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39화 (139/210)

139. 현자의 가족

[어때?]

의기양양한 로메른의 표정.

한 대 쥐어박고 싶게 만드는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야!”

이 말 외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뭐, 나만의 비밀 레시피로 잘 만들었지.]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만한 말이었지만, 진의 수준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과연. 이것이 흑마법의 극의!”

[그렇지! 이게 흑마법의 극의! 그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본 드래곤을 내가 완성했다 이거야!]

심지어 그냥 본 드래곤도 아니었다.

“저거, 저건 어떻게 한 거야?”

본 드래곤과 현자가 합체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저 해골바가지였던 본 드래곤이 마치 살아 있는 드래곤처럼 변화했으니까.

[후후. 이름하여 마그마 드래곤!]

“마그마!?”

[용암 골렘의 힘과 본 드래곤을 합친 궁극의 드래곤!]

“궁극! 합체!”

대체 이게 뭐한 짓인가 싶지만, 저 모습을 보면 이 정도 서비스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드래곤은 거대하고, 아름다우며, 위엄이 넘쳤다.

그런 드래곤이 진의 소유였다.

“대체 저게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후후. 그게 바로 흑마법의 위대함이지.]

그때 제작을 함께했던 루나가 끼어들었다.

[흑마법의 위대함보다는 정글러들의 신물이 큰 도움이 됐어요.]

[……뭐, 약간의 도움이 된 거지.]

[오. 그게 약간이에요?]

[아, 쫌!]

안 봐도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형태는 완성했으나, 움직일 힘이 부족했을 터.

[원래라면 언데드니까 영혼의 힘만으로는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그래서 정글러들의 신물을 넣은 거야?”

[어. 끄응. 그래도 완성이라니까! 내 걸작이 훼손된 건 아니야!]

흑마법사인 로메른에게 외부 동력을 빌린 건 수치스러운 일인 모양이었는데.

진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핵 드래곤이라니. 개쩔잖아.’

오히려 더 멋져 보였다.

전혀 나쁠 게 없었다.

“그렇다면 필살기도 만들 수 있겠는데?”

[필살기?]

“자폭 기능을 넣는 거야. 저번에 내가 이야기했지? 신물의 성질을 이용해서 폭발시키는 거 가능하다며.”

[오오. 좋은데?! 결전 병기 느낌이잖아. 아. 근데 그렇게 쓰기엔 조금 아깝지 않아?]

“또 만들면 되잖아.”

[이걸 또 만들어도 된다고!?]

뭔가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랐다.

“잠깐 자폭 기능은 여기다 설치하지 말고 다른 곳에 설치하자.”

[다른 곳?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막 입을 열면, 미니 드래곤이 나오는 거야. 일종의 항공 모함 느낌으로?”

[……아직 브레스는 못 쏘는 거는 어떻게 알고.]

“오. 브레스! 느낌 있는데?”

불이나 얼음을 뿜어내는 건, 너무 식상한 법.

브레스인 줄 알았는데, 미니 드래곤이 떼지어 나온다?

심지어 그 미니에는 자폭 기능 탑재돼 있다!

[드래곤이 드래곤을 쏟아낸다니…… 적에겐 악몽이나 다름없겠어.]

“어때 느낌 있지?”

[느낌만 있겠어? 실용성도 있을 거 같은데.]

반쯤은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괴상한 무언가를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

[……저 둘의 발상을 전 이해 못 하겠어요.]

[내 생각도 마찬가질세. 그래도 둘이 같은 편인 게 정말 다행일세.]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루나와 검성은 둘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래곤의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둘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은 대체 어디서 이렇게 기어나 오는 건질 모르겠네.]

“나도 깜짝 놀랐어. 정예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사념 보석 생산이 안 그래도 더뎌졌었는데, 이젠 괜찮겠네.]

진은 고개를 끄덕이다, 한 사람을 가리켰다.

“얘는 빼.”

[놔주자는 거야?]

진은 녀석과 한 대화를 로메른에게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로메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네가 지식의 해방이 됐으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지식이 해방됐겠는데?]

“아니. 나라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애초에 지식의 해방 상층부의 목표는 지식의 해방이 아닌 거겠지.”

[하긴 그렇게 판단하는 게 맞을 거 같긴 한데. 그럼, 진짜 목표는 뭐야?]

“지금 가장 유력한 건 세상을 멸망시키는 거라고 보면 되지 않겠어?”

그렇다고 모든 대답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인데, 뭔가 목적이 있지 않겠어? 멸망은 수단일 뿐, 목적은 따로 있겠지.]

“그건 그렇겠지.”

물론, 합당한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이 의문에 매몰될 필요도 없었다.

“일단, 그건 천천히 생각하자. 적어도 상층부와 하층부가 다른 생각 하고 있다는 걸 알았잖아.”

[알겠어. 일단 기억만 해 둘게.]

당장은 이 정보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쨌든 이 친구가 스노우 볼을 굴려 줄 거야.”

[그렇겠네. 의심이 생겼으니 확인하겠지. 내부에서 사건도 만들어 줄에도.]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해야 한 명을 풀어 줄 뿐이지만, 녀석은 마치 독처럼 지식의 해방을 뒤흔들 것이다.

[나머지는 그럼 지옥으로 보낸다?]

“당연하지.”

하층부는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란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저들을 지옥에 처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크라라라라-!

저들을 옮기는 방법은 간단했다.

낼름.

“낼름?”

거대한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혀로 지식의 해방 녀석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곤.

꿀꺽.

“꿀꺽?!”

드래곤은 지식의 해방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어때? 이렇게 옮기면 돼.]

드래곤의 뱃속에 담아 이동하면 끝이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데드라는 게 이럴 땐 좋네.”

[내부 용량이 꽤 돼. 제일 어려웠던 게 신물의 독을 차단하는 거였는데…… 그것도 나름의 해답을 찾았어.]

“해답?”

[원래 황금 상자에 담아서 옮겼었잖아. 그 방법을 응용했어.]

녀석은 해맑은 표정으로 무서운 말을 했다.

“……내부를 도금했다는 소리야? 아주 골드를 쏟아부었겠네?!”

[정답이야.]

드래곤의 크기를 생각하면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뭐, 괜찮아. 돈 벌어서 어디다 쓰겠어. 이럴 때 써야지.”

게다가, 드워프의 무구 제작과 앞으로 물류의 지배자가 될 야만족을 생각하면 진은 돈이 부족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하여간 쪼잔한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대범하다니까.]

진은 로메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일이 끝난 거 같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짜증이 나고 지저분한 일이.

“로메른. 현자랑 잠시 다녀오고 싶은 곳이 있는데.”

진의 뜬금없는 요청에도, 로메른은 아무렇지 않게 수락했다.

[다녀와.]

“기다려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어. 미니 드래곤 구상이나 하고 있을게.]

무슨 일 때문에 가는지 이해가 되는 모양인지 녀석은 진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름의 배려인 모양이었다.

“현자! 잠깐 다녀오자.”

진이 현자를 부르자, 드래곤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곧이어, 주먹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용암 골렘이 진에게 날아왔다.

-가자.

‘그래.’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러 갈 차례였다.

* * *

지식의 해방이 이곳에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그저, 진의 행적을 조사하고 사전에 잠복한 것일까?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체계적이었고, 준비가 철저했다.

이건 진의 외할아버지인 페일 남작의 허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할아버지랑은 회귀 전에 어땠어?’

-특별한 추억이 있진 않아. 그저 날 지독히 싫어하셨을 뿐이야.

‘귀여운 막내 외손자를?’

-그 막내 외손자가 자기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났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니까.

‘그게 끝이야?’

-어. 끝이야.

그는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자를 보는 심정이었을까?

뭐,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네가 아니야.’

-알아.

‘해결은 내가 보기엔 깔끔하겠지만, 네가 보기엔 잔인할지도 몰라.’

-……알겠어.

어쨌든 현자에겐 가족일지 몰라도, 진에겐 그저 적일 뿐이었다.

‘후환을 남겨 두는 멍청한 짓은 사절이야.’

-이해해.

진이 현자의 다짐을 받다 보니, 어느새 남작이 머무는 성에 도착했다.

기사들은 깜짝 놀라 진을 쳐다봤다.

“뭘 이제야 놀래? 드래곤 날아올 땐 근처도 안 오더니?”

드래곤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진이 하늘과 땅에서 번쩍이는 대도 기사들은 전혀 오지 않았다.

이 기묘한 현상의 해답은 하나뿐이었다. 묘지 쪽으로는 접근하지 말라는 명이 떨어진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지?”

“……감찰부에서 방문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알면 비켜.”

기사들은 눈치를 보며 비키지 않았다.

“옆에서 어떤 난리가 났는지 봤지? 여기 연루되면 진짜 골치 아파질 텐데. 진짜 안 비키게?”

진의 말에 녀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찰부 지하실 들어봤어? 코로 물을 마시는 곳인데. 같이 가서 물 한잔할래?”

녀석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기사라곤 해도 고작해야 남작가의 기사다.

플린트 남작령의 기사단장처럼 특별한 사람이 있지도 않은 이곳에, 진짜 ‘기사’가 있을 리 없었다.

녀석들이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잘 선택했어.”

진은 성큼성큼 남작성 내부로 들어와.

-이쪽이야.

현자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무실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기묘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

현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반응만으로도 뭔지 대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진은 집무실 문을 걷어찼다.

쾅-!

문짝이 날아가고, 뿌연 연기가 밖으로 흘러나온다.

‘하…….’

그 연기 틈 사이론 생각한 대로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약에 취해 앉아 있는 노인과 주위에 널린 수십 가지의 약병들과 향초들.

‘진짜 빌어먹을 놈들이라니까.’

여기까지 봤다면,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쉽게 추론이 된다.

딸을 잃고 절망한 남자.

그 남자를 위로한 지식의 해방.

친분이 쌓이고, 딸을 만날 수 있다며 건넨 약.

그 결과가 이런 꼴이 되는 것이다. 약에 중독되고 찌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할래?’

현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치료해서 원래대로 돌리는 게 효과 없다는 건 알지?’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게…….

‘치료가 효가 없다는 게 아니야. 그의 마음 자체가 꺾였다는 게 문제야.’

그는 치료가 돼도 약을 찾을 것이다. 약에 취해 만났던 딸을 만나기 위해서.

-그건…… 그렇겠지.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나도 양보할게. 너도 양보해.’

-어떻게?

‘살려 둘게.’

-……정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에 중독된 이 상태가 크게 위협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된 다음 날뛰는 게 문제였다.

‘대신 평생 가둬 둘 거야.’

-……가둬 둔다고?

‘어. 지옥으로 보낼 거야.’

-그건!

‘대신 끔찍한 것이 아닌. 자신의 딸을 만날 수 있게 해 줄게.’

-행복한 꿈을 평생 꾸게 해준다는 거지?

‘어.’

그제야 현자는 진이 서로 양보하자고 했던 이유를 이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죽이는 게 깔끔하다. 현자만 아니면 진은 일단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자가 있다.

데면데면했다지만 가족이었다.

이건 현자를 위한 결정이다.

‘어때? 서로 한 걸음만 양보하면,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거야.’

어쨌든 이 양반은 행복한 꿈을 꿀 테고, 진에게 위협도 되지 않는다.

-고마워.

현자가 감사를 표했다.

‘대신 이 남작령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한다.’

-알겠어.

당연히 이런 배려를 받는 건, 남작뿐이었다. 다른 놈들은 진을 귀찮게 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 *

성자가 용을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무렵.

“움직이지 마!”

“감찰부다!”

“지금부터 이 남작령은 감찰부의 조사를 받게 된다.”

진의 요청으로 왕국에서 감찰부 최정예가 페일 남작령에 도착했다.

가족이란 이유로 진이 슬며시 짬때린 일이었지만.

“감찰부가 일할 땐 가족도 없는 법이다! 모두 철저히 조사해라!”

“성자님의 올곧은 마음을 우리가 집행하는 것이다!”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숨김없이 조사를 요청한 성자의 공명정대함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성자가 용을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쪽을 더 믿었다.

솔직히 용을 타고 다니는 성자는 너무 말이 안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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