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41화 (141/210)

141. 일하기 싫어!

마왕의 조금 전 보여 준 힘은 참 편리한 힘처럼 보인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여보내기만 하면, 자신의 원하는 신을 보고 신도가 되고 마니까.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편한 힘이 있을 리 없다. 애초에 그런 힘이 있다면 ‘진’이 먼저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은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한 것일까?

그 해답은…….

‘……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로메른이 가지고 있다.

[이게 바로 제약(制約)의 힘이야. 여러 가지를 제약했지만, 그중에서도…….]

설명이 길게 이어지려고 하는 걸, 진이 끊어 냈다.

‘그러니까 소수 민족한테만 통한다는 거지?’

[그렇지. 그 외에도 다양한 제약이 걸려 있어. 물리력이나 다른 걸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신’의 모습만 볼 수 있지.]

적용 대상과 용도가 한정된 힘.

그런 제약을 통해 힘을 증폭시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적을 발휘한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조금 기운이 빠지는 힘이지만…… 우리한테는 딱 맞아.’

[맞아. 소수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소수 민족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됐다.

심지어 이 ‘제약’의 힘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마왕의 힘은 더 강해질 거야.]

‘……진짜로 가능한 거야?’

[인간의 숭배는 일종의 힘이야.]

‘뭔가 감이 안 오는데?’

[쉽게 생각해. 사제가 신을 숭배해서 신성력을 얻는 것과 비슷하니까.]

‘숭배를 받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긴다는 거야?’

[어. 그렇다고 숭배받아서 힘 키울 생각은 하지 말고. 마왕이 개념 생명체인 악마니까 가능한 일이야.]

‘그럼 시간이 지나면 마왕은 마신이 되는 거야?’

[적어도 피라미드 안에서는 그에 가까운 힘을 가지겠지.]

이렇게 듣고 보니 굉장히 위험한 무언가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상관없나.’

로메른이 저런 엄청난 존재를 그냥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이미 계약서를 통해 마왕의 행동에 제약을 둔 상태였다.

[계약서를 너무 믿지 말고. 1000년 이상이 지나면, 계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간도 없을 테니까. 게다가, 그때는 진짜 마신이 될지도 모르기도 하고.]

‘1000년 뒤?’

[어. 빠르면 500년 정도만 지나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미래는 후손들에게 맡기는 거야.’

[하긴, 그것도 그렇네.]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기자고.’

솔직히 당장의 세계 멸망만으로도 충분히 귀찮으니까.

진은 뒷말을 애써 삼켰다.

[허허. 그대는 시니컬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사람이란 존재를 믿는군. 그대의 입에서 ‘인간 찬가’가 흘러나올 줄이야.]

검성은 쓸데없는 오해를 했지만, 딱 좋은 핑계였다.

‘……난 미래의 인간들을 믿어.’

날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정령도 있었다. 로메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쟤 표정 봐 봐. 미래에 그 뭐더라? 짬? 그거 한 거라니까.]

[아닐세. 인간의 대한 믿음! 그 자체가 느껴졌네. 그의 순수성을 훼손치 말게!]

정령들의 투덕거림을 들으며 진은 이면 세계를 벗어났다.

* * *

완벽한 사전 작업을 끝내고, 이면 세계에서 나왔을 때.

로메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씨앗은 뿌려두었으니.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야.]

조금만 더?

아니. 이만큼이나 일했는데!?

일은 끝이 없었다.

참고 참던 진이 결국 터졌다.

“못해!”

[……뭐?]

“배 째!”

[진짜?]

로메른은 마나의 칼날을 뿜어내며 물었다.

“아, 아니! 기다려봐! 쫌!”

진이 황급하게 녀석을 멈춰 세웠다.

“솔직히 너무 빡세잖아. 무슨 일이 끝이 없어? 나머지는 그냥 놔두면 끝 아니야?”

[이번 일은 아니야. 변수가 너무 많아. 이건 네가 직접 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끝내야 하니까.]

로메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란 건 진도 잘 알고 있었다.

“내 말 들어 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의 귀찮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있을 텐데, 매번 내가 움직이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니야?”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로메른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솔직히 내가 왕국에 간다고 뭐가 달라져? 여태까지 쌓은 이미지 때문에 어차피 정치적으론 못 움직이잖아.”

[그건 그렇지.]

로메른이 조금씩 넘어오는 거 같았…….

[대신,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신녀에게 힘이 실릴 거야.]

어림도 없었다. 녀석은 정론으로 진의 말을 격파했다.

하지만, 진은 현재 귀찮음이 초과해 두뇌가 풀가동인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쉽사리 지지 않는다.

“그 행동 자체가 정치적인 움직임 아니야? 게다가 날 보내려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

[……진짜 눈치 하나는 귀신같네. 맞아. 변수에 대처하는 건, 네가 일가견이 있잖아.]

“결국 내 머리가 필요한 거지? 신녀 옆에서 훈수해 주라는 거잖아.”

[……굳이 따지자면 그 말이 맞아.]

여기가 승부처다.

해먹에 누워 있느냐. 아니면, 왕궁에 가서 개고생하느냐가 바로 지금 결정된다.

‘일하기 싫어!’

그 순간, 진의 머릿속에 엘프의 초능력 하나가 떠올랐다. 절박하던 진의 표정이 평온하게 변했다.

“로메른. 너도 왕궁 가기 싫잖아. 미니 드래곤 보강도 해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니까.]

“알아. 나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야. 솔직히 내가 할 일 안 하고 놀진 않잖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애초에 네가 원하는 인생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러니까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 일은 할게. 대신 누워서 할게.”

잠시 훈훈하던 분위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로메른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아. 일은 해 주실 건데, 누워서 일하시는구나? 그런 해결책이 있는데 내가 몰랐네. 우리 진 님께서 누워서 일하고 싶으신데, 내가 그걸 몰랐어!]

로메른의 눈이 반쯤 돌아간 거 같았다.

“아니. 일단 들어 봐. 현실성 없으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후우.]

로메른은 숨을 몰아쉬며 애써 분노를 삼켰다.

“엘프의 초능력 중에 텔레파시랑 시야 공유. 두 가지를 이용하면 원거리에서 훈수할 수 있지 않아?”

[…….]

녀석은 아무런 말도 없이 조금 고민하더니.

[……되겠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치? 결국 변수에 대응할 훈수가 필요한 거면, 원거리로 샤삭! 해 주면 끝이지.”

[…….]

로메른은 대답하지 않고, 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좋아. 일단, 실험해 보고 성공하면 그대로 진행하고, 실패하면 바로 출발한다.]

“좋지!”

진이 연결을 준비하는 동안,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진짜 이걸 똑똑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게으름만 없었으면 세계도 정복했을 놈이…… 아니지, 게을러서 이런 발상이 가능한 건가?]

로메른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었다.

* * *

진이 보낸 서신들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신녀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나의 아이야.>

머릿속에서 들리는 ‘신’의 목소리.

깜짝 놀랐던 것도 잠시.

‘나도 참.’

그녀는 그게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답답할 때면, 언제나 신님을 떠올렸다. 지치고 힘드니, 환청이라도 들린 거라 생각했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그때.

<제대로 들은 거 맞단다. 아이야.>

다시 한번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신이시여?”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으로 생각해도 들리니. 겉으로 이야기할 필요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했던 생각을 신께서 읽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까지는 읽지 못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대답했다. 어쨌든 조금은 읽혔단 소리였으니까.

진의 목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아이야. 어깨가 많이 무겁겠구나.>

‘……아닙니다.’

<정말인 게냐?>

진의 물음에 그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거웠다.

<안다. 네 결정에 모든 소수 민족의 운명이 달렸는데, 어찌 무겁지 않을 수 있겠느냐.>

신께서도 그걸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널 도와주기 위해 내가 온 것이란다. 내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

‘신이시여…….’

신의 배려에, 자비에 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힘을 받아들이거라.>

곧이어 몸에 차오르는 힘이 느껴졌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기묘한 감각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신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제 네가 보는 걸 내가 볼 수 있고, 네가 느끼는 걸 내가 느낄 수 있단다.>

자비로운 신께서.

<어깨를 짓누르는 그 책임감을 내가 거들어 주마. 함께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강림하셨다.

<울지 말거라. 고생 많았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데, 눈물이 속절없이 떨어졌다.

<나의 아이를 괴롭힌 게 누구냐. 내가 혼내 주마.>

자비롭고 따듯한 그날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울다 웃으면. 흠! 다행이구나.>

‘예?’

<아니란다.>

물론,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 말도 있었지만.

* * *

진은 볼을 긁적였다.

‘하긴 업무량이 너무 많긴 했지.’

‘알아서 해 주겠지’란 생각만 했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진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 일해야 하니 애써 모른 척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로메른의 잔소리 덕에 시작한 일이지만.

‘적어도 늦진 않은 거 같네.’

진이 처음 신녀에게 말을 걸었을 땐, 그녀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내가 와 준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진이 온 걸 깨닫자마자 그녀는 언제 위태로웠냐는 듯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일은 신녀에게도 좋은 일이었고, 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의외로 재밌단 말이야.’

마치 VR 기계를 쓰고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신을 연기하는 게 좀 오그라들어서 그렇지.’

그것만 제외하면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신이시여.

그때, 신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아이야. 난 여기 있단다.>

-지혜를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맘껏 물어보아라. 난 그러려고 네게 온 것이니.>

그러자, 신녀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면 연합을 세우는 건, 국왕파와 귀족파 모두가 동의하는 일입니다. 다만, 그 연합이 추진하는 일이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일지는 쉽게 예상이 됐다.

<이권이 문제로구나.>

-그렇습니다. 귀족파와 국왕파를 조율해 타협안을 찾으려고 해 보았지만, 저의 힘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존 물류의 이권을 쥐고 있는 귀족파와 그런 귀족파의 세력이 커지지 않길 바라는 국왕파.

둘은 평행선을 달리는 이들이다.

서로를 견제하며 이권을 뺏고 빼앗기는 관계.

그런 두 세력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네가 사죄할 일이 아니란다. 네 힘으로 되지 않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그걸 몰랐을까?

아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시도한 이유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이면 연합에 필연적으로 적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의 선택에 너무 큰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그녀는 불가능한 일을 계속해서 고민한 것이다.

<네 고민을 해결해 주마.>

그러니 진이 여기서 할 일은 간단했다.

<국왕파로 하자꾸나.>

대신 선택해 주면 될 일이다.

<귀족파를 제어할 방법을 내가 가지고 있단다.>

로메른이 꼭 가야 한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이건, 그녀 혼자서 처리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신이시여!

<나만 믿어라.>

-믿습니다!

<특별한 방법을 전수해 줄 테니.>

지금 가르쳐야 나중에 알아서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아이들은 못된 걸 빠르게 배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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