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퀘스트 창
진은 퀘스트에 관해 현자에게 설명했다.
녀석은 잘 이해가 안 되는지 중간중간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진은 녀석을 이해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나름대로 체계적인데?
‘그러니까 이 녀석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만큼 세력을 꾸렸겠지.’
오랜 세월 수많은 퀘스트를 통해 야금야금 이득을 취해 지금의 지식의 행방을 만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근데, 이 퀘스트의 보상이 좀 애매해.’
-애매하다고?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얻을 게 뭔지 알려주는데?
현자가 퀘스트에 관해 대충 이해했다고 해도 진이 알고 있는 걸 모두 이해한 건 아니었다.
사실상 이 퀘스트는 일종의 ‘게임 시스템’에 가까웠다.
‘자고로 퀘스트라고 하면, 막대한 보상 같은 걸 줘야 하는 법이거든. 예를 들면 강제로 경지를 올려 준다거나. 마법을 알려 준다거나. 이런 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이해가 잘되지 않는데?
‘아 물론, 내가 아는 퀘스트가 그렇다는 거야. 원래 이 퀘스트란 건 일종의 놀이에서 등장하는 요소니까.’
-놀이라…….
현자는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민에 빠졌지만,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하여간, 이건 좋은 소식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퀘스트가 애매하다는 건, 우리가 상대할 적이 그만큼 상정 외의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소리니까.’
-아 그것도 그렇네. 이 녀석의 퀘스트란 걸 보면 사실상 ‘임무’에 가까우니까.
그 말대로였다. 이 녀석들의 퀘스트는 ‘게임’보다는 ‘현실’에 가까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얻어야 할지 알려 주지만, 그건 온전히 ‘현실’의 영역이었다.
퀘스트를 수행한다고 해서, 막대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까지 정리가 끝나자, 진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럼, 우리가 생각해 볼 건 다른 거야.’
-어떤 거?
‘대체 어떤 녀석이 한 짓일까?’
지구인을 소환하고, 퀘스트로 가이드라인까지 그려 준 녀석은 대체 누구일까.
-흠. 일단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한다는 것부터가 인간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었어.
‘그래? 어려운 거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워프의 난이도가 1이라면, 차원 이동은 1억 정도 될 것 같은데?
그 아득한 차이만큼 난이도는 급상승한다는 뜻이었다.
현자의 비유가 확 와닿진 않았지만, 진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인간이 차원 이동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지?’
-어. 그건 확언할 수 있어.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인간이 아니라면 누굴까? 드래곤은 가능할까?’
-드래곤이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 않아? 게다가, 지금은 안식 중이라며?
‘그것도 그렇네. 그럼 누굴까?’
-모르겠어. 너도 알겠지만, 우리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야. 하다못해 용인족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에라이. 답도 안 나오는 걸 고민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여기선 생각을 전환해야 했다.
누가 이런 짓을 꾸몄는지는 꼭 알 필요는 없었다.
‘좀 발전적인 생각을 해 보자.’
-어떤 거?
‘지구인을 소환해서, 이런 일을 꾸몄다. 여기까지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
-……확실히 그렇네. 타차원의 존재를 소환할 존재라면, 직접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현자의 말대로였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직접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맞지?’
-어. 그런 거 같아.
어째서 못 움직이고, 지구인을 데려왔는지 진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까놓고 말하면, 이런 일이 가능한 존재가 직접 움직인다면 어차피 우리한테 방법은 없잖아.’
-맞아.
‘그러니까, 방법이 없는 문제는 일단 제외해 두자.’
현자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나마 좋은 소식은 지식의 내가 소환된 직후부터 새로운 신입은 추가되지 않았다는 거야.’
-더는 소환되지 않는 걸까?
‘모르지. 그래도, 일단은 멈춘 상황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이러면 우리가 할 일이 명확해져.’
누가 소환했는지 정체를 밝히고, 의문을 탐구하는 일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소환된 지구인을 쓸어버리고, 앞으로 소환되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그 말을 듣던 현자가 진을 빤히 바라봤다.
-진. 괜찮아? 네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몰라.
그 말에 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회귀 전에 나랑 지낼 때 내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 있어?’
-그건 아니지만, 후회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후회하지 않게 편안한 인생을 보장해 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진.
현자는 복잡한 눈으로 진을 바라봤다. 녀석에게서 걱정과 배려 같은 다양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또 혼자 오버하지 마. 난 진짜 괜찮으니까.’
-진짜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이미 행복하게 살 준비가 끝났는데, 내가 가긴 어딜 가. 지구를 왜 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현자는 진이 애써 밝은 척한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그립지만, 그게 옳지 않으니 이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개똥같은 소리 그만해. 난 무조건 여기 눌러 살 거니까. 지구로 보낸다고 해도 안 갈 거야.’
노후 준비는 물론이고, 날먹 라이프까지 준비가 다 되어 가는데 이제 와서 지구로!?
절대 못 가지!
-…….
한데, 현자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복잡한 감성이 섞인 눈으로 진을 바라봤다.
‘아 진짜! 아니라니까!’
-넌 정말 좋은 녀석이야.
‘아, 또 뭐라는 거야!’
* * *
현자와 한참 투덕거리다가, 일단 그 화제에서 벗어났다.
‘이거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겠어.’
-도움?
‘어. 이 퀘스트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아깝지 않아?’
저 퀘스트를 진이 얻을 수만 있다면, 적의 계획을 훔쳐볼 찬스였다.
당연히 무조건 얻어야 했다.
-로메른 불러올까?
‘어. 기억 쪽 정리는 끝났으니까 이제 슬슬 불러와도 될 거 같은데?’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자는 로메른을 데리고 왔다.
[이쪽은 너희끼리 처리하는 거 아니었어?]
불퉁한 표정을 보니, 뭔가 작업을 하다가 끌려온 것 같았다.
‘재밌는 게 있어서 불렀어.’
진은 퀘스트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현자와는 달리, 로메른은 한 방에 이해했다.
[호오. 원거리 임무 전달이 가능하다 이거야?]
‘그렇지.’
[목표와 달성 조건도 알 수 있고?]
‘어. 바로 그거야.’
현자와는 달리, 로메른은 핵심을 바로 이해했다.
[확실히 이건 재밌겠는데? 제작자는?]
‘몰라. 일단 제쳐 뒀어.’
[하긴. 이게 가능할 정도면…… 나도 모르겠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로메른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데?]
‘이거 내가 사용할 수 없을까?’
[오. 재밌는 발상인데?]
녀석은 별다른 질문 없이 곧장 지부장의 몸을 확인했다.
[이런 종류의 마법은 보통 영혼이나 육체에 각인하기 마련인데…….]
지부장의 육체가 갈라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로메른의 거침없는 손길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밖으로 드러났다.
[……이건 뭐지?]
‘뭐가 있어?’
[무언가 각인되어 있긴 한데, 뭔가 이상해. 마법도 아니고, 주술도 아니야. 그렇다고 성법인 것도 아니고.]
로메른은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현자를 불렀다.
[이것 좀 봐 봐. 이쪽 지식은 네가 좀 더 있잖아.]
-잠깐만.
로메른과 현자는 곧장 토론을 시작했다.
-룬어 쪽 같은데?
[룬어라고 하기엔 이쪽이 이상하지 않아? 너무 이상한데?]
-아니 잘 봐. 고대의 룬어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걸 아직도 쓰는 머저리가 있다고?]
-머저리는 아니지. 이쪽도 나름의 장점이 있어. 우리가 회귀할 때도 부족한 부분은 룬어로 채웠잖아.
대화 대부분은 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거 부족한 데?]
-영혼에도 각인한다고 하지 않았어? 영혼 쪽에 확인해 봤어?
[오! 이거 재밌네. 육체 쪽이 활성화되어야 영혼 쪽이 활성화되는 건가?]
-그것보다는 육체와 영혼을 겹쳐서 각인한 거 같지 않아?
녀석들은 단서를 잡고,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 이걸 사용하려면…… 이걸 그대로 구현해야 하나?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로메른이 손을 움직이자, 기절한 지부장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 떨어져 나왔다.
육체 일부와 영혼의 일부.
[통째로 도려내서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무식한 방법을.
[무식이라니. 이건 효율적이라고 하는 거야.]
안 그래도 기괴하게 변한 지부장의 육체였는데, 거기서 떨어져 나온 덩어리는 더 끔찍했다.
‘그걸 쓰라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봐.]
로메른은 안쪽으로 날아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반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성령을 담으려고 만든 건데, 이걸 이렇게 하면…….]
곧이어 허공에 떠 있는 덩어리와 영혼이 반지에 빨려 들어갔다.
반지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야! 모양!’
진이 황급히 소리치자, 로메른이 웃음을 터트리며 모양을 다잡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해 보이는 금반지로 변했다.
[완성이야.]
‘아 뭔가 만들어지는 걸 봐서 그런가, 찝찝한데?’
[걱정하지 마.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거야. 그냥 일반적인 반지라고 생각해도 돼.]
진은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그 반지를 받았다.
[이건 보물이라고 해야 할지, 저주가 담긴 물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로메른은 진에게 반지를 줘 놓고 찝찝한 말을 했다.
‘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각인은 원격 임무만 보여 주는 건 아니야.]
‘그럼?’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어. 거기엔 노화 방지가 걸려 있어.]
‘……아.’
그 말에 진은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지구에서 끌려온 이들은 늙지 않았다.
‘그게 맞을 거야. 이 각인을 가진 자들은 늙어서 죽는 일은 없을걸. 저 지부장도 오랜 시간 늙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늙지 않는 반지.
이건 다른 이들에겐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값진 물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반지는 모든 일이 끝나면 무조건 파괴하자.]
물론, 로메른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눈앞에 누워있는 지부장만 해도 반쯤 맛이 갔다.
‘동의야. 이건 무조건 파괴해 버려야지.’
진도 로메른과 비슷한 관점이었다. 애초에 진은 영생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원할 뿐.
그렇게 결론을 낸 뒤, 진은 지부장을 보며 물었다.
‘저 양반은 생명에 지장 없는 거야?’
[당연하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열심히 사념을 생산해 줄 양반인데 그럼 절대 안 되지.]
그럼, 문제없었다.
진은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
로메른의 말대로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반지의 감촉만 느껴질 뿐.
‘……미친.’
단순히 반지를 끼웠을 뿐인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의 눈에 글자가 보였다.
처음 보는 문자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한 듯 느껴졌다. 읽는 것도 지장이 없었다.
왼쪽 한구석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퀘스트.>
지식의 해방 쪽 움직임을 꿰뚫어볼 퀘스트 창이 진의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