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51화 (151/210)

151. 녀석들의 정체

쿵-! 쿵-! 쿵-!

탭댄스가 이어지는 동안, 그곳에 있던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드래곤이 쏜살같이 날아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드래곤이 마법도 아니고 물리력을 행사하다니.

심지어, 묘한 박자와 함께 경쾌한 듯 울리는 저 소리는 모두의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을 새하얀 빛이 감쌌다.

여전히 몸에 남아 있던 ‘절망과 공포’가 씻겨 나갔고, 몸에 가득한 상처가 치료됐다.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서, 성자님이 오셨다!”

“모두 뒤로 물러선다!”

드래곤 주위에 있던 그들이 빠르게 거리를 벌리고 물러났다. 그렇게 거리를 벌린 뒤, 그들은 다시 드래곤의 모습을 구경했다.

원래라면 부상자를 선별하고 정리를 해야 할 때였지만, 치명상을 입어 죽은 이는 있어도 다친 이는 없었다.

거리도 벌렸고, 진의 성법에 몸과 정신마저 치료되어 여유가 생기자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게 성자님의 고유 성법…….”

드래곤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이단 심문관님의 말씀대로군요.”

“예. 성자님이 계시는데, 저희에게 위험은 없습니다.”

“신앙심으로 하신 말씀인 줄 알았는데, 정말 오실 줄이야…….”

“그게 바로 성자님이십니다.”

이단 심문관이 대체 무슨 말은 한 건진 모르겠지만, 진이 온 것을 납득하는 이들부터.

“흠흠. 진 세인트 남작님은 성자기도 하시지만, 감찰부이시기도 합니다.”

“그 말씀 또한 맞습니다. 이 일은 단순히 이단 심문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자인 진이 감찰부라고 못 박는 이들도 있었고.

“허허. 마법의 종주이신 드래곤께서 저런 방법으로 제압하실 줄이야.”

“마법을 사용할 가치가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과연!”

드래곤을 호기심 가득 바라보는 이들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물론, 이야기의 끝은 하나로 귀결됐다.

“성자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맞습니다. 저분께서 없으셨다면 이 일은 모두 실패했을 겁니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애초에 찾지도 못했을 테니…… 이리도 많을 줄이야.”

“게다가 아까 들으셨잖습니까? 미완성이라던 그 말을…… 이리 빨리 찾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정말이지 성자님이 왕국에 계신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 아닌가 합니다.”

“맞습니다.”

모두 진을 칭송하며, 존경의 눈빛을 담아 바라봤다.

그걸 진이 모를 리 없었다.

‘이거지.’

이것 때문에 진이 굳이 등장한 것이다. 피해는 최소화하며, 알짜배기는 쏙 빼먹을 수 있었으니까.

진은 그들의 칭송을 배경 음악 삼아 발밑에 깔린 녀석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만났네?”

진은 녀석을 한껏 도발할 생각으로 최대한 상큼하게 인사를 던졌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만나 볼 걸 그랬군.”

녀석은 진의 도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진과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녀석의 상황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지만.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몸은 거의 반쯤은 곤죽이 되어 있었다.

“오. 여유롭네?”

“여유라…… 비슷하다. 그저 끝이 다다랐음을 깨달았을 뿐이니.”

죽음을 받아들인 녀석의 모습이 진이 보기엔 눈꼴사나웠다.

사람을 그렇게 고생시켜 놓고 이제 와 멋대로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내가 널 이렇게 쉽게 죽일 거 같아? 네 죗값을 받아 낼 거야.”

“그 지하 시설 말인가?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있다는 건 듣긴 했지.”

정보가 새어 나갔다.

아니. 새어 나갈 구석은 없다.

지옥은 특급 관리가 되며, 드워프와 노움, 엘프들의 관리를 받는다. 배신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다면…….

‘정보를 얻는 능력을 갖고 있는 자가 지식의 해방 내부에 있는 건가?’

[아마 그런 거 같아. 방법은 잘 감이 안 오지만.]

이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곳에 무엇을 만들어 놨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나름의 여흥이 되겠지.”

녀석은 진을 도발하듯 말했다.

물론, 진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녀석이 한껏 객기를 부려 봐야 진이 녀석을 잡았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여흥 정도가 아닐걸? 넌 지옥으로 끌려가는 거야. 아니.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곳으로.”

“그 또한 좋다. 드디어 이 지겹고 긴 타지의 삶이 끝날 테니.”

“말했잖아. 내 손에 잡힌 이상 끝은 없어. 죽음으로 도피할 생각하지 마. 그 죗값은 살아서 전부 받아 낼 테니까.”

“하. 죗값? 이 저주받은 세상에 오히려 내가 죗값을 받아야 할 처지다.”

녀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진이 보기엔 녀석의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은 그걸 칼같이 잘라 냈다.

“어쭙잖은 신세 한탄할 거면 말도 하지 마. 네가 왜 지식의 해방에 들어갔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까.”

싸구려 신파극은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녀석은 자신의 할 말을 계속 늘어놨다.

“그건 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지.”

“몇 살이나 먹었다고, 꼴값 떨고 있네! 진짜.”

“하하. 나는 네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이곳에 끌려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포기했다.”

끌려왔다? 어디서?

그런 의문이 진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포기하고 나니, 그제야 재밌어지더군. 돌아가길 포기하고, 다시 만나길 포기하고, 모두를 포기하니까.”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진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타깝군. 내 이야기를 성자 넌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녀석은 그렇게 자기 혼자 떠든 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데, 난 이 세상에 푹 젖어 버렸다.”

묘한 말을 했다.

이 말이 묘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이 구절을 진이 들어본 적 있었으니까.

“헤밍웨이?”

지구의 소설 ‘노인과 바다’속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진의 말에 녀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넌!?”

진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한 사람을 불렀다.

‘현자! 코드 레드!’

-레드!?

현자와 약속한 단어. 코드 레드.

이건 바로 진의 비밀을 뜻했다.

‘이 자식 먹어!’

그 말에 현자는 되묻지도 않고, 발밑에 있는 녀석을 입으로 물고 꿀떡 삼켰다.

지구의 정보를 가진 사람이 ‘진’ 외에도 또 있었다.

* * *

진은 녀석이 가진 정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닫자마자, 곧장 영지로 복귀했다.

당연히, 뒷정리는 다른 이들에게 전부 짬 때렸다.

“이번에 너무 많은 힘을 써서, 사실상 운신이 힘든 상태입니다. 뒷일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법을 쓰며 피를 토하고, 힘든 척을 팍팍했던 보람이 있었다.

이런 진의 행동은 쓸데없는 오해를 사게 됐다.

“가장 큰 공을 세우신 분이 깔끔하게 물러서시다니.”

“정말 무욕하십니다. 아니. 그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큰 그림이요?”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 공을 탐하고 제 욕심을 차리지 말라고 성자님께서 이리 움직이셨을지도 모릅니다.”

“허어. 그런 깊은 뜻이.”

“제1공로자이신 성자님께서 물러서셨으니, 다른 이들이 나서지 못할 겁니다.”

“과연 성자다운 행동입니다!”

진이 들었다면, ‘개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했겠지만, 다행히 진이 없었다.

덕분에, 성자의 이름값이 한껏 드높아졌다. 게다가 이름값이 드높아진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진 세인트 남작을 위해 왕국에 없던 새로운 작위를 만들겠다.”

“예! 폐하!”

원래라면 귀족들이 들고일어날 만한 일이었지만, 이젠 그럴 수 있는 귀족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진 세인트 남작에게 대공의 자리를 내릴 생각이다.”

대공. 공작보다 높으며 소국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의 작위.

“이종족을 비롯한 모든 이면 연합의 대표로 대공의 자리를 내릴 것이다.”

이 파격적인 작위 수여에 충신들이 움직였다.

“그것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이 조언이 어떤 의미인진 왕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러니 단승 작위로 내릴 생각이다.”

후계에게 물려줄 수 없는 단승 대공.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작위였지만.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임명식을 준비해 보도록. 특히 타국에 이 소식을 어찌 알릴지 생각해 보아라.”

왕의 말이 무슨 말을 뜻하는지 모든 신하가 눈치 챘다.

성자가 ‘왕국의 대공’이라는 걸 온 세상에 공표하란 뜻이었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왕은 진에게 모든 것을 베팅한 것이다.

그렇게 왕궁에선 한창 난리가 났을 때.

진은 영지의 지하에서 현자와 함께 지식의 해방 지부장의 기억을 뜯어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들 자기 할 일 바쁘지 뭐. 관심도 없던데? 내가 대신 간다니까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진짜 쿨한 녀석들이었다.

로메른과 루나, 심지어 검성까지 진과 현자에게 지부장을 짬 때린 것이다.

‘이게 청출어람인가.’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를 보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아니지. 오히려 다행인가.’

-난 이거 어떻게 설명할지 감도 안 와.

‘하긴 나도 그래.’

다른 정령들이 오지 않은 덕분에 복잡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여기 집중하자.’

-알겠어. 뭐 특별한 거 있어?

특별한 거?

아주 많았다.

‘지구 쪽 정보는 궁금한 거 없지?’

-들어도 모르는데, 당연히 없지. 게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 남자가 미국인이었으며, 변호사였던 건 현자 말대로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다음이었다.

‘지구에 살던 이 양반이 어느 날 이 대륙에 떨어진 거야.’

-갑자기?

‘어.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이 대륙으로 뿅 하고 온 거야.’

-뭔가 이상한데? 지구에서 이곳을 그냥 온다는 게 말이 돼?

현자의 말이 맞았다.

‘맞아. 재밌는 건 그다음이야.’

-뭔데?

‘지구인들을 데려온 존재가 있어.’

-대체 누구였어?

‘몰라.’

-뭐?

존재가 있다고 하고, 곧장 모른다고 대답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직접 본 건 아니야.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고. 그저, 이들에게 길을 알려줬을 뿐이야.’

-길?

‘세상을 멸망시키면 지구로 돌려보내 준다고 퀘스트를 줬어.’

-퀘스트? 임무를 말하는 거야?

‘어 그거야.’

납치당하듯 이곳에 끌려온 것도 모자라, 세계를 멸망시키라는 임무까지 받은 이들.

-……그럼, 이자들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거야?

‘그렇겠지. 뭐, 다들 그 이유 때문에 싸우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진이 잡은 녀석만 해도, 지구로 되돌아간다는 목표를 포기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대로 정말 오래됐다.

이들은 이곳에 떨어져 나이도 먹지 않고, 늙지도 않았다.

‘뭐, 돌아가려는 의지가 확고한 이들도 있는 거 같아. 최상부. 그쪽엔 다들 돌아갈 생각인 거 같아.’

-몇 명이나 있는 건데?

‘정확한 수까진 이 양반도 모르는 거 같더라고, 다만 한 가지. 원래 도착해야 할 신입이 오지 않았대.’

-신입?

‘어. 주기별로 신입이 계속 도착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끊겼어. 진짜 재밌는 건 지금부터야.’

-설마…….

현자는 진이 할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어. 그 신입이 오기로 했던 때가 바로 내가 네 몸에 들어갔을 때야.’

다시 말하면, 새로 올 신입이 바로 ‘진’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신입이 안 온 거야?

‘어. 아마 나 때부터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그건 다행이네.

녀석의 말대로 그건 다행이었다.

앞으로 신입이 안 온다는 소리니, 지금 있는 녀석들만 쓸어버리면 끝이란 뜻이었으니까.

‘아. 아까 내가 퀘스트란 말을 했지?’

-어. 임무 비슷한 거라며.

‘이놈들 재밌는 시스템을 이용하더라고.’

-재밌는 시스템?

‘어. 임무를 받는 퀘스트 창이 있더라고.’

-퀘스트 창? 그게 뭔데?

뭐긴 뭐야.

바로 우리가 쫓아야 할 ‘단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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