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드래곤 데뷔
지식의 해방 때문에 도래했던 왕국의 혼란이 수습되자 놀라울 정도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귀족들이 사라졌고, 외부적으로는 오랜 적이었던 소수 민족들이 흡수됐다.
생각해 보면 평화가 찾아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평화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도시 곳곳이 물론 살던 집마저 무너졌지만, 영지의 주민들은 오히려 살 만해졌다. 그런 상황에 지원금이 쏟아져 내려왔다.
“국왕 폐하께서 이번 피해를 보신 지역에 지원금을 내리셨습니다!”
“교단에서도 여러분들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교단을 방문해 보세요!”
국가와 교단 측에서 피해를 입은 평민들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쏟아부었고.
“자자, 피해 지역은 이번 달만 화살 배송이 무료입니다! 각종 자재도 할인하고 있으니 와서 확인해 보세요!”
“신규 서비스! 건축 장인들 또한 화살 배송으로 파견해 드립니다!”
그 골드를 곧장 사용할 수 있는 사용처까지 떡 하니 기다리고 있으니 도시엔 활력이 넘쳤다.
게다가, 사람들의 삶의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직할령-엘프들의 숲 개방>
소수 민족이 흡수되며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엘프들의 땅이 사람들에게 개방되었다.
덕분에, 희귀한 약초들이 시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직할령에서 나온 물건은 저희 화살 배송과 거래하셔야 합니다.”
“……시세를 속여 매입하시는 건 아닙니까?”
“아이고,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저희의 장부는 교단의 사제님께서 확인하십니다. 속였다간 경을 치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판매하겠습니다.”
이런 희귀한 약초는 판매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그런 문제마저 없었다.
물론, 이런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곳들도 있었다.
수도 인근에 있는 귀족들의 영지.
원래라면 가장 활기가 넘쳐야 하는 이곳들이 조용했다.
이들은 시류에 탑승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끝까지 국왕파와 반목하며 귀족파를 지지했던 귀족파의 거두들이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
그것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그 영지에 지내고 있는 ‘어둠의 주민들’이었다.
“우리는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우린 휘말리고 싶지 않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말이 나오면, 원래라면 귀족은 깜짝 놀라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대들을 존중한다.”
오히려 존중한다는 희대의 개소리를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자산을 매각하고 싶은데?”
“정상 시세대로 사 주지 못하겠지만, 좀 싸게 영지에서 매입해 주지. 어떤가?”
“그대의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어둠의 주민들의 자산까지 구매하며, 얼른 나가라는 듯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덕분에 흡혈귀와 늑대인간들은 묵직한 금화 뭉치를 들고 도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영지.
어둠의 주민들의 퇴거.
그 모든 일이 도시에서 무언가 일어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찍-! 찍-!
어둠 속에서 쥐의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울려 퍼졌다.
* * *
사건은 급작스럽게 시작됐다.
도시의 하수도에서 쥐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 쥐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사람의 몸통보다 커다란 쥐를 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쥐보다는 몬스터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게다가,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흉포하고 사나웠으며, 날카롭고 위협적인 앞니를 지녔다. 심지어 끈적한 녹색 액체를 흘리며 다녔는데, 딱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쥐 떼가 도시를 뒤덮는 건 순식간이었다.
“도망쳐-!”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사람들은 도망치거나,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틈새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사각- 사각-
쥐는 앞니로 집을 갉아 먹고, 땅을 파고, 사람들의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 죽어!”
평소에 쥐를 잡았던 것처럼, 애써 용기를 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찍-!
“맞아! 맞으라고!”
쥐는 빨랐다.
오히려 쥐가 사람들을 가지고 놀 듯 천천히 포위하며 공격했다.
찍!
쥐가 한번 물자, 살이 뭉텅이로 뜯겨나갔고, 쥐가 흘리고 있는 더러운 액체가 흘러 들어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윽!”
물린 사람의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고, 온몸에 혈관이 터질 듯 부풀었다.
“크르르르르.”
그리곤, 이성을 잃고 흉포하게 변했다.
“여, 여보!”
“크라라라라!”
이젠 쥐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고, 쥐들이 흘린 액체에 또 다른 이가 노출됐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잠깐 사이에 수많은 이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기사나 병사들이라고 상황이 괜찮진 않았다.
“쥐새끼 따위가!”
처음엔 별 어려움 없이 쥐들을 베어 냈다. 하지만, 두 가지가 문제였다.
“……끝이 없어!”
쥐들의 물량이 끝이 없이 하수도에서 쏟아졌고.
“크으윽!”
“액체에 닿지 마! 중독된다!”
쥐들을 죽일 때마다 몸에 튀는 녹색 액체에 병사와 기사들은 천천히 중독되기 시작했다.
“크라라라!”
“커억!”
그들 중에 하나가 중독되어 미쳐 날뛰기 시작하자. 이쪽도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사단 훈련만 아니었으면!”
그들을 구해줄 정예조차 없는 상황.
“도망쳐!”
“이 도시를 떠야 돼!”
“부모님을 놓고 어딜 가!”
“살아야지! 그래. 기, 기사단을 불러오는 거야!”
이제는 밖으로 도망치는 것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불가! 성문은 절대 열지 않는다. 이게 밖으로 쏟아지면 왕국은 끝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지휘관이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이들이 왕국에 쏟아진다면, 그의 말대로 끝이었다.
“기, 기사단만 불러오면 해결할 수…….”
지휘관은 칼을 휘둘렀다.
촤-악!
기사단을 불러오자던 병사의 목이 날아갔다. 지휘관의 냉철한 판단이 병사들의 이성을 돌려놓았다.
“우린. 버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의 말처럼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아니. 아무리 방어를 잘한다고 해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기사단이 되돌아올 때까지!”
지휘관의 결정이 무엇인지 모두가 깨달았다. 여기서 죽는단 뜻이었다.
시위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그때.
쿠구구궁.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절대로 성문을 열어선 안 된다!”
하지만, 지휘관의 통제는 더는 먹히지 않았다.
“도망쳐-!”
“뛰어!”
모두가 자리를 이탈하고, 성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휘관은 조용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끝이다.”
자신의 목숨이.
이 왕국의 미래가.
“신이시여…….”
이제 그가 부탁할 수 있는 건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젠 신의 자비를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다시 한번 이변이 일어났다.
크라라라라라라-!
엄청난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고.
“허업!”
압도적인 마나가 도시 전체를 짓눌렀다.
지휘관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드래곤!?’
용암의 비늘을 두른 검붉은 색의 드래곤이 오연히 하늘에 떠 있었다. 그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쓰으으으읍-!
용이 숨을 들이마시는 걸 본 순간, 그는 저게 무엇을 하려는 일인지 깨달았다.
‘안 돼!’
브래스로 이 도시 전체를 불태우려는 생각인 게 확실했다. 그는 온몸의 마나를 사용해 억지로 입을 열었다.
“안…… 돼……!”
그의 작은 목소리는 드래곤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그저 새로운 절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의 입에서 모인 마나가, 쏟아지는 것을……!?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브레스는 브레스였는데, 그가 생각한 브레스와는 전혀 달랐다. 딱 봐도 용암을 쏟아 낼 것처럼 생겼는데.
‘드래곤?’
드래곤의 입에서 작을 드래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곤 드래곤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제 그는 더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너무 놀라면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드래곤의 앞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건 작은 드래곤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수백 개의 작은 마법진과 거대한 한 개의 마법진이 수놓았다.
곧이어 그 마법진들이 일시에 발동됐다. 새하얀 빛이 도시 전체를 수놓았다. 그 새하얀 빛은 모든 것을 정화했다.
‘기적.’
그는 그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까지 성문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담하고 자비로운 목소리.
주위에 가득한 빛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 오히려, 그 모든 빛이 그의 후광처럼 느껴졌다.
“삿된 존재들이여. 모두 정화되어라.”
지휘관은 자기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들이 만든 기적이, 그의 손끝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지휘자처럼 그는 빛을 이끌었고, 그 빛이 도시를 휩쓴 다음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사방에 가득하던 쥐들과 녹색 액체는 사라진 상태이었고, 흉포하던 사람들조차 회복된 채 쓰러져 있었다.
크르르.
어느새 주인을 모시러 온 것처럼, 드래곤이 성벽 근처로 와 있었다.
“뒷수습을 부탁드립니다. 교단에 제 이름을 대면, 지원해 줄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 말에도, 그는 눈앞에 존재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용을 다루며, 기적을 행사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는 성자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불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바빠서 그걸 말씀 못 드렸네요. 제 이름은 진 세인트. 성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이런 마나 유동이 일어났으니, 곧 감찰부가 이곳에 들릴 겁니다. 제 이야기를 해주면 전부 믿을 겁니다.”
“…….”
“끝까지 성문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진짜 영웅입니다.”
성자는 그 말을 남기고, 곧장 드래곤의 머리를 밟고 그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휘관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
‘드래곤의 머리를 밟고 탑승했다는 것을 믿을지 모르겠군.’
감찰부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날아가는 드래곤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진은 드래곤 위에 드러누워 로메른에게 물었다.
‘진짜 이놈들은 나쁜 짓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 저것도 미래에 있었어?’
[어. 있었어. 그땐 돌연변이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까 조악하던데? 저걸 몰랐다고?’
[이거 아직 미완성이야.]
‘미완성?’
로메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미완성인 덕분에 중독된 이들이 치료되는 거야. 원래라면 한 번 걸리면 끝이지만, 이건 아직 지속 효과도 하루밖에 안 되는 거 같네.]
‘어. 그럼 하루면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왔단 소리야?’
[당연하지. 아직 미완성이니까.]
하긴 그렇게 완벽한 물건이었으면, 녀석들은 이미 세계 정복을 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럼 언제쯤 완성되는 거야 이거?’
[멸망의 마지막쯤에 등장한 녀석들이야. 이거 등장했을 땐, 진짜 멸망이 거의 확정된 상태였어.]
흡사 좀비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물건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물건이 이번에 처리됐다는 거지?’
[그렇지. 우리가 샘플을 얻었으니까. 치료제도 동시에 준비할 수 있어.]
‘아주 좋아.’
귀족들을 싹 쓸어버리는 것 외에도 이런 이득이 있다니. 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둘러 움직이자.’
[어. 아까 말했지? 하루밖에 안 가니까 오늘 안으로 전부 해결해야 해.]
치명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좋아. 가 보자고!’
어차피, 드래곤 등에 누워 있다가 멋진 척만 하면 이번 일은 끝이었으니.
드라이브 나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거대한 드래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다음 귀족을 털어 먹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