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그냥 가게?
아이가 기절하고 난 뒤.
로메른은 빠르게 움직였다.
[잠깐만 기다려. 확인 좀 할게.]
그 말과 동시에 아이의 몸 주위로 마법진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아이가 깨어나지 않도록 은밀한 운용.
‘뭐 하는 거야?’
진은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로메른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용인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이를 밖으로 보내는 데, 아무것도 없이 보냈겠어?]
‘……그렇지?’
[가방이나 공간 아티팩트가 없는 걸 보면, 아공간을 이용한 게 확실해.]
‘아공간?’
[차원의 틈을 이용한 일종의 개인 창고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 편리한 게 있다고?’
그럼, 여태까지 왜 안 만들어 줬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이 그 부분에 대해 물으려는 찰나, 로메른이 바로 답을 알려주었다.
[응.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법이야.]
‘……뭐?’
[애초에 전설 속의 용인족을 찾았는데, 아공간도 있지 않겠어?]
‘확실히…… 그럴싸한데?’
그 순간, 진은 로메른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애를 털어 먹냐! 우리가 무슨 강도야?!’
아공간 탈취, 혹은 그 내용물 강탈!
정말이지 로메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뭐라는 거야, 진짜.]
로메른은 황당하단 얼굴로 진을 바라봤고, 현자는 옆에서 안간힘을 쓰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진짜 날 뭐로 보고.]
로메른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젠 헛웃음마저 터트렸다. 현자가 적절히 끼어들며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진짜로 아공간이 존재하면, 우리도 그걸 사용할 수 있으니까 조사하는 거야.
‘아. 그런 거였어?’
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로메른이 진을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산다. 이렇게 살아.]
그렇다고 로메른이 손을 멈춘 건 아니었다. 주위의 마법진이 계속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 하나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깜빡거렸다.
[현자!]
-좌표 설정할게.
[난 공간 쐐기 준비할게!]
허공에 마법진이 번쩍거리고, 현자와 로메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허공이 갈라지더니, 시커먼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진짜 있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이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둘에겐 전혀 의미가 다른 모양이었다.
[이쪽은 너한테 맡길게. 시공간은 나보다 네가 쪼금 더 실력이 있으니까.]
-알겠어. 자료 모아 올 테니까, 마법식 변환할 때는 도와줘.
[알겠어.]
현자는 허공에 열려 있는 곳 앞에 자리 잡고 앉아,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진은 잠시 구경하다가 로메른에게 물었다.
‘이러면 우리도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어. 그렇게 되면 드래곤의 최대 약점이 사라지는 거야.]
로메른이 아공간에 열을 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아공간만 얻게 되면, 드래곤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크기 때문에 휴대가 문제였는데, 그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다.
‘미쳤네.’
아공간까지 완성된다면, 소환 성법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드래곤을 꺼낼 수 있을 테니까.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쟤 몸 좀 확인해 볼게.]
‘어?’
[저 아이의 신체 구조가 특이해. 인간이랑은 궤가 달라.]
‘그걸 조사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거야?’
[당연하지. 드래곤을 개선하는 게 가능해지니까. 용인족이니까 드래곤에 가까운 신체 구조일 거야.]
‘알겠어. 섣불리 깨우진 말고.’
[걱정하지 마. 은밀하게 조사할 테니까.]
로메른은 그 말을 남기고, 아이의 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진짜 아낌없이 주는 호구구나.’
진이 뜯어먹으려고 생각했던 점은 이게 아니었는데, 벌써 호구는 도움이 되고 있었다.
진은 자리에 앉아 정령들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 * *
폴카는 기괴한 꿈을 꿨다.
용암을 뒤집어쓴 그분께서 브레스를 쏘시니, 그곳에서 작은 용암 드래곤이 쏟아지는 꿈.
이건 길몽인가 흉몽인가.
쉽사리 판단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동생. 일어났어?”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수위에는 작은 드래곤들이 가득했다.
“……꾸, 꿈이.”
“설마 꿈을 꿨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제야 그녀는 그게 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진을 바라봤다.
“다, 당신! 대체 뭘 만든 거예요!”
“로망?”
“……로망?”
그녀는 ‘로망’이 웬 말이냐는 듯 되물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쩐지 귀여워 보이는 작은 드래곤. 그분들의 아기 때 모습이 이러할까?
왠지 진이 말한 ‘로망’이 조금 이해가 됐다.
“그건…… 확실히.”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스는 내가 생각할 때 양날의 검이었어.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피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작은 드래곤이 쏟아진다면, 피해도 적고 활용성도 높겠죠.”
그녀는 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숨에 이해했다. 게다가 그녀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귀, 귀여워.’
크기만 작아졌을 뿐인데, 이 미니 드래곤은 너무나 귀여웠다.
“하나 줄까?”
진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정말요?!”
“어. 내가 동생한테 이거 하나 못 주겠어? 왜. 동생은 내가 주는 선물 받기 싫어?”
“아, 아니에요! 동생은 선물 받고 싶어요!”
일순 진의 얼굴에 악당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미니 드래곤에 시선을 뺏겨 보지 못했다.
“근데, 이게 그냥 준다고 해서 의미가 있나 싶네.”
“예?! 왜요?”
“원래 이런 건 직접 만들어야 의미도 있고, 안전한 법이야. 내가 선물 준 미니 드래곤으로 요람을 훔쳐보면 어떻게 하게?”
“그, 그런! 정말 그러실 건가요?”
아니. 이 호구야.
그걸 되물으면 안 되지.
“그럴 위험성이 있다는 거야. 애초에 주인이 나였으니, 선물한 후에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니까.”
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은 울상으로 변했다. 그녀가 미니 드래곤을 가지고 싶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타협안을 제시할게.”
“타협이요?”
“사실상 네 임무는 끝난 거 맞지?”
“아! 맞아요! 확인이 끝났으니…….”
“그래. 이제 넌 돌아가야 할 때야.”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리액션이 뛰어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으니까. 일단 이야기부터 마저 들어.”
“……네.”
“임무 기간은 얼마나 받았어?”
600년이나 살아가는 이들이, 인간들처럼 한 달 정도 받았을 리 없었다. 용인족과 인간들의 시간 관념은 다르다.
“3년이요.”
역시나 상상 이상으로 임무 기간이 길었다. 그럼, 여기서부터는 못된 걸 가르칠 차례다.
“그럼, 임무가 끝나도 3년간은 안 돌아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돼요?”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어떤 핑계냐에 따라 그게 가능해질 수도 있다.
“자. 생각해 봐. 내가 드래곤을 제작하는 게 진짤까?”
“진짜잖아요.”
“아니. 확인해 봤어? 사실은 내가 소환하면서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설마, 거짓말이셨던 거예요!?”
그녀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인데, 이건 전부 떠먹여 줘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까 남은 기간에 그걸 확인해 보면 되지 않을까?”
“확인이요?”
“직접 미니 드래곤을 만들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 건지. 확인하는 거지. 의심을 완벽히 지우며, 완벽하게 임무를 달성하는 거야.”
“아!”
그제야, 그녀는 진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그래도 될까요?”
“동생이랑 나만 조용히 하면, 문제가 될 거 없지 않겠어?”
아이는 못된 걸 빨리 배우는 법.
그녀는 나름의 결정을 내렸다.
“그, 그럼. 확실히 임무를 하기 위해서 전 여기 남을 거예요.”
“난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게.”
“좋아요!”
진은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진의 손을 맞잡았다.
“비밀이야.”
“예!”
둘만의 은밀한 계약이 성립됐다.
자. 그럼, 우리 호구 일해야지?
“일단, 아공간부터 꺼내 봐.”
* * *
호구에게 무언가 내놓으라고 했을 때.
삼류는 슬퍼하며 빼앗긴다.
이류는 그저 감내하며 다음을 노린다.
하지만, 일류 호구는 자신이 호구인 줄도 모르고 즐거워한다.
폴카는 일류 호구였다.
“다행이에요! 제가 알려 드릴 게 있었네요!”
그녀는 환한 얼굴로 아공간을 열었다.
“우와! 이걸 술식화 하시려는 거예요? 아니! 벌써 아공간에 대한 술식이 있으셨네요!? 정말 대단해요!”
그 와중에 리액션으로 로메른과 현자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술식을 보는 법 좀 알려줘 볼까?]
-조금 나눠 주는 건 나쁘지 않지.
그녀는 진정한 일류였다.
‘이쯤이 되면 좀 무서운데…….’
아직 무서워하긴 일렀다. 로메른과 현자가 아공간에 관한 술식을 얻어내자마자.
“와! 벌써 완성하시다니…… 이건 어때요? 저희 보물인데, 그분들께서 마법을 거신 물건이 있어요!”
그녀는 아공간에서 보물을 쏟아냈다.
[……미친. 하나 하나가 보물인데? 이게 애한테 줄 만한 물건이라고!?]
-이 수식 좀 봐 봐. 이건 대체…….
로메른과 현자가 놀랄 만한 물건이 앞에 잔뜩 쌓였다.
“드리지는 못하지만, 수식을 보여 드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요!”
확실했다.
그녀는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저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더러움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진은 그런 감상에 빠질 만큼 물렁물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더러움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얻은 훈장이지.’
이런 개소리로 바로 자기합리화를 해 버렸다.
진이 그러고 있는 동안, 로메른과 현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녀석 제법 쓸 만하네.]
-쓸 만하다니. 이 아이는 천사야. 이렇게나 착하다니. 이것도 봐 봐.
그녀가 꺼낸 아티팩트에 시선을 빼앗겼다.
“정령으로 한꺼번에 분석하시는 거예요? 정말 대단해요!”
덕분에 묘한 오해를 사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이렇게 활기가 넘칠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로메른과 현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동안, 진은 그녀와 조금 다른 대화를 나눴다.
“이 미니 드래곤을 네가 만들었으면 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
“이유요?”
“요람을 지키는 거, 일손이 많이 부족하지?”
“어떻게 아셨어요?”
이 꼬맹이를 보낼 정도면 일손이 부족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진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원래 무언가를 지키는 건, 손이 많이 가는 법이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꼭 만들어 가야 돼.”
“미니 드래곤을요?”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은 눈과 귀가 되어 줄 거야. 너 혼자만 가지고 있다면 별로 달라질 게 없겠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봐.”
“……수많은 눈이 새로 생기겠네요.”
“맞아. 거기다 하나가 아니라, 개인당 두 개를 가지고 있다면? 아니면 더 많다면?”
일종의 무인 감시 체계가 완성된다. 그녀도 그걸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진을 바라봤다.
“이렇게나 저희를 도와주셔도 괜찮아요?”
“어. 오히려 내가 바라는 일이야.”
지식의 해방이 요람에 테러라도 한다면?
만약 그래서 드래곤들이 대륙에서 날뛴다면?
그건 재앙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꾸 벼랑 끝으로 밀리다 보면, 녀석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 위험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성자.”
그녀가 멍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응?”
“……진 님이 어째서 성자라고 불리시는지 알겠어요.”
“갑자기?”
“대륙에 개입하지 않는 저희에게도 도움을 주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녀는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 같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만들어 보자. 아까 말했지? 저거 미완성이라고.”
“예. 지금 보니까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특히 드래곤 하트 쪽이 그래요.”
“그래?”
“예. 뭐랄까, 겉모습은 그분들을 본딴 거 같은데, 속은 인간을 본뜬 것만 같아요.”
바로 이래서 그녀가 필요했다.
“그럼, 하나씩 시작해 볼까?”
“예!”
그녀도 좋고, 진도 좋은 상부상조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진! 표정 관리 좀 해. 아주 그냥 악당이야.]
진은 얼른 표정을 고치며, 그녀와 함께 실험실 내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