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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145화 (145/210)

145. 침입자

단 하루, 그 짧은 시간에 진이 드래곤을 타고 방문한 도시는 무려 8곳이었다.

덕분에, 왕국엔 예전에 퍼졌던 소문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성자님께서 드래곤을 길들이셨다고 하던데?”

“그거 예전에 잠깐 돌았던 소문 아닌가? 허허. 그걸 아직도 믿고 있다니 자네가 그리 어수룩할 줄 몰랐네.”

“아니! 진짜라니까? 이번에 그 지식의 해방이랑 붙어먹은 귀족들. 거기에 용을 타고 나타나셨다고 하던데?”

“에이. 이 사람도 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하루에 도시 8곳을 정화한 건 말이 되고? 이번엔 진짜라니까?”

“흐음. 그럼, 예전에 그런 소문이 돌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여! 괜한 소문이 퍼질 이유가 없잖은가.”

드래곤을 길들인 성자.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이런 소문으로 변화했다.

“자네 성법 중에 드래곤 소환이 있는 거 아나?”

“성법이면 사제님들이 사용하는 그거?”

“그려. 그거. 성법으로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아! 나도 그 소문 들어 봤네. 성자님께서 드래곤을 길들이셨다는 그 소문이지?”

“그렇지! 그거여!”

“허어. 그게 성법으로 가능한 거였다니.”

“괜히 성자님이 아니여. 드래곤의 수호를 받으시는 게지.”

성법엔 드래곤을 소환할 기술이 있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데, 이게 단순히 헛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각종 연구 단체에서 교단에 ‘정식 공문’으로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하고 나섰다.

여기서 더 웃긴 일이 벌어졌는데, 교황은 ‘공식 발표’를 했다.

“오직 성자만이 다룰 수 있는 성법이며, 성자만이 알고 있는 성법이다.”

대체 이딴 공식 발표가 어떻게 나왔나 싶어서 진이 알아본 결과.

산더미 같은 서류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오. 이건 좀 흥미롭네. 성자에겐 고유의 성법이 있다는데? 그럼, 성녀 네가 쓰던 그것도 고유 성법이었어?]

[맞아요. 제가 쓰던 ‘기적’의 베이스는 제가 성녀가 되며 얻었던 고유 성법이었어요.]

교단에서는 ‘드래곤 소환’을 진의 고유 성법으로 판정한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소환과 성법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한데, 여태까지 해 온 일이 문제였다.

성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성자라면 될지도?

사제들의 머릿속에 이딴 생각이 박혀 있는 것이다.

물론, 진의 표현 방식대로 경박한 표현은 전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마그마 본 드래곤’은 진의 고유 성법이 되어 버렸다.

[잠깐만, 근데 진은 왜 못 얻은 건데? 성자 임명 과정은 다 겪었잖아.]

[엄밀히 따지면 성자가 아니니까요. 진에겐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이 빠져 있어요.]

[그게 중요해?]

[중요해요. 고유 성법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거니까요. 그건…… 신께서 내려 주시는 힘이에요.]

[……아,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이 아니네. 난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으니까.]

신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로메른은 양손을 들고 물러섰다.

[당신의 생각을 존중해요.]

[그래. 나도 존중할 테니까, 이 논의는 그만하자. 어차피 고유 성법은 없어도 그만이니까.]

그 말대로였다.

진에겐 고유 성법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드래곤 소환이란 힘이 고유 성법이 된 지금. 인제 와서 새로운 고유 성법을 찾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다들 일 끝냈으면, 좀 쉬어. 솔직히 이번에 한 일 생각하면 우리는 쉴 자격 있지 않아?’

지식의 해방의 큰 축이던 계획을 무너트렸고, 세력을 위축시켰다.

심지어 후환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파까지 깔끔하게 쓸어 낸 상황.

진의 말대로 이번에 한 일을 생각하면 쉴 자격이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안 그래도 나도 좀 쉬는 게 어떤가 싶었어.]

‘역시, 이번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았구나?’

[고생은 무슨, 솔직히 마실 다녀온 거나 마찬가지면서…… 아무튼 드래곤의 세부 조정을 할 생각이야.]

로메른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거리를 찾았다.

검성은 아이들과 말릭에게 검을 전수하러 갔고, 성녀는 현자를 불러와 대화를 나눴다.

[말 나온 김에, 이것 좀 도와줘요.]

-내가 도와줄 일이 있어?

[제가 예전에 사용했던 고유 성법을 손보고 싶어요. 진의 힘으론 사용하지 못하던 힘이지만, 드래곤을 이용하면 가능할 거 같아요.]

-오, 재밌겠는데?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이 좋은 날에 저게 뭐 하는 짓이람.’

맑은 하늘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건, 진뿐이었다.

* * *

왕국 동쪽에 있는 작은 섬. 그곳에서 누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확인했습니다. 성자의 능력은 진짜인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특별했다.

샛노란 눈동자와 피부 위로 보이는 비늘, 거기에 두꺼운 꼬리까지.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허. 그분들은 지금 안식을 취하는 중이실 터인데.”

“저도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안식이 끝나려면 아직도 몇백 년은 족히 남았습니다.”

“그럼, 안식에서 깨어난 분이 있으시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빠져나오신 분은 없다고 들었거늘.”

“들어온 정보대로 정말 소환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일 어리신 분을 소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니.”

“성법은 그 힘의 궤가 다르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 이런 정보가 올라올 정도라면 이건 확실한 정보라고 봐도 좋았다.

무언가 있는 게 확실했다.

“요람을 지키는 이들을 제외하면, 남는 자는 누가 있지?”

그의 물음에 눈앞에 있는 자가 대답했다.

“조사를 위해 빠져 있던 제가 있습니다.”

“허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넌 너무 어리다.”

“어리기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아직 변태하기 전입니다.”

그 말 또한 맞았다.

아직 어리기에 아이는 인간의 몸에 더 가까웠다. 확인을 위해 밖으로 나가기에는 그게 더 유리했다.

“고작해야 백 년밖에 안 산 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니…….”

“가서 확인만 하고 오면 될 일입니다.”

“왕국은 지금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다.”

“제 한 몸을 지킬 능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치 도마뱀 같은 그의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아이가 빤히 바라봤다. 그가 고민에 빠졌을 때 하는 습관인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내 그 꼬리가 멈췄다.

“허락한다. 명확하고 확실하게 조사하도록. 혹 그 소환 성법이 정말이라면, 더는 그분들의 안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라.”

“예! 알겠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샛노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시간은 많이 줄 수 없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3년을 주마. 그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때 넌 요람의 주민이 아니게 될 것이다.”

3년. 인간에겐 길고 긴 시간이지만, 그들에겐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업무상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이것 좀 챙겨가거라.”

그는 아이에게 아티팩트를 잔뜩 쥐여 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것도. 아 이것도 필요하겠구나. 허어. 도저히 안 되겠구나. 아공간도 내주마.”

하나하나가 보물이라 취급받는 것들이 아이의 아공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출발하게 된 건, 그 뒤로 한참 뒤였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기분이구나.”

“저희가 물가에 나간다고 무슨 피해라도 입겠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그는 한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잘 다녀오거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아이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허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그는 아이가 사라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진은 오랜만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

분명 꿈속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재미나게 놀고 있었는데…….

[일어나! 침입자야!]

로메른의 말과 함께, 불시에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침입자란 말을 들은 순간, 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인물이 있었다.

흡혈귀, 수호자, 지식의 해방 등등. 찾아올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제일 가능성 있는 건.

‘흡혈귀 쪽이야?’

흡혈귀였다. 이번에 귀족들 영지를 빠져나가면서 든든하게 챙겨나간 뒤.

판매 서류를 소각해서 한몫 단단히 챙긴 상태였으니까.

[그랬으면 이렇게 안 깨웠지.]

한데, 그런 진의 예상은 틀렸다.

진은 눈을 뜨고 대체 누군지 살펴보았다.

로메른과 현자가 발동한 마법진이 주위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지만, 눈의 힘을 사용한 순간 그런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진의 눈에 들어온 건…….

‘……저게 뭐야.’

이제 20살이나 됐을까 싶은 여자애였다. 이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외에 보이는 것들이 진짜 문제였다.

이마에 달린 작은 뿔과 로브 안에 숨겨진 꼬리. 그것도 고양이나 개의 꼬리가 아니라, 파충류의 꼬리였다.

[……몰라. 와. 내가 처음 보는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네가 모르는 거라고? 저렇게 흉악한 기운을 품고 있는데?!’

심지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상상을 초월했다.

[대마법사 이상이야. 전생의 현자급이라고 봐도 돼. 현자보다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미친.’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랐다.

그 호구 현자가 저 정도 힘을 가졌었다는 것에 놀랐고, 침입자가 무려 현자급이란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회귀 전 영웅급이란 거야?’

[……어.]

갑자기 이런 괴물이 이곳에 왜 온 것일까?

평소처럼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만약의 상황에 도망은 칠 수 있어?’

지금은 이게 가장 중요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현자보다 강한 놈이 와도 도망치는 건 무조건 가능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몸에 가득하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지며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암살자는 아닌 거 같은데?’

아이는 진 주위로 빼곡히 떠 있는 마법진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죽이려고 찾아왔는데, 저러고 있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지. 강자의 여유인가?’

[그럴지도. 나머진 전부 너한테 맡길게. 난 조금만 이상 있어도 곧장 탈출할 수 있게 준비해 둘게.]

‘알겠어.’

그렇다면 진이 할 일은 간단하다. 저 녀석에게서 최대한 정보를 빼내야 했다.

‘그건 내 전문이지.’

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셔서 제가 좀 놀랐습니다.”

진의 말에 마법진을 보고 있던 그녀가 깜짝 놀랐다.

“아!”

그리곤,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간. 갑작스러운 방문을 사과한다.”

이제 와서 근엄한 표정을 지어봐야 조금 늦었다.

“저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그녀의 근엄한 표정이 순식간에 깨졌다.

“몇 살인데요?”

“난 109살이다. 인간. 그대는 지금 나이로 상하를 따지는 것인가?”

약간의 경고를 담은 그 말에도, 진은 흔들림이 없었다.

“예. 뭐, 그런 거죠. 근데 그쪽은 몇 살까지 사는데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마 600년은 족히 살 것이다.”

“아. 그럼, 인간식 나이로 따지면 대충 10살 정도 된 거네?”

“……뭣이?”

개소리 한 숟가락에.

“인간은 보통 60년 살고, 넌 600년 살고, 그럼 계산 딱 나오잖아. 이제 100살이면 성인식도 아직인 거 같은데?”

새로운 개소리를 한 숟가락 더 추가했다.

“그건……! 그렇다.”

그녀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근데 왜 아직도 반말?”

“…….”

그녀는 진을 째려볼 뿐,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쯤이 되면 견적이 나오는 법.

“상황 보니까, 나한테 용무가 있어서 온 거 같은데. 나 그냥 간다?”

“뭐!?”

“뭐-어? 아직도 뭐-어?”

진의 말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이쯤 됐으면, 협조해 줘야 탈이 나지 않는다.

“좋아. 동생. 무슨 일로 찾아왔어?”

“…….”

그녀는 복잡한 눈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진의 눈은 정반대였다.

따듯하고, 자애로운 눈빛.

그래, 호구를 만났을 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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