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40화 (140/210)

140. 이면 연합

‘추워!’

날 선 바람이 진의 몸을 휩쓸었다.

상쾌한 바람과 자유, 해방감 따위는 이곳에 없었다.

‘차단막, 다시!’

진이 로메른에게 소리쳤다.

날 선 바람들이 사그라들고, 다시 한번 평온함이 찾아왔다.

[왜? 바람의 자유를 느끼고 싶다며?]

웃음기 가득한 로메른의 물음이 날아왔다.

‘아오. 바람이 이렇게 매서울지 몰랐지!’

드래곤을 타고 날아가는 동안 바람을 막아 주는 차단막을 해제하는 건 자동차 창문을 여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냉혹하고 차가운 바람이 진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고도를 생각해야지. 심지어 방금 차단막을 전부 해제한 것도 아니었어.]

‘그게?’

[어. 혹시나 해서 몇 가지는 유지한 상태였어.]

그 섬세함이 고마우면서도, 뭔가 찝찝함을 느끼게 했다.

‘……잠깐, 그러면 그냥 바람만 느끼게 해 줄 수도 있었던 거 아니야?’

[어? 동력부에 뭔가 문제가 있나?]

녀석은 누가 봐도 핑계 같은 말을 둘러대며, 드래곤 몸속으로 사라졌다.

‘로메른!’

진이 소리치자 그 타이밍에 맞춰, 드래곤 또한 울음을 터트렸다.

크오오오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진정하세요. 이 드래곤에 담긴 영혼은 진 님의 감정에 따라 움직여요.]

루나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작업한 건 로메른이라 정확한 설명은…….]

‘아니. 정확한 설명은 필요 없어.’

애초에 진이 듣는다고 아는 게 아니었다. 그저, 대략적인 이유만 해도 충분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건 드래곤의 영혼이 아니에요. 뭐랄까…… 로메른이 만든 드래곤의 영혼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뼈도 다른 뼈를 이용해 만든 인조 드래곤 본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영혼도 인조다!?

‘이거 겉모습만 드래곤이지 순 짝퉁이잖아.’

진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루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문제가 있어서 가 본다는 로메른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너! 뭐라 그랬어!]

‘동력부에 문제 있다며?’

[아, 진짜!]

진이 뻔뻔하게 되묻자, 녀석은 분하단 얼굴로 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드래곤은 영지를 향해 날아갔다.

다만, 진은 알지 못했다.

드래곤이 울부짖음 덕분에, 몇몇 사람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드래곤을 발견했고.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기 위해 드래곤이 왔다!”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로메른과 정령들은 미니 드래곤을 양산하는 중이었고, 현자는 지식의 해방 뒤처리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길 며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소식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왕국에서 서신이 올 줄이야.’

왕궁에서 왕이 직접 작성한 서신이 하나 날아왔다. 페일 남작가에 관한 보고서와 함께 왕의 감사 인사가 담긴 서신이었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가족 일인데도, 깔끔한 일 처리 좋았다. 역시, 그대를 믿고 있었다. 감찰부 모두의 귀감이 되었다.>

이 편지가 그저 입으로만 하는 칭찬 같지만, 그렇게 작은 의미를 담고 있는 편지는 아니었다.

[앞으로 왕은 널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을 거야.]

가족이라고 예외를 두거나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처리했다.

여태까지 진이 쌓은 청렴함과 무욕함 위에 공정한 집행까지 더해진 것이다.

그 서신을 시작으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소식도 들어왔다.

좋은 소식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정말이었다.

<소수민족 정리 완료.>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소수민족 문제가 해결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덕분에 진은 ‘이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 앞에 와 있었다.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은 고개를 숙이자 옆에 서 있던 노바와 아이들, 말릭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 인사를 받은 건, 소수 민족 대표들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이 진행됐다.

“지금부터 제가 보여 드릴 것은 여러분의 미래이며 꿈입니다.”

진은 프리젠테이션은 전과 그리 달라진 건 없었다.

“하루 만에 도착하는 화살 배송! 여러분들이 왕국의 모든 물류를 지배하는 겁니다.”

프리젠테이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이 한 번 설명하기도 했고, 그 설명을 들은 부족들이 다른 이들에게 전했을 테니까.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여러분은 연합을 이루셔야 합니다. 단체를 만드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생깁니다!”

소수 민족을 하나로 묶는 계획.

“정글러의 신녀께선 그 작업을 진행 중이십니다. 그분이 대표는 아니지만, 여러분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주실 완벽한 분이십니다.”

의사를 모을 완벽한 사람.

계획을 위해 준비한 것들은 차곡차곡 진행 중이었고, 반발하는 이들도 없었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을 이루기 위해선,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모두가 궁금하단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이곳 이면 세계는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진의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대가 만든 공간이 아닌가?)”

“아닙니다. 하나의 세계의 주인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못한다?)”

“예. 이곳의 주인은 인간을 벗어난 분이십니다.”

“(……그대의 말뜻을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일단,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는 건가?)”

말뜻을 모르겠다더니, 태도만 보면 이해한 게 확실했다. 그들은 어쩐지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로 되물었다.

“예. 괜찮습니다.”

“(……주인이란 자를 만나보고 나서, 거절할 수 있는 건가?)”

“당연하죠.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만나 보겠다.)”

진은 모두를 데리고, 피라미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소수 민족을 위한 진의 계획은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수 민족이 힘을 얻고 난 뒤, 통제되지 않는다면?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통제가 안 된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 진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껏 독립시킨 소수 민족이 지식의 해방과 연합이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도록 모든 걸 통제할 감독관이 있어야 한다.

인간 세상의 감독관이 신녀.

이면 세계의 감독관은 마왕.

진이 준비한 감독관들이었다.

‘게다가, 마왕이 진짜 세계의 주인으로 힘을 사용하려면…….’

소수 민족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쪽에는 나름의 조치가 되어 있었다.

“들어가시죠. 인간이 아니셔서, 인간의 예법은 필요 없습니다.”

진이 그렇게 말한 뒤, 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거대한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환한 빛이 쏟아졌다.

진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녀석의 모습이었다.

새하얀 옷과 빨간 띠를 맨 남자.

그의 머리엔 월계수 관이 씌워져 있었고, 그의 등 뒤론 거대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마치 지구의 ‘예수’ 같은 모습.

[네가 생각한 신은 이런 모습이야? 신기하네.]

로메른이 진이 보는 걸 보는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 그런 거지.’

진은 곧장 눈의 힘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 뒤에 있는 진실한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애롭고 신성해 보이는 예수의 모습이 아닌, 마왕의 모습이.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네.’

[……그렇지. 세계의 힘을 이용한 사기인데, 안 통하는 게 이상한 거지. 눈의 힘으로도 완벽히 꿰뚫어 보는 게 불가능하니까.]

진이 개입한 일인데 당당히 진실로 승부할 리 없었다.

당연히 날조와 사기로 승부했다.

사기 방법은 간단했다.

[각자 원하는 신의 모습을 볼 거야. 소수 민족이라고 해도 각자의 신이 있으니까.]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을 볼 것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사기의 시작이었다.

* * *

정글러의 족장은 눈물을 흘렸다.

“(아아!)”

그의 표정은 환희와 기쁨에 젖어 있었다.

자신과 함께 왔던 다른 이들은 물론이고 안내했던 진마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정글의 주인이시여!)”

그의 눈앞에 ‘신’이 있었기에.

“(정글을 지켰나이다! 최선을 다해 정글을 지켰나이다!)”

신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그는 울부짖듯 소리쳤다.

곧, 그의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정글의 아이야.

신께서 응답하셨다. 그의 목소리가 신에게 닿은 것이다.

“(예! 전 여기 있습니다!)”

-나의 모습이 보이느냐.

신의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예! 보입니다! 정글이시며, 신물의 주인이신 모습입니다!)”

그의 대답은 추상적이었는데, 그는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녹색 연기가 뭉쳐진 모습. 그 모습에선 정글이 보였고, 신물의 힘이 느껴졌으니까.

-난 이면의 주인. 이면이 있는 모든 곳의 신.

“(아아!)”

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는 전율을 느꼈다.

-정글 또한 나의 모습 중 하나이니.

“(그렇습니다!)”

고작해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그는 반쯤 광신도가 되어 있었다.

-넌 나의 아이다.

“(아아! 감사합니다!)”

기쁨과 환희가 그의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영토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마.

“(…….)”

사람은 너무 기쁘면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한다.

그저, 멍하니 상대를 바라볼 뿐.

-이면의 정글이 너희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감, 감사…….)”

그는 그 감사 인사를 끝내 내뱉지 못했다.

그 말을 내뱉기도 전에.

쿠웅-

굉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쏟아지던 빛도, 가슴 속에 가득했던 충만함도, 모두 사라졌다.

“잘 만나셨습니까?”

그들의 눈앞엔 ‘신’이 아닌, 진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

모두 자신과 똑같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대는 어떻게 멀쩡히 서 있을 수 있지?)”

그때 누군가 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 다른 분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인간을 초월한 엄청난 분이란 것밖에 안 느껴집니다.”

“(안타깝군. 그분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니.)”

정글러 족장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전 이미 모시는 분이 있으니까요.”

진은 그렇게 말한 뒤.

그들에게 물었다.

“아. 제일 중요한 걸 못 여쭤봤네요. 어떻게 대화는 잘 끝났습니까?”

“(……잘 끝났다. 그분께서 허락하셨다.)”

원래라면 그들이 선택해야 할 상황인데, 그게 180도 변했다. 이면의 주인이 선택하고, 그들이 선택받는 상황으로.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네요.”

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글러 족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분께서 우릴 사랑하시니. 당연한 일이다.)”

“(맞다.)”

진이 끼어들 틈도 없이,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분은 정글이라고 하셨다.)”

“(화산이라고도 하셨지.)”

“(암벽이시기도 하다.)”

…….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다.

“(우리 모두 그분의 자식이다.)”

“(맞다. 우린 서로 다르지만, 똑같은 점이 있다.)”

“(이면의 주민.)”

“(그렇다!)”

“(그분께서 모두를 허락하셨으니까!)”

그런 그들의 결론은 재미난 곳에 도달했다.

“(서로 문화도, 위치도, 민족도 다르지만, 우린 하나다.)”

“(연합!)”

“(우린 이면 연합이다!)”

“(우린 하나다!)”

진이 처음 이야기했던 연합 이야기가 그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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