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용이 된다
전설의 존재, 드래곤.
드래곤이 전설의 존재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드래곤에 관한 기록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드래곤 본으로 만든 무구가 남아 있는데, 어떻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기록들은 저희가 소각한 거예요.”
“용인족이?”
“예. 그분들께선 자신들의 존재가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하셨어요.”
“그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드래곤은 절대자나 마찬가지다.
그런 이들이 있으면, 대륙에 이 난리가 났을까?
진이 보기엔 아니었다. 물론, 이런 진의 생각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일 뿐이었다.
“그분들이 계셨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혼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 눈치가 보일 테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분들이 지키는 건 세상 그 자체일 뿐, 인간들의 다툼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에요.”
진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진 님은 개미들의 영역 다툼에 선악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히려 개미들의 영역 다툼에 개입하는 건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에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드래곤에게 인간은 그저 세상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게 진에게 나쁜 일일까?
그건 그렇지 않았다.
“역시 현명하신 분들이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드래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보다, 쥐 죽은 듯 살아 주는 게 진에겐 좋은 일이었다.
“세상의 균형을 위한 선택을 이해하신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해하냐 못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드래곤의 행동이 진에게 쓸모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 법.
“어. 이해했어. 세상 자체가 부서질 위험이 아니면 움직이질 않는 다는걸.”
진에게 이 정보는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오히려, 안전장치가 하나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안전장치인데?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로메른은 이런 진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진짜로 세상이 멸망한 게 아니니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겠지.’
로메른 또한 ‘인간’이라 그런지, 생각이 인간 중심적이었다.
‘진짜 세상이 멸망한 거였어? 아니면 인간이 멸망한 거였어? 이 둘은 커다란 차이가 있어.’
진은 확언할 수 있었다.
로메른이 경험한 멸망은 세상의 멸망이 아니다. 그저, 인간들의 명망이었을 뿐이지.
[아.]
로메른은 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이해됐어?’
[이해했어. 근데…… 이해하니까 더 문젠데?]
‘뭐가?’
[이걸 어떻게 안전장치로 쓰게? 너 설마……!]
그 생각이 맞았다.
‘정 안되면 세상 자체를 멸망시켜 버리는 거야.’
[이 또라이야! 그게 대체 뭔 개소리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멸망시킨다?
로메른이 보기엔 이건 본말전도였다.
하지만 진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 비장의 카드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정하고 잘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그렇게 움직이면 그전에 드래곤이 개입하지 않겠어?’
[그렇긴 하겠지만…….]
‘그때 우린 이렇게 말하면 돼. 아 몰랑! 다 지식의 해방 짓이야. 그럼, 드래곤들이 샤삭 처리해 주는 거지.’
[……이건 미친 계획이야.]
‘원래 최후의 카드는 그런 법이지.’
[개소리를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말하지 좀 마!]
‘냉정하게 생각해 봐. 나쁘지 않지 않아?’
[……아니라고 말 못하는 내 자신이 밉다 미워. 가능할 거 같기도 해.]
대화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진 모르겠지만, 비장의 카드를 얻었으니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진은 한참 돌아온 이야기를 제자리로 돌렸다.
“예!”
“그래서 그분들의 신체 구조는 어떤 방식이야? 기록이 삭제돼서 우리 쪽에선 알 방법이 없어.”
“궤가 다르다고 보시면 돼요. 아예 전혀 다른 구조예요. 그 핵심이 되는 심장부터 시작할게요.”
“알겠어.”
진짜로 얻을 건 따로 있었다.
* * *
폴카의 도움으로 본 드래곤의 개선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진도 놀고 있지 않았다. 로메른과 현자의 말을 해석해주며, 개선에 참여했다.
애초에 정령들의 말을 전해야 했으니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이 이렇게나 열심히 일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이건 못 참지.’
단순히 본 드래곤만 개선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본 드래곤의 설계 방식은 로메른이 알고 있는 지식의 집대성.
쉽게 말하면, 본 드래곤과 진의 육체는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본 드래곤의 육체가 개선된다?
그건 진의 육체 또한 개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려 ‘드래곤’의 신체를 본떠, 그야말로 살아 있는 드래곤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진은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연구실에서 폴카와 함께 육체를 개선하고, 쉬는 시간에는 순간 이동을 이용해 자연에 있는 ‘영기’를 흡수했다.
육체를 개선할 방법과 재료가 천천히 갖춰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울 린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로메른의 입에서 불가능이란 말이 나왔다.
[지금까진 무지막지한 개조를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란 틀을 벗어나지 않았어.]
‘지금부터 할 건 그 틀을 벗어난단 소리야?’
[어. ‘심장’에 한해선 인간의 규격을 벗어나게 될 거야. 그래서 문제야. 규격을 벗어나는 건, 일종의 규칙을 벗어나는 것과도 같거든.]
‘쉽게 말하면 뭐가 문제야?’
[무조건 죽을 거야.]
죽는다는 말이 나왔지만, 진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떠올랐다.
‘이걸 극복할 방법이 있다는 거야?’
[어. 법칙을 비틀어 줄 사람이 있어. 아니. 사람이라고 하면 안 되나?]
그게 누군진 대충 감이 잡혔다.
‘마왕?’
[어. 마왕의 도움을 받아야 해.]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진은 곧장 이면 세계로 날아갔다.
당연히 폴카와 함께였다.
이번에도 그녀는 격한 반응을 터트렸다.
“우와! 여긴 대체…….”
이면 세계를 둘러보며, 그녀는 계속해서 감탄을 터트렸다.
“이면 세계라고 불리는 공간이야. 세상의 뒷면이라고 보면 돼.”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 신기해요!”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갈래?”
“주인이요?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마왕.”
“……예? 그, 그 마왕이요!? 설마 여기는 지옥인가요!?”
역시 놀리는 맛이 있었다.
“그건 아니야. 뭐랄까 일종의 ‘변수’ 같은 거야.”
“변수요?”
“예전에 인간들은 몇몇 정령들을 봉인했어.”
“어……. 그 이야기 알아요!”
“이 이야기를 안다고?”
“예! 그분들이 인간들을 도와 정령을 봉인하셨다고 들었어요.”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저 말이 진짜라면, 드래곤은 그 정령들이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했다는 뜻이었다.
“오호. 그래?”
진이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원래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인간들에게 정체를 알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봉인하셨다고 들었어요.”
드래곤으로서 이 일을 처리한 게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 숨어 도와줬을 뿐인 것 같았다.
“과연…… 그래서 변수가 발생한 거였어.”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진의 설명을 기다렸다.
“봉인된 정령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말라 죽어 가고 있었어. 그런 그들이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하나가 되는 것이었지.”
“그게 변수인가요?”
“맞아. 봉인이란 허술한 방법과 많은 시간 덕에 일어난 변수야.”
당연히 진이 마왕을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진은 이야기를 약간 비틀었다.
“그렇게 마왕이 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려고 했을 거 같아?”
“……복수인가요?”
“맞아. 그 울분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어.”
그런데도 이곳은 멀쩡했고, 진은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왔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건…….”
진이 대답을 망설이자, 그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왕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 진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분노를 온전히 혼자 감내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일은 진 혼자서 한 것이다.
외롭고 처절한 싸움.
이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울지 마. 아무튼 마무리가 잘 됐어.”
진이 애써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자,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지, 진짜 괜찮으신 거예요?”
“그럼, 분노가 컸을 뿐 악한 존재는 아니야. 게다가, 인간의 실수니 그 실수는 내가 감당하는 게 맞아.”
“하, 하지만…… 이건!”
“괜찮아.”
진은 애써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진 님은 진짜 성자예요.”
“알아.”
그녀는 울면서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럼, 마왕님을 만나러 가자.”
“네. 알겠어요.”
그렇게 진은 피라미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경의를 담아 진을 바라보며 쫄래쫄래 따라왔다.
물론 진의 생각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면 드래곤들한테 빚 하나 지워 둔 거겠지?’
진이 각색한 이야기대로라면 드래곤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운 게 되니까.
평판 작업은 미리미리 해 둬야 하는 법이다.
* * *
굳이, 그녀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요람은 ‘이면 세계’가 존재하며, 엄밀히 따지면 용인족은 ‘소수 민족’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면 세계의 주민인가, 아닌가?
그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우, 우와!”
그녀는 마왕을 보고 ‘드래곤’을 떠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통한 건 아니었다.
“한 세계의 주인께 용인족의 폴카가 인사드립니다.”
그녀의 이성은 마왕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았지만,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 정도 통했다고 보면 되겠네.’
효과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은 절반 정도 통한 상태였다.
덕분에.
“진 님…… 이런 분의 분노를 받으신 거예요?”
진을 향한 존경심이 쑥쑥 올라갔고.
“마왕님께선 이런 힘을 가지고 계시는데도 참으신 거였네요.”
마왕에 대한 적의도 한층 옅어졌다.
“대화해 봐. 마왕이란 이름과는 달리, 악한 존재는 아니셔.”
“그래도 돼요?”
둘의 대화를 들은 마왕이 입을 열었다.
<허한다.>
“네! 감사해요!”
그녀는 겁도 없이 마왕과 대화를 시작했고, 진 또한 한쪽에서 마왕과 대화했다.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그대의 부탁이라면.>
“세상의 법칙을 뒤틀어 볼 생각이야.”
<재밌는 부탁이군.>
세상의 법칙마저 비트는 육체 개조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진이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마왕의 도움을 받은 로메른과 현자가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법칙을 비틀어 몸을 개조한다는 말과는 달리, 개조는 빠르게 끝났다.
[개조가 어려운 건 아니야. 세상을 속이는 게 어려운 거지.]
그렇게 완성된 진의 써클은 특별했다.
정령사가 자연의 마나를 담은 써클을 완성한 것도 신기한 일이었는데, 그 써클이 드래곤 하트로 개조까지 돼 버렸다.
[뭐, 당장 드래곤처럼 막대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야.]
뭐, 그건 상관없었다.
애초에 진은 자신의 부족한 마나를 대체할 물건을 몇 개나 가지고 있으니까.
진짜로 중요한 건 마나량이 아니었다.
[대신, 막대한 마나를 다룰 기초가 만들어진 거야.]
진짜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진은 써클만 개조된 게 아니었다. 육체 또한 폴카의 정보대로 추가 개조가 진행된 상태였다.
이것은 여태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날은 이젠 드래곤 하트 갑옷을 써도 과부하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야?’
[어. 전처럼 문제가 될 일은 없어. 여전히 부담은 되겠지만.]
만들어 놓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갑옷을 이제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준비는 끝이네. 이제 가능한 거지?’
로메른과 함께, 몸과 본 드래곤을 개조한 이유는 모두 이것을 위해서였다.
[충분히 가능해.]
‘시작해 볼까?’
계획명, ‘빅 브라더’.
왕국의 모든 지식의 해방을 찾아낼 계획이 가동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