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잡았다 요놈
빅브라더의 효과는 굉장했다.
-의심스러운 정황 발견.
-은신처 발견.
-마법진의 흔적 발견.
-숨겨진 공간 발견.
-위장 마을 발견.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현자)에서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보는 진의 정보 단체의 세이라와 얀드레에게 전해졌고, 확인과 검증을 거쳐 구체화시켰다.
고작 며칠 만에 꼭꼭 숨어 있던 녀석들의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진은 이 정보를 가지고, 곧장 지식의 해방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 정보는 이렇게 소진하기엔 아까웠다.
그 대신 판을 키웠다.
교황청 알현실.
진과 폴카가 교황을 알현하고 있었다.
“이리 갑자기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분의 계시를 받고 급히 오게 되었습니다.”
“계시를 받으셨습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계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혹, 옆에 계신 분도 계시를 받으신 것과 연관이 있으신 겁니까?”
교황은 옆에 있는 폴카를 가리켰다.
“그건 아닙니다. 이분은 다른 이유 때문에 잠시 머물고 계십니다.”
“다른 이유라면…….”
교황의 얼굴엔 미약한 경계심이 떠올랐다. 교황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가, 폴카의 힘을 모를 리 없었다.
“제 고유 성법 때문입니다.”
“허어.”
그제야 교황은 진의 곁에 있는 이가 드래곤과 연관된 자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진과 교황의 대화를 듣고 있던 폴카가 앞으로 나섰다.
“전 폴카. 그분들을 모시는 자입니다. 성자께서 그분들을 소환하신다는 말을 듣고, 확인차 나왔습니다.”
“그 확인은 잘 끝나셨습니까?”
“예. 성자님께서 협조해 주신 덕분에,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허.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그분들을 비롯해 그분들을 모시는 저도 세상엔 드러나선 안 됩니다. 오늘의 만남을 잊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성자께 해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만남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겁니다.”
“교황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 대화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교황은 진과 폴카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자님과 드래곤은 연계하고 있구나.’
그런 드래곤과 연계한다는 건 지식의 해방이 그만큼 위험하단 뜻이 되니까.
폴카는 일종의 간판이었다.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괜히 그녀가 특급 호구인 게 아니었다.
“어떤 계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교황은 폴카의 정체를 확인한 뒤, 곧장 ‘계시’에 관해 물었다.
“어둠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뜬구름 잡는 진의 말을 교황은 한 방에 이해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숨어 있는 지식의 해방을 찾을 수 있단 말이십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교황청에서 드릴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이단 심문관 소집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전부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빠져도 괜찮습니다. 지금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이들을 모아 주시면 됩니다.”
“소집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진에게 필요한 건, 이단 심문관들이었다.
그들의 ‘성법’이 필요했다.
* * *
고작해야 반나절 만에 대륙에 흩어져 있던 이단 심문관들이 교황청으로 모였다.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이리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지만, 대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영광이라는 듯 모두가 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서신으로 이곳에 모인 이유는 확인하셨을 겁니다. 전 계시를 받았으며, 그 계시는 여러분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진의 말에 이단 심문관들에서 묘한 열기가 퍼져 나왔다.
신의 계시를 구현한다는 건, 사제라면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이미 지식의 해방이 적이며 이단인 것을 신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단이며, 세상에 독을 뿌리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물론, 신은 그런 말을 한 적 없었다.
진이 약간의 조작을 통해 적으로 만들고 이단으로 몰았을 뿐이다.
하지만, 교단에선 그게 진실이다.
“그런 이단을 찾는 일은 여러분이 최고입니다. 아니. 오직 여러분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제게 힘을 빌려주시겠습니까? 계시를 이뤄, 어둠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때, 가장 앞에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모든 이단 심문관은 성자님의 명을 기다립니다.”
추기경의 자리를 거부하고, 이단 심문관으로 남은 모든 이단 심문관들의 대장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징표’ 성법을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이단 심문관들이 추적을 위해 만든 성법, ‘징표’.
이 징표는 그들의 시야에 보이는 이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이 있지만, 질문을 던지는 이단 심문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서 성법을 사용할 뿐이었다.
한데, 성법이 사용됐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신성력도, 마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징표를 볼 수 있는 건, 오직 이단 심문관뿐이다.
“그 상태로 유지해 주세요.”
진은 그렇게 말한 뒤 손을 뻗었다. 그 손끝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피 위로, 로메른의 빛의 힘이 쏟아지고 드래곤 하트가 움직였다. 그렇게 루나의 ‘고유 성법’이 발동됐다.
“여러분의 징표를 빌리겠습니다.”
진의 손이 움직이자, 이단 심문관들이 사용한 징표가 따라 움직였다. 이번만큼은 이단 심문관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법이 자신의 통제를 떠나 성자의 통제를 받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이적에 놀랐던 것도 잠시.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단순히 통제를 넘어 그들이 만든 징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성자는 모든 성법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지휘하고 있었다.
‘이것이 성자님의 힘…….’
모든 성법의 주인처럼 느껴졌다.
그때, 진이 입을 열었다.
“어둠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자 그 징표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단 심문관들은 묘한 감각과 함께 징표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느껴졌다.
그건…… 빛의 비였다.
왕국 곳곳에 징표가 떨어졌다.
그들의 눈이 닿지 않은 수많은 곳으로 징표가 내리쳤다.
징표가 찍힌 이들은 그 무엇도 느끼지 못했지만, 이단 심문관들에겐 똑똑히 느껴졌다.
지식의 해방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누가 지식의 해방인지 그 모든 것들이.
“왕국의 내린 어둠을 걷어 낼 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진의 모습은 처참했다.
손끝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비 오듯 흘린 땀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단 심문관들은 교단에 떠도는 소문이 떠올랐다.
‘성자는 때때로 생명을 바쳐 기적을 행한다.’
이 기적을 위해서 성자는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을까.
암담하며 감도 오지 않았다.
그 숭고한 희생에 이단 심문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성자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모든 이단 심문관들이여! 이단을 섬멸하라!”
성자가 열어 준 길대로 움직일 뿐.
교황청에 모여 있던 이단 심문관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자와 신을 위해!
* * *
진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교단’만이 아니었다.
이단 심문관은 시작일 뿐이었다.
왕국을 지키기 위해 감찰부와 국왕의 기사들이 움직이자 국왕의 눈치를 보는 귀족들이 움직였다.
복수를 기약하던 어둠의 주민들과 이면의 주민들이 움직였다.
명예를 되찾기 위해 마탑과 흑탑이 움직였다.
왕국의 모든 힘이 모여, 지식의 해방을 공격했다. 당연히 여기엔 진의 부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에 미친 말릭은 위험한 곳만 골라서 다니고 있었고, 노바와 아이들은 이면의 주민들을 이끌었다.
덕분에, 진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역시, 싸움 구경이 꿀잼이야.’
그저 드래곤의 등 위에 누워, 드론이 전해 주는 정보만 보면 될 뿐이었다.
‘그나저나 맨날 같이 다니다 혼자 있으려니까…….’
드래곤의 등 위에는 진 혼자뿐이었다. 맨날 함께하던 ‘폴카’가 빠져 있었다.
‘더 편해. 아주 좋아. 휴식은 혼자 해야 진짜 휴식이지.’
폴카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지식의 해방 토벌에 참석한 상태였다. 진이 그녀를 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쁜 거 많이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해 줘야 하는데…….’
[골라서 보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충격받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너한테나 ‘애’지. 100살이 넘은 용인족이야.]
‘하긴.’
로메른의 말대로였다.
그녀가 충격받을 건 걱정할 필요 없었다. 자신보다 오래 산 애를 걱정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슬슬 끝나 가는 거 같네?’
[당연하지. 얘들이 위험한 건 숨어 있을 때지 드러난 이상 그리 위험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위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제법 위협적인 건 몇 개 있었잖아?’
[아. 그건 그렇지. 미완성이라지만 전투형 키메라가 나왔을 줄은 몰랐지.]
‘어. 맞네. 그때 깜짝 놀랐지.’
물론, 깜짝 놀랐을 뿐 쉽게 제압됐다. 미니 드래곤은 단순히 감시용이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초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쪽 잘 폐쇄됐지?’
[어. 바로 폐쇄했지. 피해도 전혀 없기도 했고.]
키메라 공장은 미니 드래곤을 집어넣고, 바로 터트려 버렸다.
덕분에 가루마저 남지 않을 정도로 산화했다.
‘지식의 해방 입장에선 속이 탔겠지.’
[속이 탄 정도야? 계획이 그대로 폭파됐는데? 나였으면 혈압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진과 로메른은 상황을 지켜봤다.
한참을 지켜보던 진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이거 조금 위험한 거 같은데?’
[뭐가?]
‘우리 등장 타이밍…… 없는 거 아니야?’
너무 수월하게 처리가 돼서 진이 등장할 타이밍이 없을 거 같은 게 문제였다.
‘아. 키메라 공장에서 등장했어야 했나?’
클라이맥스에는 등장해 줘야 맛이 사는 법인데, 이대로라면 기회조차 없을 거 같았다.
[기다려 봐. 이대로 무너질 놈들이 아니야.]
그런 로메른의 말처럼 미니 드래곤의 카메라에 무언가 잡히기 시작했다.
끔찍한 형상을 한 ‘무언가’.
기괴하게 뒤틀리고 변화한 육체.
그 녀석이 주위를 휩쓸고 있었다. 기사들이 분쇄되고,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미완성인 게 아쉽군.
끔찍한 모습을 한 주제에 이성은 또 멀쩡해 보였다.
-배신자인가, 아니면 성자인가. 뭐, 무엇이든 상관없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녀석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체 저 자식의 목적이 무엇일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마 저 녀석이 대장 같은데?]
‘지식의 해방 우두머리?’
[아니야. 지금까지 모은 정보에 따르면 녀석은 ‘지부장’일 뿐이야.]
‘잠깐만. 왕국에 있는 지식의 해방을 쓸어 버려도 끝이 아니란 거야?’
[어. 당연한 거 아니야? 세계의 멸망인데 왕국에서 끝날 리 없잖아.]
그러자 진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에라이. 끝인 줄 알았더니.’
진은 그렇게 투덜거린 뒤.
‘가자.’
그 지부장을 가리켰다.
진의 손짓에 따라 드래곤이 쏜살같이 날아 지부장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결과.
콰직!
지부장은 드래곤의 발에 밟혔다.
마나도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압도적인 질량으로 밟아 줄 뿐.
“이게 무슨!”
드래곤의 발 아래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건 진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아직 떠드네! 더 밟아.’
쿵-!
쿵-!
쿵-!
드래곤은 제자리에서 탭댄스를 출 뿐이었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모두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잡았다. 요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