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용인족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100살이 어떻게 10살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법.
왕국의 혼란을 수습했으며, 그분들을 소환했을지도 모르는 ‘성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이딴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게 인간들의 규칙이라면 따라야 돼.’
차라리 그녀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진의 말대로 그녀는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아이’였다.
“동생?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녀는 ‘동생’이란 단어가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진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며, 짜증이 임계치에 도달하지 않도록 조절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자. 난 진 세인트. 성자야.”
진은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전 폴카. 요람을 지키는 자에요.”
요람이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대화의 시작으론 나쁘지 않았다.
“요람이라…… 그렇군.”
진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반응을 보였다.
“……역시 당신은 진짜 소환한 거군요?”
여기까지 들었으면,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파충류와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소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건 ‘드래곤’을 이야기하는 게 확실했다.
‘로메른.’
[……어. 나도 눈치챘어.]
로메른도 진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인지 눈치챘다.
‘쟤 드래곤이야? 어린 드래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쟨 600년을 산다고 했잖아. 당연히 드래곤이 아니지.]
‘그럼?’
[반인반룡. 아마도 용인족이 아닐까?]
로메른의 반응은 뭔가 미묘했다.
녀석이 이렇게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렇다는 건…….
‘용인족인지 뭔지 하는 존재는 너도 본 적 없구나?’
[어. 없어. 애초에 진짜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 일종의…… 전설 속 생물이야.]
로메른에게 거기까지 설명을 들으니, 앞뒤가 착착 맞아서 떨어지며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대답이 없죠? 이제 와서 아니라고 대답해도 전 속지 않아요.”
“확인하러 온 거구나?”
진이 혹시나 해 던진 질문을.
“맞아요. 당신이 요람에서 쉬고 계신 분들을 소환하는 게 아닌지 확인하러 온 거예요.”
그녀가 덥석 물었다.
이쯤이 되면 좀 걱정이 됐다.
‘……요람 괜찮은 거야?’
쿡 찌르면 모든 걸 쏟아내는 호…… 아니. 아이라니!
그렇게 잠깐 요람이 걱정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진은 곧장 이 상황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 또 무슨 짓 하려고?!]
‘있어 봐. 일단, 이것저것 해 볼 테니까.’
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너희는 그러니까…… 요람에 계시는 분들을 지키는 거잖아?”
“맞아요. 그게 저희의 임무예요.”
진의 생각대로 용인족은 드래곤의 요람을 수호하는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진의 말대로 뭔가 이상했다.
“만약 내가 그분들과 개인적으로 계약을 해서 소환을 했다면, 너희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 않아?”
그들은 일종의 주군을 지키는 기사다. 그런 그들이 주군의 계약을 걸고넘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은 요람에서 쉬시는 기간이에요. 당신이 강제로 소환해서 그분들의 안식을 깬 게 아닌지 확인하러 온 거예요.”
그제야 진은 그녀가 왜 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드래곤이 안식하는 기간인가 본데?’
[그런 거 같아. 전설에 보면 오랫동안 잠든다고 하던데, 그런 게 아닐까?]
‘아마 그런 거겠지? 그 안식이 특히 중요한 걸 테고.’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확인까지 하는 거겠지.]
‘하긴, 애를 보낼 정도면 확인이 꼭 필요하단 소리니까.’
진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너희가 대륙에 머물 리는 없으니. 협조하고 있는 인간이 있나 보네?”
“……대답하지 않겠어요.”
응. 대답하지 않아도 돼.
이미 대답은 들었으니까.
“아무튼, 그럼 지금 확인해 볼래?”
“……지금 소환한다는 소린가요?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어. 애초에 소환한 게 아니니까.”
“……예?”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를 거야.”
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해? 안 따라오고.”
“가, 갈게요!”
진은 그녀와 함께, 영지의 지하로 내려갔다.
* * *
뭐랄까. 이 아이는 데리고 다니는 맛이 있었다.
“마탑에 이런 물건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게 여기도 있네요? 와! 내려가고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며 감탄을 터트렸고.
“우와! 지하에 이만한 공간이 있던 거예요? 심지어 한 층이 아니네요!?”
내려서도 감탄을 터트리고.
“지옥이요? 인공 지옥을 만드신 거예요!? 이건 예술이에요! 마법의 예술이요!”
심지어, 지옥을 보면서까지 감탄을 터트렸다.
임무는 잠시 내려놓고, 완전히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대체 누구예요? 이렇게나 효율적으로 짜인 마법진은 처음 봤어요. 이건 예술의 경지에요!”
이젠 질문까지 던지기 시작했으니까.
[뭐, 보는 눈은 제법 있네.]
심지어, 저 추임새는 로메른의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끌어냈다.
[알아보는 녀석에게 적당히 알려주는 건 문제없겠지. 말 좀 전해 줘. 그러니까 내가 만든 마법진은…….]
진이 그것을 그대로 전해 주자,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다, 당신이 만든 거였어요!?”
또 그 반응이 맛깔스러웠다.
“들어. 딱 한 번만 말해 줄 거니까.”
“네! 잠깐만요!”
녀석은 품에서 필기구까지 꺼내서 진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열정적인 저 모습에 로메른의 설명은 점점 길어졌다.
“완벽해요! 이건 인간의 마법이 아니에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한 거죠? 이걸 완성시키려면, 모든 마법진을 해체하고 그 원리를 더듬어 갔어야 했을 텐데!”
“엄청나요! 정말 대단해요!”
로메른의 설명이 끝났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자까지 움직였다.
-효율만이 마법진의 전부가 아니야. 이것도 전해 줘.
그렇게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됐다.
“……대체 뭐에요!? 좀 전까지는 효율의 정수를 보여 주더니. 이런 연계와 범용성이라니!”
“이건 다른 의미로 천재적이에요. 효율성은 부족할지언정 다른 부분에서 너무 독보적이라고요!”
“아름다워요. 이건 또 다른 예술이에요!”
그러다, 진은 문뜩 소름 끼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호구인 줄 알았더니, 이쪽이 더 뜯어먹히고 있었다. 로메른과 현자는 기쁜 얼굴로 지식을 뿌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해.’
용인족이 이렇게 어수룩한 애를 보냈을까?
이 친화력과 리액션이야말로 이 아이의 무서움이 아닐까?
‘내가 당한 거야?’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물론,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당신은 천재예요! 과연, 그분들께서 소환을 허락하실 만해요.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어요!”
녀석은 헤실헤실 웃으며, 저런 말을 했다.
‘아 자존심 상하네.’
역시, 얼빠진 호구가 맞았다. 아직도 진이 드래곤을 소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와.”
“네!”
아까와 같은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진이 반말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처음엔 많이 걱정했는데, 역시 오길 잘했어요! 너무 즐거워요!”
마치 강아지처럼 그녀가 진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로브 위로 그녀의 꼬리가 움직이는 걸 보면, 강아지가 확실했다.
그렇게, 지옥보다 더 깊숙한 곳.
정령들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환영해. 이곳은 드래곤 제작소야.”
“……예? 예!?”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 * *
흑마법사에게 구입한 뼈가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 뼈를 이용해 제작 중인 ‘드래곤 본’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 뒤쪽으로 제작 중인 미니 드래곤이 늘어서 있었지만, 그곳으론 시선이 가지 않았다.
맨 뒤쪽에 있는 거대한 ‘본 드래곤’의 모습이 모든 시선을 빼앗었다.
“……당신. 이건 대체.”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세상에는 성자의 고유 성법이 ‘드래곤 소환’이란 말이 퍼지고 있지만, 진실은 좀 달라.”
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혼란이 사라지고, 그 위로 적의와 결의가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꼭 쥔 채, 나름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내 이야기부터 들어.”
물론, 그런 진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빠란 말이 더는 거슬리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든, 사실 진이 보기엔 급발진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이 황급히 소리쳤다.
“본 드래곤이지만, 진짜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게 아니야.”
“거짓말! 요람을 지키는 제가 그런 말에 속을 것 같나요? 그분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우리 일이에요!”
너무 잘 만들어도 문제였다.
[오. 개선점이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드래곤 본에 가깝다고? 아 좀 실망인데. 전설대로 완벽한 생명체는 아닌가 보네.]
그 와중에 로메른은 연구 노트에 저 아이의 말을 추가하고 있었다.
‘아 쫌!’
[네가 알아서 해결할 거잖아?]
‘아 그건 그렇지.’
뭐지. 이게 바로 짬 역전 세계인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잠시.
“뼈의 성질을 바꿔서 재구성할 수 있는 건 알아?”
진이 손을 뻗자, 곱게 갈린 뼛가루가 떠올랐다. 당연히 진의 힘은 아니었다. 로메른이 진의 손짓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 구성을 바꿔서, 새로운 뼈를 만드는 거야. 인간 세계에 드래곤 본으로 만든 무구가 있는 건 알지? 표본이 있으면 간단한 일이야.”
진의 말에 맞춰, 뼛가루가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새로운 뼈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네가 보고 드래곤 본이라고 생각했던 건, 시제품에 가까워. 아직 개선점이 많아.”
“……저 뼈가 개선점이 많다고요? 아니지. 방금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냥 전부 분해해서 재조합하는 거야. 별로 어렵지도 않은 건데?”
“이게 어떻게 안 어려워요!? 이건 개조의 영역을 벗어나 재창조에 영역에 있는 일이잖아요!”
와.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진이 새삼스럽게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그렇게 인조 드래곤 본을 만든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른다. 로메른이 해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그다음도 있어. 성자가 본 드래곤을 타고 다녔으면 큰일 나지.”
진이 손짓하자 이번엔 현자가 움직였다. 용암 골렘이 본 드래곤 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본 드래곤이 마그마 드래곤이 되었다.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얼마나 놀랐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표정이 시끄러웠다.
“짜잔. 마그마 드래곤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아니. 너무 놀라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럼, 다음도 보여 줘야 하는 법.
‘미니 드래곤도 좀 보여줄까?’
-알겠어. 잠깐만.
마그마 드래곤이 숨을 들이쉬고, 엄청난 마나가 모이더니.
“아, 안 돼요! 여기서 브레스는 안 돼요!”
숨을 내뿜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아무 일이 없어 다시 눈을 떴는데, 그녀의 눈에 수많은 미니 드래곤이 보였다.
“짜잔. 브레스를 쏘면 미니 드래곤이 나옵니다.”
진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이내 그 장난기는 쏙 사라졌다.
쿵.
그녀가 너무 놀라서 기절했으니까.
‘……요람 이놈들은 어떻게 얘를 보낼 생각을 한 거지.’
진심으로 요람이 걱정됐다.
덕분에, 그녀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