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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137화 (137/210)

137. 응. 너희도 같이

진은 녀석이 가족을 만나러 가길 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하지만 따듯한 아버지.

무조건 자신의 편인 첫째 형.

기사이며 친화력 갑인 둘째 형.

연구에 미친 마법사, 셋째 형.

귀여움이 특기인 사제 넷째 형.

진이 경험한 녀석의 가족은 정말 따듯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중에 한 명을 만나든, 아니면 모두를 만나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녀석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우리 집에는 절대 말하면 안 되는 금기가 있어.

‘금기?’

-여태까지 가족들은 만나 봐서 알겠지만, 한 명이 빠져 있지 않아?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어머니.’

-맞아.

가족 중에 어머니가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란 존재를 만나거나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차라리 진이 가족에 목말라 하고, 부모란 존재가 절실했다면 진즉 눈치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이란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빠르게 집을 나와 떨어져 살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란 존재가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녀석이 원한 건 어머니를 만나 뵙는 것이었다.

‘어디 계시는데? 만날 순 있는 거야?’

이렇게나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면, 만나기 쉽지 않을 게 당연했다.

-어머니의 고향인 페일 남작령에 계셔.

‘페일 남작령?’

-어. 외할아버지께서 다스리고 있는 지역이야.

녀석의 부탁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만나러 가면 될 일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가줄 수 있어? 널 환영하진 않을 거야.

‘뭐, 어렵지 않지.’

가서 슬쩍 만나기만 하는 일이라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진은 순간 이동을 이용해 순식간에 페일 남작령으로 이동했다.

페일 남작령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진은 자신의 신분은 숨기되, 굳이 어렵게 일을 진행하진 않았다.

“감찰부에서 나왔습니다.”

“가, 감찰부 말입니까!?”

진은 감찰부 배지를 보여 주자, 경비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용히 남작령을 둘러보고 갈 생각입니다. 문제가 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말 이해하셨습니까?”

“이, 이해했습니다!”

“절 가로막거나 방해하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찰부 배지의 효과는 확실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어?

‘있지. 괜히 숨어들었다가 들키면 일 복잡해지는 거야. 이게 제일 깔끔해.’

-하긴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진은 현자의 말을 듣고, 위화감을 느꼈다.

가문의 금기가 되어 버리고, 아이들이 있음에도 본가로 돌아간 어머니.

게다가, 자신은 환영받을 수 없다는 그 말까지.

그 이유가 뭔지 조금씩 감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가면 돼?’

대충 감은 오지만, 진은 모른 척 현자에게 물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문의 묘지가 있어.

‘……알겠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현자는 어머니의 묘를 성묘하러 온 것이었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문의 묘지를 지키는 기사가 있긴 했지만.

“감찰부다. 확인할 게 있으니 열어라.”

“……이곳은 가문의 묘지일 뿐입니다.”

“그럼, 확인은 더 빨리 끝나겠군.”

“아무리 감찰부라 해도, 고인의 영면을 방해하는 건…….”

“조용히 한 바퀴 둘러보고 끝날 일을 키우지 마라.”

“…….”

“열어.”

그 문을 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부는 소박했다. 작은 정원이 있었고, 묘비가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어머니.

현자는 한 묘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참을 말없이 서서 바라보았다.

‘…….’

진은 현자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한쪽에 앉아 녀석을 기다렸다.

그때, 진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진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

진은 눈의 힘을 발동했다.

곧이어, 숨겨져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암살자들.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진의 눈으로도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감시?’

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도 바라봤다.

마치 포위하듯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암살자들.

이건 감시가 아니었다. 애초에 남작가에서 보유할 수 있는 암살자가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진이 소리쳤다.

“비상 프로토콜 발동!”

묘비를 바라보고 있던 현자의 몸이 순식간에 진의 곁으로 오고, 곧이어 진 주위로 수십, 수백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암살자들도 움직였다. 하늘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격리 마법진이야!

‘뭐? 뚫을 수 있어?’

-당연하지. 감히 누구 앞에서 마법을 사용해?

현자의 말을 들어보니, 뚫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잠깐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도망칠 필요는 없었다.

-왜? 마법진이 완벽히 발동되면, 나라도 뚫는 데 시간이 필요해.

‘그 정도면 상관없어.’

생각해 보자.

저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이 오자마자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마법진의 중심이 어디야?’

-……정확히 여기야.

역시 생각대로였다.

저 녀석들은 진이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다.

‘누군지 얼굴 좀 보고 가자.’

-뭐?

진은 현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지시를 내렸다.

‘이 마법진에 간섭할 수 있어?’

-있긴 해. 근데 진짜로 안 가게?

‘꼭꼭 숨어 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대로는 못 가지.’

-……위험해지면 강제로라도 데리고 갈 거야.

‘그건 당연한 거고. 아무튼 마법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거지?’

-어. 완전히 변형하는 건 어렵지만, 약간의 변경은 가능해.

‘이거 내가 도망치지 못 하게 하는 마법진이지?’

-어. 엄밀히 따지면 봉인에 가까운 마법진이야.

‘그럼, 한 가지만 추가해 줘. 밖에서도 이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줘.’

-범위는?

‘날 중심으로 5m 정도?’

-그 정도는 충분해.

현자가 곧장 움직였다.

마나가 주위를 잠식하고, 마법진이 변화한다.

암살자들은 당황한 듯 진에게 달려왔지만.

“여긴 못 들어와.”

녀석들은 벽에라도 막힌 듯 진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거 봐. 못 들어오지?”

진이 얄미운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되물은 뒤, 흙으로 의자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앉았다.

“이제 어쩔래?”

판은 저들이 만들었지만, 그 판을 주도하는 건 진이었다.

* * *

캉-! 캉-!

암살자들은 진에게 다가가기 위해, 결계를 칼로 두드리기도 했고.

콰과광-!

조금 전에 온 마법사들은 그 위로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소용없다니까.”

마법진은 흠집도 나지 않았다.

-녀석들이 준비한 마법진이 워낙 대규모 마법진이라 그래. 공성 병기를 가져와도 못 부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했다.

외부에서 절대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이 마법진이 발동되어 있으면 진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니, 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날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림도 없지.”

얄미운 표정으로 녀석들을 도발하는 것. 꽤 재밌었고, 적성에도 맞는 일이었다.

물론, 그저 녀석들을 놀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동안 정보를 모았다.

-마법진 분석 끝났어.

‘어때? 복잡한 설명은 됐고, 당장 필요한 정보만 줘.’

-금지된 지식이 몇 가지 섞여 있어.

금지된 지식을 이용하는 조직은 지식의 해방 하나뿐이다. 애초에 진은 녀석들일 거라고 예상했다.

‘생각대로네.’

-알고 있었어?

‘어. 대충.’

페일 남작가는 지식의 해방이 개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애초에 결혼한 딸을 가문의 묘지에 묻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건 남작이 딸을 굉장히 사랑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죽은 딸과 절망한 남작.

이것만 해도 지식의 해방이 접근하기 딱 좋은 이야기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딸이 성자의 엄마라면?

지식의 해방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

‘회귀 전에는 문제없었어?’

-전혀. 그때도 종종 성묘를 왔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회귀 후, 진이 날뛰면서 벌어진 사건이란 뜻이었다.

이건 좋은 현상이었다.

진을 잡기 위해 이런 준비를 할 정도로, 녀석들을 차근차근 부수고 있다는 뜻이니까.

“지식의 해방이 여기까진 웬일이야?”

진이 ‘지식의 해방’을 입에 올리자, 변화가 생겼다. 로브를 깊게 뒤집어쓴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알고 있었군.”

“당연하지. 뭔가 거창하게 하는 거 같은데 막상 까놓고 보면 뭔가 부족한 게 딱 니들 스타일이거든.”

“……뚫린 입이라고 잘 지껄이는군.”

“화났어? 근데 어쩌나. 내 몸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할 텐데.”

녀석은 애써 참고 있었지만, 숨기지 못하는 분노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네놈도 여기서 끝이다.”

“내가? 확실해?”

진이 계속 이죽거리며, 녀석을 자극하자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네놈이 어떻게 될지 알려주지. 넌 여기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고작 이걸로?”

“알고 있을 텐데? 넌 우리가 널 죽이는 걸 막았을 뿐, 도망치지도 못한다.”

“과연 그럴까?”

“허세는 그만둬라. 추하니까.”

진이 유도한 대로 녀석은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린 네가 모든 변수를 만들어 낸다는 걸 알아냈다. 너만 막는다면, 네가 만든 변수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여기선 뻔한 대답을 해 줘야 한다.

“우리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아. 인간의 선함을 무시하지 마.”

“하하. 우리를 그토록 괴롭혔던 성자가 이딴 이상주의자였다니!”

웃고 싶은 건 진이었다.

녀석은 완벽하게 넘어왔다.

“널 이곳에 봉인할 것이다. 지금 발동한 마법진이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2차, 3차, 4차. 봉인은 그 위로 계속 중첩될 테니.”

“……허세는 네가 부리고 있네. 그만한 병력은 없을 텐데?”

“우리가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 우리의 진짜 정예를 볼 수 있을 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고?”

“하하. 왕국에 있는 우리는 일개 지부일 뿐. 우린 세상 모든 곳에 있다.”

진은 절망한 듯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엔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고급 정보가 쌓이고 있었다.

“마지막 자유를 만끽해라. 곧 네놈이 볼 건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일 테니.”

“아아…….”

“하. 그분께선 왜 너 따위를 주목하셨는지 모르겠군.”

“그분?”

“……말이 길었군.”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진은 절망한 듯 두 눈을 감았지만, 그건 연기일 뿐이었다.

‘들었지?’

-어. 준비는 잘 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쪽도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로브를 쓴 마법사들이 줄지어 묘지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들은 곧장 마법진 발동을 준비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승리를 확신한 머저리가 다시 한번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지 마라.”

“그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인가? 시답지 않군.”

녀석은 진의 말을 비웃으며,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법진을 발동해라!”

마나가 요동치고,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다시 한번 떠올랐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마법진 위로 또 다른 마법진이 떠올랐다.

-2중 마법진이라. 제법이네.

진은 완벽히 봉인하겠다는 의지가 보일 정도였다.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볼까?’

-알겠어.

곧이어,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오늘 성자는 봉인될 것이다!”

녀석은 진을 바라보며 소리쳤지만, 이쪽도 할 말이 있었다.

“응! 너희들도 같이!”

“뭣이!?”

현자가 숨겨둔 마법진이 하늘에 떠 있는 마법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마법진 통제권 상실!”

“당장 취소해!”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마법사들이 당황한 사이, 마법진이 발동됐고 모두를 집어삼켰다.

마법진이 사라졌을 땐.

묘지가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봉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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