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54화 (154/210)

154. 성왕국

자, 생각해 보자.

진은 왕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다른 왕국을 살리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진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짬 당해 주는 정말 훌륭한 왕이었다.

물론, 그건 진의 입장일 뿐, 이걸 왕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애초에 왕은 진이 아니었다고 해도, 주위 왕국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건 스스로 나서서 짬 당한 게 아니게 된다.

‘회생 불가 지역을 나한테 짬 때린…… 흠, 너무 깊게 생각했나?’

결국 서로 원하는 게 일치했고, 서로의 도움이 반가웠던 것으로 끝날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일만 떠맡고 돌아갈 순 없었다.

“필요한 물건 하나를 좀 가져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뭐든 말하게. 그대에게 내 주지 못할 물건은 없으니.”

이럴 땐 뭐라도 챙겨 가야 하는 법.

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물고에 있는 바즈라’를 원합니다.”

검의 자아는 이미 세계수가 되어버렸지만, 그 검에 담긴 힘은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론일세. 그대가 주인으로 인정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갖고 가도 좋다네. 그때 주지 못한 걸 이제야 주게 되는군.”

“감사합니다.”

“아닐세. 그대가 할 일에 비하면, 그 어떤 지원도 해 줄 수 있네.”

왕과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알현실을 나온 진은 곧장 왕국의 보물전으로 내려갔다.

고작해야 보물전을 내려가는 길이지만, 진은 자신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걸 체감했다.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대공께선 언제든 보물전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권력이 좋긴 좋아.’

그렇게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며 진은 보물전 안으로 들어갔다.

전처럼 구경하고 이럴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아티팩트 중에 영지에서 제작하지 못할 만한 물건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진은 곧장 봉인되어 있는 천둥의 검, 바즈라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걸 이제야 챙기네.’

[뭐, 예전엔 가져가 봐야 별 쓸모도 없었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통제되지 않는 번개를 어디다 써.’

그럼, 지금은 달라진 게 있을까?

당연히 있다.

번개 그 자체를 이용할 수 있다.

진은 아공간에서 성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책장이 자동으로 펴지더니, 페이지가 촤르륵 넘어가기 시작했다.

[번개 능력이…… 여기 있네.]

이내 진은 천천히 바즈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아마저 사라지고, 그저 번개만 가득할 뿐이니 전보다 더 위험했지만.

‘오. 생각대로 되는데?’

초능력을 활성화한 진 앞에선 온순할 뿐이었다.

[엘프들 능력 쪽이 속성 친화력보다 통제력은 더 높은 거 같은데?]

‘정령 소환도 안 되는데, 그런 장점이라도 있어야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진은 검을 손에 넣고 곧장 영지로 돌아왔다. 진은 수고비라 생각하고 챙겼을 뿐이지만.

“성자님께서 천둥의 검의 선택을 받으셨다던데?”

“허허. 정말이지 대단하신 분이야.”

“예전 같았으면 믿지 않았겠지만, 이젠 성자님이 하셨다면 무조건 믿어진다니까!”

“이 사람아, 이젠 대공님이라 불러야지!”

“성자 대공님?”

진이 ‘바즈라’를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축제 중인 왕국 곳곳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축제를 만들어 주신 폐하와 대공님을 위해 건배하세!”

“천둥의 검의 선택을 받으신 대공님을 위하여!”

“축제를 열어 주신 국왕님을 위하여!”

왕과 진을 칭송하는 건배 소리가 왕국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물론, 진은 영지에 있어서 듣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 * *

진의 영지는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곳은 축제가 연신 열리며, 흥청망청 지냈지만.

진의 영지는 대장간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일하고 있었다.

“남들 쉴 때 일해야 돈을 버는 법이다! 일해라!”

“축제 물건 공급 끝났어!?”

“이번에 단단히 한몫 챙겨야 한다고!”

“이런 대목을 놓칠 순 없지!”

“골드 벌고 죽은 놈이 때깔도 고운 법이야!”

“보스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일해라! 이 게으름뱅이들아!”

“보스께서 일하시는데, 노는 놈은 없겠지!?”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물든 드워프들은 축제를 통해 막대한 골드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더 많은 골드를 위해서!

이들인 벌어들인 골드는 진의 주머니 속으로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이렇게 쌓인 골드는 세상을 구하는 데 부족한 시간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바로 지금처럼.

[이야. 대공 파워가 좋긴 좋네? 마탑에서 곧장 판매 이야기가 나왔어.]

‘귀한 거야?’

[귀하지. 원래라면, 마탑 쪽 부탁도 몇 개 들어줘야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니까.]

‘대박인데?’

[뭐, 그만큼 많은 골드가 들어가긴 했어. 그것도 어마어마한 골드가.]

‘됐어. 귀찮음과 시간을 절약한 게 더 이득이야.’

뭘 구매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로써 시간이 크게 절약됐다.

‘그럼 이제 바로 작업할 수 있는 거야?’

[어. 잠깐만 기다려. 바즈라부터 준비하고.]

마탑에서 뭔가 특수한 걸 구매한 이유는 왕궁에서 가져온 ‘바즈라’때문이었다.

녀석은 커다란 비커 하나를 가져왔다. 거기엔 은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바즈라는?’

[저거야.]

‘어?’

[바로 녹여 버렸지. 네가 칼을 쓸 것도 아니잖아?]

‘……있어도 괜찮지 않아? 검성도 있고 여태 꿈속에서 자동 훈련 돌린 것도 있는데.’

준비 과정이 요란하다 싶었더니, 애초에 로메른은 바즈라를 검 형태로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아니야. 안에 담긴 힘이 특별한 거지 검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야. 바즈라 보다 좋은 검이 창고에 쌓여 있어.]

천둥의 검, 바즈라.

왕국 보물전에 봉인된 귀물.

그 대단한 보물도 로메른에겐 그저 재료일 뿐이었다. 그때 로메른 옆에 있던 검성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내가 쓸 칼은 진작에 만들어 아공간에 넣어 뒀다네. 확실히 드워프제가 좋더군.]

‘아 그래? 그렇다면야 뭐…….’

검성과 잠깐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로메른과 현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비커에 담긴 바즈라에 뭔가를 첨가하고, 마법을 걸더니.

[진. 가만히 있어!]

비커에 있는 액체 바즈라가 진에게 날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진의 가슴팍에 있는 드래곤 하트에 다가와 금빛 테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슴 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더니.

[됐어!]

-잘 정착한 거 같은데?

[어. 나쁘지 않네.]

-드래곤 하트에 눌려 강제로 안정화가 됐고…….

[출력도 올라갔지.]

뚝딱하고 완성됐다.

물론, 그건 진의 감상일 뿐.

현자와 로메른은 연구 성공에 뿌듯함을 느끼며 진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진, 시험해 봐.]

‘어. 잠깐만.’

진은 곧장 성서를 꺼내 가슴팍에 자리를 잡은 번개의 힘을 꺼냈다.

드래곤 하트와 바즈라가 공명하며, 전보다 훨씬 파괴적인 번개가 진의 손짓에 움직였다.

‘제우스라도 된 기분이네.’

진이 번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 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이러면 준비는 끝이야.]

‘준비?’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거든.]

‘……벌써?’

생각보다 엄청 빨랐다.

[분류 작업이 문제였는데, 왕이 이미 끝내 놔서 우리야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어.]

‘어. 음. 그렇구나.’

진이 떨떠름하게 대답할수록 로메른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메른은 지도를 가져와 한쪽을 가리켰다.

[빨간색 부분은 볼 필요 없어. 우리가 볼 건 검은색 지역들이야.]

녀석은 이내 한쪽을 가리켰다.

[우선 이쪽부터 공략하는 게 어때? 여길 시작점으로 삼자.]

로메른이 가리킨 곳은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다.

‘성왕국?’

[맞아. 위치도 적당하고 시작으론 나쁘지 않지 않아?]

‘……아, 성왕국은 좀.’

제격은 무슨.

최악이었다.

성왕국은 종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였는데, 당연히 진이 몸담은 교단의 종교는 아니었다.

애초에 극도로 권력을 경계하는 교단이 국가 건설을 추진했을 리 없었다.

‘말이 성왕국이지. 쓰레기통이나 마찬가지잖아.’

권력을 탐하는 괴물이 된 사제들. 그런 부패하고 타락한 사제들의 국가다.

‘이교도들로 몰려서 죽지 않은 게 용하다니까, 진짜.’

[이쪽도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있는 종교인 데다가, 교단과 성왕국의 ‘약속’이 있으니까.]

성왕국과 교단. 둘 모두가 신실했을 때 맺은 약속 덕에 교단은 성왕국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런 성왕국을 가자는 거야?’

[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어? 사이즈도 여기가 제일 작잖아.]

도시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는 성 왕국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지역 중에 가장 작은 ‘나라’였다.

‘그건 그렇긴 한데.’

[여길 시작으로 쭉쭉 뻗어 가는 거야.]

‘흐음. 방법은?’

로메른은 진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가자며. 방법은? 왜 말이 없어.’

[……시간이 없어서 거기까진 생각 못했어. 솔직히 나 진짜 바빴던 거 알잖아.]

‘그러니까 지금 방법은 알아서 해라? 그 말인 거지?’

[흠흠. 같이 구상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진짜냐는 듯 진이 바라보자, 녀석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물론 같이 구상하면 내가 하던 일을 전부 멈춰야겠지만, 뭐 이게 더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

아니. 저놈은 같이 구상할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진이 냉기 풀풀 풍기는 눈으로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은…….

[부탁한다. 진! 내가 믿는 거 알지?]

그 말을 남기고 지하로 사라졌다.

-진. 괜찮아?

현자가 걱정된다는 듯 진에게 말했지만, 의외로 진은 화내지 않았다.

‘내 맘대로 하라 이거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진?

‘혼돈! 파괴! 망각!’

-아, 아니. 그렇게 맘대로 하라는 건 아니지 않을까?!

‘최대한 빨리 끝낸다.’

-진? 그게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진! 야!

진의 귓가엔 현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진의 두뇌는 풀가동 중이었다.

* * *

과거 성왕국과 교단은 긴밀했다.

종교인의 이상은 무릇 비슷한 법이었고, 서로를 신을 존중했다.

교단은 ‘빛’을 섬겼고.

성왕국은 ‘하늘’을 섬겼다.

하지만, 이 둘은 어느새 너무나 달라졌다.

작은 관점의 차이였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평화롭게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둘은 다른 답을 내렸다.

교단은 교단 내부에서 답을 찾았다.

그들은 더욱 신실한 사제를 양성하고, 내보내야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

성왕국은 전혀 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들은 외부에서 답을 찾았다. 세상이 이런 건 불합리한 국가와 시스템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를 세웠다.

그 뒤로 둘은 전혀 다르게 변했다. 교단은 극단적으로 신실해졌으며, 성왕국은 극단적으로 타락했다.

이렇게나 달라진 성왕국과 교단은 여전히 하나로 묶여 비교되곤 한다.

그런 성왕국에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신실한 교단에게 신께선 성자를 내리셨다. 그렇다면, 타락한 성왕국엔 신께서 무엇을 내리실까?”

그저 교단과 성왕국을 비교하는 듯한 이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묘한 결론이 나왔다.

“천벌. 성왕국엔 천벌이 도래할 것이다.”

예언이자 저주처럼 퍼지던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콰과과광-!

더는 그 이야기를 비웃지 못했다.

정말로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진 것이다.

콰과과과광-!

부패한 사제이며, 귀족인 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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