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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142화 (142/210)

142. 정치는 전쟁이다

<모두가 만족하고 서로 양보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단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얼마나 추악한지 매일 같이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리도 완벽한 해결에 집착했겠지. 이해한단다.>

진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추악함을 보았기에, ‘이상’을 쫓았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선

택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결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맞습니다.

아무리 의견을 조율하며 그 타협점을 찾으려 해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타협할 생각이 없는 거란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 것이지.>

-……조금만 양보하면 됩니다.

<너에겐 조금이겠지만, 그들에겐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단다.>

-…….

그녀는 실망감을 느꼈다.

왕국의 귀족.

그 누구보다 교육을 잘 받은 이들은, 그 누구보다 추악했다.

<실망하지 말거라. 그들은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니.>

-……예?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양보하지 않아서 챙길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부와 권력뿐이었다. 이미 산처럼 쌓아 둔 부와 권력에 집착했다.

<그게 그들의 가치인 법이지. 추악한 것도 타락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살아가는 법이니.>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할 필요 없단다.>

-예?

<모든 걸 이해하려 하지 말거라. 모르는 건, 그냥 두어도 된단다. 그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니.>

로메른이 진의 말을 들었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했겠지만.

-그래도 되겠습니까?

신녀에겐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다.’ 심지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쏟아진다.

강제로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때때로 그 정보의 일부를 무시해야 했는데,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모든 걸 이해하려 했다. 진의 조언은 그녀를 해방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신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만 울고. 또 울려고 하는구나.>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진의 말에 다시 한번 쏟아졌다.

그녀는 깨달았다.

진이야말로 자신의 신이란 것을.

그녀에겐 그런 특별한 의미가 있었지만, 진은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아. 진짜 중요한 설명은 지금부턴데.’

진이 하려고 했던 말은 정말 간단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워라.

지구식 주입교육을 해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감동에 벅차 울기 시작하니 뻘쭘했다.

덕분에,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감정을 수습할 때까지 진은 우두커니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알려줄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게다.>

다시 교육이 시작됐다.

<어째서 내가 국왕파로 하기로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냐?>

-신께서 국왕의 신임을 받고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본질적인 이유가 되지 않는단다.>

-잘 모르겠습니다.

<권력과 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땐, 권력이 가장 큰 이에게 부탁해야 하는 법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괜찮단다. 일을 진행하며, 이해하면 될 일이니. 우선 왕을 만나러 가자꾸나.>

물론, 그녀가 스스로 겪으며 깨닫길 바라서 이런 방법을 취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알아서 잘 이해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훈수란 그런 법이다.

그렇게 진의 원거리 훈수가 시작됐다.

* * *

신녀는 익숙한 듯 왕의 집무실에 방문했다.

“또 오셨구려.”

왕은 신녀의 방문에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녀가 얼마나 자주 찾아와 그를 괴롭혔는지 왕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할 생각인 게요?”

왕은 벌써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신녀를 바라봤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신녀와의 대화는 그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소수 민족 전체의 대표인 그녀를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었다.

지금부터가 훈수 시작이었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거라. 우선 왕의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다.>

그녀는 진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신녀의 입에서 기대하지 않던 말이 흘러나오자.

“다른 이야기라?”

왕은 좀 전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기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 네가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부터 보여줘야 한단다.>

그녀는 진의 훈수를 그대로 구현했다.

“왕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전 모든 의견을 모아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왕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대화를 들었다.

“그 결과, 저는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대의 입에선 그 말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왕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이제 왕은 네가 왜 이곳에 왔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녀는 진의 훈수를 들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덕분에, 저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불가능하단 결론만 내린 게 아니구려. 이 문제의 본질을 보았군.”

신녀는 깜짝 놀랐다.

합의를 위해 대화를 할 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 말이 잘 통했다.

“예. 그래서 이곳에 왔습니다.”

“하하. 이리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군.”

왕은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의외구려. 귀족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더 나았을 터인데.”

대부분의 소수민족은 귀족파와 영지를 마주하고 있다. 직접적인 이득을 생각하면, 귀족파와 손을 잡는 게 맞았다.

물론, 그건 코앞만 보는 결정이다. 그건 왕도 알고 있었고, 진도 알고 있었다.

<네게는 보일 것이다. 왕이 어째서 저런 말을 했는지.>

그녀에게도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 있는 건,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부와 권력.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저 겉만 보지 말고, 좀 더 깊게 보거라. 어째서 그에게 부와 권력이 필요한지. 힘을 빌려주마.>

그녀의 가슴에서 뜨거운 게 느껴지고, 이내 생각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전혀 다른 것이 보였다.

외줄을 타고 있는 왕의 모습.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왕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 외줄 위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양손에 들린 ‘부와 권력’ 덕분이었다.

-……보입니다. 어째서 신께서 왕을 찾아가라고 하셨는지도 알겠습니다.

권력이 가장 큰 이는 그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시 말하면 왕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은 행복하고 편안한 인생일까?

전혀 아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승냥이 떼들이 모든 걸 뜯어간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면 왕은 필사적으로 ‘부와 권력’을 쫓을 수밖에 없다.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의 힘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이런 행동이, 국가가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왕은 그저 부와 권력을 좇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울타리를 지키는 자였습니다.

소수 민족에게 필요한 건, 왕국이란 울타리다. 그런 울타리를 지키는 왕이야말로, 이들의 가장 큰 우군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를 참여하는 이들은 부와 권력을 탐하는 괴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듯 말했다.

-정치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 신께서 어째서 이것을 보여 주셨는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엔 확신이 어려 있었다.

-화합은 그저 휴전일 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은.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전쟁이 왜 나와?’

정치와 전쟁이 같은 일이라니!?

물론, 이것을 내색할 순 없었다.

<그래도 때때로 화합은 필요하단다.>

-예. 신이시여. 무릎을 꿇린 후, 화합을 먹이겠나이다.

어. 음. 신녀님?

이렇게 갑자기 급발진하시면…….

그런 생각도 잠시.

<그래. 난 널 믿는단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적도 아니고 아군의 각성인데,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는 진이 훈수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전 좀 더 길고 멀리 보고 있습니다.”

“오호. 어디까지 말인가?”

“왕국이란 울타리가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하하. 내가 그대를 과소평가했구려. 그대가 화합을 내려놓으니, 이리도 무서운 사람이었군.”

왕은 그렇게 말한 뒤,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을 걸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호.”

대체 어떤 방법인지 진도 궁금했다. 한데, 그 방법은 진이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신이시여. 귀족파를 제어할 방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신녀는 그 방법을 진에게 물었다.

청출어람.

뭐, 훈수하거나 가르친 것도 없는데, 이젠 하산해도 될 거 같았다.

<그래. 알려주마. 귀족 중에, 악마와 계약한 이들이 있단다. 이 정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진이 귀족을 쭉 알려주니, 그녀는 그것을 가지고 왕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정치 괴물 둘이 대화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꿀잼이었다.

고작해야 대화일 뿐이었지만.

여긴 전쟁터 한복판이었다.

진은 그녀의 말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난 대체 무엇을 깨운 거지…….’

약간의 걱정이 들긴 했지만, 뭐 어떻게든 될 거다.

* * *

왕국이 요동쳤다.

여러 귀족이 축출되고, 작위가 몰수됐다. 그 덕에 권력의 지각변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귀족의 힘이 꺾이고, 왕의 힘이 상승했다.

감찰부의 권한이 늘어나며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하던 힘의 균형이 이때를 기점으로 국왕파에 급속도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쯤이 되면 귀족파가 들고일어날 만도 했는데,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합의를 외치던 그대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귀족파에서 일발 역전의 키를 쥐고 있는 ‘신녀’를 찾아갔고.

“……괴물이었구나. 그 합의는 괴물의 자비였어.”

탈탈 털린 채 되돌아갔으니까.

그렇게 귀족파가 잠잠해진 사이, 일은 빠르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왕국의 새로운 국민이며, 귀족인 이면 연합의 출범을 정식으로 허한다.”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공식적으로 왕국의 인정을 받았고, 그와 동시에 사업이 가동됐다.

“상점에 부탁만 하면, 집까지 물건을 배송해 준답니다! 화살 배송! 이용해 보세요!”

“화살 클럽에 가입하세요! 가입비만 내시면 한 달 동안 배송비가 무료입니다!”

주문은 직접 가서 해야 하지만, 일단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해 준다는 말도 안 되는 사업.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진짜 하루 만에 오던데? 아무리 늦어도 2~3일이면 온다더라고.”

“바다의 물고기가 그쪽 시세로 주문할 수 있다던데? 진짜야?”

“못 믿겠지만, 진짜라니까. 진짜 배달이 와. 그것도 싱싱한 놈으로.”

반응은 평민보다 귀족들 쪽에서 더 크게 터져 나왔다.

“이번 신상 보석들이 바로 배송된다고?”

“예. 백작님. 하루면 배송됩니다.”

“호위는 얼마나 붙지?”

“일당백의 전사인 사막 전사들이 배송을 책임집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약 도중에 탈취돼도 그 손해는 저희가 책임집니다.”

“오호. 기사급이라 불리는 그 사막 전사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건 마법 수정구인가?”

“예. 백작님. VVIP 회원님들께만 드리는 수정구인데, 나가실 필요 없이 집에서 주문할 수 있으십니다.”

“……며칠 써 보고 싶은데.”

“예. 써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원거리 주문되는 마법 수정구와 배송 문제가 생길 리 없는 시스템.

귀족들이 싫어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야만족들이 왕국민이 된다고 해서 탐탁지 않았는데. 나쁘지 않군.”

왕국의 물류 혁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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