 밑의 것들을 쥐어짜면 나오지만, 자신들의 목숨은 하나였으니까.

그날 저녁, 성왕의 명령대로 대성법진이 가동했고, 찬란한 빛이 도시를 뒤덮었다.

하지만.

콰과과과광!

대성법진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다시 한번 떨어진 벼락을 대성법진은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성법진의 신성력이 벼락의 힘을 증폭시키고 강화했다.

“천벌이다! 천벌이야!”

“신께서 분노하셨다!”

“타락한 이들에게 죽음을!”

그제야, 모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벼락이 ‘천벌’임을.

성왕의 과감한 결단은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신께서 지켜보신다!”

“신께서 타락한 이들을 벌하신다!”

“이번에야말로 타락한 성왕국이 정화될 것이다!”

그저 퍼지기만 하던 소문은 어느새 힘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소란스럽게 굴면 끌려가 고초를 겪기 마련이지만, 이들을 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들을 벌해야 할 이들은 두려움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 혼란한 성왕국으로 한 사람이 방문했다.

대성법진이 가동된 직후, 성왕국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중이었다.

“현재 성왕국은 출입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출입하실 수 없…… 헉,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하나, 모든 일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

“성왕국은 대공이시며, 성자이신 진 세인트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진 정도 되는 직책과 지위를 가졌다면, 앞길은 자연스럽게 열릴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이리도 환영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게다가.

“아, 아닙니다! 성자님! 부디 성왕국에 빛을!”

보통 성문을 지키는 경비들은 평민이기 마련이다.

경비병의 시선은 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성왕국에 천벌을 내린 것처럼…. 교단에는 성자를 내리셨다.’

천벌의 반대가 성자라면,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그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무, 무슨!!”

별안간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성자에게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한데, 지금껏 놀랐다는 건 약과라는 듯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인도를 받아 제가 왔나이다!”

성자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걸 넘어 오히려 활력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의 몸에 신성력이 넘실거리고, 옷에는 그을린 흔적 하나 없었다.

성왕국의 사제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천벌’은 성자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자는 잠시 기도를 하더니, 도시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경비병은 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뭘 본 거지.”

다른 이들에게 이것을 말한다고 믿을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발견했다.

둘이 시선이 마주쳤다.

“자, 자네! 거기 기다리게!”

“방금 제가 본 거…… 보셨습니까!?”

“그래! 봤어! 봤다고!”

“우, 우린 뭘 본 겁니까!?”

“기적을 본 걸세!”

* * *

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도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개판이네. 진짜.’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진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성왕국은 더없이 화려했다.

새하얀 가도와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했는데, 그런 아름다움에서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절망이 펼쳐져 있었다.

[성왕국에서 발간한 책 중에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라는 책 알아?]

‘이놈들이 그딴 책을 썼다고?’

민중을 전혀 행복하게 하고 있지 않은데, 그런 책을 썼다니 웃기는 노릇이었다.

한데, 로메른의 입에선 더 웃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목과는 달리 효율적으로 민중을 착취하는 법이 적힌 책이야. 귀족들 사이에선 히트했던 책이지.]

‘……이딴 게 효율적인 착취라고?’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아닌 거 같아? 성왕국은 별거 아닌 도시 국가처럼 보여도, 막대한 부를 가진 도시야. 그들이 생각한 효율이 먹히고 있다는 거지.]

‘전혀 아니야.’

진이 보기엔 아니었다.

‘착취는 나처럼 해야지. 내 영지처럼.’

[네가 착취를 하고 있다고?]

로메른은 처음 듣는다는 듯 진에게 되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의 영지는 착취보다는 행복에 겨운 도시였으니까.

하지만 진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알아서 돈을 바치고, 스스로 야근하는데 이 도시보다 훨씬 착취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이딴 도시보다 돈도 우리 영지가 더 많이 벌걸?’

[그건 그렇지.]

‘원래 좋은 사람 취급 받는 녀석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인 법이야. 나 봐. 제일 나서서 착취하는데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하잖아.’

[……그런가?]

‘이딴 저급한 방법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줄도 모르게 착취하는 게 진짜지.’

물론 이렇게 간단히 단정 지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진의 말에 검성이 거들었다.

[많은 이들을 다스려 본 나로선 진의 말에 동감일세. 난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걸, 진은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네.]

[……뭐, 검성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무튼, 플랜은 다음으로 넘어가는 건가?]

‘그래야지.’

그렇게 다음 계획에 관해 대화하며 빈민촌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콰과과광-!

도시 중심부로 벼락이 쏟아졌고, 곧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작님이 쓰러지셨다!”

“기사들은 이탈해…….”

콰과과과광!

“성자와의 접촉은 뒤로 미룬다!”

“전부 산개! 이탈해라!”

중심부 쪽에선 한차례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만나러 오는 길에 털렸나 본데?]

‘어림도 없지. 이쪽 준비 끝날 때까진 절대 못 만나지.’

이렇게 까지 진이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알겠어. 그렇게 현자에게 전할게.]

이 벼락을 뿌리고 있는 건 현자였다.

뭐, 그 힘의 근원은 드래곤 하트 주위에 자리 잡은 ‘바즈라’였지만.

아무튼 진은 중심부에 신경을 끈 채, 빈민촌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다.

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모두가 관심 가득한 눈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난하게 치료 봉사로 가야 하나?

아니지. 벼락이 떨어지는 지금 치료 봉사를 받으러 올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이시여. 절 어째서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진의 조용한 목소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구경하고 있는 이들의 귀에 들려왔다.

“부디 답을 내려 주소서.”

갑자기 진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빈민촌 사람들은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 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때, 진의 몸에 일렁이는 신성력을 보았다.

“부디 답을!”

애원하듯 소리치는 그 목소리에 진의 몸에 어린 신성력이 더욱 크게 타올랐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려 주소서!”

진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쿠구구구궁.

진의 머리위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엄청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환하게 빛나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아야 함에도, 진을 구경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번개가 진의 신성력과 어우러지기 시작하더니.

“……세, 세상에.”

허공에서 빵이 쏟아졌다.

심지어 빵뿐만이 아니었다.

생고기를 비롯해 곡식들까지.

진의 주위로 음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건, ‘기적’이었다.

눈을 멀게 할 듯 환하게 비추던 빛이 이내 사라지고, 진이 눈을 떴을 때까지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진이었다.

“당신의 뜻을 이 미천한 종이 깨달았나이다.”

무엇을?!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을 때.

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와 함께 식사하시겠습니까?”

며칠이나 굶은 모두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천천히 진을 향해 다가갔다.

벼락을 향한 공포는 방금 본 것으로 잊히고, 식욕에 의해 사라졌다.

조금씩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스튜를 끝내주게 끓이는데, 냄비 있으신 분 있으십니까?”

아. 뜨끈한 스튜에 빵은 못 참지.

진의 주위에 가득한 식량은 조금 늦는다고 못 먹을 양이 아니었다.

“가져가겠습니다!”

“저도요!”

“사제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빈민촌에서의 한 끼 식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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