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38화 (138/210)

138. 지식의 해방이란?

[……진짜 환장하겠네.]

로메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자에게서 메시지 마법이 날아오길래 뭔가 싶었더니…….

잠깐 놀러 나간 두 녀석은 아주 스펙터클한 일에 휘말려 있었다.

[무슨 성묘를 가서 지식의 해방 정예를 만나!?]

[허허. 현자가 붙어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을 걸세. 서신에도 그리 써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가 걱정해서 이러는 것 같아!? 어이가 없잖아 어이가!]

로메른의 말에 루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고 있네요.]

[허허. 로메른, 그대가 누굴 걱정하는 건 또 처음이구먼.]

검성은 루나의 말을 웃으며 받았다.

[본 드래곤을 만드는 이 중대한 시기에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 거 아니야!]

로메른의 말에 둘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이빨 보이지 말고 빨리빨리 일 안 해!?]

[허허. 하면서 웃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솔직히 진이 죽는 모습이 상상이나 돼요? 현자랑 안 갔어도, 어떻게 살아남았을 사람이에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구먼.]

이들이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이 가지고 있는 장비나, 걸려 있는 마법만 해도 수십 가지다.

정령들과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제 몸 건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농담은 그만하고 진짜로 다들 서둘러. 진이 잡아 놨으니 우리가 수확만 하면 되니까.]

게다가, 진이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거기서 걔들을 붙잡아 둘 생각을 했는지. 하여간 정령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구했다니까.]

지식의 해방 정예.

이 난리통에도 숨어 있던 진짜 병력을 단숨에 수확할 찬스였으니까.

[지금부터 날갯죽지 쪽 시작할 거야!]

로메른의 등 뒤로 거대한 신형이 하나 보였다.

드래곤은 차근차근 제작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 정령들은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마법진 안에는 대환장 파티가 열려 있었다.

“대체 이게…….”

“마법진을 해제해라! 우리가 설치한 건데 어찌하여 해제를 못한단 말이냐!”

“이, 이 무슨!”

처음엔 마법진을 해제하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려 ‘현자’가 변형한 마법진이었다. 녀석들이 이걸 푸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떠들썩한 시간이 지나고.

“이건 해제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만든 봉쇄에 저희가 휩쓸렸습니다.”

“……정녕 불가능하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마 이걸 해제할 수 있는 건, 성자뿐일 겁니다.”

이걸 풀 수 있는 건 성자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엔 회유가 시작됐다.

“휴전을 요청한다.”

“휴전?”

녀석이 꺼내 온 카드는 ‘휴전’이었다.

“이 마법진을 해제하고, 이 도시를 떠나기 전까지 휴전하는 것이다.”

“오호.”

진이 관심을 보이자, 녀석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마나의 맹세라는…….”

“알고 있어. 금지된 지식 중 하나지? 강제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금지된 걸로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그대는 금지된 지식에 관해 아는 게 많군.”

그는 눈에 이채를 띠며 그렇게 말한 뒤.

“아무튼, 그 마나의 맹세로 서로의 약속을 강제할 수 있다. 휴전하지.”

“발상은 나쁘지 않네.”

“그렇다고 착각하지 마라. 우리의 싸움을 뒤로 미룰 뿐, 그대와 정말로 휴전할 생각은 없으니.”

녀석은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휴전을 요청하며 적의를 표하는 건, 멍청한 짓으로 보이지만 정반대였다.

오히려 그렇기에 녀석의 말은 설득력을 가졌다.

“부족해.”

“뭐가 부족하단 거지?”

“널 믿기엔 내 확신이 부족하다고.”

물론, 진짜 이 녀석들을 믿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이 녀석들이 진짜 진을 살려 보낼까?

진은 확언할 수 있었다.

절대로 살려 보내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이것을 빌미로 정보를 빼내는 것이다.

“하. 그럼 어쩌자는 거지? 이대로 같이 죽자는 건가?”

“반대로 물을게. 너희는 나 믿을 수 있어?”

“그건…….”

진이 녀석들을 의심하듯, 녀석들도 진을 의심한다. 서로를 의심하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대화 좀 하자.”

“대화?”

“이곳에 갇혀 있는 이상. 우리에게 넘치는 게 시간 아니야?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대화 좀 해 보자 이거야.”

“그대와 내가 나눌 대화가 있을지 모르겠군.”

“그건 서로 추구하는 게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지. 의외로 대화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

어차피 녀석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좀 앉아. 혹시 내가 하는 말이 불안하다면, 다른 이들도 데려와도 좋아.”

“필요 없다. 나 혼자서 충분하다.”

“그래? 그렇다면야 뭐.”

대화의 포문은 진이 열었다.

“일단, 난 지식의 해방이란 것에 그리 반대하는 편은 아니야.”

“무슨!”

“아까 네가 그랬지? 내가 금지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그건 사실이야.”

“우리의 지식을 약탈한 건가?”

진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신께서 내려 주셨어.”

“헛소리!”

“와우. 성자 앞에서 신을 부정하는 거야? 그거 신성 모독인데?”

“장난은 그만해라.”

그는 날 선 목소리로 말했지만, 진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장난이 아니야. 너도 마법사이니까 알거야. ‘진리의 도서관’이라고.”

“…….”

녀석은 깜짝 놀라 진을 바라봤다.

마법사가 극의에 도달하면 도달하게 되는 진리의 도서관.

그곳이 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께선 그곳의 길을 열어 주셨어. 덕분에, 금지된 지식을 엿볼 수 있었지.”

“……믿을 수 없다.”

“뭐 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근데, 믿지 않으면 좀 실망할 거야. 제일 편견 없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게 너희 아니야?”

“……틀린 이야긴 아니군.”

대화의 주도권은 완전히 진에게 넘어왔다.

“자. 여기서 의문이 떠오르지 않아? 신께서 이 지식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셨으면, 내게 그걸 보여 주셨을까?”

“…….”

녀석은 대답도 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너희가 적인 건 맞아. 적을 상대할 무기를 주신 거니까. 근데, ‘지식의 해방’이란 사상이 진짜 적일까?”

“지식의 해방은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적이다?”

녀석은 진이 의도한 결론을 내렸다. 이제 여기서 조미료를 첨가해주면 될 일이다.

“내가 너희의 입장이면 어떻게 움직였을지 생각해 봤거든. 나라면 교단의 통제를 받으며 지식의 해방을 추진했을 거야.”

“……교단은 협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내 생각은 다른데? 교단만큼 믿을 수 있으면서, 합리적인 조직이 있어?”

사제들은 삿된 마음이 들면 채찍으로 등을 후려갈기는 족속들이다.

“만약 협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협조하도록 낮은 단계부터 설득했어야지.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교단이 움직이면, 지식의 해방이 불가능했을까?”

“……교단의 통제를 받겠지만, 많은 이들이 해택을 볼 수 있겠군.”

“정답이야. 교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내 계획 어때?”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아?

아니. 지금 하고 있는 개짓거리들 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온건한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해방이 아니다. 국가에서 교단으로 주체만 옮겨갔을 뿐, 지식은 여전히 통제된다.”

녀석의 말대로 이건 반쪽짜리 해결책일 뿐이다.

“그건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지. 아카데미를 세워 금지된 지식을 사용하는 자들을 뽑고, 자격증을 발부하는 거야.”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격증을 발부하는 곳이 지식을 통제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게 교단이라면? 교단이 그 중심을 잡아 준다면?”

“……불가. 어쨌든 통제의 주체가 존재하니 그건 지식의 해방이 아니다.”

녀석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표정을 보면 전혀 아니었다.

진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적어도, 혼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는 지금보다는 온건한 방법이니까.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야.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네?”

“뭐지?”

지금까지의 대화는 지금 이 물음을 던지기 위해 한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 지식의 해방 상층부는 이런 방법을 몰랐을까?”

“…….”

“니들 목적이 진짜 지식의 해방이야?”

“……그렇다.”

“근데 왜 내가 보기엔, 니들의 목적이 지식의 해방이 아닌 거 같지? 하는 짓을 보면 꼭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거 같잖아.”

“아니다.”

아니긴, 이쪽은 미래에서 온 녀석들이 있다.

멸망의 단초가 되는 사건 대부분은 언제나 ‘지식의 해방’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층부와 하층부가 원하는 게 다른 거겠지.’

밑에 있는 녀석들은 ‘지식의 해방’이 목적이겠지만, 상층부에겐 아니란 뜻이다.

“너랑 대화하면서 확신을 얻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어. 네 얼굴을 보니, 네가 원하는 건 진짜로 ‘지식의 해방’인 모양이네.”

“…….”

녀석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그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성자의 말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며,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그의 의문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우린 정말로 지식의 해방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작게는 개인의 욕심, 크게는 세상을 위해 지식을 해방한다는 그들의 사명.

그 사명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그들은 어느새 악이 되었다.

‘우리의 대의는 악일 뿐인가.’

애써 잊고 있던 그 생각이 성자의 말에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애써 눌렀다.

“난 꿈이 있다. 지식에 가로막혀 누군가 죽는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꿈.”

자신의 실패와 절망을 떠올리며, 성자의 말을 떨쳐냈다.

“그게 제일 웃긴 점이라니까. 금지된 지식이 아니어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성자는 자신의 실패와 절망을 비웃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해 봤어?”

“그런 미련한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있다. 이미 해결책이 있는데,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란 것인가?”

언제나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던 성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마치 분노하는 것처럼 그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방법을 선택한 이들이 있어. 역병 지대를 평생 떠돌며,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평생을 보내는 이들이!”

“그건!”

“자기 합리화하기 위해, 그 거룩한 여정을 반복하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

성자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너희가 금지된 지식이니 뭐니, 사람들을 죽이며 혼란을 만들고 있을 때. 수십에서 수백 가지 치료법이 생겨났어.”

성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며 말했다.

“고작해야 금지된 지식으로 도망쳐 놓고 그런 위대한 이들을 깔 봐? 징징거리지 마.”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난 도망쳤구나.’

실패와 절망을 이겨 내기 위해 움직인 게 아닌, 금지된 지식으로 도망쳤을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했음에도, 그는 분노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짙은 허무가 가슴에 차올랐다.

“난 성자기에 너의 슬픔과 절망을 이해해. 하지만! 그런 슬픔과 절망이 너희의 면죄부가 되어 주는 건 아니야.”

혼나고 있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성자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은 것도 아니고, 진짜 지식의 해방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면, 넌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다면, 넌 꼭두각시일 뿐이야. 절망을 미끼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꼭두각시.”

모든 게 부정당하는 그 말에, 그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아니다! 난 꼭두각시가 아니야!”

비명과도 같은 그 말에, 성자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기회를 줄게.”

“기회?”

“넌 보내 준다는 뜻이야.”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묻기도 전에.

콰드드드드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그는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결계에 구멍이 뚫리고 있었고.

“미친…….”

잠시 후 그 구멍으로 거대한 머리가 튀어나왔으니까.

그것도 피부가 전혀 없는 해골 상태인 거대한 머리가…….

크오오오오-!

그 머리가 울부짖었다.

대기의 마나가 몸을 낮추고, 그 울음소리를 들은 이들은 두려움에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움직이는 이는 딱 한명 뿐이었다.

“합체?”

기묘한 말과 함께, 현자 옆에 있던 골렘이 사라지더니 해골 위로 용암으로 만들어진 비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모두 해골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드래곤.”

전설의 드래곤이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크오오오오오-!

다시 한번 드래곤이 울부짖자,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는 성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그는 쓰러지기 직전 성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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